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판 소설_간도에서 온 사나이 1편_20화

간도에서 온 사나이_피빛 운석과 복수의 화신

by woodolee

20화 뒤처리


“야아!”


신우가 번개처럼 몸을 일으켰다. 오른손으로 권총을 꽉 잡더니 왼손 엄지와 검지를 방아쇠울로 집어넣었다. 그리고 방아쇠를 부러뜨렸다. 단박에!


부러진 방아쇠가 허공으로 날아갔다.


“헉!”


신우의 괴력에 장교가 깜짝 놀라서 뒤로 두 발짝 물러섰다. 손에 있던 권총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신우가 두 주먹을 꽉 쥐었다. 주먹이 터질 것만 같았다.


“이, 이놈이!”


겨우 정신을 차린 장교가 허리춤을 내려다봤다. 요대에 긴 칼이 매달려 있었다. 이에 오른손으로 칼 손잡이를 꽉 잡았다.


칼이 칼집에서 벗어나자, 광채가 빛났다.


신우의 눈에 광채가 어른거릴 때,


바로 그때!


신우가 서둘러 몸을 굽혔다. 바닥에 떨어져 있는 총을 줍더니 번개처럼 일어나서 총을 든 손을 하늘 높이 쳐올렸다.


장교의 얼굴에 차가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눈빛에 두려움이 가득했다. 칼을 잡은 손이 마구 떨렸다. 칼은 칼집에서 반도 나오지 않았다.


이윽고!


신우의 손이 가차 없이 내려갔다. 장교의 면상을 향해 있는 힘껏 총을 휘둘렀다.


마치 아빠가 1소대장의 이마를 호미로 내리치는 거 같았다.


팍! 소리가 나며 총이 완전히 산산조각이 났다. 엄청난 고통이 장교를 덮쳤다.


“아~악!”


참을 수 없는 고통에 장교가 얼굴을 감싸고 비명을 질러댔다. 무릎이 꺾이고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신우가 다시 날아올랐다. 옆에 있는 나무를 발판 삼아 공중으로 솟구쳐올랐다. 마지막 일격을 가하기 위해서였다.


누렁이의 죽음과 덕대의 죽음을 갚아야 했다.


질풍처럼 벼락처럼 신우의 왼발이 장교의 턱을 향해 날아갔다.



퍽!



뚝배기가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신우의 왼발이 장교의 턱에 정확하게 명중했다.


장교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산 밑으로 데굴데굴 굴러떨어졌다.


“사, 사람 살려!”


일본군 중 살아남은 둘이 혼비백산해서 도망치기 바빴다. 아무 데나 뛰어들어 도망쳤다.


길을 찾아서 도망칠 여유가 없었다. 험한 비탈길을 굴러서 내려갔다.


“으으으~!”


신우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겨우 서 있었다. 이제 기운이 다 한 듯했다.


뻣뻣하게 굳은 누렁이와 덕대를 보면서 마지막 인사를 하려는 듯 오른손을 내밀었다.


“덕대야! 누렁아!”


그들의 이름을 애타게 부르더니 이내 정신을 잃고 쓰러지고 말았다.


신우는 총을 세 발이나 맞았다. 그 몸으로 일본군을 물리쳤다. 이렇게 잘 싸웠다는 건 기적 그 자체였다.


오두막 아래 커다란 바위 뒤에 숨어서 몸을 벌벌 떨고 있던 촌장이 도망치는 일본군을 보고 깜짝 놀랐다. 고개를 간신히 내밀고 상황을 살폈다.


5분이 지났다.


마치 아무런 일도 없는 듯 사방이 고요했다.


“어떻게 된 거지?”


촌장이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바위 뒤에서 나와서 아주 조심스럽게 오두막을 향해 걸어갔다.


조용한 거로 봐서 독립군은 없는 거 같았다.


그는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고 싶었다.


그렇게 촌장이 오두막 앞에 다다랐을 때,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일본군 병사 둘이 피 흘리며 쓰러져 있었고, 일본군 장교는 절벽 밑에 엎어져 있었다.


셋 다 처참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신우가 검붉은 피를 흘리며 쓰려져 있었다.


“어, 어떻게 이런 일이! … 어떻게!!”


감당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 듯 촌장이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뭐라도 해야 했지만, 손발이 떨려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아악!”


촌장이 비명을 질렀다. 너무나도 끔찍한 참상에 비명을 지르고 주저앉았다.


신우를 비롯해 덕대, 누렁이, 일본군 셋이 피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 남은 두 아이는 넋이 빠져서 서 있었다.


한동안 멍하니 주저앉아 있던 촌장이 나뭇가지 사이로 불어오는 찬 바람에 겨우 정신 차렸다. 그가 생각했다.


