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판 소설_간도에서 온 사나이 1편_24화

간도에서 온 사나이_피빛 운석과 복수의 화신

by woodolee

24화 두 소년


“신우야!”


명호가 신우를 애타게 부르며 절벽에서 급히 뛰어 내렸다.


저 멀리 물살을 따라 떠내려가는 신우를 발견하고 주저 없이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첨벙첨벙 물살을 가르며 신우를 향해 헤엄쳤다.


잠시 후, 간신히 친구의 옷자락을 붙잡고 뭍으로 기어올랐다.


“아이고! 힘들다.”


명호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신우의 상태를 확인했다. 신우는 미동조차 없었다.


“이, 이런!”


명호가 크게 소리치며 신우를 마구 흔들었다.


“제발 정신 차려! 신우야! 제발!”


명호는 친구의 가슴을 주먹으로 내리치며 영원한 꿈속으로 빠지려는 신우를 깨웠다.


신우는 꿈을 꾸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깊은 꿈이었다.


그가 높디높은 구산 절벽에서 떨어질 때, 15년 짧은 생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아기일 때 엉금엉금 기어서 엄마에게 갔던 일,

동네 애들과 주먹다짐해서 코피가 났던 일,

촌장이 준 사이다를 처음 먹고 신났던 일,

아빠가 동네 씨름대회에서 우승해서 검둥이를 끌고 왔던 일 등,


소중한 추억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그러다 물에 떨어졌고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마치 몸이 산산 조각나는 것 같았다.


바로 그 순간, 그날에 겪었던 기이한 일이 떠올랐다.


깊은 땅속으로 신우가 추락하고 있었다.


꺼졌던 구멍이 빠르게 메꿔지면서 한 줄기 빛도 사라졌다.


그때 뜨거운 열기가 등을 감쌌다. 이에 고개를 돌려 밑을 내려다봤다.


아래에 커다란 운석이 뜨거운 열을 내뿜으며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운석의 표면에는 성게의 가시 같은 뾰족한 돌기가 사방으로 쭉 뻗어 있었다.


“악!”


운석의 돌기가 신우의 등을 관통했다. 가슴이 쪼개지는 고통에 밀려왔다.


이윽고 돌기가 뚝 부러지면서 실신한 신우가 딱딱한 바닥으로 떨어졌다.


“앗!”


신우가 눈을 떴다. 꿈에서 깨어났다. 영원한 꿈에 빠지려는 그를 명호가 깨웠다.


속에 있는 물을 한 바가지 정도 뱉어내고 겨우 정신 차렸다.


“됐다! 신우가 깨어났어!”


명호가 기쁨의 함성을 질렀다. 그러다 탈진한 나머지 그 자리에 뻗어버렸다.


신우의 몸에서 푸른색의 빛이 돌기 시작했다. 점차 몸이 회복됐다.


한 참의 시간이 지났다.


신우의 의식이 또렷이 돌아왔다. 아직 거동은 불편했다. 너무나도 높은 곳에서 떨어졌기 때문에 회복하는 데도 시간이 걸렸다.


기운을 다시 차린 명호가 신우의 손을 꼭 붙잡고 말했다.


“신우야! 너마저 죽으면 난 어떻게 살라는 거야? 부모 없다고 손 가락질 받던 나를 … 네가 대신 싸워줬잖아.

이젠 내가 너를 지켜줄 테니, 허튼 생각은 제발 하지 마! 언젠가 눈을 뜨면 복수할 기회가 분명히 있을 거야. 그때를 기다리자. 희망을 품자. 신우야!”


명호가 신우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흐느꼈다.


“추워! 너무 추워!”


신우가 몸을 사시나무 떨듯이 떨기 시작했다. 이에 명호가 저고리를 벗어서 신우를 덮어 주고, 서둘러 불을 피웠다.


잠시 후 모닥불이 탁탁 타올랐다.


따뜻한 열기에 젖은 옷들이 말랐다. 신우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따뜻한 열기에 안색이 돌아왔다.


모닥불에 나뭇가지를 던지던 명호가 뭔가를 생각하더니 이내 결심을 한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신우야! 우리 멀리 떠나자! 나도 여기에서 더는 살고 싶지 않다.”


단호한 목소리였다.


“뭐라고? 진심이야? 삼촌께 말씀은 드렸니?”


명호의 결심에 놀란 신우가 입을 열었다.


“아직은 아니야! 하지만 이젠 눈칫밥 먹는 것도 질려. 내가 떠난다고 하면 삼촌이나 숙모도 허락하실 거야. 이제 … 다 컸잖아.”


명호가 먼 산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신우야, 넌 죽은 사람이니, 마을로 돌아갈 수는 없어. 우리 같이 밖으로 나가자, 가서 큰 세상을 경험하자. 돈을 많이 벌면 … 좋은 의사한테 치료받을 수 있어.”


