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판 소설_간도에서 온 사나이 1편_22화

간도에서 온 사나이_피빛 운석과 복수의 화신

by woodolee

22화 검은 눈물


오늘은 덕대의 상여가 나가는 날이다. 상여꾼들이 상여를 들어 올렸다.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구름 한 점 없는 화창한 날에 상여가 출발했다. 하늘은 덕대 부모의 슬픔을 모르는지 더없이 맑고 푸르렀다.


상여 뒤에는 마을 사람들이 구슬프게 통곡하며 그 뒤를 이었다.


“쩌렁, 쩌렁” 종소리가 울렸다. 종소리는 덕대의 억울한 영혼을 달래고 저승에서 행복하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염원이었다.


그렇게 종소리가 울리 때


신우가 뒷산 동굴 밖으로 나왔다. 두 손을 휘저으며 두 눈을 꼭 감고 있었다. 영락없는 맹인의 모습이었다.


그는 몸이 완쾌된 후, 눈이 멀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칠흑 같은 어둠에서 벗어날 수 없었고, 명호의 도움 없이는 한 발짝도 떼기 힘들었다. 그래서 가혹한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명호는 신우에게 곧 회복할 거라 말했지만, 여러 날이 지나도 차도가 전혀 없었다.


낙담한 신우는 말이 없어졌고 가만히 앉아만 있었다.


그러다 마을 어귀에서 울려 퍼지는 낭랑한 종소리와 구슬픈 상여꾼 소리를 들었다. 단박에 그 상여가 누구의 것인지 알아차렸다.


그날, 친구를 위해 죽은 덕대의 영혼이 종소리와 함께 하늘로 올라가는 것 같았다.


신우는 종소리가 멀어질 때까지 꼼짝하지 않고 서 있었다. 마치 덕대에게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는 것처럼.


장례를 파하고, 마을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갔다. 명호는 삼촌에게 볼일이 있다고 말하고 조용히 마을에서 빠져나와 뒷산으로 향했다.


오늘은 늦은 오후까지 장례식이 있어 마을 밖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눈이 먼 신우가 감자와 나물을 잘 찾아서 먹었는지 걱정스러웠다. 그래서 급하게 산을 올랐다.


명호가 동굴 앞에 다다랐을 때, 신우가 동굴 밖에서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신우야, 나와 있었구나? 밥은 제때 먹었니?”


명호가 신우의 기색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


신우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명호가 동굴 안으로 들어가 감자와 나물을 살폈다. 어제 갖고 온 그대로였다. 그가 울컥했다. 동굴에서 나와 신우에게 말했다.


“신우야, 잘 먹어야지 눈도 어서 낫지. 자! 같이 먹자.”


명호가 신우의 손을 꼭 잡았다.


그때 신우의 입이 열렸다.


“덕대는 … 잘 갔니?”


“어! 그걸 어떻게 알았니?”


명호가 놀라서 신우에게 물었다.


“상엿소리가 나더라. 종소리하고.”


신우가 조용히 울먹였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명호가 침통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 맞아. 오늘은 덕대 상여가 나가는 날이었어. 오늘날이 참 좋더라! 덕대는 좋은 곳으로 갔을 거야.”


“그럼, 누렁이는 어떻게 됐니?”


“누렁이는 … 아주머니가 계시는 곳에 잘 묻었어.”


신우가 한동안 말이 없었다. 명호는 그런 신우를 안타까운 표정으로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괴로운 시간이 흘러갔다.


“다 나 때문에 죽은 거야! 다 나 때문에!!”


신우가 고개를 쳐들고 울부짖었다.


“아니야! 아니야! 너 때문에 죽은 게 아니야. 너만은 살리기 위해 그 길을 가신 거야. 네 부모님도, 덕대도 누렁이도.”


명호가 울부짖는 신우를 꼭 껴안으며 소리쳤다.


“자기의 원한을 갚아달라고, 네가 꼭 갚아달라고! 그게 바로 네가 반드시 살아야 할 이유야!”


명호가 말을 이었다.


“덕대가 죽던 날. 촌장이 일본군을 끌고 왔어. 덕대는 촌장이 죽인 거야. 네가 죽인 게 아니야!”


