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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영 Sep 24. 2022

학교 길에 서다

10. 역지사지(易地思之)

“혼자 또 뭐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강당 앞 벤치에서 앉아 답답해하는 이기태의 마음을 눈치챈 것인지 현우진이 말을 걸어왔다.

“어디 편의점이라도 갈래요?” 

“그러죠.”

편의점에서 탄산수를 사고 나온 둘은 학교 앞 천변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우리 기태 선생님, 오늘은 또 무슨 고민이 크신가? 혹시 교감님하고 한 판 하셨나요? 아니면 다른 문제가 있는 것인가요?”

현우진이 이기태의 표정을 살피며 말을 이었지만, 이기태는 마음속 이야기 풀어내지 않았다.

“선생님이 그랬죠? 학교 걱정 혼자 하는 것 같다고 관리자도 아니면서 관리자 마인드라고”

현우진은 걸음을 멈추고 이기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에요. 뜬구름 잡는 이야기 말고 사안을 구체적으로 말해줘야 이해하죠?”

현우진은 이기태의 말하기 방식이 늘 두리뭉실한 것에 불만이 많았다. 지금처럼 말하고자 하는 바를 분명하게 말하기보다는 자신이 생각하는 것의 중심 언저리에서 느끼는 감정들을 언급하거나 본인의 생각대로 너무 앞서간 결론을 내린 후 그것을 다른 이도 알고 있을 것이라는 투의 말하기 방식을 보여 온 것이다. 

“선생님들을 이해할 수 없어 답답해요.”

“아니 내가 늘 말하잖아요. 말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말해줘야지. 같이 공감도 하고 흥분도 할 수 있다고. 무슨 일이에요?”

현우진은 약간 짜증을 담아 이기태를 추궁해 보았다.

“좀 전에 강당 올라갔다가 짜증이 났어요. 홍보부 몇 명을 제외하고 아무도 없었어요. 그리고 강당 가는 길 청소도 전혀 안 되어있고…….”

이제야 현우진은 이기태의 마음을 조금 알 것 같았다. 코로나 19로 힘들어진 학교 홍보 일정 속에 오늘은 입학 설명회가 예정된 날이었다. 4단계 상황이지만 학교로서는 학생을 모집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중학교 신입생을 대상으로 한 학교 설명회를 준비하고 있었다.

“매년 학생 모집이 어렵다고 하면서 모두가 너무 무신경한 것 같아 화가 났어요. 선생님도 알잖아요? 작년에 모집 정원을 억지로 채우다 보니 올해 신입생 수준이 떨어져 그렇게 힘들다고 말하면서 막상 움직여야 할 때, 왜 저러고들 있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 돼요.”

 현우진은 이기태의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학교 일이라면 발 벗고 나서 누구보다도 열심인 그의 성격을 이해하고는 있었다. 하지만 이기태가 어떤 면에서 볼 때, 섣부른 판단으로 혼자 힘들어하는 모습은 보기 싫었다.

“강당에 선생님들이 안 올라간 것은 교감님 메신저 때문일 거예요. 너무 많은 사람이 모이면 방역 관계상 밀집도가 문제 될 수 있다고 왔어요. 강당에 모이기보다는 강당 행사 끝나고 각 교실 상담에 주력하라고 했으니까요.”

이기태는 현우진의 말에 동의하지 않는 표정이었다.

“정말 그 때문이라고 생각하세요? 지금 이 분위기가 입시홍보 행사가 있는 학교 분위기라고 할 수 있을까요? 누구 한 명 나서서 대청소하는 모습도 보이지 않는 것 같아요. 그것도 교감님 메신저 때문이라고 생각하시는 것이에요?” 

“선생님의 말이 다 틀렸다는 뜻은 아니에요. 하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런 상황을 모든 선생님의 탓으로 몰아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에요. 오늘 같은 경우, 관리자로부터 자세한 지침이나 계획이 전달되지도 않았고, 엄연히 올해는 담당 부서도 새롭게 만들었으니, 사람들의 움직임이 소극적일 수밖에 없어요. 나 같은 경우도 집계된 예비 참석자 명단에 담당학교 학생이 없어서 상담 준비도 별로 하지 않고 있었다고요. 아마 일부 선생님은 참석 학교가 없어서 퇴근하시는 분도 많을 것이에요”

이기태는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한 표정으로 현우진을 잠시 바라보았다.

“아니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세요? 홍보가 어느 특정 부서만의 문제인가요? 이게 네 일 내 일 따질 수 있는 것인가요?” 

현우진은 이기태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인지 잘 알았다. 그러기에 이기태의 관점을 바꿔주고 싶었다. 

“그래요. 홍보는 어느 특정 부서만의 일이 아니죠. 하지만 잘 생각해 보세요. 그런 식이라면 학교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 중에서 특정 부서만 해당하는 일이 몇 가지나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어떤 일을 할 때 주무 부서가 존재하는 이유는 그에 상응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잖아요?”

