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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살아만 있다면 어떻게든 된다.

by 타우마제인

<9. 나의 아이들>


내 인생에서 중요했던 사랑스러운 아이들 얘기를 하고 싶다.


재작년에 11살 12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두부와 밤이다.


2개월 때부터 길렀던 우리의 아이들은 내가 사업이 망했을 때, 본가에서 키워졌다.


같이 있을 때에도 게으른 난 산책을 자주 시키지 못했다.


오히려 본가에 있을 때, 산책을 자주 하고 행복하게 지냈던 것 같다.


아이들을 데려온 이유는 순전히 그 당시같이 살던 친구와의 권태 때문이었다.


헤어지고, 내가 맡게 되면서 산책과 아이들 돌보는 문제는 순전히 내 차지였다.


게으르고, 밖에 나가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나는 산책을 별로 시키지 못했다.


보상심리로 좋은 사료와 간식, 가끔 만들어 주는 수제간식이 다였다.


아이들이 베란다를 내다보는 장면을 여러 번 봐도 별다른 감흥이 일어나지 않았던 것 같다.


일단, 내가 쉬는 게 먼저였으니까.


이런 얘기를 하는 이유는 이렇게 잘해주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순간순간 행복을 주었던 아이들에게 너무 고맙고 미안해서다.


무수히 여러 사건 사고가 많았던 나는 애들을 본가에 맡기는 일이 반복되었고, 끝내는 아이들에게 정이 들어버린 부모님은 애들을 본가에서 키울 것을 제안했다.


내 미련만 제거하면 모두 행복할 수 있었기에, 아이들은 세상을 떠나는

2년 동안 본가에서 산책도 자주 하게 되었고,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살 수 있었다.


둘째 밤이가 먼저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새벽에 갑자기 피를 토하더니 그대로 쓰러진 것이다.


원인도 알 수 없었다. 그전까지 잘 먹고, 잘 지내는 아이였기에.


유독 겁이 많고, 조용하고 소심했던 밤이.... 동물 병원 응급센터 선생님의 말로는 둘 째이고 내성적인 아이였으면, 병을 숨기는 경우도 더러 있다고 했다.


밤이를 먼저 보내고 그렇지 않아도 1년간 폐수종으로 고생했던 첫째 두부도 3개월 후에

눈을 감았다.


병 때문이었는지, 밤이를 잃은 슬픔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다.

아기 때부터 둘은 항상 함께였었다.


다시는 볼 수 없다고 생각할 때, 우리는 그제야 그 존재감을 알게 된다.


얼마나 사랑했는지, 얼마나 잘해주지 못했는지 또 얼마나 고마운지.


정신과 몸이 피폐하던 나는 공황장애와 우울증, 펫로스 증후군까지 앓게 됐다.


어떤 이들에겐 그저 강아지, 고양일지 몰라도 어떤 이들에겐 가족 같은 존재다.


펫로스 증후군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슬픔 때문에 너무 힘든 고비는 1년이었던 것 같다.


아직도 내방에는 아이들 액자가 있고, 지금도 매일 본다.


볼 때마다, 마음도 아프고 그립지만 마음이 무너질 정도는 아니다.


이제는 그저 미안하고 그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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