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엎드린 자
경석은 점심 식사 후 이루어지는 5교시 수업을 가장 힘들어하는 편이다.
식사 후 몰려오는 식곤증 때문이겠지만 아이들이 수업 중에 엎드려 자는 숫자가 다른 수업에 비해, 평균적으로 많기 때문이다.
일부 선생님들은 자는 아이들을 방치하기도 하지만 경석은 자신의 수업 시간에 자는 아이를 그냥 두고 지나가는 것을 제일 싫어한다. 하지만 자는 아이를 깨우느라 몇 번 아이와 감정싸움을 하고 나면, 수업의 리듬도 깨어지고 분위기가 어색해지는 경우도 많아서 힘들다. 그리고 최근 몇 년간 학과의 입학 성적이 하향하다 보니 이 상황의 반복 빈도도 늘어나는 편이었다. 말 그대로 공부에 흥미 없는 아이들이 많은 것이다. 많은 선생님의 표현대로 그냥 학교에 나와주는 것만 감사한 아이들도 많이 늘고 있었다.
“춘향전이 판소리계 소설인 것은 다들 알지? 당연히 운문과 산문의 형태가 남아있을 수밖에 없어요. 그리고 편집자적 논평의 기능을 중심으로 내용 파악도 했어요. 오늘은 온라인 시간에 퀴즈로 확인한 내용 정리와 수행평가 결과 확인을 하도록 하겠어요.”
경석은 5교시이기에 더욱더 힘차게 수업 시작을 하고자 목소리의 톤을 높였다. 하지만 경석의 시선을 끄는 것은 책을 꺼낼 생각도 없이 엎드려 자는 아이였다.
“그런데 시작부터 엎드려 자는 사람 누구니? 윤주니? 잠깐 외출한 정신 빨리 붙잡고 와 ”
경석의 목소리에 옆자리의 희지가 윤주를 깨웠다. 윤주는 마지못해 몸을 일으켜 앉았으나 공부할 생각은 전혀 안 보였다. 귀찮게 왜 깨우느냐는 표정이 역력했다. 하지만 경석은 자는 한 아이를 깨우는 것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다. 사람을 살리는 긍정의 3의 법칙이 있듯이 부정의 3의 법칙이 교실에서도 발휘되고 있었다. 자는 아이 하나를 방치하면 그 옆의 아이가 자신도 그렇게 할 수 있다는 태도를 보이기 시작하고 그런 아이가 하나, 둘 늘고 세 명이 엎드려 자는 분위기 조성되면 그 수업은 이미 끝나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윤주야. 자, 책 펴고 수업 시작하자”
윤주는 경석의 기대와는 달리 몸을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교탁에서 몸을 돌려 윤주의 자리로 향한 경석은 윤주의 책상에 아무런 책이 없음을 발견하였다.
“윤주야, 자 실종된 국어책 찾아볼까?”
경석은 최대한 분위기 좋게 이끌고자 약간의 농담을 섞어 말을 이었다. 하지만 윤주는 꼼짝하지 않았다.
순간 경석의 머릿속에는 이 녀석이 왜 이러지 하는 의문이 들었다. 며칠 전부터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기는 했으나 말하면 그래도 지시한 것을 행동을 옮기는 편이었다.
“왜 그래, 윤주 책 없니?”
경석도 사람인지라 그의 말투에 약간 짜증의 감정이 섞이어 들어가고 있었다.
“네 없어요. 안 가지고 왔어요.”
윤주는 자다 깬 탓인지 까칠한 투로 말하고 있었고, 자는 나를 왜 건드리느냐는 감정을 얼굴에 가득 담아 표현하고 있었다. 하지만 경석은 이 순간 화를 내면 수업 분위기 자체가 크게 요동칠 수 있기에 참으며 말을 이었다.
“그래, 그러면 희지랑 같이 볼래? 책상 붙여서”
“저, 코로나 상황인데 희지랑 붙어 있어도 돼요?”
경석은 윤주의 뜻밖의 반응에 순간 당황했다. 사실 그랬다. 코로나가 바꿔 놓은 교실의 풍경은 의자 배치가 최대한 간격을 두고 있는 모습이다. 예전이면 둘 혹은 셋이서 붙어 앉아 수업을 듣곤 했는데, 올해는 자석 배치가 늘 시험 대형이다. 그리고 모둠 수업이나 토론 수업을 할 때처럼 교실 배치를 바꿔가며 이루어지는 수업은 전혀 진행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짝이 없다는 것은 아이들 사이에서는 서로 친밀한 관계를 형성할 기회를 박탈당하는 것인지 모른다. 몇 반을 제외하고는 올해 내내 자리 이동도 없이 명렬표 번호 순서로 1년을 보내는 경우도 많았다.
경석은 스스로 목소리 톤을 애써 한 단계 낮추어 말했다.
