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도에서 온 사나이_피빛 운석과 복수의 화신
두 소년이 의기투합했다. 바로 약장수와 차력사였다.
명호가 먼저 약재를 구했다. 그동안 모은 돈과 삼촌에게 받은 돈을 탈탈 털어서 약재를 구하고, 보약을 만들었다.
혈허증(혈액 부족이나 혈액 순환 장애로 생기는 병을 치료하는 약) 약이었다.
약을 준비한 명호가 장터를 돌아다니며 약 효능을 떠벌렸다. 그렇게 많은 사람을 모았다.
“여러분, 잘 들으세요! 여기에 좋은 약이 있습니다.
가슴이 팔딱팔딱 두근거려서 잠 못 자는 사람들은 이리로 오세요! 앉았다 일어나면 머리가 핑 도는 사람들도 이리로 오세요.
손발과 다리에 쥐가 나는 사람들도 이리로 오세요. 눈이 건조해서 뻑뻑한 사람들도 이리로 오세요.
다 몸이 허해서 그런 겁입니다! 이 약을 먹으면 금방 효과가 있습니다. 다들 내 앞에 모이세요!”
자신만만한 외침이었다. 이에 사람들이 반신반의하며 모이기 시작했다.
“자! 저기에 있는 소년은 호랑이도 때려잡을 수 있는 괴력의 소유자입니다. 오늘 놀라운 괴력을 발휘할 테니 잘 보세요.
소년의 기운이 별로라면 그냥 가셔도 좋지만, 만약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하다면 이 약을 사세요. 허혈증에 아주 좋은 보약입니다.”
명호의 말에 사람들이 신우를 쳐다봤다. 겉보기에 평범한 소년이었다. 나무 상자를 의자 삼아 앉아 있었다. 두 눈을 꼭 감고 말이 없었다.
“야! 한번 해봐라. 정말 대단하면 약을 두 첩 사겠다.”
“야 이 녀석아, 별거 아니면 혼날 줄 알아.”
“저 소년은 아직 어린데. 뭘 할 수 있겠어요. 그냥 허풍이에요. 이거 사기에요.”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분위기가 점점 무르익었다. 명호가 씩 웃었다. 일단 사람들을 모으는 데 성공했다.
“신우야!”
명호의 말에 신우가 고개를 끄떡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준비됐다. 명호야!”
신우의 말에 명호가 고개를 끄떡이고 커다란 몽둥이를 쳐들었다. 몽둥이를 보고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 두께가 어른 팔뚝만큼 두꺼웠다.
“세상에! 저 몽둥이를 저 애를 때린다고요?”
“와! 이거 장난이 아닌데.”
“야!”
순간, 기합이 들렸다. 명호가 힘껏 몽둥이를 휘둘렀다. 신우의 머리를 향해 커다란 몽둥이를 휘둘렀다.
“딱!
뭔가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커다란 몽둥이가 두 동강으로 부러졌다. 반면, 신우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씩 웃었다.
“우와! 대단하다!”
“와! 머리가 돌덩이인가 봐!”
박수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박수갈채였다. 사람들이 환호하며 공연을 즐기기 시작했다.
이후 신우는 약의 효험을 증명이라도 하듯, 몽둥이, 기왓장, 차돌, 쇳덩어리 등 가리지 않고 다 격파했다. 머리가 금강석(다이아몬드)처럼 단단한 거 같았다.
눈을 뜨고도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이거 사기 아냐? 다 가짜지!"
신우이 능력을 도저히 믿을 수 없는 한 사람이 튀어나왔다. 진짜 몽둥이인지, 진짜 기왓장인지, 진짜 차돌인지, 진짜 쇳덩어리인지 일일이 확인했다.
그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모두 진짜였다.
“이거 다 진짜예요. 애가 이걸 다 격파했어요!”
“세상에나!”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 소년의 엄청난 힘에 놀라서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이윽고 너나 할 것 없이 약을 사느라 바빴다.
그렇게 한바탕 약장사가 끝났다.
“흐흐흐! 이거 수지 맞았다.”
명호가 함박웃음을 지었다. 예상한 것보다 훨씬 많은 돈이 수중에 떨어졌다. 금방 부자가 될 것 같았다.
앞으로 돈을 더 많이 벌어서 집도 사고 맛있는 것도 사 먹고, 신우의 눈도 고치고 싶었다. 그리고 삼촌 집에서 더부살이한 빚도 갚고 싶었다.
“하하하!”
돈을 세던 명호가 크게 웃었다. 명호의 웃음에 신우가 활짝 웃었다.
눈이 멀어서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었던 그였기에 명호에게 도움이 됐다는 사실에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시간이 흘러 저녁때가 되었다.
“저녁 먹으러 가자! 오늘은 모처럼 만에 고기다.”
명호가 신우의 손을 잡고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아이고, 어서 오세요. 손님.”
주인장이 둘을 반갑게 맞이했다. 장터라 그런지 소문이 빨랐다. 두 소년이 장터에서 많은 돈을 벌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지갑이 두둑해지자, 명호가 흥이 오른 나머지 돼지고기와 닭고기를 푸짐하게 시켰다. 실로 오랜만에 먹는 고기였다.
그동안은 돈이 없어서 풀과 잡곡만으로 배를 채웠다. 그래서 그런지 둘의 얼굴이 반쪽이었다.
잠시 후,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많은 음식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상을 바닥에 놓자 맛있는 닭고기 냄새가 코를 찔렀다.
삶은 닭이 덩그러니 큰 접시에 놓여 있었다. 이에 명호가 닭 다리를 북 찢어서 신우에게 척 건네줬다. 신우가 한 입 크게 베어 물고 기쁨에 크게 웃어젖혔다.
“하하하!”
