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도에서 온 사나이_피빛 운석과 복수의 화신
제2부 금강석보다 강한 사나이
22년 후
1942년 경성, 봄.
신우라는 소년이 구산 절벽에서 모든 것을 걸고 떨어진 지 22여 년이 지났다.
무상한 세월 탓인지 아니면 떠오르기 싫은 기억 탓인지 사람들 기억 속에서 이덕수와 박홍순의 아들 신우라는 소년은 점점 잊혀 갔다.
이곳은 한국의 심장부다. 예전에는 한양으로 불렸지만, 지금은 경성으로 불렸다.
1910년 경술국치 이후, 최고 식민 통치 기구인 조선총독부가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
총독부의 삼엄한 통치 아래 한국인들은 매일 매일 숨죽이며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
경성 한복판, 종로 거리에 행인들이 분주히 움직였다.
양복을 입고 뚜벅뚜벅 걸어가는 회사원과 자전거에 큰 짐을 싣고 달리는 노동자, 흰색 한복을 입고 종종걸음으로 걸어가는 처자가 보였다.
여느 날과 다르지 않은 풍경이었다.
그때 전차 경적이 크게 울렸다. 서울역에서 출발해서 동대문역으로 향하는 전차가 들어왔다.
종로 4가 역이 보이자, 경적이 크게 울렸다.
전차 안에는 퇴근하는 사람들과 하교하는 학생들로 붐볐다.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소리가 무척이나 시끄러웠다.
“종로 4가 역입니다.”
승무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전차가 종로 4가 역에 정차하자, 많은 사람이 내리고 올라탔다.
“전차가 복잡하니 앞에 있는 손님들은 뒤로 가주세요!”
전차 운전사가 손님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그러자 전차 앞에 서 있던 한 남자가 전차 끝을 향해 걸어갔다. 한 손에 긴 지팡이가 들고 있었고 얼굴에는 검은색 안경을 쓰고 있었다.
딱 보기에 영락없이 맹인이었다.
맹인이 걸어오자, 사람들이 길을 터줬다.
맹인은 외지인 같았다, 경성 사람들과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요즘 유행하는 옷이 아니라, 남루한 옷을 걸치고 있었고,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려는 듯 커다란 모자를 깊게 눌러 섰다.
전차가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열려있는 창문에서 찬 바람이 들어왔다.
강한 바람에 맹인의 옷깃이 휘날렸다. 목에 걸쳤던 비녀가 바람을 타고 옷 밖으로 튀어나왔다.
비녀는 강한 바람에 요동쳤지만, 몸과 하나인 듯 거센 바람에도 결코, 떨어지지 않았다.
맹인이 비녀를 잡았다. 옷 속으로 다시 집어넣고 단추를 꼭 잠갔다.
비녀는 끝에 매화장식 있는 아주 오래된 물건이었다. 수십 년의 세월이 흐른 듯 매우 낡았다.
맹인은 신우였다. 22년 전 스스로 천 길 낭떠러지에서 뛰어내린 바로 그 소년이었다. 이젠 어른이 되어서 장년의 사나이가 되었다.
전차가 점점 속도를 내서 달리기 시작했다. 풍경들이 빠르게 지나갔다.
15살 때 일본 헌병대와 싸우다 눈이 먼 신우가 창문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번화한 경성의 모습을 구경하는 것처럼 ….
“맹인 아저씨네.”
그때 구석에 앉아 있던 한 소년이 호기심 어린 표정을 지으며 신우를 쳐다봤다.
신우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심 있게 지켜보다가, 가방에 눈독을 들였다.
전차가 종점인 동대문역에 정차했다. 많은 사람이 내렸다.
사람들이 다 내리자, 신우가 걸음을 옮겼다. 지팡이로 천천히 계단을 짚으며 차에서 내렸다.
“음, 확실히 공기가 고향과 다르군.”
신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경성의 공기는 간도의 공기와 사뭇 달랐다.
산천에서 은은하게 퍼지는 자연의 냄새가 아니었다.
