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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영 Sep 24. 2022

학교 길에 서다

17. 같이 아파하기

 “너 어제 아침 조회에서 주문형 강좌 있다고 말한 것 기억해? 왜 대답이 없어? 주문형 강좌는 방과 후 학교가 아니기에 빠지면 안 된다고 강조했잖아?”

아침부터 교무실에 큰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다정다감한 박윤지가 소리치고 있는 것은, 어제 방과 후에 실시된 1학년 주문형 강좌에 학급 학생이 연락도 없이 미인정 결석한 탓이다. 

“선생님이 제일 싫어하는 것이 무엇이라고 했니? 스스로 선택한 일에 책임지는 것 아니야? 자기가 한 약속을 못 지키면 누가 너를 신뢰하겠니?”

특성화고에 근무하면서 박윤지가 가장 강조하는 것은 근태였다. 아이들이 졸업과 동시에 취업 현장에 나가기에 학교생활 중에 몸에 성실함을 강제로라도 심어주고자 노력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제 반 아이 하나가 자신이 선택한 고교학점제 주문형 강좌에 결과 처리가 된 것이다. 정규 학점으로 인정되는 주문형 강좌에 결석하는 것은 그날 종일 수업에 결과 없이 참여했더라도 결과적으로 미인정 결과로 기록되기 때문에 신경 쓰이지 않을 수 없었다. 소규모 기업의 경우, 성적보다 오히려 출결을 강조하고 있기에 아이들이 무심코 저지른 실수가 나중에 고스란히 자기 손해로 돌아오지 않도록 관리해주고자 하는 것이다. 

고교학점제가 특성화고에 도입되면서 Hn고에서는 시범적으로 학생 선택형 주문형 강좌를 개설하고 있었다. 특성화고 입학하는 학생 중 자기의 학과 선택에 만족하지 못한 경우는 20~30% 나오기에 그들이 흥미 갖고 학교생활을 하도록 전공 학과에는 없는 바리스타, 제과, 헤어 미용 등의 강좌를 준비했는데, 딱딱한 이론 수업보다 실습 위주로 진행되고 졸업 후 사용할 수 있는 자격증 취득까지 이어지기에 학생들의 호응과 만족도가 비교적 높은 편이었다.

“너 빠진 이유가 뭐야? 대답 안 해?”

아이는 한참을 쭈뼛거리다 말고 대답했다. 

“그냥이요.”

“뭐 그냥? 너 지금 그냥이라고 했어? 이 녀석, 정신이 없네. 선생님 똑바로 봐. 정말 그냥이야?”

순간 아이와 눈이 마주친 박윤지는 직감적으로 아이의 말과 본심이 다름을 눈치챌 수 있었다. 뭔가 말하지 않는 것이 있음이 느껴진 것이다. 그래서 더 몰아쳐서라도 아이의 본심을 알아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곳은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다른 선생님들이 계신 교무실에서 아이가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장소를 옮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 이 녀석 안 되겠어. 지금 당장 따라와”

목소리의 톤은 더 올라갔지만 빨리 장소를 바꾸고자 하는 의도가 다분히 있었다, 아이를 앞세워 상담실로 장소를 옮긴 박윤지는 아이에게 아무 말을 걸지 않고 한동안 두었다. 상담실로 들어올 때의 분위기와 전혀 다른 행동에 아이는 약간 당황했는지, 박윤지의 눈을 피한 채,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사실 박윤지가 아침부터 열을 내는 것은 평소 성실한 모습에 신뢰를 많이 했던 승애가 연락도 없이 벌인 일이라 당황스럽기도 하고 본인의 기대가 무너진 것에 대한 화가 났기 때문이다. 

“끝까지 말 안 할 거야?” 

한참이 지난 후에 목소리를 낮추어 박윤지가 물었다. 

그리고 또 침묵의 시간, 얼마가 지났을까? 꽤 시간이 흐른 후 뭔가 결심을 한 승애는 말문을 열기 시작했다. 

“사실은 연주하고 문제가 좀 있었어요.”

“너 단짝 연주?”

“네, 1교시 끝나고 좀 다투었는데, 많이 화내고 점심시간에 말도 하지 않고…….”

박윤지는 한 편 어이가 없었다. 

“아니 친구하고 말다툼했다고 수업을 빼먹었다는 거야? 네 생각에 그게 이유가 된다고 생각해?”

승애는 담임인 박윤지의 표정에서 자신의 의도와 다르게 상황이 전개되고 있음을 느꼈다. 자세하게 이야기하지 않으면 괜한 오래가 더 깊어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게 아니라, 연주가 잘못될까 봐.”

“연주가 잘못돼?”

