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판 소설_간도에서 온 사나이 1편_21화

간도에서 온 사나이_피빛 운석과 복수의 화신

by woodolee

21화 믿을 수 없는 회복력


촌장은 명호의 말을 굳게 믿었다. 명호가 말한 대로 헌병 대장에게 고했다.


촌장의 진술이 끝나자, 다음 차례는 살아남은 병사 두 명이었다.


그들은 신우의 괴력에 놀라서 도망쳤다가 저녁 무렵 헌병대로 돌아왔다. 상관이 자초지종을 캐물었지만, 사실대로 말할 수 없었다.


괴력을 가진 소년에게 무력하게 당했다고 보고할 수 없었다. 사실대로 말한들, 그 말을 곧이곧대로 들어줄 거 같지도 않았다.


헌병 대장이 심문을 시작했다. 그가 말했다.


“촌장에 따르면 독립군이 갑자기 나타나 아군을 공격했다는데 사실이냐?”


“네에?”


촌장의 터무니없는 소리에 둘이 깜짝 놀랐다. 그러다 오히려 잘 됐다고 생각했다. 독립군과 싸웠다면 자기들의 비겁함을 감출 수 있었다.


“맞습니다. 촌장의 진술 그대로입니다. 신우라는 아이를 생포할 때에 독립군 십여 명이 갑자기 들이닥쳤습니다.”


“그래서 목숨을 걸고 독립군과 싸웠습니다.”


헌병 대장이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 역부족의 상황이었군. 그런데 상황이 종료됐으면 빨리 부대로 복귀해야지, 그동안 뭐 하고 있었나?”


“그게 … 상처가 심해서 마을로 내려가 급히 지혈하다가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병사들의 말은 사실이 아니었다.


그날 살아남은 병사 둘은 산 밑으로 내려가 두려움에 벌벌 떨었다. 저승사자를 본 듯 몇 시간 동안 넋이 나가 있었다. 그러다 정신을 차리고 굶주린 배를 부여잡고 본대로 돌아왔다.


마지막으로 명호의 차례가 되었다. 명호가 취조실로 들어갔다.


헌병대 취조실은 무서운 곳이었다. 말을 잘못했다간 뼈도 추스르지 못하는 곳이었다. 헌병대는 경찰, 군인 위에 군림했다.


헌병 대장이 매서운 눈초리로 명호를 노려봤다.


명호가 삭막한 분위기에 주눅이 들었지만,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바짝 차리면 산다는 속담을 떠올렸다.


“네가 명호야?”


“네, 그렇습니다.”


헌병 대장의 질문에 명호가 서둘러 답했다.


헌병 대장이 촌장과 병사 둘의 진술을 들려줬다. 그리고 둘이 진술이 맞는지 물어봤다. 이에 명호가 고개를 끄떡이고 답했다.


“전부 맞습니다. 헌병대가 신우라는 불령선인을 체포했는데 갑자기 독립군이 나타나 헌병대를 공격했습니다. 헌병대는 용감히 싸웠지만, 숫자가 부족해 역부족이었습니다.”


“그렇군, 잘 알겠다.”


헌병 대장이 고개를 끄떡였다.


그렇게 신우의 오두막에서 벌어졌던 참극은 명호의 계획대로 수습되었다.


이후, 헌병대 1개 중대가 출동해서 신우의 오두막 근처를 샅샅이 수색했다. 작은 단서라도 잡기 위해 며칠 동안 이곳저곳을 뒤졌지만, 독립군과 관련된 어떤 단서도 잡지 못했다.


촌장은 덕대 부모에게 아들의 변고를 알리고 마을 청년들에게 시신을 수습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청년 서너 명이 신우의 오두막으로 가서 덕대의 시신을 수습했다.


덕대의 부모는 생때같은 자식이 죽었다는 소식에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소리쳤지만, 그날 밤 흰 천에 싸인 덕대의 시신을 보고 까무러치고 말았다.


한참 후, 정신을 차린 덕대 부모는 싸늘한 시신으로 돌아온 아들을 보고 땅을 치며 통곡했다.


15살 소년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마을은 다시 시름에 잠기고 말았다.