현우진의 말에 동의할 수 없었던 기태는 목소리에 짜증을 가득 담아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일 구분하는 것과 홍보를 같은 관점을 봐서는 안 되는 일 아니에요?”

“전체적으로는 맞는 이야기지만 일부는 아닐 수 있죠. 단지 선생님이 생각하는 것처럼 모든 교사가 같은 마음으로 조직적으로 움직일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라는 것이에요.”

“왜? 안 되죠? 전년도 평가회 때 그토록 목소리 높이던 사람들은 다 어디 간 것이죠? 이제까지 해온 방식과 다르게 해야 변화가 있는 것 아닌가요? 그런데 오히려 예전 방식에도 못 따라가고 있으니 어떻게 하느냐고요?”

현우진은 이기태의 감정을 잠시 가라앉혀야 할 것 같았다. 이 문제는 언성을 높여가며 싸워야 할 문제가 아니라는 판단이 들었다.

“흥분하지 말고 잠시 고민해 보세요. 선생님이 원하는 학교 모습을 먼저 상상해 봅시다. 홍보에 임하는 선생님들이 같은 마음으로 오늘 행사를 준비해야 하겠죠? 일단 그런 마음이라면 오늘 선생님들의 출근 복장도 손님을 맞는 최대한의 예의를 갖추어 정장을 입고 오셔야겠죠? 그리고 학년 단위로 교실 대청소와 실습실 준비가 이루어져야 하겠지요. 마치 군대에서 점호 전 내무반 정비하듯이 ”

“맞아요. 오늘 제가 답답해하는 부분이 그 부분이에요. 다들 이렇게 생각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현우진은 이기태가 너무 순진한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닌지? 아니면 상황 파악을 못 하는 사람이라 말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우리 솔직히 말해보자고요. 선생님처럼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 몇 % 나 될 것 같아요? 30%는 확신하세요? 제가 보기에는 같은 생각하는 사람 10% 정도에, 어쩔 수 없이 참여하는 사람 70%, 그리고 나 몰라라 하는 사람 20% 일 거예요. 이것도 제가 후하게 생각할 때 줄 수 있는 점수라고요. 나부터도 선생님이 말하는 10%에 속한다고 장담할 수 없어요.”

이기태는 현우진의 말에 할 말을 잃었다. 자신의 가치가 완전히 부정당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이 걱정은 선생님이 할 것이 아니에요. 우선 관리자들이 해야죠. 교무회의 시간에 일어나 발표만 한다고 해결될 수 없다는 사실 잘 알잖아요. 그리고 선생님들 마음을 모아야 한다고 판단했다면, 마음들이 하나로 모일 수 있도록 설득하는 노력과 구체적 행동이 뒤따라도 될까 말까 하는 일이라고요. 혼자 너무 끙끙거리지 말라고요.”

이기태는 현우진에 말에 반박할 말이 금방 떠오르지 않았다. 그냥 막연히 자신과 같은 생각을 다들 하고 있어야 한다고만 생각했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방법까지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그리고 선생님 혼자만 옳은 기준을 갖고 있다는 생각도 버리세요. 다들 표현을 안 해서 그렇지 각자의 자리에서 나름대로 고민하고 있다고요. 가끔 보면 선생님과 생각이 다른 사람을 탓하거나 무시하려는 모습이 보여요. 나야 선생님 마음 잘 아는 편이지만 다들 선생님처럼 생각하거나 선생님의 뜻과 같이 움직일 수는 없다고요. 그리고 생각이 다른 사람을 나무랄 수 있는 권한이 선생님에게는 없다고요. 그리고 선생님이 생각하는 정의가 꼭 모두의 정의 일수는 더더욱 없고…….”

이기태는 현우진의 마지막 말이 가슴 아프게 다가왔다. 자신을 걱정해서 해주는 말임을 잘 알지만 아픈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러면서도 답답했다. 학교도 하나의 사회이고 이익의 주체들이 모인 곳이기에 자신의 이익에 부합하는 쪽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기에 더더욱 학생 홍보에는 다 같이 마음을 모을 수 있다고 생각해왔다. 좋은 학생들을 모으는 일이 자신뿐만 아니라 모든 교사의 학교생활에 도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기에도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가 엄연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현우진은 말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기태는 자신이 아닌 다른 선생님들의 눈으로 문제를 바라보라는 현우진이 던진 숙제를 좀처럼 쉽게 해결할 수 없을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워져만 갔다. 그리고 자기의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말에 쉽게 동의할 수 없었다. 자신이 서 있는 학교 현실을 무시한 채 너무 자신만의 이상적인 생각에 빠져 밑도 끝도 없이 앞서 가기만 하고 있다는 투의 질책을 수용할 수 없었다. 자기가 마땅히 감당해야 하는 일은 하지 않은 채 다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변명으로만 들려왔다. 그렇기에 현 상황이 혼란스럽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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