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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영 Sep 24. 2022

학교 길에 서다.

11. 착각

교감은 자리를 고쳐 앉으며 지훈의 표정을 살폈다. 지훈은 평소와 다른 교감의 모습에서 어떤 말을 하려고 하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요즘 많이 힘드시죠?”

 지훈은 교감의 말에 답 대신 테이블에 올려진 찻잔에 시선을 보냈다. 어떤 말을 들을지 이미 예상한 탓에 교감과의 눈을 맞추고 싶지 않았다. 지훈의 이런 태도를 교감도 어느 정도 눈치채고 있음이 분명해 보였다. 다음 말을 잇는데 꽤 시간이 흘러갔다. 

 교감실에 들어오기 전 지훈은 그린 스마트 미래학교 신청서 공문이 자신에게 배분된 사실을 파악하고 있었다. 교육청에서 시행하는 많은 사업이 그렇듯이 단위 학교에서 준비할 수 있도록 충분한 안내와 기간적 여유도 없이 단기간에 사업 신청서를 제출해야 하는 일이 또 발생한 것이다. 교육청의 예산 문제이겠지만 모든 학교에 똑같이 적용되는 사업도 아니고 신청한 학교를 대상으로 선발해 20%를 우선 지원한다는 것이 공문의 주안점이었다. 당연히 20% 안에 들기 위해서는 누군가 계획서를 잘 작성해야 했다. 

“어려우신 것 알지만 또 선생님께 부탁드릴 수밖에 없네요. 선생님도 아시다시피 그린 스마트 미래학교 신청은 우리 학교에서 꼭 필요한 사업이라 꼭 지원했으면 합니다.”

 교감의 의도는 꼭 필요한 사업이라는 말을 할 때 목소리 톤을 높인 것에서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사실 지훈의 학교는 건물이 건축된 지 40년이 지나있어 많은 부분에서 노후화가 심각한 상태였다. 더구나 고교학점제가 적용되기 위해서는 새로운 형태의 교실과 특별실이 꼭 필요하기도 했다.

하지만 학교 시설을 리모델링하고 싶어도 거기에 필요한 예산확보는 힘들었다. 그렇기에 교감은 이 사업을 꼭 하고 싶은 눈치였다. 하지만 학교에 새로운 일이 발생했을 때 어느 부서가 주관하여 그 업무를 하는가는 항상 논란의 대상이 되곤 했다. 공문을 접수하고 주관 부서가 되는 순간 모든 일이 그 부서로 쏟아져 들어왔다. 그러기에 어느 부장도 선뜻 나서는 일이 없었다.

그러기에 교감도 새로운 업무를 배분할 때는 힘들어했다. 교감의 어려움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지만, 공문을 접수한 박지훈은 이번에는 분명한 거절의 뜻을 표현하리라 다짐을 했었다. 

“사업의 필요성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시간이 너무 촉박하고 제가 감당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아 힘들 것 같습니다.”

감당하기 힘들다는 말에 힘을 주어 말하는 것에서 지훈의 의사는 충분히 드러났다. 하지만 교감은 박지훈의 반응을 예상한 탓인지 아니면 애써 외면하기 위함인지는 모르지만, 거의 표정 변화 없이 자신의 말을 이었다. 그것은 일을 밀어붙일 때 보여주는 교감의 스타일이었다. 

“고교학점제 사업도 선생님이 맡아서 잘 진행해 주셨잖아요. 그때도 못 하신다고 했지만, 우리 학교 누구보다도 훌륭히 그 일을 하셨고, 아니 아마도 우리 지역에서 선생님만큼 고교학점제 준비를 해내신 분도 없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또 이렇게 부탁드립니다.”

교감이 입에 발린 칭찬을 하고자 함이 아닌 것은 분명하지만 교감의 의도와는 다르게 지훈의 표정은 굳어갔다. 

 지훈은 고교학점제 선도학교 신청서를 작성할 때 일이 떠올라 머리가 아팠다. 교육부가 고교학점제 전면 도입을 목표로 진행한 선도학교 운영 사업 진행도 이런 식으로 맡았었다. 

새롭게 구성된 부서에 부서장을 맡자마자 참가 신청 공문이 배부되고 촉박한 일정 속에 혼자 모든 것을 해결해야 했었다. 계획서 작성을 위해 일주일간 국회도서관 자료 검색을 시작으로 각종 연구보고서와 타 시도 연구 사례집 등의 자료를 찾아 헤맸다. 대학원 시절 논문자료 찾아 지방까지 돌아다니며 동분서주할 때의 심정을 새삼 느낄 수 있는 기간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초안 잡은 자료 중에서 학교에서 적용해 보거나 운영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선별했다. 또 프로그램의 초안을 계획하고 그에 따른 예산 계획을 수립하는 등 정말 힘든 시간 끝에 사업 신청서를 작성했었다. 

