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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영 Sep 24. 2022

학교 길에 서다

09. 텅 빈 교실

실시간 원격 수업 준비를 위해 평소보다 일찍 교실로 들어간 김훈은 주인 잃은 책상만이 줄줄이 늘어선 풍경이 아직 낯설게 느껴졌다. 꽤 오랜 시간 아이들과 떨어져 이런 방식의 수업을 진행해 왔지만, 학생들의 말소리를 들을 수 없는 공간이 주는 적막감이 싫었다. 평소 자신의 수업에 임하는 학생들의 태도가 모두 진지한 것은 아니었지만 자신의 수업을 듣는 한 학생의 살아 있는 눈빛이 너무 그리웠다. 예전 선배 교사로부터 살아 있는 눈빛에 호응하는 수업 준비의 중요성을 들을 때에만 해도 그 말의 의미를 잘 몰랐었는데, 코로나 환경이 그 점을 일깨워 주고 있었다.

 컴퓨터 모니터와 빔프로젝트를 연결하고 구글 교과목 클래스룸을 통해 학생들을 초대했다. 

 “자 오늘 수업도 한 번 신나게 시작해보자. 잘들 지냈지?”

 랜선으로 연결된 아이들을 불러 모으며 평소보다 더 큰 목소리로 활기차게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머리카락 자르셨네요. ㅋㅋ”

제일 먼저 접속한 지수가 비밀 댓글로 말을 걸어왔다. 

“ㅋㅋ” 의 의미는 뭐람? 순간 경석은 자신의 머리 모양이 어떻게 보이길래 저라나 싶었다. 

 “화면이 비친 내 모습이 이상하니? 애들아.”

하지만 지수를 포함해 아이들의 반응이 없었다. 

“반장 마이크 켜고 말 좀 해주라.”

 하지만 반장인 연우는 마이크를 켜지 않았다. 원격 수업에 임하는 아이들과 소통을 화면과 음성으로 진행하지만, 모두가 마이크를 켜 놓을 경우, 수업을 진행하기 힘들 정도로 소리가 섞여 들어오기 때문에, 질문이나 토론 시가 아니면 아이들의 마이크를 꺼놓고 진행했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은 마이크뿐만 아니라 화면도 가려 버리는 경우도 많았다. 

“반장”

“아 죄송해요. 선생님 동생 때문에 잠깐 딴 데 신경 썼어요? 왜 그러세요?”

타이밍을 잃은 반장의 대답에 외모에 대해 신경 쓴 자신이 오히려 궁색해진 것 같은 생각이 든 김훈은 아직 화면에 접속하지 않고 있는 아이들에게 톡 문자 보내줄 것을 반장에게 부탁했다.

“자 오늘 수업은 지난 시간에 이어서 문장 단원을 배울 거예요. 문장 단원에서는 성분, 문장의 짜임, 높임, 사동, 피동, 시제 등을 모두 다루게 될 것이에요.”

 ‘ㅠㅠ 너무 많아요.’

“ 시작과 동시에 댓글 달아주는 것은 고마운데, 선희야, 너무 많지 않아

우리 같이 한번 해보자.”

“자 다시, 성분부터 볼 것인데…, 중학교 때 배운 목적어, 주어, 이런 것을 이야기하기 전에 우선 간단한 문장을 하나 보자. ”

이렇게 수업은 쉼 없이 진행이 되고 있었지만, 질문하는 몇몇을 빼고는 랜선 넘어 아이들의 구체적인 반응을 살피기 힘들어지다 보니 수업 내용을 얼마나 받아들이고 있는지 알 방법이 없었다. 수업에 임하면서 상호 호응이 부족해지다 보니 아이들은 쉽게 수업에서 멀어져 가는 것처럼 보였고, 아이들이 집중도가 떨어진 수업은 하는 교사에게도 힘이 빠지는 경우가 많았다. 수업을 마무리하기 전에 배운 내용 확인 차원에서 링크된 퀴즈 형태의 설문지를 풀도록 하고 있었다. 하지만 학생들은 진지한 고민 없이 형식적인 답변을 하거나 귀찮다는 듯 퀴즈 답을 아무 번호나 찍어 제출하는 경향이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었다.

김훈은 온라인 수업에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어떻게 이끌어 갈지 답답했다. 자신 앞에 놓인 큰 숙제를 풀지 못한 괴로움이 날이 갈수록 쌓여가는 기분이었다. 교실 수업에서는 수업 듣다 말고 엎드려 자는 녀석이 발생하면 일으켜 깨워서라도 수업으로 끌어들이곤 했다. 하지만 랜선 수업에서는 화면과 마이크를 끈 채 접속만 하는 학생들이 수업 시간에 무엇을 하고 있고, 수업내용을 어느 정도 이해를 하고 있는지 파악하기란 너무 힘들었다. 

코로나가 일어나기 전에도 많은 사람이 학습은 인터넷 강의로 충분히 진행할 수 있다고 말하였지만, 학생과 소통이 이루어지는 수업은 인터넷 강의로 이루어질 수 없음을 새삼 느꼈다. 김훈은 아이들의 살아 있는 눈빛이 너무 그리웠다. 

“얘들아. 선생님 너희 관심을 조금 끌어 보려고 새로운 과제 만들었어. 일명 방 탈출 게임이야.”

“그게 뭐예요?” 몇 명이 흥미를 보였다.

김훈은 지난밤 컴퓨터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방 탈출이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먼저 학생들은 수업 중 알게 된 이론을 적용해 문제를 풀어야 했다. 문제 풀이를 통해 획득한 정답 번호가 방 탈출의 열쇠 번호가 되는 구조였다. 학생들이 획득한 열쇠 번호를 입력했을 때, 그 번호가 맞으면 다음 방으로 넘어갈 수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학생들의 흥미를 유도하기 위해 궁여지책으로 만든 것이었다. 나름대로 괜찮게 만들었다고 생각한 프로그램이었다. 하지만 아이들 눈높이에는 맞지 않았는지 아니면 틀린 답을 몇 번 넣다가 자포자기한 탓인지 매 수업 시간에 열심히 참여하는 다섯 명 정도를 제외하곤 첫째 방 정도만 시도할 뿐 마지막 방까지 도전조차 안 하고 있었다. 김훈은 기대와 다른 행동을 보이는 아이들을 보면서 한숨이 나왔다. 이런 아이들을 어떻게 이끌어야 할지 답답함이 밀려왔다. 교사 혼자만의 노력으로 코로나 상황 속에서 의미 있는 수업을 해결해 가기는 너무 힘든 상황임을 새삼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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