“방역 때문에 걱정이 되나 보지? 하지만 마스크도 끼고 있고, 말을 주로 할 것은 아니니 같이 보도록 해”
경석은 윤주에게 희지 쪽으로 책상을 옮겨 같이 책을 보도록 했다. 그리고 교실 앞 교탁으로 돌아가 수업 진도를 나갔다. 하지만 수업 중 마스크 너머로 보이는 윤주의 표정에서 뭔가 걸리는 듯한 감정을 순간 느낄 수 있었다. 경석과 눈을 몇 번 맞춘 뒤에, 책에 시선을 주는 척하고 있었지만, 어떻게 보면 노골적인 반항심도 엿보이는 행동을 취하고 있어 경석의 시선을 계속 끌 만한 모습을 이어 가고 있었다.
경석은 수업은 해야 했기에 더 말을 할 수는 없었지만, 경석은 윤주의 태도를 그냥 넘어가면 왠지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시험 범위에 대한 진도 확인을 끝으로 수업을 마치고 경석은 윤주를 불러 교무실로 오도록 했다.
교무실 한쪽에 마련된 공간에서 마주한 윤주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경석이 상담하기 가장 어려운 타입의 아이가 마주 앉았을 때, 윤주처럼 자기의 의사를 표현하지 않는 아이였다. 사실 상담과 잔소리의 경계선을 잘못 넘나들던 시절에는 아이가 말하지 않으면 경석 자신이 일방적으로 말했다. 자신이 해야 할 말을 다 하고 나면 꽤 괜찮은 상담을 했다고 자부했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요즘 경석이 깨달은 것은 교사가 일방적으로 말하는 것이 결코 상담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내 수업이 그렇게 싫으니? 학생들에게 수업이 불필요하게 느껴진다면 나도 많이 고쳐야 해서 그래.”
윤주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선생님 생각에 예전의 너의 모습은 활기차 보였는데, 지난 몇 시간을 보면 넌 항상 엎드려만 있는 모습이었어. 혹시 다른 문제 있니?”
윤주는 여전히 관심 없다는 태도를 보이었다. 경석은 일단 자신이 알고 있는 상담기법 중 하나인 나 전달법을 활용해 보기로 했다.
“윤주야, 네가 말을 안 하니, 대화가 안 이루어지고 있지?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너와 나 사이에 더 깊은 오해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해. 사실 선생님이 널 부른 것은 네게 어떤 잔소리를 하거나 야단치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먼저 말할게. 난 너의 이야기를 듣고 싶을 뿐이야.”
경석의 말에 반항적인 눈빛에서 약간의 변화는 있었으나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말하지는 않았다. 한참을 기다려도 말을 하지 않는 윤주에게 경석이 또 먼저 말문을 열 수밖에 없었다.
“우선 내 마음을 너에게 전달해 주고 싶구나. 너도 알다시피 선생님은 수업 시간에 엎드려 자는 모습을 너무 싫어해. 왜 그렇게 하는지 그 이유를 들려주고 싶어. 잠시 시간 내줄 수 있지?”
역시 윤주는 대답하지 않았으나, 경석은 거부하지 않는 것을 긍정의 의미로 받아들여 말을 이었다.
“사실 수업 시간에 엎드려 자는 것에 대한 나의 경험 때문이야. 나도 고등학교 시절 너처럼 무기력하게 엎드려 있고는 했지. 심지어 야간 자율학습도 의무로 참석해야 하는 시절이라 도망가지도 못하고 매일 엎드려 시간을 보내곤 했지. 그런데 어느 날, 왜? 저 선생님은 자는 나를 왜 안 깨우시지? 하는 생각이 들더란 말이야. 그 선생님에게 난 버려진 존재 같은 느낌이 들었단다.”
경석의 말을 듣던 윤주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전, 샘 하고 달라요.”
윤주의 말에 경석은 자신의 말을 멈추고 윤주가 다음 말을 할 때까지 기다렸다.
“그냥 모른 척 내버려 두시면 좋을 것 같아요”
윤주의 태도에 약간 당황스럽기도 하고 궁금한 점이 많았으나 경석은 조금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았다. 사실 윤주가 모른 척 내버려 달라는 이야기는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윤주야, 무슨 문제가 있는지 모르지만, 힘들 때 힘들다고 말하는 것이 잘못이 아니야. 그리고 가끔은 자신의 어려움을 털어놓으면 주변의 누군가는 그것을 귀담아듣고 도와줄 수도 있지 않을까?”
경석의 말에 윤주는 크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어른들은 다 똑같아요. 처음에는 호기심에 물어보지만, 얼마 안 가서 귀찮아하며 거리를 두기 일쑤였어요. 그리고는 개인 문제는 늘 본인 자신이 극복해야 한다는 말로 끝나기 일쑤였어요.”
경석에 예상치 못한 윤주의 말에 순간 당황했다. 윤주를 부를 때 경석의 생각은 그냥 무기력하게 살지 말고 학교생활을 의욕적으로 하기 위해 태도를 바꾸길 권면하는 정도였었다. 하지만 윤주의 돌변한 태도에 그동안 어른들에게 쌓인 노여움이 보였다.
