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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살아만 있다면 어떻게든 된다.

by 타우마제인

<8. 공황발작>


공황발작을 겪어본 사람들은 안다.


순간, 감당하기 힘든 알 수 없는 공포감이 들이닥친다.

숨을 쉴 수가 없고, 이대로 심장마비로 죽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자연스럽게 눈물이 나고, 살려주세요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흥분하면 흥분할수록 공포감은 배가 된다.


공황발작은 1~2시간 정도 계속된다.


이건 몸에서 죽기 전에 착각하고 보내는 반응이다.


버티지 못하는 스트레스로 인해 자율 신경계에 이상이 생기는 것이다.

마치 내 눈앞에 사자나 곰이 나타나서 이제 딱 죽겠구나란 마음이 들 때의 공포감과 비슷하다고 한다.


공황발작의 가장 높은 단계는 광장 공포증이다.

온몸에 식은땀이 나고 불안감이 생겨 사람이 있는 곳에 갈 수가 없다.

사람들의 말소리와 움직임도 무섭다.


절망하는 시기였기 때문에 우울증은 자연히 동반됐다.


20대 때부터 제대로 쉰 적 없이 지금까지 달려왔다.

그 결과가 지금까지 번 돈을 모두 잃고, 빈털터리 공황장애, 우울증 환자라니.


하늘의 별이 너무 가까워 보여, 별을 따려고 힘껏 점프했다가 절벽으로 떨어진 고통이 이럴까.


난 숨만 붙어 있을 뿐, 그때 당시 사람이 아니었다.

살고 싶지 않았다. 지금 이 현실을 피하고만 싶었다.

왜 사업가들이 자살을 택하는지 알게 됐다.


카뮈의 이방인에 나오는 말처럼 더 이상 빠져나갈 곳이 없었던 것이다.


집에 도움을 요청할 형편도 못 되었다.


재혼을 한 엄마는 그때 당시 성격이 과격한 새아빠의 눈치를 볼 때라 나를 돌봐줄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어떻게 됐을까?


그래도 난 이렇게 살아있어 글을 쓰고 있다.


두 사람의 도움 때문이다.

한 명은 우리 회사 직원이었던 A대리다.

회사가 무너지고, 월급도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혼자 매장일을 다하고, 나를 돌봐주었다.


그리고 그때 당시 나의 연인이었던 H.


1년 동안 사귀고 있었던 H는 나이가 많이 어렸다.


우리 매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던 H는 사실 내가 뽑았는데도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난 주로 서촌 사무실에 있거나 저녁에 매장에 왔고, H는 낮에 알바를 했으니 1년 넘게 난 H를 본 기억이 없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보게 됐을 때 난 한눈에 반했고 무슨 용기인지 고백도 하게 돼서 사귀게 됐다.


H는 대학생이었는데, 나 때문에 휴학을 하고 영어 강사를 뛰었다.


난 하루 종일 강아지 2마리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폐인처럼 살았다.


한 달에 한 번 신경정신과에 들러 약 처방을 받았고, 강아지 산책을 시켰다.


공황장애, 우울증, 번아웃까지 왔기 때문에 나에겐 무엇을 할 의지라는 게 남아 있을 리 없었다.


그 모든 걸, H는 2년 동안 의연하게 해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직 어린 나이에 얼마나 답답했을까.


마침내 내가 취업을 할 만큼 상태가 호전되자, H는 날 떠나 버렸다.


사랑이고, 보호자였던 H.....


난 필사적으로 잡았지만, 냉정했다.


아마 전부터 마음이 떠나있었지만, 차마 날 버리진 못 했던 것 같다.

돌봐준 고마움도 잊은 채, 울고불고 떠난 그 사람을 욕하고 빌고, 별 미친 짓을 다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겐 그 사람이 첫사랑이었다.


나이는 어렸지만, 똑똑했고, 의연했고, 용기 있던 사람.


나에게 너무 많은 걸 주었던 사람.


날 죽음에서 구해준 사람.


그 이후로, 나는 나이에 대한 편견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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