“고교학점제 선도학교를 신청할 때와는 또 다른 것이 제가 공간 부분에 대한 지식이 부족해서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목소리 톤을 한층 높이는 것을 통해 지훈은 스스로 거절의 의사를 분명히 말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교감은 받아들일 의사가 전혀 없어 보였다.

“선생님 마음은 충분히 알아요. 하지만 선생님 말씀대로라면 우리 학교에서 그 분야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이 과연 누가 있을까요? 선생님이 늘 말씀해오셨잖아요? 학생 선택형 고교학점제를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공간 재구성과 새로운 형태의 교실이 필요하다고…….”

지훈이 그렇게 말을 해 온 것은 사실이었다. 지훈이 생각하는 학생 선택형 교육과정의 적용을 위해서는 새로운 공간이 더 필요했다. 

 “하지만 그 필요성과 제가 이번 사업을 준비하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공문 보셔서 아시겠지만, 학교 자체 프로그램 공간뿐만 아니라 지역사회와 연관된 공간 구성 계획도 해야 하는데…….”

교감은 지훈의 말을 끝까지 들으려 하지 않았다.

“이미 공문 파악하고 계시잖아요. 그런 부분을 다른 부장이 이해하고 준비하는 것은 더 힘든 일 아니겠어요? 선생님 안 되는 이유 찾기 시작하면 끝도 없다는 것 잘 알고 있어요. 그러니 긍정적인 접근을 부탁드려요. 각 학과 부장과 기획 위원들이 협조하도록 제가 역할을 할게요.”

교감의 말에 지훈은 이미 자기의 의사는 물 건너간 느낌을 받았다.

교감은 말처럼 나름의 역할을 할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 지시를 수행할 다른 부장의 협조를 기대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지훈은 이미 앞선 신청서 작성에서 경험했다. 작은 글을 쓸 때도 협업적 글쓰기는 힘들다. 더욱이 사업 신청서를 쓴다는 것은 사업의 전체적 맥락을 이해하고 사업 목적에 필요한 내용과 그 내용을 뒷받침할 구체적 자료들을 찾아 연결해야 하기에 어려움이 더 많았다. 흐름에 맞지 않은 자료를 주고는 자신의 역할을 다했다고 하면 할 말이 없었다. 부장들을 탓할 수도 없었다. 이해하지 못한 사업에 들어갈 자료를 지훈의 입맛에 맞추어 작성해 주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자기 업무를 하느라 다들 바빴다.

지훈은 한참 동안 고민했지만 더는 교감과 언쟁하는 것에 득이 없다고 판단했다. 사실 교감은 많은 회의에서 본인이 의도한 결론이 나오지 않으면 그 결론이 나올 때까지 이야기를 계속 끌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기에 이번 건도 더 길게 말할 필요는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교감과 협의 아닌 협의를 끝내고 돌아온 교무실에는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다. 언제부터인가 학교 분위기가 확연히 바뀌고 있었다. 코로나 19의 영향도 컸다. 하지만 그 이유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흐름이 형성되고 있었다. 학생도 그렇지만 교사도 방과 후에 남아있는 경우가 현저히 줄어들고 있었다. 초과 근무를 많이 하는 것이 좋은 일은 아니더라도 늘 일은 넘쳐나고 있는데 다들 퇴근 시간이 되면 약속이나 한 듯이 사라졌다. 

박지훈은 교감과 협의하느라 마무리하지 못한 잡무처리를 위해 업무포털 사이트를 열었다. 결재를 기다리는 근태 관련 서류, 교육청에 보고해야 하는 공문, 문서 배분을 기다리는 공문과 각 부서에서 공람 걸어둔 문서들이 12개나 있었다. 이렇게 잠시만 비워도 쌓인 일거리가 많은데, 새로운 사업 계획서를 작성하라는 교감의 지시가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더 속상한 것은 얼마 전부터 자신만 더 많은 일을 하고 있다는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텅 빈 교무실에 혼자 버려진 느낌을 받고 있었다. 그만큼 지친 탓도 있었다.

“부장님 아직 안 가셨어요?”

컴퓨터 화면 속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박지훈에게 수업계 박지숙이 말을 걸어왔다. 

“일이 저를 놓아두지 않네요. 지숙 선생님은 왜 퇴근 안 하셨어요?”

박지숙은 들고 있던 교재와 출석부를 사물함에 정리하며 대답했다. 

“저 이번 주까지 보충이에요. 지난번에 연기된 것 이번 주에 마무리 지어야 해서요.”

“아 보충이 남았었군요.”

 작은 일도 요란하게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마치 잘 짜인 톱니바퀴가 돌 듯이 자신의 자리에서 소리 없이 역할을 해내는 박지숙이었다. 