길동이 아빠는 신우가 일본군에게 죽고 그 시신을 들짐승이 물고갔다는 소식에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30년 지기 친구의 마지막 혈육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고개를 들 수조차 없었다.


신우 가족과 친했던 사람들도 하늘이 너무 가혹하다며, 어찌 이리 모질 수가 있냐며 하늘을 원망하며 눈물을 흘렸다.


기철은 명호의 도움으로 집을 돌아왔지만, 그날 이후, 말을 잃어버렸다. 항상 멍한 상태로 앉아만 있었다.


간혹, 정신이 돌아오는 것 같았지만 그때는 서글피 울기만 할 뿐이었다.


기철은 덕대와 신우, 누렁이의 참혹한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너무나도 가혹한 현실에서 도망치려는 듯 꿈속에서 헤맸다.


붕어잡이인 명수였던 그는 그날 이후 다시는 붕어를 잡지 못했다.



늦은 밤, 한 사람이 집을 나섰다.


명호였다. 몰래 삼촌 집을 나섰다. 사방을 둘러보더니 신발을 벗었다. 신발 소리조차 내고 싶지 않은 거 같았다. 그렇게 마을 사람들 모르게 뒷산으로 올라갔다.


뒷산에는 작은 동굴이 있었다.


동굴은 여름철 아이들의 피서지였다. 아이들이 모여서 더위를 식히고 노는 곳이었다. 지금은 봄이라 동굴로 올라오는 사람은 없었다.


그날 신우를 업고 달리던 명호는 뒷산 동굴을 떠올렸다. 일단 동굴에서 가서 상처를 치료하기로 했다. 차가운 냉기가 가득한 곳이었지만, 찬밥 더운밥을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사람들이 오지 않는 곳이 최적의 장소였다.


명호가 동굴 입구에서 사방을 둘러봤다. 인기척이 없자 신우를 불렀다.


“신우야! 나야. 명호야!”


“어. 명호구나!”


신우의 힘없는 목소리가 들렸다.


명호가 뒤를 돌아다봤다. 그렇게 주위를 살피고 급히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동굴 입구는 성인 남성이 옆으로 들어갈 정도였다. 안으로 들어가면 넓은 공간이 나왔다. 5평 정도였다.


바닥 한가운데 신우가 힘없이 누워있었다. 신우 근처에 있는 작은 바위가 있었다. 바위 위에 깨진 그릇이 있었고 그릇 위에 반쯤 탄 촛불이 있었다.


명호가 부싯돌로 촛불에 불을 붙였다.


작은 동굴 안이 훤해졌다. 누워있던 신우가 힘들게 몸을 일으켰다.


“신우야. 무리하지마. 아직 몸이 덜 났어.”


명호가 신우를 부축하고 집에서 몰래 가져온 음식 보따리를 풀었다. 삶은 감자 두 덩이가 있었다.


“신우야! 일어나! 이것 좀 먹어봐!”


명호가 신우의 한 손에 감자 한 덩이를 쥐여주었다.


신우는 근 하루 동안 정신을 잃고 누워만 있었다. 그동안, 명호는 최선을 다해서 지혈했다.


보통 사람 같으면 도저히 회복될 수 없는 중상이었지만, 신우는 놀라운 회복력을 발휘했다. 몸에서 괴이한 푸른 빛이 나더니 상처가 점점 아물기 시작했다.


단, 하루 만에 상처가 거의 다 아물었다. 가까운 거리에서 총을 여러 발 맞았는데도 이를 극복했다.


“참 기이한 일이다!‘


명호가 놀라움에 몸을 떨었다. 신우의 몸에 분명 큰 변화가 생겼다고 생각했다.


그게 무엇인지를 알 수 없지만, 그 불가사의한 힘이 친구를 지켜준다고 생각했다. 신우를 살릴 수 있어서 천만다행이라고 여겼다.


“자! 먹어봐! 먹어야 힘을 내지. 먹기에 너무 큰가? 내가 잘라줄까?”


감자를 멍하니 들고만 있는 신우를 보고 명호가 걱정스러운지 말을 걸었다.