명호가 진실을 말하기 시작했다.


“촌, 촌장이 일본군을 끌고 왔다고!”


활화산처럼 솟구쳐 오르는 분노에 신우가 온몸을 파르르 떨며 치까지 떨었다.


“일본군한테 죽은 사람들이 … 다 하나같이 촌장하고 사이가 나빴어. 너희 집도 촌장한테 못 받은 돈이 있다고 들었어.”


명호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그동안 차마 말하지 못했던 동네의 소문을 말하기 시작했다.


“그, 그게 정말 사실이야? 정말이야!”


신우가 울분에 가득 차서 소리쳤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그런 소문이 있었어. 아저씨가 촌장집으로 찾아가 빚 독촉을 하는 걸 본 사람이 있어.

길동이 아저씨도 그러셨어. 촌장이 돈을 빌려 달라고 했는데 자기는 돈이 없다고 거절하셨대.”


명호가 떨리는 목소리로 자기가 보고 들은 촌장의 실상을 말했다.


“우리 아버지가 촌장하고 사이가 얼마나 좋았는데 … 절대로 그럴 리가 없어, 절대로!”


커다란 절망감에 신우가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어릴 적, 자기를 예뻐하던 촌장을 생각하며 떨리는 두 손을 멈출 수 없었다.


맛있는 사이다를 사주며 머리를 쓰다듬어주던 그 손길이 엊그제 같았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현실에 신우가 몸서리쳤다. 그가 황급히 말했다.


“촌장에게 가겠어. 그자에게 따져야겠어. … 아! 그렇구나, 그래서 일본군에게 끌려가는 나와 엄마를 그렇게 모질게 대했구나! 이제야 알겠어!”


신우가 벌떡 일어났다. 하지만 그는 한 치 앞도 볼 수 없었다. 발을 헛디디고 “쿵”하고 넘어지고 말았다. 그는 다시 일어나려 했지만, 다시 또 넘어지고 말았다.


“안돼! 신우야. 지금 너는 눈을 고쳐야 해. 복수는 나중의 일이야!”


명호가 신우에게 달려와 그를 부축하고 간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촌장에게 가야 해! 가서 따져야 해. 어서 길을 안내해 줘. 제발!”


신우가 고개를 연신 두리번거리며 명호의 손을 찾았다.


“안돼! 넌 이제 죽은 사람이야. 일본군과 촌장에게 네가 죽었다고 거짓말을 했어.”


명호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고 신우의 옷자락을 꼭 붙잡았다.


“왜? 그런 말을 ······”


신우가 놀란 나머지 명호의 몸을 꽉 잡았다.


“널 살리기 위해서야,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 일본군과 촌장한테 벌써 잡혀서 모진 고문을 당했을 거야.”


명호가 말을 마치고 신우의 두 손을 꼭 잡았다. 제발 진정하라는 뜻이었다.


“아아!”


신우는 풀썩 주저앉았다. 다리에 힘이 빠져서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이후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렇게 넋이 나가 있었다.


명호는 신우에게 어떻게든 힘을 주고 싶었다. 좌절은 금물이었다. 이제 힘을 내야 했다. 더는 물러날 곳이 없었다. 이제 벼랑 끝이었다. 명호가 말했다.


“자! 복수하려면 몸이 튼튼해야 해. 자, 빨리 밥을 먹자. 내가 복수하도록 도와줄게. 나만 믿어.”


명호가 동굴로 들어가 감자와 나물이 들어있는 바구니를 들고 와 신우에게 내밀었다.


“·····.”


신우는 아무런 말도 없었다.


“신우야!”


명호가 애타게 신우를 불렀다.


신우가 가슴이 답답한지 가슴팍을 꽉 붙잡았다. 그리고 헛구역질을 하기 시작했다. 먹은 것도 없는데 꽉 막힌 무언 가를 게워내고 싶은지 고통스러운 헛구역질을 계속했다.


명호가 신우의 등을 두드리며 도왔지만, 안에서 나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한 참의 헛구역질 끝에 신우가 숨을 헐떡이며 힘겹게 입을 열었다.


“명호야! 구산 절벽으로 가고 싶어!”