신우에게 결심을 촉구하는 듯 명호가 목청을 높였다.


신우의 눈빛이 흔들렸다. 명호가 보이지는 않았지만, 어른이 다 됐다고 생각했다. 이에 말없이 고개를 끄떡였다.


둘 사이에 침묵이 다시 흘렀다.


명호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예전에 기철이 붕어를 잡았던 거처럼 붕어 몇 마리를 잡아서 모닥불에 구웠다.


붕어가 맛있게 익는 소리와 구수한 냄새가 진동했다.


신우의 입에서 군침이 돌기 시작했다.


“다 됐다. 먹자!”


잘 구운 생선을 명호가 툭 잘랐다. 생선을 먹기 좋게 잘게 잘라서 신우의 입에 넣어줬다.


“맛있다. 고맙다 명호야!”


신우가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내가 눈이 보이지 않아서 너한테 짐만 될 텐데 ….”


신우가 보이지 않는 눈으로 명호를 찾았다.


“뭐! 어떻게 되겠지. 설마 산 입에 거미줄 치겠냐! 하하하!”


명호가 허탈 웃음을 지으며 붕어를 뜯어 먹었다.



**



명호가 가벼운 발걸음을 삼촌 집으로 향했다. 집에 들어가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집을 떠나고 싶다고 말했다.


조카의 말에 삼촌과 숙모가 잠깐 머뭇거렸지만, 흔쾌히 승낙했다. 형편이 어려운 그들에게 명호는 사실, 달가운 존재가 아니었다.


그렇지만, 갑자기 떠난다고 하니 아쉬움에 눈물을 흘렸다.


“그동안 정말 감사했습니다.”


명호가 삼촌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넙죽 절을 하고 집을 나섰다.


“명호야, 언제든지 찾아와.”


울먹이던 삼촌이 조카에게 소정의 돈을 쥐여주고 말했다. 이에 명호가 말없이 고개를 끄떡였다.


집을 나선 명호가 기철의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마을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기철을 보고 싶었다.


기철은 여전히 멍한 표정으로 마루에 앉아 있었다. 여러 날이 지났지만, 차도가 전혀 없었다.


“기철아!”


친구의 이름을 … 명호가 나지막하게 불렀다. 먼발치에서 서서 안타까운 표정으로 친구를 바라다보았다.


재빠른 손으로 붕어를 낚아채던 모습을 회상하며 안타까움에 눈을 떨굴 수밖에 없었다.


“기철아, 돈을 많이 벌어서 찾아올게. 그때까지 무탈해야 해.”


작별 인사를 고한 명호가 기철 엄마에게 인사하고 마을을 떠났다.


마을을 떠난 명호가 구산으로 올라갔다. 구산 중턱에 친구가 있었다. 신우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둘이 짐을 나눠 매고 길을 나설 채비를 마쳤다.


“신우야, 길 떠나기 전에 할 일이 있어.”


명호가 말을 마치고 품에서 긴 동아줄을 꺼냈다.


줄 한쪽 끝을 신우의 허리춤에 단단히 묶더니 다른 쪽 끝을 오른쪽 손목에 꽉 묶었다.


명호가 신우에게 줄을 쥐여주며 신신당부했다.


“신우야! 줄을 놓치면 안 돼. 줄을 꼭 붙잡고 날 따라와야 해!”


“알았어! 명호야, 줄을 꼭 붙잡을게. 하늘이 무너져도 이 줄은 절대 안 놓쳐!”


“그래, 그래! 하늘이 무너져도 줄을 꼭 잡아야 해!”


신우와 명호가 동아줄을 꽉 붙잡고 누구보다 씩씩하게 외쳤다.


명호가 힘차게 걸어갔다. 먼 훗날 자기 소원이 꼭 이루어지리라 낙관하며 활짝 웃었다.


신우가 어서 눈을 뜨고, 피맺힌 복수도 하고 돈도 많이 벌어서 예쁜 여자와 결혼하고 싶었다.


신우는 생명줄과 같은 동아줄을 꼭 잡으며 한발 한발 앞으로 나아갔다. 언젠가 좋은 날이 오리라 기대하며 어둠 속을 헤쳐나갔다.


신우와 명호를 배웅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기분 좋게 지저귀는 새소리가 듣기 참 좋았다. 마치 행진곡 같았다. 아울러 더위를 식히는 시원한 바람에 기분이 상쾌해졌다.


그렇게 두 소년은 희망이라는 동아줄로 서로를 묶고 길을 나섰다. 서로 의지하며 미래를 향해 나아갔다.


“그래, 지금부터 새로 시작하자!”


신우가 다짐했다. 엄마가 자주 부르던 노래를 부르며 어떠한 역경도 헤쳐나가리라 다짐했다.


수백 미터 구산 절벽에서 떨어질 때, 죽지 않는다면 100년이 걸리더라도 반드시 복수하겠다는 맹세를 되새겼다.