매콤한 냄새, 맛있는 냄새, 지나가는 여인이 풍기는 분내 등 생소한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생소한 경성의 분위기에 취한 듯 신우가 가만히 서 있었다.
그러자 행인들이 맹인을 보고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 있는 건가?”
“왜? 저렇게 가만히 있지?”
“혹 도움이 필요하나?”
전차 역에 서 있는 맹인을 보고 행인들이 하나둘씩 말을 했지만, 그에게 말을 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시간이 흘러, 오후 5시가 다 되었다.
신우는 10분 동안 가만히 서 있었다.
오후 5시가 되자, 저 멀리서 한 사람이 신우를 향해 달려왔다. 뭐가 그리 급한지 정신없이 달렸다.
“신우야!”
그는 명호였다. 20여 년간 신우의 눈이 돼서 그를 보살펴 준 친구였다.
명호는 일주일 전 경성에 도착했다. 그동안 한 사람을 찾고 있었다. 오늘은 신우가 경성으로 오는 날이었다. 약속 시각에 맞춰 달려오는 길이었다.
“신우야!”
명호의 소리를 들은 신우가 입에 함박웃음을 지었다.
1분 후 명호가 신우 앞에 섰다.
“명호야!”
신우가 다정한 목소리로 친구를 맞이했다.
“별일 없었지?”
명호가 신우의 안색을 살피며 안부를 물었다.
“그럼 별일 없었지.”
신우가 씩 웃으며 답했다.
그가 환하게 웃었을 때, 전차에서 신우를 주시하던 소년이 행동을 개시했다. 가방을 낚아챘다.
“어?”
신우가 깜짝 놀랐다. 소년이 가방을 품고 냅다 골목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뭐야 이게?”
신우와 명호 둘 다 갑작스러운 봉변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이놈의 자식이!”
명호가 화가 나서 크게 소리쳤다. 소년을 뒤쫓기 시작했다.
다소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던 신우가 빙긋 웃었다.
소매치기 소년과 명호의 추격전을 물끄러미 지켜보다가 소년이 도망간 골목을 향해 걸어갔다.
골목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사방을 둘러보더니 뭔가를 결심한 듯 고개를 끄떡였다.
“몸을 좀 풀어볼까?”
신우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말이 끝나자마자, 번개처럼 민가 지붕 위로 솟구쳐 올랐다. 아주 가벼운 몸짓이었다.
탁! 탁! 기왓장 밟는 소리가 들렸다. 신우가 지붕 기왓장을 가볍게 밟으며 쏜살같이 내달렸다.
마치 가벼운 새가 기왓장을 밟는 거 같았다. 작은 부스러기조차 떨어지지 않았다.
먹잇감을 쫓아 공중을 비행하는 매처럼 소매치기 소년의 움직임을 확인하던 신우가 지름길을 찾았다. 지붕 사이를 날아다니며 날다람쥐처럼 소년을 뒤쫓았다.
*
“아이고! 힘들어. 휴, 이만하면 됐겠지.”
명호를 간신히 따돌린 소년이 담벼락에 기대서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잠시 숨을 돌린 후, 반짝이는 눈빛으로 가방을 뒤지기 시작했다.
돈이 될만한 것을 찾으려 가방을 탈탈 털었다. 하지만 값어치 있는 물건은 전혀 없었다.
그냥, 옷가지 여러 벌만 있을 뿐이었다.
“이게 뭐야 … 젠장! 허탕 쳤네.”
소년이 짜증이 나서 가방을 냅다 던져버렸다. 그때, 휙! 하며 거센 바람 소리가 들렸다.
한 사람이 위에서 번개처럼 내려오면서 가방을 탁 낚아챘다. 신우였다.
“헉!”
소년이 깜짝 놀랐다. 귀신처럼 자기를 찾아온 신우를 보고 기겁해서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명호가 저 멀리서 신우를 보고 숨을 헐떡이며 달려왔다.
“시, 신우야! … 놈을 잡았네.”
명호가 간신히 말했다. 신우 앞에서 숨을 돌렸다.
신우가 무서운 표정을 짓고 소년에게 호통쳤다.