신우가 무언 가를 작정한 듯 결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왜? 거기를 왜 가?”


갑작스러운 신우의 말에 명호가 의아해했다.


“구산에 가고 싶어. 지금 당장 구산 절벽으로 가지 않으며 밥을 먹지 않을 거야!”


신우가 단호하게 말했다.


명호는 신우의 간곡한 부탁을 들어주지 않을 수 없었다.


이에 둘이 손을 잡고 구산으로 올라갔다.


신우가 예전 같으면 구산 정도는 쉽게 올라갔지만, 지금은 태산처럼 높은 산이었다. 길이 험해서 넘기 힘든 벽이었다.


명호의 한 손을 꼭 잡고 험한 길을 걷던 신우가 그만 미끄러졌다. 명호의 손을 놓쳐 아래로 쭉 미끄러지고 말았다. 뽀얀 먼지 속에서도 신우는 산을 오르기 위해 버둥거렸다.


“제발! 신우야 그만하자! 이건 무리야.”


명호가 신우를 타이르며 동굴로 돌아가자고 부탁했지만, 신우는 요지부동이었다.


결국, 명호는 신우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둘이 손을 꼭 붙잡고 산을 올랐다.


두 소년이 악전고투하며 산을 오르는 동안 해가 점점 저물어 갔다.


산을 탄 지, 몇 시간이 지난 후, 신우와 명호가 구산 절벽에 올랐다.


명호가 너무 힘든 나머지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반면, 신우는 조용히 숨을 고르고 있었다.


“명호야. 목이 마른 데. 물이 어디에 없을까?”


신우의 부탁에 명호가 힘들게 몸을 일으켰다. 사실, 명호도 목이 말랐다.


“그럼, 밑에 있는 계곡에서 물을 떠 올 테니, 여기에 가만히 있어야 해.”


명호가 신우에게 신신당부하고 자리를 떴다.


명호의 걸음 소리가 점점 희미해졌다.


홀로 남은 신우가 몸을 일으켰다. 터벅터벅 앞으로 걸어갔다. 이곳은 엄마와 아빠와 함께 소풍을 왔던 곳이었다.


마지막 소풍이었다.


엄마의 노랫소리가 어디선가 들리는 거 같았다. 그날 들었던 가락이 다시 들리는 것 같았다.


그는 앞이 보이지 않았지만, 그날의 기억을 더듬어 이곳이 어디인지 알 수 있었다.


여기에 바위가 있었고, 저기에 낭떠러지가 있었다. 낭떠러지는 수직으로 깎아지른 높디높은 절벽이었다.


이 절벽에서 떨어지면 그 누구도 이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없었다.


신우가 기억에 의존해 조심스럽게 발을 내디뎠다. 그러다 결국, 벼랑 끝에 섰다.


발끝 아래로 먼지가 일며 돌 부스러기가 툭 툭 소리를 내며 절벽 아래로 떨어졌다.


허공을 가르며 비행하던 돌 부스러기가 냇가에 떨어졌다. 물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신우는 알았다. 두 발짝만 더 가면 바로 추락한다는 것을.


한편 명호는 계곡에서 급히 목을 축이고, 신우가 먹을 물을 옷자락에 담아서 절벽을 향해 뛰어갔다.


‘신우가 목마를 텐데 빨리 가야지.’


명호가 발길을 재촉했다. 그렇게 공터에 오른 순간, 신우가 벼랑 끝에 서 있는 것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


“아, 안돼!”


명호가 달리기 시작했다. 옷자락으로 담은 물을 쏟아버리고 신우에게 정신없이 뛰어갔다.


“신우야! 더 가면 안 돼! 더는!!”


애타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 목소리가 구산 절벽에 울려 퍼졌다.


신우가 결심했다.


눈까지 멀어 버리고, 자기 존재마저 세상에서 사라져버린 지금, 복수하기 위해 살아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가혹한 운명 속에서 더는 상처받고 싶지 않았다. 소중한 것들을 더는 잃고 싶지 않았다. 명호에게도 짐이 되고 싶지 않았다. 무서웠다. 그는 충분히 잃고 잃었다.


끝없는 절망과 고통 속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아버지 죽마고우였고 자기를 귀여워 해주던 촌장이 … 악마였다.


