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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영 Sep 24. 2022

학교 길에 서다

20. 일상 감사

코로나 19를 겪으며 누구나 하는 말이 예전에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일상이 감사하다는 것’을 느꼈다는 것이다. 하지만 코로나가 마무리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면 그 일상에서 감사가 넘쳐나는 삶을 살 수 있을까? 이 질문에 서지석은 ‘예’라고 말할 자신이 없다. 일상은 감사할 수 있으나 감사가 일상이 될 수는 없는 게 현실이다. 

 코로나 19의 단계에 따라 학사일정이 요동치고 있었다. 학생도 그렇지만 교사 역시 계획된 일이 틀어짐을 견뎌내기가 힘들다. 교실에서 아이들 앞에 오래 서다 보니 늘 지시하고 이끌어 가는 것에 익숙하다. 그러다 보니 자신이 제어할 수 없는 일에 수동적으로 따르게 되는 것이 무척 짜증스럽게 여겨진다. 이 상황에서 올해는 그야말로 하루하루가 그 계획과는 너무 다른 일상을 살아가고 있었다. 

수능을 앞두고 고등학교 전 학년을 원격 수업으로 전환하라는 공문이 시달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겨우 시작한 방과 후 학교 일정이 또 꼬여버렸다. 특히 자격증 취득을 위해 컴퓨터 실습실에서 집중적으로 수업을 해야 하는 교과에서는 원격 수업으로 전환하면 쉽게 대책을 세울 수도 없었다. 

“아 참, 수업하라 것인지 말라는 것인지. 안 그래도 진도 빼기가 힘든데, 2주 원격 들어갔다 오면 자격증 시험은 어떻게 준비하라는 것이에요?”

컴퓨터 활용 능력 2급 실기 반을 담당한 노연수가 방과 후 일정을 조정하라고 뿌린 메신저를 보고 방과 후 담당 서지석에게 찾아온 것이다. 

“교육지원청 놈들 머리가 있는 놈들이에요? 아니 얼마 전에 학업성취율 떨어진다고 특별 보충 프로그램 의무적으로 돌리라고 해 놓고서는 이제는 원격 수업하라고요?”

 짜증이 잔뜩 담긴 노연수의 목소리 톤에서 화를 느끼기 충분했지만, 서지석 역시 딱히 답을 해주기가 힘들었다.

“그러게요. 저도 죽겠어요. 선생님마다 다들 뭐라 하시는데 저라고 답이 있나요? 저도 답답해요.”

“까라면 까라는 것인가요? 쌍팔 년 군대도 아니고?” 

노연수 역시 서지석에게 답을 찾을 수 없음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탓할 누군가가 필요한 것이다.

“뭐만 하려고 하면 코로나가 발목을 잡으니, 이렇게 해 놓고 자격증 취득률 떨어지면 또 수업 어떻게 했냐고 말할 것 아니에요?.”

서지석은 노연수의 말에 얼마 전 메신저를 통해 뿌려진 자격증 취득률 그래프가 떠올랐다. 특성화고의 성과를 나타낼 때 자주 사용되는 자격증 취득률이 현저히 떨어진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인문계에서도 코로나로 인해 전반적으로 학업 성적이 떨어진다고 하지만 전문 교과 수업을 통해 취업에 필요한 다양한 자격증 취득을 해나가야 하는 특성화고의 문제는 더 심각한 것이다. 

“정규 수업도 수행평가 일정도 다 엉망 되어버렸는데, 어쩌라는 것인지?”

실기 위주의 전문교과 수업을 담당하는 교사들의 어려움이라고 단순히 치부할 수 없는 문제였다. 하지만 뾰족한 대책 역시 없었다. 

“그나저나 제과 주문형 강좌는 다음 주도 진행되죠? 우리 반 학부모가 이런 상황인데 주문형 강좌는 진행하는지 문자 보냈더라고요.”

“네, 주문형 강좌는 진행할 수밖에 없어요. 외부 강사님 일정도 문제지만 사놓은 재료 보관 문제도 있어서 그냥 해야 할 것 같아요.”

“17명 등교하는 것이니까 문제없겠지요? 요즘 같은 경우, 조심한다고 하지만 혹여 한 명이라도 확진자가 발생하면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사라지고 실행한 모든 비난을 감내해야 하는 것 아닌지 걱정이 되긴 해요.”

“좋은 쪽으로 생각하지요. 제 생각에는 오히려 학교를 안 오게 하면 아이들이 집에 있겠어요? pc방이나 노래방 같은데 돌아다니기 쉽지 않겠어요. 학교가 더 안전하게 관리하고 있을 수 있는 것 아니겠어요.”

노연수는 수긍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 참 내일까지 방학 기간 보충 계획 일정 제출하라는 것은 변함이 없어요?” 

