6 곰탕

뚝배기 한 그릇

by 은조

곰탕에 대한 논란은 늘 있었던 것 같다. 명칭에서부터 혼란이 가득한데, 나름 구분은 있다고 한다. 설렁탕은 뼈 국물이라 국물이 뽀얗고, 곰탕은 고기 국물이라 국물이 맑다고 한다. 집에서 끓인 탕은 사골로 고아서 만든 것이니 설렁탕이라 부르는 게 맞지만, 곰탕이나 곰국이라는 명칭에 익숙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게 익숙한 곰탕은, 대부분 체력이 떨어졌을 때라든지 뼈가 부러졌을 때 먹게 되는 경우가 대다수다. 아직까지 뼈가 부러진 적은 없지만, 우리 가족만 해도 보양식으로 자주 곰탕을 찾으니까. 칼슘이 함유되어 있긴 해도 그만큼의 인이 들어있다고 하며, 단백질 성분도 포함되어 있지만 그 양이 얼마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지만 일일이 성분을 따지지 않더라도 뼈를 고아 먹으면 왠지 몸이 좋아지는 기분이 드는 건 오래전부터 깃든 틀에 갇힌 관습 때문일까? 조금의 플라세보 효과 때문일까?


외할머니는 김장하는 날 외에도 무가 제대로 맛이 드는 계절이 오면 깍두기를 담가 주신다. 생지가 취향이라 김치가 익기 전에 먹는 걸 더 좋아하는데, 특히나 파김치는 그렇다. 아삭아삭한 김치와 알싸한 고춧가루 맛은 유효기간이 아주 짧다. 김치가 익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기 때문에 바로바로 먹어야 한다.

그중 유일하게 익은 맛이 좋은 건, 바로 깍두기다. 옛말에 아내가 집을 비울 때 곰국을 솥 한가득 끓여놓고 간다는데, 우리 집은 깍두기가 익기 시작할 때 무조건 사골을 사러 간다. 뽀얗게 우린 국물에 밥을 가득 말아 깍두기 하나씩 올려 먹으면 한 뚝배기는 금방이다. 잘 익은 깍두기의 개운함이 곰탕의 느끼함을 잡아준다.

TV 드라마 속에서는 한소끔 끓어오르는 사골 국물에 깍두기 국물을 부어 먹는데, 나는 국물에 무언가가 섞이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아빠, 엄마 역시도 사골국물이 너무 뜨겁다면서 김치 국물을 넣어서 국물의 온도를 낮춰 먹지만, 나는 입천장이 데이더라도 뜨거운 국물 그대로가 좋다. 그래서 곰탕 그릇은 꼭 뚝배기여야만 한다. 강박관념이라고 해도 좋다. 다른 그릇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 뚝배기가 아닌 그릇에 옮겨 담으면 열기부터가 다르다. 뚝배기 한 그릇으로, 마지막 남은 국물 한 방울까지 싹싹 비워내야 곰탕을 제대로 먹은 기분이 든다.

남편은 후추 마니아라서 곰탕에도 후추를 첨가한다. 나는 잘게 썬 대파를 잔뜩 넣고, 고춧가루만 살짝 뿌린다. 매콤한 맛보다는 본연의 구수한 국물 맛이 좋아 고춧가루도 넣지 않을 때가 많다. 평소에는 싱겁게 먹는 편이지만, 유일하게 곰탕만큼은 다른 요리보다 소금을 많이 넣어 적당하게 짭짤한 맛을 즐긴다. 밥을 말 때마다 싱거워지니까 그런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보양식의 의미가 퇴색되어 가는 것이다.


우리 집에서 유일하게 곰탕이 사라질 때까지 먹는 게 나다. 호불호가 확실한 탓인지, 중독적인 성향이 있는 탓인지, 좋아하는 것에 대해 쉽게 질리는 법이 없다. 그렇다 보니 곰탕이 끝날 때쯤에는 안 그래도 달덩이 같은 얼굴에 볼살이 더 통통하게 차오른다.

아빠는 두 끼 이상을 먹으면 질려 하고, 동생은 곰탕 자체를 좋아하지는 않는다. 나는 질리기보다는 밥을 많이 먹게 되는 까닭에 자제하려고 애쓸 뿐이다. 한 뚝배기 당 두 공기는 기본이니까. 남편도 나처럼 곰탕을 좋아하는데, 어렸을 때는 곰탕이 싫었다고 한다. 질린 이유야 비슷하다. 곰탕을 끓이면 하루 삼시 세끼로 끝나는 법이 없으니까.

자의든 타의든 한번 끓일 때마다 여러 끼니를 먹기는 하지만, 이제는 굳이 다 먹을 필요가 없다는 걸 안다. 남은 국물은 얼려놓으면 요리할 때 육수용으로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으니까. 나는 떡국이나 떡만둣국으로 끓여먹는 걸 가장 좋아하는데, 이 사골 육수만 있으면 어떤 요리든 깊고 진한 맛을 낼 수 있다. 요리용 만능 치트키나 다름없다.


뼈의 상태에 따라 그때그때 다르지만, 가끔은 뼈에 붙은 살코기가 많을 때가 있다. 고기를 따로 넣어먹는 것과는 또 다른 별미다. 어릴 때는 뭐 그리 먹을 욕심이 많았는지, 동생과 뽀얀 국물 속에 숨겨진 야들야들한 살코기를 서로 찾아내겠다며 아옹다옹한 적도 많다.

나는 도가니보다는 살코기를 더 선호하는데, 물컹물컹한 식감이 별로다. 콜라겐이고 뭐고 비계와 비슷하게 느껴질 뿐이다. 그래서 내 뚝배기에 들어있는 도가니는 모두 남편 차지다. 남편은 도가니를 무진장 좋아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고기 비계도 좋아하는데, 삼겹살이 아니라 비곗살이라고 할 만큼 비계가 붙어있어도 개의치 않는다. 처음에는 장난인 줄 알았는데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심각할 정도로 좋아해서 불판에 기름칠을 하려고 따로 썰어놓은 비곗덩어리마저도 구워 먹으려고 해서 말릴 때가 있다.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지 않은 게 다행이다.




곰탕은 기다림이다. 사골을 사서 한두 시간 요리한다고 바로 먹을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진득한 국물을 위해서는 진득하게 기다려야 한다. 마냥 끓이기만 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엄마 말에 의하면 사골로만 끓이기보다는 잡뼈랑 섞어야 더 깊은 맛이 난다고 한다. 어찌됐든 필수적인 과정은 똑같다. 핏물을 빼고, 불순물을 제거하고, 끓이는 동안 둥둥 떠오르는 기름도 걷어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누린내가 나니까. 그렇게 세 차례 정도를 우려내야 국물이 뽀얗게 진가를 드러낸다.

준비하고 끓이는 데 반나절 이상이 걸리는데, 웬만한 정성이 아니면 할 수 없는 것이다. 차마 기다리다 못해 첫 번째 우려낸 결과물만 먹게 된다면 진한 국물을 기대할 순 없다.


이 번거로운 과정들을 끝내 놓으면 곰탕으로 끼니를 챙겨 먹는 일은 한결 간단해진다. 별다른 반찬도 필요 없고, 데워먹기만 하면 되니까 말이다.

물론, 김치는 있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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