아버지, 어머니뿐만 아니라 자기까지 죽이려 했다는 사실에 그만 살 의욕이 꺾이고 말았다. 여기에서 끝나면 모든 것이 다 끝날 거로 생각했다.


죽을 운명에서 두 번이나 살아난 그가 스스로 세 번째 죽음의 길로 뛰어들었다.


지금, 이 순간. 하늘에 모든 것을 맡겼다. 여기에서 죽는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죽으면 그토록 그리워하는 부모님과 덕대, 누렁이에게 가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숨 막히게 조여오는 두려움과 고통에 지쳤고, 살아야 할 희망조차 잃어버렸다.


하지만 절망만큼이나 복수심도 커졌다.


만약 천 길 낭떠러지에서 뛰어내려도 살아남는다면 이십 년, 삼십 년, 아니 백 년이 더 걸리더라도 부모님과 친구들에게 해를 끼친 자들에게 반드시 복수하리라고 하늘에 맹세했다.


두려움의 화신이 되어 이 세상 최고의 두려움이 뭔지를 가르쳐 주겠다고 다짐했다.


사람이 범접할 수 없는 높이에서 신우는 자기 운명을 걸고 뛰어내리기로 작정했다.


신우가 한 발짝을 더 내디뎠다. 돌가루가 천 길 낭떠러지에서 떨어졌다.


그는 돌아가신 엄마, 아빠, 덕대, 누렁이와 명호, 기철, 자기를 도와준 마을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그 눈물은 검은색이었다. 옷자락이 검은 눈물로 검게 물들었다.


두 눈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은 견딜 수 없는 고통으로 타들어 간 그의 속처럼 새까맸다.


“안돼!”


명호가 달려왔다. 신우의 옷자락에 잡으려고 열 손가락을 쫙 펼쳤다. 손끝이 옷자락에 닿으려는 순간!


신우의 몸이 절벽에서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졌다.


“안돼! 신우야!”


명호가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절망감에 차마 눈을 뜰 수조차 없었다.


“시, 신우는 반드시 살아있을 거야. 신우가 죽을 리 없어!”


명호는 눈을 크게 뜨고 엉금엉금 기어서 절벽 아래를 내려다봤다. 떨리는 눈망울이었다.


“풍덩!”


고요한 산천에 물보라가 일었다. 그리고 잠잠해졌다.


“신우야! 신우야!”


명호가 태산 같은 절벽에서 신우를 애타게 불렀다.


잠시 후


신우의 몸이 물에서 떠 올랐다. 물을 따라서 흘러내려갔다.


“아! 저기 있다!!”


신우를 발견한 명호가 친구를 구하기 위해 산 밑으로 내려갔다.




완연한 봄바람을 따라서 꽃씨가 날리고 나비와 벌들이 꽃을 찾아 날아다녔다.


절벽은 늦은 오후의 강렬한 햇빛을 받아 찬란하게 작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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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여섯 살밖에 되지 않은 신우가 파란 나비를 쫓아 마당을 뛰어다녔다.


엄마는 마당에서 나물을 다듬었고, 아빠는 농기구를 닦았다.


부부는 아들이 뛰어노는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봤다.


“아야!”


신우가 그만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많이 아픈지 눈물이 핑 돌았다. 이 모습을 본 엄마가 신우에게 달려왔다.


“괜찮아 신우야! 어디 다친 데는?”


“아파, 엄마!”


신우가 꽤 아픈지 닭똥 같은 눈물을 흘렸다.


“사내아이는 이런 거로 우는 것 아냐! 뚝!”


“그럼, 언제 우는데?”


신우가 눈물을 뚝 그치고 엄마를 똑바로 바라보고 물어봤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우는 거야!”


엄마가 신우의 눈물을 닦아주며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그럼. 아빠는 울보야!”


신우의 당돌한 말에 부부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그래 아빠는 울보다. 엄마 때문에 맨날 울어. 하하하!”


그렇게 신우 가족의 흥겨운 웃음소리가 마당 밖으로 기분 좋게 퍼져 나갔다.



1부 검은 눈물

월, 화, 수, 목,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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