그 맹세를 지키기 위해 오늘도 내일도 꿋꿋하게 살아가리라 굳게 마음을 먹었다.



두 소년이 정처 없이 여러 마을을 돌아다녔다.


명호는 잠자리와 끼니를 마련하기 위해 농사일을 도와주며 날품팔이를 시작했다. 하지만, 소득이 영 시원찮았다.


신우의 눈을 고쳐야 하는데 이 정도 돈으로는 의원을 찾아갈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그래서 고심 끝에 날품팔이보다는 장사를 시작하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어떤 장사를 시작하는 것이 좋을까 고민하다가 머릿속에 한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맞아! 동네에 자주 찾아왔던 약장수와 차력사가 있었지!

만병통치약이라고 너스레 떨며 사람들을 구름처럼 모아서 약 기운으로 힘이 세졌다며, 한 뼘 두께 몽둥이를 한 손으로 두 동강 내고, 기왓장을 머리로 깨고, 차돌을 아무렇지도 않게 박살 냈었지.’


명호가 고개를 끄떡였다. 차력사가 공연을 시작하자, 마을 사람들이 환호하면서 아낌없이 지갑을 열었던 그때를 생각하며 빙그레 웃었다.


‘그래 힘이 센 거로 치면 신우를 따라올 자가 없잖아. 무장한 일본군 다섯을 가볍게 제압했고, 총을 맞아도 살아났고, 천 길 낭떠러지에서 떨어져도 살아났잖아!’


명호가 손뼉을 짝 쳤다. 신우라면 차력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신우야! 우리 약장수와 차력사 한번 해보지 않을래? 벌이가 지금보다 괜찮을 거 같아.”


명호가 신우의 두 손을 꼭 붙잡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신우가 잠깐 생각했다. 동네에 찾아왔던 약장수와 차력사를 생각하며 고개를 끄떡였다.


혼자 힘들게 생계를 책임지는 명호를 도울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 생각했다. 그가 말했다.


“좋아! 한 번 해보자. 이왕 할 거면 제대로 해야 해. 큰 몽둥이를 갖고 와, 작은 거 말고.”


신우가 흔쾌히 응하고, 자리를 툭툭 털고 일어났다. 명호가 길에서 커다란 몽둥이를 주워서 돌아왔다.


“명호야, 몽둥이로 내 머리를 한번 내리쳐 봐라.”


“이거 정말 괜찮을까?”


커다란 몽둥이를 든 명호가 엄두가 나지 않아서 멈칫했다.


“괜찮아! 내가 어떤 사람이냐? 일본군도 때려잡고 천 길 낭떠러지에서 떨어져도 살아남은 사람이잖아. 나를 믿어!”


신우가 아무렇지도 않다며 명호를 재촉했다.


“그래, 일본군을 우습게 때려잡던 넌데 이깟 몽둥이쯤이야.”


명호가 고개를 끄떡이며 몽둥이를 꽉 잡았다.


“아주 세게 쳐야 해! 그래야 몽둥이가 두 동강 나지.”


“알았어.”


신우가 차력사처럼 자세를 잡았다.


“자! 준비됐다. 어서 내리쳐, 얍!”


신우가 온몸에 힘을 주고 기합을 넣었다.


“휴우~!”


명호가 크게 숨을 내쉬며 긴장감을 풀었다. 손바닥에 침을 탁 묻히고 두 손으로 몽둥이를 꽉 잡았다.


“자, 간다.”


크게 소리치고 몽둥이를 높이 쳐들고 신우에게 달려들었다.


빡!


몽둥이에서 작은 조각이 떨어져 나갔다.


명호가 제대로 때리지 못했다. 때리는 순간, 멈칫했다. 신우의 정수리를 정확하게 내리치지 못하고 몽둥이 끝으로 이마를 내리치고 말았다.


그래서 몽둥이가 두 동강이 나기는커녕, 앞부분만 작게 떨어져 나갔다.


“아야!”


신우가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이마를 감싸고 풀썩 쓰러졌다.


“괘, 괜찮아?”


놀란 명호가 신우에게 달려가 이마를 살폈다.


“하하하! 장난이야! 난 괜찮아. 하나도 아프지 않아.”


신우가 웃으면서 고개를 들었다.


“놀랬잖아! 역시 대단하네. 어떻게 상처가 하나도 없네.”


신우의 이마를 살피던 명호가 손뼉을 치며 감탄했다. 이마가 멀쩡했다.


“신우야! 다시 하자. 이번에 제대로 두 동강 낼게.”


명호가 신우를 일으켜 세우고 다시 몽둥이를 들었다.


“그래, 이번엔 제대로 해야 해. 얍!”


신우가 신이 난 나머지 기합을 더욱 힘있게 주었다.

월, 화, 수, 목, 금 연재
이전 24화현판 소설_간도에서 온 사나이 1편_23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