업무 분장 때면 누구도 지원하지 않는 수업계 일을 하면서도 늘 웃으며 업무처리하는 모습이 지훈은 보기 좋았다. 후배이지만 그 점만큼은 배우고 싶은 부분이었다. 

“그런데 아까 분위기가 묘하게 흘러가던데……. 또 새로운 사업 우리 부서에서 맡아서 하게 되나요?”

박지숙이 물어보는 의도를 알기에 지훈은 즉답을 피했다. 새로운 사업을 부서장이 맡아온다는 것은 그만큼의 일거리 추가를 의미했다. 업무분장에 지정되지 않은 사업을 부장이 맡아 오는 순간 그 부서 구성원들은 하지 않던 일을 더 하게 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필요하고 중요한 것이라도 내 손에 힘이 들어가는 일에서는 벗어나고 싶은 것이 똑같은 사람의 마음이다. 하지만 학교 일에서는 없어지는 일을 찾기는 어렵고 해마다 새로운 사업으로 인해 일이 늘어나는 구조였다. 이에 새로운 일의 경우 부서 내에서도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기 힘들었다. 

 대답하지 않는 지훈의 태도로 미루어 짐작한 박지숙은 약간 얼굴이 어두워지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아직 교감의 지시 사항을 자신의 마음에서 수용할 수 없었던 지훈은 뭐라 딱히 대답할 말이 없었다. 

“부장님 식사는 어떻게 하실래요? 괜찮으시면 짬뽕 같이 드실까요? 오늘은 매운 것이 확 땅기는 날인 것 같아요.”

지훈의 기분을 눈치챈 것인지 박지숙이 저녁 식사 제안을 했다. 

“아니 퇴근 안 하세요? 아이 어린이집에서 찾아야 할 시간도 지난 것 같은데….”

이미 시간은 7시가 넘어서고 있었다. 

“이번 주는 친정 엄마에게 부탁드렸어요. 보충수업 때문에 어린이집 하교 시간을 도저히 맞출 수 없더라고요.”

“어머니가 가까이 계셔서 다행이네요. 일하고 육아 병행하기 힘들죠?”

“그렇죠. 뭐, 그래도 제 경우는 괜찮은 편이에요.”

항상 그렇듯이 불평보다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런데 선생님 과목은 보충수업 담당할 교사 수가 많은 편인데, 왜 매번 선생님만 하시는 것이죠?” 

지숙은 대답 대신 다 아는 이야기 물어 무엇하나 하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이내 미소를 지어 보였다. 힘든 일을 하면서 환경이나 남 탓하지 않는 것이 지숙이 가진 큰 장점이었다.

방과 후에 일어나는 보충수업 개설도 특정 교사에게 몰리는 경우가 많았다. 학생들의 선택도 있었지만 대부분 일과 이후에 남아 추가되는 업무는 기피하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선생님이 너무 착해서 그래요. 부탁한다고 다 들어주시니 나누어질 짐도 혼자 떠안고 가는 것이잖아요.”

“부장님, 그건 부장님도 마찬가지 아니신가요? 늘 힘든 일 다 맡으시면서. 흐흐. 선생님들이 다 뭐라고 하시는 줄 아세요? 일이 따라다니는 사람이라고 그래요.”

“제가요?”

“모르셨어요? 지난 5년 동안 부장님 가시는 부서에는 없던 일도 많이 생긴 것, 그리고 부장님 떠나시면 그 일 또 없어지잖아요.”

듣고 보니 그런 것도 같았다. 업무조정이 이루어질 때면 이런저런 이유로 새로운 일을 맡아서 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어떤 경우는 일 처리의 합리성을 위해서, 또 다른 일은 업무의 관행이라는 이유로 지훈에게 부여되는 일이 많았다. 

하지만 그 일을 하면서 남의 일을 대신한다는 생각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지훈의 생각에 꼭 필요하고 해야 하는 일이라 생각해서 스스로 만들어 가면서 한 일도 있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나름의 보람을 찾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 일을 하는 동안 심신이 지쳐간 것도 사실이었다.

“그럼 다들 저와 같이 일하기 싫어하겠네요. 없던 일도 만드는 사람이라 그런데 어쩌죠? 교감님께서 그린 스마트 미래학교 일 저보고 준비해달라고 하셨어요.”

지훈이 아까 내뱉지 못한 말을 어렵게 꺼냈지만, 지숙은 새로운 사실에 놀란 기색도 없이 그럴 것 같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또 한동안 힘든 시간 보내시겠어요. 아 빨리 주문해야 하겠어요. 부장님도 매운 것 같이 드실 기분 같으니까요.”