‘그래, 독립군이 오두막 근처에 있었던 거야. 신우를 구하려고 일본군을 덮쳤던 거야. 그리고 도망친 거야.’


촌장이 급히 사방을 살폈다.


사방은 여전히 조용했다.


“빨리 피하자!”


촌장이 서둘러 자리를 떴다. 일본 헌병대에 이 사실을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산 아래를 향해 헐레벌떡 내려갔다.


촌장의 발소리가 사라리자, 두 아이의 숨소리만 남았다.


명호와 기철이 마치 넋이 나간 듯 멍하니 서 있었다. 그들 눈앞에서 믿을 수 없는 일들이 벌어졌다.


덕대와 누렁이의 죽음과 신우의 괴력이 한 편의 영화처럼 펼쳐졌다.


한동안 넋이 빠졌던 명호가 고개를 흔들었다. 그렇게 정신 차렸다. 옆에 기철이 서 있었다. 눈이 풀린 상태로 넋이 나가 있었다.


“기철아! 정신 차려!”


명호가 기철의 이름을 부르며 그를 깨웠다.


기철은 꿈을 꾸는 듯했다. 아무런 말 없이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다.


“기철아, 왜 그래? 기철아!”


명호가 기철의 이름을 계속 불렀지만, 기철은 여전히 몽롱했다.


기철의 상태가 심상치 않았다.


명호의 두 다리가 후들거렸다. 친구 둘이 피 흘리며 쓰러져 있었고 남은 하나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일단 쓰러진 사람부터 살피기로 했다.


덕대와 누렁이는 이미 숨이 끊어져 있었다. 아무리 흔들어도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몸이 점점 차가워졌다.


명호가 고개를 푹 숙였다. 두 생명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잘 가! 덕대야, 누렁아.”


명호가 한 손을 들어서 덕대와 누렁이의 두 눈을 감겼다.


“신우야!”


명호가 신우의 이름을 불렀다. 이제 그의 생사를 확인해야 했다. 신우는 총을 세 발이나 맞고도 일본군 다섯을 물리쳤다. 셋은 죽은 거 같았고 둘은 꽁지가 빠지게 도망쳤다.


“신우야! 괜찮아?”


명호의 부름에도 신우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마치 죽은 거 같았다.


명호가 고개를 마구 흔들었다. 신우가 죽었을 리 없다고 생각했다. 친구의 숨소리를 듣기 위해 한쪽 귀를 신우의 얼굴에 붙였다.


약한지만 생생한 숨소리가 들렸다.


“살아있어, 신우는 살아있어!”


명호의 말대로 신우는 아직 숨이 붙어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의식을 잃었고, 많은 피를 흘렸다. 등판과 가슴에서 피가 계속 흘러나왔다.


“아! 맞아.”


명호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일본군 두 명과 촌장이 도망친 걸 떠올렸다. 그들이 다시 일본군을 끌고 올 것만 같았다.


“어서 다른 데로 가야 해! 빨리!!”


명호가 이를 악물었다. 일단 신우를 다른 곳으로 옮겨야 했다. 그곳에서 상처를 치료해야 했다.


수중에 별다른 치료약은 없었지만, 그는 낙담하지 않았다. 신우는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 총에 맞고 구덩이에 파묻혔지만, 살아서 돌아왔었다. 그건 기적이었다. 그리고 일본군 다섯을 물리치는 기적을 또 보여줬다.


“으싸!


신우를 업은 명호가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러다 앞에 있는 기철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기철아! 좀 도와줘!”


기철을 애타게 불렀지만, 기철은 초점을 잃은 눈망울로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다.


“기철아!”


기철은 가만히 서 있을 뿐 아무런 말이 없었다.


“기철아! 너까지 대체 왜 그래!”


명호가 울먹였다. 아까부터 기철의 상태가 심상치 않았다. 빠진 혼이 여태 돌아오지 않았다.


“시간이 없다!”


명호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기철의 상태가 걱정되었지만, 일단 신우부터 치료하기로 마음먹었다.


이에 아무 말 없이 우두커니 서 있는 기철이를 뒤로 한 채 신우를 업고 급하게 움직였다.



다음날이 밝았다. 산속 오두막에서 참극과 핏빛 복수극이 펼쳐진 다음 날이었다. 날이 정오를 지나서 오후로 향했다.


어두침침한 작은 방에 큰 책상을 사이에 두고 여러 사람이 앉아 있었다.


여기는 일본 헌병대 취조실이다.


한쪽 편에 일본군 헌병 대장과 통역관이 앉아 있었고, 맞은 편에는 촌장이 앉아 있었다.


창문 하나 없이 밀폐된 방이라 사방이 어두웠다.