“소매치기가 어떤 짓인 줄 알고 이런 짓을 하는 거냐!”
신우의 천둥 같은 호통에 소년의 간이 콩알만 해졌다. 그가 다리를 벌벌 떨었다.
“이놈!”
신우가 도저히 안 되겠다는 표정으로 소년의 멱살을 잡고 가볍게 위로 들어 올렸다. 소년의 발이 허공에서 버둥거렸다.
“아저씨! 살려주세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 정말 죄송해요!”
소년이 눈물을 철철 흘리며 사정했다. 닭똥 같은 눈물이 신우의 손에 떨어졌다.
측은한 마음이 들었는지 신우가 잡았던 멱살을 탁 놨다. 그러자 소년이 땅으로 떨어졌다.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아이고! 엉덩이야!”
소년이 왼쪽 엉덩이를 메 만지며 오만상을 찌푸렸다.
“이놈 자식아! 어디서 감히 소매치기해! 엄청 혼이 나야 정신 차릴 거냐!”
명호가 버럭 화를 내며 소년에게 다가갔다.
“명호야! 그만하자. 이만하면 충분해.”
신우가 명호를 제지했다. 그리고 소년에게 빨리 가라고 손짓했다.
몸을 벌벌 떨던 소년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 아저씨 맹인 아니었어요?”
“석 달 전까지는 그랬지 … 하하하!”
신우가 검은색 안경을 벗으며 쾌활하게 웃었다. 두 눈이 반짝였다.
“아이고, 멀쩡하네!”
소년이 입을 다물지 못했다. 신우한테 깜박 속고 말았다.
“야! 이놈아! 지금 뭐 하는 거야? 물건을 빨리 가방에 넣어!”
명호가 소년에게 호통쳤다.
“아, 알겠습니다.”
소년이 벌벌 떠는 손으로 사방으로 떨어진 물건을 주워 담느라고 허둥거렸다.
부산을 떠는 모습을 보고 신우와 명호가 쓴웃음을 지었다.
소년이 물건을 가방에 다 담자, 신우가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명호의 얼굴을 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명호야! …… 찾았니?”
“아니, 아직 못 찾았어. 나도 여기에 온 지가 … 며칠 안 되잖아, 미안해.”
명호가 꽤 실망한 듯 힘없이 답했다. 그가 말을 이었다.
“경성에서 쌀가게 하는 곳이 이렇게 많을 줄은 몰랐어.”
“그렇구나.”
“신우야, 길동이 아버님이 촌장을 분명 봤다고 했잖아. 경성에서 큰 쌀가게를 한다고 다른 사람한테 말하는 걸 들었다고 했어.
그래서 경성에 무작정 올라온 건데, 막상 와보니까 번화가가 한두 군데가 아니더라고 ….
쌀가게가 명동에 있는지 동대문에 있는지 종로에 있는지 도통 모르겠더라고. 그래서 막막해 죽겠어.
그때 아저씨가 촌장 뒤를 밟았어야 했는데 그놈의 전차가 와서 놓쳐 버린 게 참 아쉽다.
지금 촌장 이름으로 수소문하는데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더라고 … 이름을 바꿨을까? 아니면 일본 이름을 사용하는 걸까?”
“아! 이거, 너무 막막하네. 촌장의 새 이름을 우리가 어떻게 알아.”
신우가 낙담한 듯 윗니로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이때 둘의 대화를 엿듣던 소년이 불쑥 끼어들었다.
“저 아저씨들, 누구 찾으세요? 제가 도와 드릴게요. 경성 번화가 쪽은 훤히 꽤 뚫고 있거든요. 말만 하시면 누구든지 찾아 드릴게요.
“경성에 대해 잘 안다고?”
신우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소년에게 걸어가 그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럼, 여기 번화가에서 쌀가게 하는 최씨 성을 가진 사람을 찾을 수 있겠니? 이름은 명신이야. 최명신! 그 사람은 간도에서 왔단다. 나이는 예순이 넘었을 거야.”