“네 일단은 그래요. 이런 식이면 동계방학 기간에도 개설하고자 했던 강좌를 제대로 진행이나 할 수 있을지 의문이네요. 하지만 그때 가서 또 변하더라도 학교운영위원회 일정이 있다 보니 내일까지 제출해주셔야 해요. ”

서지석은 방과 후 학교 수업 일정 조정도 힘들었지만, 학년말에 주로 일정이 잡혀 있는 각 학과 주도 대회 계획 수정이 더 큰 문제로 다가왔다. 코로나 상황인데 무슨 대회냐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는 있다. 그러나 대회 하나를 하고 안 하고의 문제가 아니다. 관련 행사 예산 집행에서부터 대회 취소에 따른 교육계획서 일정 변경 기안, 홈페이지 공지, 가정통신문 발송을 비롯해 학교생활 기록부 기재에 이르기까지 고려할 사항이 많았다. 연초에는 각종 대회와 행사를 취소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지만 언제 끝날지 모르는 코로나 상황에서 모든 것을 취소하면 해당 학생들의 생활기록부는 써줄 내용이 없게 된다. 또한 집행되지 않은 예산을 소진할 방법도 마땅치 않았다. 서지석은 학기 말에 너무 많은 대회를 진행한다고 불평하던 예년의 상황이 오히려 그리워졌다.

그때였다, 업무포털 메신저 알림 창에 수능 감독 명단에 대한 공지 사항이 떴다. 올 것이 온 것이다. 매년 11월에 가장 기피하고 싶은 일 중 하나는 수능 감독이었다. 잘해야 본전이라는 수능 감독, 누구도 원하지 않기에 해마다 감독 파견에 대한 말들이 많았다. 

명단을 한참 보는 서지석에게 노연수가 어깨를 툭 쳤다.

“뭘 그렇게 살펴요? 당연히 당첨일 것인데! 이제 기대도 안 해요.”

노연수의 지적에 혹시나 빠지지 않을까 하고 기대했던 자신이 우습게 느껴졌다.

“교장님은 어떤 기준으로 명단 제출하시는지 알아요?”

“직원 조회 때 발표하셨잖아요? 제외 인원은 자녀 입시 대상자와 우리 학교 수능 필수 요원 그리고 건강상 문제 있으신 분들이라고.”

“그 건강상 문제 있는 기준이 뭐냐고요? 명단에 없는 사람들 보면 나이 있으신 분들만 있는 것도 아니고 후배들도 꽤 있어 보이는데, 평소에 우리 학교에 환자가 이렇게 많았나 해서요.”

서지석은 자신이 느끼고 있는 상대적 박탈감을 말하고 싶었다. 왜 이때만 되면 학교에 환자가 넘쳐나는지 알 수 없었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해마다 빠지는 사람들 때문에 올해도 자신은 감독을 가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 싫었다.

“뭘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해요. 그들은 가기 싫으니까 진단서 제출하지 않았겠어요? 사실 마음만 먹으면 대충 2주 정도 진단서야. 쉽게 나올 수 있을 것 아니에요. 선생님이나 나나 어디 한 군데 안 아픈 곳 없지 않아요. 얼마나 적극적이냐 하는 것일 뿐이에요.”

그래서 더 속상했다. 피하고 싶은 마음에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이 옳은가 하는 생각 때문에 쉽게 행동에 옮기지 못하고, 매년 받아들이고 감독 가는 자신이 오히려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항상 상대적 박탈감이 문제였다.

“교장님께서 그런 것은 좀 구별해주셔야 하지 않을까요?”

노연수는 순진한 아이 투정 다루는 듯한 표정으로 서지석에게 말을 이었다.

 “교장님이라고 다른 의견을 낼 수 있겠어요? 엄연히 의사 진단서 첨부된 것을 뭐라고 거부하시겠어요. 다 암묵적으로 접어두는 부분일 것이에요. 저는 단지 교육청에 좀 강하게 요구해서 출장 인원을 최소화할 수 없나 하는 문제점을 갖고 있지만, 그것도 교육청 장학사와 관계 설정하시는 교장님 입장에서는 쉽지 않을 수도 있겠다. 추측할 뿐이에요.” 

“선생님하고 같은 학교 배정이네요. 이번에는 별일 없겠죠?”

건강하기에 현장에 설 수 있음에 대한 감사가 넘치는 것이 아니라 불평의 감정이 앞서는 서지석은 좀 전까지 좋은 것만 생각하자고 했던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고 거부하고 싶은 현실의 상황만 크게 느끼고 있는 자신이 너무 싫어졌다. 일상에서 감사가 넘쳐나기는 이처럼 힘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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