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팥죽

새알심 동동 띄워

by 은조

12월이 되면, 꼭 먹어야 하는 것이 있다. 그건 바로 동지팥죽이다. 정월대보름에 오곡밥을 지어먹는 것만큼이나 대표적인 우리나라의 절기 음식이다.

양력 12월 22일 경인 동지는 1년 중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이라고 하여, 음기가 강해 팥의 붉은색이 귀신을 쫓아준다고 믿어 팥죽을 쑤어 먹었다고 한다. 어렸을 때 재미있게 봤던 만화 <꼬비꼬비>에서도 도깨비가 팥죽을 싫어한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믿거나 말거나 팥죽을 먹는다고 손해 볼 건 없다.


동지가 지나면 새해 맞을 준비를 해야 한다는 의미로, 팥죽을 먹어야 나이 한 살을 더 먹는다고 생각해 팥죽에 넣는 새알심을 나이 수대로 넣어 먹는다고 했다.

우리 가족도 동짓날에는 팥죽을 쑤어 먹었는데, 꼭 동짓날이 아니더라도 12월에 한 번은 꼭 팥죽을 먹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아주 가끔은 팥 칼국수도 만들어 먹지만, 보통은 새알심을 만들어 넣어 먹는다. 어렸을 때는 팥죽이 맛있어서라기보다 새알심 때문에 먹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팥죽 한 그릇에 나이 수대로 새알심을 넣는 건 너무 적다고 생각했는데, (딱히 그대로 넣지도 않았지만) 이제는 나이만큼만 새알심을 넣어도 충분히 차고 넘친다. 새알심이 너무 많아 까딱하면 떡이 될 판국이다.


새알심을 만들 때 반죽은 대부분 내가 도맡아 했다. 외할머니나 엄마가 팥을 삶아 으깨고 체에 걸러 끓이는 동안 나는 동생과 새알심 만들기에 돌입한다. 갓난아기 촉감 놀이하는 것도 아닌데, 반죽 만드는 데 진심이다. 엄마가 스테인리스 볼에 찹쌀가루와 물을 넣어주면 슬슬 섞다가 가루가 덩어리가 될 때까지, 손에 더 이상 반죽이 묻어나지 않을 때까지 조물조물 반죽을 뭉친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모두가 아시다시피 반죽은 치대면 치댈수록 쫄깃하고 맛있으니까. 완성된 반죽을 적당한 크기로 뜯어서 손바닥에 동글동글 굴리는데, 계속 굴리다 보면 나중에는 손바닥이 마찰 때문에 뻘겋게 변하고 간질거린다.

그래도 새알심을 쟁반 가득 만들어놓으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 곧 뜨거운 팥죽 안으로 빠져들어야겠지만. 대부분의 죽이 그렇듯 팥죽을 쑬 때도 밑바닥이 누르지 않도록 계속해서 저어줘야 하는데, 가끔 튀어 오르는 죽을 조심해야 한다. 기름만큼이나 무섭다.

새알심을 익었는지 알아보는 건 쉽다. 새알심이 팥죽 위로 뽀얀 얼굴을 들이밀 때까지 끓여주면 된다. 나는 기미상궁마냥 동동 떠오르는 새알심 한두 개를 꺼내 먹을 때 노동의 참맛을 느낀다. 열의를 다해 반죽을 치댄 보람이 있구나 하고.


단팥죽이나 팥 칼국수에는 설탕을 많이 넣는 편이지만, 일반 팥죽은 콩국수처럼 간을 하는 방법이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는 듯하다. 취향에 따라 설탕과 소금, 둘 다 사용한다.

설탕이냐, 소금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나는 막 끓인 팥죽을 먹을 때는 설탕을 가미해 단팥죽처럼 먹는다. 물론, 팥죽에도 미미하게 밑간을 하기 때문에 굳이 설탕이나 소금을 더 넣지 않더라도 먹을 때가 있는데, 그때는 시원한 동치미라든지 김치를 곁들여 먹는다. 그리고 팥죽이 식었을 때는 따로 데워 먹지는 않는다. 12월에는 굳이 냉장고에 넣어 놓을 필요 없이 베란다에 팥죽을 놔두기만 해도 차갑게 식는데, 새알심이 좀 딱딱한 게 흠이라면 흠이지만 팥죽 자체는 차갑게 먹어도 맛있다.




여름이 되면 팥빙수가, 겨울이 되면 붕어빵이, 돌아오는 계절을 데리고 나타난다.

여름에는 마트마다 빙수 기계나 빙수 재료들이 코너 한쪽을 차지하고, 겨울에는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거리마다 붕어빵 장수가 하나씩 자리를 잡는다. 계절의 변화를 느끼기도 전에, 그 계절의 온도를 대변하듯 계절의 배경이 바뀐다.

평소에는 양갱을 달고 사는데, 주변 사람들이 할머니 입맛이라 놀리지만, 씁쓸한 차에 조금씩 잘라 곁들여 먹으면 조각 케이크 못지않다. 편의점에서 2+1을 할 때는 쟁여놓아야 한다. 떡 중에도 떡볶이 다음으로 자주 먹는 떡이 시루떡이다. 엄마는 생일 때마다 회사 사람들과 나눠먹는다며 방앗간이나 떡집에 시루떡을 주문했다. 이른 새벽에 갓 찌어낸 떡이라면, 팥이 통째로 올라간 것도, 곱게 갈려 고물을 묻힌 것도 상관없다. 뭔들 맛없을쏘냐!


팥은 늘 가까이에 있다. 곱씹어 보면, 팥으로 만든 것 중 싫어하는 건 없었다.

그런데, 첵스 팥맛이 나왔다고 한다.

그렇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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