천장에서 흔들리는 전등불이 유일한 조명이었다. 약한 불빛 탓에 상대방의 얼굴만 확인할 수 있었다.


헌병 대장이 어제 발생한 구산마을 사건을 심문했다. 출동한 다섯 중 셋이 죽고 한 명이 다친 사건이었다.


헌병 대장이 두 손으로 깍지를 끼고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촌장을 쏘아보며 말했다.


“그러니까 … 독립군이 갑자기 나타나서 아군을 공격했단 말이지. 그래서 사상자가 나왔고.


“네. 맞습니다. 헌병대가 불령선인인 신우를 체포하고 호송하려는 데 갑자기 독립군이 들이닥쳤습니다.

순식간에 병사 둘과 후지무라 소위를 해쳤습니다.”


촌장이 다급하게 말을 이었다.


“이후, 나머지 병사 둘이 독립군과 맹렬하게 싸웠습니다.”


촌장이 허무맹랑한 소리를 떠들기 시작했다. 그날의 혈투를 똑똑이 본 것처럼 설명했다.


어제 일은 독립군과 전혀 관련이 없었다. 마을 사람 30명이 끌려갔던 날처럼.


촌장은 덕대가 죽자, 놀란 나머지 바위 뒤에 숨어있었고, 상황이 종료되자, 그 참상만 목격했을 뿐이었다.


이후 그는 일본 헌병대 사무소로 달려가 헌병 대장에게 변고를 고했다. 그리고 1개 소대 병력을 오두막으로 끌고 왔다.


그곳에는 명호와 기철이 덕대와 누렁이의 시신을 지키고 있었다.


기철은 여전히 제정신을 차리지 못한 듯 눈빛이 몽롱했다. 덕대의 얼굴에는 명호의 저고리가 덮여 있었다.


“저 아이들도 목격자인가?”


헌병대 상사가 명호를 지목하며 촌장에게 물었다.


“맞습니다. 저 아이들도 목격자입니다.”


촌장의 대답에 헌병대 상사가 고개를 끄떡이고 말했다.


“저 아이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소상히 물어봐라!”


“네, 알겠습니다.”


촌장이 명호에게 급히 다가갔다. 그가 말했다.


“너희들도 독립군을 봤지? 그들이 일본군을 해친 거지?”


“네에? 그, 그게·····”


명호가 머뭇거리다가 잠시 생각했다.


‘촌장 어른과 일본군이 신우가 살아있다는 걸 알면 가만있지 않을 거야. 끝까지 쫓아와서 체포하려고 할 거야. 신우를 어떻게든 지켜야 해.’


명호가 결심했다. 친구를 다시 위험에 빠지게 할 수는 없었다.


독립군이 일본군을 해쳤다는 촌장의 말이 터무니없었지만, 오히려 잘 됐다고 생각했다.


명호가 낭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맞아요, 촌장 어른. 독립군이 갑자기 들이닥쳐서 일본군을 해쳤어요.”


“그렇지! 내 그럴 줄 알았다. 그런데 신우는 대체 어디에 있는 거니? 저 앞에 있었는데 … 바닥에 피 흘리며 쓰러져 있었어.”


사방을 아무리 둘러봐도 신우가 보이지 않자, 촌장이 신우의 행방을 다그쳤다.


명호가 순간 당황했다. 어떻게 답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신우의 행방은 자기만 알아야 했다. 다른 사람을 몰라야 했다.


“빨리 말해! 신우는 대체 어디에 있는 거야?”


촌장이 재차 신우의 행방을 물었다. 촌장의 눈에 불안감이 엄습했다.


죽었다가 살아 돌아온 신우가 다시 돌아오지 않을까 그의 목소리가 떨렸다.


명호가 재빨리 기지를 발휘했다. 그가 말했다.


“그게, 신우가 도망치다가 일본군 총에 맞았어요. 그래서 숨이 끊어졌는데, 그건 촌장님도 보셨잖아요.”


“맞아! 신우도 총에 맞았어. 피범벅이 돼서 쓰러져 있었지. 그런데 시신은 대체 어디에 있는 거니?”


“갑자기 큰 들짐승이 나타났어요. 신우를 물고 가버렸어요.”


“아, 그래. 그렇구나. 여기에 큰 들짐승이 나타났구나. 배가 고파서 여기까지 출몰했구나. … 너희들은 괜찮고?”


“저는 괜찮은데. 기철이 상태가 좋지 않아요.”


“그래, 내가 봐도 좀 이상해 보인다. 너희들은 어서 집으로 내려가라. 일이 있으면 다시 부르마.”


“네, 알겠습니다.”


명호가 급히 답하고 기철의 손을 꼭 잡았다. 그렇게 기철을 데리고 산에서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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