신우가 말을 마친 후, 주머니에서 지폐 뭉치를 꺼내서 소년 앞에서 흔들었다. 거액의 돈을 보자, 소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네! 좋아요. 그 정도 단서면 금방 찾을 수 있어요. 며칠간 말미를 주세요.”
소년이 군침을 흘리며 급히 답했다.
“이 돈은 착수금이야. 우리가 찾는 사람을 찾으면 이 돈의 두 배로 주마.”
소년이 놀라움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신우가 말을 이었다.
“하지만 네 놈이 사기를 치면 지옥까지 쫓아가서 끝장을 낼 테니까 … 알아서 해! 알았지.”
신우가 소년에게 으름장을 놓고 약속한 돈을 건넸다.
소년이 “이게 웬 횡재야!” 하면서 뛸 듯이 기뻐하며 말했다.
“삼 일 뒤, 이곳에서 이때쯤 다시 만나요. 제가 아이들을 쫙 풀어서 찾아볼게요.
최명신이라는 이름에 쌀가게, 간도 출신, 나이 예순쯤이 맞지요?”
소년의 말에 신우가 고개를 끄떡였다. 이제 그만 가보라고 손짓했다.
“반드시 찾을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소년이 호언장담하고, 가슴에 돈뭉치를 품고 내달렸다.
명호가 머리를 긁적이며 신우에게 말했다. 의심쩍은 눈초리였다.
“저놈을 믿을 수 있을까?”
신우가 먼 산을 바라보며 조용히 답했다.
“돈을 좋아하는 놈이니까 … 나머지 돈도 받고 싶어서 찾기는 찾을 거야. 사람 찾는 데는 시장 왈패들이 제격이지.”
신우가 가방을 다시 들고 명호와 같이 길을 나섰다. 곧 해가 떨어졌고, 저녁때가 되었다. 명호가 허기진 배를 움켜잡으며 신우에게 말했다.
“배고픈데 어디 가서 국밥이라도 한 그릇 먹고 갈까? 경성은 국밥이 참 맛있더라고.”
“좋지! 나도 배고프다.”
잠시 후 신우와 명호가 역 근처에 있는 국밥집으로 들어가 국밥 두 그릇을 시켰다.
둘이 냉수를 마시며 식사를 기다렸다. 잠시 후, 주인아줌마가 국밥과 깍두기를 가져왔다.
둘 다 배가 고팠는지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주인아줌마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신우와 명호를 쳐다봤다. 그녀가 말했다.
“저기, 아저씨들 어디에서 왔어요? 서울 사람 같지는 않은데?”
주인아줌마가 깍두기를 더 주면서 말을 붙였다.
“아! 예, 저희는 간도에서 왔습니다.”
명호가 국밥을 급히 삼키며 말을 받았다.
주인아줌마가 무릎을 딱 치면서 말했다.
“간도라고요? 아! 그 북쪽에 있다는 제일 긴 강(압록강), 거기 건너편에서 오셨구나. 참! 멀리서도 오셨네! 혹, 서울에 연고가 있나요?”
“연고는 없지만, 꼭 찾을 사람이 있습니다. 반드시!”
신우가 말을 마치고 뚝배기를 쭉 들이켰다. 국밥을 남김없이 다 먹고 숟가락을 탁 놓고 일어났다.
“왜? 더 드시지, 밥이 부족하면 더 드릴게요.”
주인아줌마가 신우를 쫓아가며 말을 붙였다.
“잘 먹었습니다.”
신우가 짤막하게 답하고 명호에게 눈치 줬다. 이에 명호가 국물을 입에 들이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간도에서 온 사나이들 잘 가세요.”
주인아줌마가 친절하게 신우와 명호를 배웅했다.
둘이 국밥집에서 나와 동대문역 왼쪽에 있는 골목길로 들어갔다. 전차가 경적을 울리며 동대문역으로 들어왔다.
사람들이 전차를 타기 위해 달려와 역이 붐볐다.
신우와 명호는 인파 속에 섞여서 태연하게 움직였다.
하지만 가슴 속에서는 뜨거운 피가 팔팔 끓어오르고 있었다.
20여 년의 전의 빚을 반드시 갚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활화산처럼 불타오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