배달 속도만은 빠른 짬뽕과 엽기 떡볶이가 둘 앞에 놓였다. 지숙은 맵다는 소리를 연거푸 내뱉으면서도 맛있게 먹었다. 매운 것을 잘 못 먹는다고 알고 있었던 지숙이의 모습에 지훈은 의아함마저 느꼈다.

“여기 물 있어요. 매운 것 잘 안 드셨잖아요?” 

지숙은 지훈이 건넨 물을 마시며 이마에 흐른 땀을 닦았다. 

“그냥 평소 해보지 못한 것을 해보고 싶었는데, 역시 전 매운 것 하고는 안 맞는 것 같아요. 먹는 것이라도 바꿔 보려는 소심한 도전도 이렇게 무너지네요. 흐흐 ”  

익숙한 일상에서 벗어나기는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님을 지숙이 몸으로 말하고 있었다. 학교 일로 쌓인 것이 많아서 나름 스트레스를 풀고자 하는 몸짓이었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아 보였다.

“지금 하는 업무 때문에 속상한 일이 많아서 그런 것인가요? 아니면 오늘 수업 중에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요?”

누군가 그랬다. 수업계 1년이면 교사 인성 다 확인할 수 있다고, 그 말은 교사들의 시간표를 짜고 매일매일 조정하는 작업에 스트레스가 많음을 시사했다.

지숙은 선뜻 대답하지 않았다.

“부장님은 스스로가 만든 틀을 깨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갑작스러운 질문에 뭐라 답해야 할지 몰랐다.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는데, 자세하게 말해주시면 혹시 제가 도울 일이 있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아니 별일 아니에요. 제가 오늘 느끼는 것은 누구나 다 느끼는 우울감 정도일 뿐이에요. 저보다 부장님의 스트레스가 더 크실 것이에요. 신경 안 쓰셔도 돼요. 다 드셨죠. 제가 이것 정리할게요. 그리고 이제 퇴근해야겠어요. 부장님은 더 일하시다 가실 것이죠?”

 지숙은 속내를 드러내지 않았다. 지훈도 먹던 자리를 정리하는 지숙을 도와주려 일어설 수밖에 없었다.

 홀로 교무실에 남은 지훈은 머리가 복잡해졌다. 오늘 지숙의 모습을 보면서 한동안 자신만 힘들다고 생각했는데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모두가 하루하루 버텨내는 삶을 살고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루어 놓았던 공문 처리를 다 하고 업무포털 접속을 끊었지만, 마음이 개운하지 않았다.

그때 마침 박지숙으로부터 카톡이 왔다.

 ‘아직 교무실이시죠? 저 때문에 신경 쓰실 것 같아 보내요. 부장님 제가 보충수업을 거절하고 하지 않는 이유는 제가 착해서 그런 것이 아니에요. 제 판단으로 그것이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제가 기울인 노력이 학생들에게 꼭 좋은 성과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그 순간만큼의 행복이 제게 있어요. 그러니 저 때문에 고민은 말아 주세요. 전 단지 교무실에서 부장님의 한숨 소리가 너무 많이 안 들렸으면 좋겠어요. 편안한 저녁 되시길…….’  

카톡을 보면서 지훈은 자기 생각에 빠져 다른 이를 바라보고 있음을 반성했다. 그리고 얼마 전 아내가 한 말이 떠올랐다. 직장에 근무하면서 가장 모시기 힘든 상사의 스타일이 부장이 대리처럼 일하면서 부장 역할은 못 하는 경우라 했었다. 그 말의 핵심은 맡은 역할에 따른 안목을 갖추지 못한 것에 대한 지적이었다. 

자기 역시 불빛을 찾아 사리 분별 못 하고 뛰어드는 불나방같이 일을 처리해 온 것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힘든 일 앞에서 다른 이와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자 노력하는 것보다는 남들이 안 도와준다고 불평했다. 그리고 혼자서 모든 일을 감당하겠다고 덤벼들고 있었다. 그러기에 많은 순간 힘듦을 느꼈다. 학교 일은 혼자의 열심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일도 많았다. 다른 선생님들에게 비친 자기의 모습이 아내의 말을 닮아있을 것만 같았다. 늘 시간에 쫓기듯이 일을 하지만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안정감 있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하나의 일을 하면서 또 다른 일을 해결하려고 몸부림치는 모습만 보여온 것일 수 있었다. 지훈의 자리는 혼자 막 달려갈 것이 아니라 주어진 일을 분배하고 갈무리할 줄 아는 능력이 필요한 자리임을 깨우친 것이다. 막상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남들의 눈에 자신이 어떻게 보일지 느껴졌다. 

더구나 동료들에게 자신의 기대치에 대한 자세한 설명 없이 혼자서 동조해주지 않는 사람을 마음으로 비난해 왔다는 생각도 할 수 있었다. 일도 사람도 챙기지 못한 채 혼자 지쳐가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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