신우가 크게 웃자 명호도 덩달아 웃기 시작했다.
이후 누구라 할 거 없이 허겁지겁 밥을 먹기 시작했다.
한 시간 후, 전투적인 식사가 끝났다.
불쑥 나온 배를 두드리던 명호가 슬슬 잠이 오는지 두 눈을 감았다. 그러다 그 자리에 뻗어버렸다. 온종일 약 효능을 떠드느라 피곤했는지 코를 골며 바로 잠들어 버렸다.
신우도 오랜만의 포식에 잠이 몰려왔다. 명호 옆에 편하게 누워서 잠을 청했다.
두 소년이 야심 차게 벌인 첫 사업이 대성공을 거두었다.
신우와 명호의 차력 약장사는 나날이 흥행에 성공했다.
사람들은 신우의 괴력을 보기 위해 구름떼처럼 모여들었다. 그러다 그가 맹인이라는 사실에 알게 되고 안타까움에 혀를 찼다.
남자들은 신우의 괴력에 탄성을 지르며 약을 사기 위해 지갑을 열었고, 여인들은 소년의 측은한 처지에 동정의 눈물을 흘리며 쌈짓돈을 건넸다.
십여 차례의 공연 끝에 둘은 한밑천을 단단히 잡게 되었다.
명호가 신우의 두 손을 꼭 잡고 말했다.
“정말 고맙다, 신우야. 다 네 덕분이야.”
“뭐, 한 것도 별로 없는데 … 난 그저 맞기만 했잖아.”
“이제 의원을 찾아가자. 좋은 의사를 수소문했어.”
“정말이야? 다행이다.”
신우가 미소를 지었다. 눈을 고칠 수 있다는 희망이 싹 트기 시작했다.
명호도 미소를 지었다. 수중에 떨어진 많은 돈을 보며 어느 때보다 자신감이 넘쳤다.
그렇게 둘이 의원을 찾아다니며 치료를 시작했다. 비싼 약을 사서 매일같이 달였다.
그러던 어느 날, 예기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신우가 자리에서 일어나다가 가슴에 큰 통증을 느끼고 그대로 쓰러지고 말았다. 가슴에서 검은빛이 일기 시작했다.
이를 본 명호가 신우에게 달려왔다. 놀란 눈으로 신우를 감싸는 검은빛을 바라봤다.
‘이 검은빛은 대체 뭐지? 푸른빛은 신우를 치료하는 거 같은데 … 검은빛은 정반대인 것 같아.’
검은빛이 갑자기 등장하자, 명호가 불길함을 느꼈다. 친구의 얼굴이 어느 때보다 일그러졌다.
명호가 생각했다. 신우를 감싸는 검은빛의 정체를 알 수는 없었지만, 분명 나쁜 징조라 여겼다.
“으으으!”
신우가 고통에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이에 명호가 급히 움직였다. 옷고름을 풀고 자리에 눕혔다.
잠시 후, 검은빛이 사라졌다. 신음도 같이 사라졌다.
큰 고통이 사라지자, 신우가 겨우 몸을 일으켰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아픈 데가 없다고 했잖아?”
신우의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닦아주던 명호가 침통한 표정으로 말했다.
신우가 고개를 푹 숙이며 힘없이 말했다.
“그게, 사실 힘을 많이 쓰면 몸이 아팠어. 괜찮다가 갑자기 통증이 오더라고. 네가 걱정할까 봐 그동안 말하지 못했어. 미안하다. 명호야.”
“왜 얘기하지 않았어. 난 그런 것도 모르고 계속 차력할 생각만 했잖아.”
명호가 미안함에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그가 말을 이었다.
“신우야, 이젠 차력은 그만하자. 돈은 충분히 벌었으니 다른 사업을 하자. 푹 쉬어. 의원을 불러올게.”
명호가 말을 마치고 의원을 부르러 밖으로 나갔다.
신우가 몸을 일으켰다. 통증이 가시지 않은 몸을 이끌고 찬 바람을 쐬러 마루로 나갔다.
비록 눈이 보이진 않았지만, 달빛이 그윽한 걸 알 수 있었다. 이렇게 하루하루를 살다 보면 언젠가는 밝은 빛을 볼 날이 올 거라고 자신을 위로했다.
눈이 멀어 귀가 더 밝아졌는지 새소리, 풀벌레 소리, 바람 소리가 더욱 잘 들리는 거 같았다.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자연의 소리를 들으며 그는 아름다웠고, 푸근했던 고향 마을을 생각했다. 그곳으로 언젠가는 다시 돌아가리라 생각하며 아픈 몸을 추스르고 다시 방 안으로 들어갔다.
***
신우와 명호가 세상을 떠돌아다닌 지, 어언 20년이 훌쩍 지났다.
시간이 흘러 흘러 사람이 태어나고 늙어가며 죽어갔다.
곳곳에 철도가 뚫리고 자동차가 다니기 시작했다. 허허벌판 여기저기에 공장도 세워졌다.
20여 년 동안 둘은 쉬지 않고 열심히 일했다. 그런 노력의 결과, 작지 않은 사업체를 운영하는 사장이 되었다. 살림살이도 넉넉해졌다.
고향을 떠나던 날, 다짐했던 명호의 희망이 그대로 실현됐다.
하지만 일제가 세운 괴뢰국인 만주국 치하에서 나라를 잃어버린 한국 사람이 별 탈 없이 살기란 쉽지 않았다. 차별과 억압 속에서 살 수밖에 없었다.
1등 시민은 일본인이었고 2등 시민은 한국인이었다. 3등 시민은 중국인이었다.
둘은 훗날을 도모하기 위해 악착같이 돈을 벌었고, 만주국 실력자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항상 조심하고 또 조심했다. 그렇게 와신상담(臥薪嘗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