“감자라고? 감자가 어디에 있는데? 내 손에 있는 게 감자야?”


신우가 자기 손안에 있는 감자를 보고도 명호에게 감자가 어디에 있냐고 물어봤다.


“뭐라고?”


명호가 깜짝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순간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는 것 같았다.


동굴 안에는 달빛도 들어오고, 명호가 집에서 가져온 촛불도 타고 있었다.


시력에 문제가 없다면 감자를 충분히 볼 수 있었다.


“서, 설마!”


명호가 침을 꿀컥 삼켰다. 잠시 뭔가를 생각하다가 남은 감자 한 덩이를 들어서 신우의 눈앞에 가져갔다.


“신우야! 앞에 뭐가 있니?”


“뭐가 있는데? 아무것도 없어. 너무 어두워!”


“어, 어둡다고?”


신우의 말에 명호가 황급히 촛불을 찾았다. 촛불을 들고 신우의 눈앞에 가져갔다.


“신우야 앞에 뭐가 있지?”


“왜 그러는데? 무슨 타는 냄새는 나는 것 같은데 … 그런데 너무 어둡다. 불을 켜봐.”


신우의 눈앞에 촛불이 타올랐지만, 신우는 맹인처럼 촛불을 전혀 보지 못했다. 눈이 멀지 않았다며 이 불빛을 보지 못할 리가 없었다.


명호가 너무나도 기가 막힌 현실에 말문이 막혔다. 그러다 힘을 내기로 했다. 일시적으로 눈이 멀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가 신우에게 말했다.


“신우야! 정말로 앞에 뭐가 있는지 모르겠어?”


“지금 한밤중인 거야. 불 좀 켜! 너무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신우가 두 눈을 크게 뜨고 두 손을 내저었다. 비참한 자기 운명을 잡으려는 듯했지만, 연신 허공만 가를 뿐이었다.


손에 들려있던 감자 한 덩이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명호의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갑자기 터져 나오는 눈물을 소매로 닦았다. 바닥에 떨어진 감자를 소매로 정성스럽게 닦고 말했다.


“별거 아니야, 지금 한밤이야. 양초가 다 떨어졌어.”


명호가 일부러 명랑한 목소리로 말하고 신우 손에 감자를 쥐여줬다.


“감자야! 우리 집 감자는 참 맛있어. 어서 먹어, 그래야 빨리 났지.”


“그렇구나. 이게 감자구나.”


신우가 감자를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게 눈 감추듯 금방 먹어치웠다.


“여기 더 있어. 어서 먹어.”


명호가 남은 감자를 건넸다. 감자를 받은 신우가 걸신이 들린 듯 해치웠다.


“참! 맛있다.”


신우가 만족한 듯 미소를 지었다.


해맑은 미소였다.


그 미소를 본 명호가 가슴팍을 꽉 움켜쥐었다. 눈이 멀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신우의 해맑은 미소에서 비통함을 참을 수 없었다.


이에 동굴 밖으로 뛰쳐나갔다.


밤하늘이 아름답게 펼쳐졌다. 보름달이 휘영청 떠 있었다. 은하수도 찬란하게 빛났다. 다른 날보다 밝은 밤이었다.


명호가 고개를 푹 숙였다. 밤하늘이 참 야속했다.


부모를 억울하게 잃고, 천신만고 끝에 살아났지만, 가장 아끼는 친구와 두 눈까지 멀어 버린 신우가 너무나도 불쌍했다.


“이 원수를 반드시 갚아야 해! 반드시!!”


명호가 이를 박박 갈았다.


죄 없는 마을 사람들을 참혹하게 죽인 일본군과 그들을 끌고 와 덕대, 누렁이를 죽이고, 기철과 신우까지 해친 촌장한테 반드시 복수하리라 다짐했다.


이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일이고,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다.


이제 그에겐 친구라고는 정신 줄을 놓아버린 기철과 죽은 사람이 되어 숨어 살아야 하는 신우만 남아있을 뿐이었다.


그는 어서 날이 밝기만을 바랐다.


신우가 몸을 털고 일어나 두 눈을 뜨기만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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