박윤지는 뭔가 심상치 않은 기분이 들었다. 승애가 무엇을 말하려는 지 끝까지 들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게 아니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연주가 많이 힘들어해요.”

“무엇 때문에?”

“선생님 연주 문제 비밀로……. 아니 연주에게는 절대 아는 내색 안 하신다면 말씀드릴게요.” 

박윤지는 승애의 말에 살짝 불안감이 밀려왔다. 

“네가 하는 말이 무엇일지 일단 들어봐야 하겠지.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게 약속해. 너와 연주 입장에서 문제를 바라볼게. 선생님을 믿는다면 이야기해줄 수 있겠니?”  

말없이 박윤지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던 승애는 결심이 섰는지 말을 이었다.

“연주가 아버지 하고만 사는 것은 아시죠?”

그랬다. 박윤지는 연주가 초등학교 6학년 때 부모님의 이혼과 함께 수원으로 이사 왔다는 이야기를 개별 상담 때 들은 기억이 났다. 알고 있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엄마에게 연락이 오고 있어요.”

“그래서 그게 문제인 거야?”

“사실은 몇 가지가 복잡하게 얽혀있어요. 연주는 아빠가 너무 좋대요. 하지만 막상 엄마와 연락되고 나니 혼란스럽기만 한대, 아빠가 엄마와 만나는 것을 너무 싫어하시다 보니 자주 싸우게 되나 봐요. 그래서 집에 있기 싫어서 자꾸 밖으로 맴돌아요. 그러다 보니 옛날 연주가 사귀던 남자 친구에게 많이 의지하게 되는 것 같아요.”

“힘들 때, 그럴 수 있지. 자기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에게 끌리기 쉬우니까. 그런데 그게 문제야?” 

“네, 그 애가 좀 문제가 있거든요. 중학교 때부터 사고를 많이 치는 바람에 지금 학교도 안 다니는 아이라 제 입장에서는……. 연주가, 연주가 많이 걱정되어요.”

승애는 말을 하다 감정이 올라왔는지 울음을 터뜨렸다.

“제가 도움 줄 수 있으면 좋은데, 전 할 수 있는 것이 없고, 자꾸 연주에게 싫은 소리만 하게 되니, 계속 연주와 다투게 되어요. 아니 정말 힘든 것은 제 생각에 연주가……. 너무 흐흐, 불쌍해요. 아니 잘못될까 봐, 너무 걱정이에요. 그리고 제가 도와줄 수 없는 것이 너무 미안해요.”

승애가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어제 수업을 빠진 것도 연주의 옆에 있어 주기 위해 그런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박윤지는 승애의 마음이 충분히 이해되었다. 어깨를 안아주며 같이 눈물을 흘렸다. 한참 만에 진정된 승애는 자신의 마음을 받아 준 박윤지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하지만 박윤지는 돌덩이 하나를 가슴에 멘 것처럼 아팠다. 교사로 근무하면서 제일 힘들 때는 결손 가정의 학생들이 겪는 아픔을 해결해 줄 길이 많지 않음을 확인하는 경우였다. 

“승애야, 정말 고맙다.”

“아니 제가 뭘 할 수 있겠어요?”

“아니야. 넌 연주 옆에 좋은 친구로 남아주고 있잖아. 그게 제일 중요해. 그리고 너무 아파하지 마. 연주도 알 거야. 너같이 좋은 친구가 옆에 있다는 사실을, 지금 연주가 힘든 시기를 겪고 있지만, 조금 지나면 너의 마음을 받아주고 네가 하자는 대로 할 거야. 그러니 그때까지 연주 옆에 함께 있어 주기만 하렴. 선생님도 내가 할 수 있는 일 찾아볼게.”

이렇게 말하고는 있었지만 승애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함께 울어주는 일밖에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사실이 박윤지도 싫었다. 

“아니에요. 선생님 제가 괜한 걱정 끼쳐드린 것 같아요. 그리고 연주에게는 내색하지 말아 주세요. 제가 이런 이야기 한 것 알면 저하고도 더 멀어질까 겁이 나요. 그러니 당분간 꼭 비밀 지켜 주세요.”

“알았어. 하지만 혹여나 무슨 일이 생기거나 네 마음이 너무 힘들어지면 선생님께 꼭 이야기해줘 알았지.”

힘들어하는 승애를 보내고 나서 상담실에 홀로 남은 박윤지는 감정을 추스르기가 힘이 들었다. 자신보다 어린 나이지만 친구를 먼저 생각하는 승애가 이뻤고 방황하는 연주의 모습이 안타까웠다. 하지만 지금 해줄 수 있는 것은 아이들과 같이 아파하기밖에 없다는 현실이 너무 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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