“윤주야, 네가 많이 힘든 것 같구나. 내가 네 마음을 다 알 수는 없으니 뭐라 말을 해야 네게 위로가 될 수 있을지 모르겠구나. 하지만 그냥 일반적으로 말하면 네 주변의 친구 중 힘들지 않은 사람은 없어. 그 힘듦에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냐가 다를 뿐이야. 네 말처럼 내가 너를 지금 당장 어떻게 도울 수 없을 수도 있어. 하지만 선생님은 믿는다. 누군가에게 자신의 고민을 내뱉고 나면 약간의 위안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
경석은 최대한 목소리 톤을 낮추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5분 정도 시간이 흘렀다.
“전 그냥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저도 잘하고 싶었는데…….”
윤주는 흐느끼기 시작했다. 경석은 윤주에게 감정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다 생각했다. 이 상황에서 섣불리 말을 잇는 것은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윤주가 말을 꺼내기 전까지 더 기다려 주고자 하고 싶은 말을 참았다. 어깨의 들썩임이 잦아든 윤주는 경석에게 말을 이었다.
“이제는 뭐가 옳은지 모르겠어요. 모든 게 귀찮고 어차피 안 될 것에 목메기도 싫어요. 그리고 이런 시간도 다 의미 없다는 생각이에요.”
경석은 많은 아이를 만나온 경험을 바탕으로 윤주 문제를 추측해 봤다. 잘해보고자 했으나 스스로 원하는 성과가 나오지 않아 자포자기하고 싶은 상황인 것 같았다. 학생들은 학년 초 누구나 그렇듯이 잘하고 싶은 마음을 갖고 있다. 그리고 그 노력을 주변 사람들에게 인정받고자 한다. 하지만 늘 그렇듯이 학교는 경쟁이란 굴레 속에서 서열이 만들어진다. 그 서열이 아이들을 괴롭히는 것이다. 마치 십층 건물이 옥상을 꿈꾸고 정말 힘들게 올랐으나, 아직 5층도 오르지 못한 자신의 현재 모습을 발견하면, 10층까지 오르는 것은 불가능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래서 더 힘차게 도전의 발걸음으로 오르려 하는 것이 아니라 아직 한 층 더 오를 힘이 있음에도 그저 주저앉아 버리고 마는 것이다.
“윤주야, 예전에 내가 수업 시간에 67명 중 67등 한 친구 이야기했던 것 기억나니? 우리나라 대표기업의 중국 현지 법인 부장인 선생님 친구 말이야.
그 친구도 지금의 모습을 갖추기까지 쉽지 않은 길을 걸었어. 대학을 가는 것도, 회사에 입사하는 것도 한 번에 된 적은 없었어. 여러 가지 사연이 있어. 하지만 공부라는 것 하나만 하더라도 너도 알듯이 안 하던 공부 하기가 쉬웠겠니?”
윤주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경석의 말에 흥미를 조금 보이는 눈빛이었다.
“영어 과목의 경우 같은 번호로 쭉 찍어 20점 맞은 그 친구가 정말 마음 잡고 공부한 3개월 뒤 시험 봤을 때, 영어 점수가 어땠을까? 18점 받았어. 그래서 내가 그랬었지. 차라리 찍는 재주가 더 있다고. 하지만 그때 그 친구는 포기하지 않았어. 모두가 기대하지 않았지만 스스로 몸부림쳤기에 지금은 그 자리에 가 있는 거야.”
윤주는 고개를 들어 경석의 눈을 마주했다.
“선생님 그럼 저도 할 수 있을까요?”
경석은 순간 망설여졌다. 섣부르게 확신을 주는 것이 옳은지 판단이 서지 않은 것이다.
“윤주야, 내가 답을 갖고 있지는 않아. 하지만 그 친구가 너의 역할 모델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말해주는 거야.”
윤주는 다소 실망한 듯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한참 동안 말을 잇지 않던 윤주는 뭔가 결심한 듯 경석을 바라보았다. 조금 전과는 다른 눈빛으로
“아니, 괜찮아요. 선생님 그리고 고마워요.”
“고맙기는 뭐가?”
경석은 변한 윤주의 태도가 다소 당황스러웠다.
“선생님은 그래도 제게 솔직하게 대해 주시는 것 같아서요. 다들 말로는 저를 위하는 척하지만, 나중에는 제 탓을 하는 사람은 아닌 것……. 헛된 희망만 말하는 것 같지는 않아 보여요.”
“윤주야…….”
경석은 이름을 불렀지만, 쉽게 다음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나 윤주는 경석의 눈빛에서 진심을 읽은 듯한 반응을 보였다.
“괜찮아요. 저도 잘 알아요. 제 상황이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는다는 것, 선생님이 쉽게 할 수 있다고 하셨으면 믿지 않았을 것에요. 하지만 그 말씀 안 하시니까 오히려 다른 마음을 먹게 되네요.”
경석은 윤주의 말에 빠르게 반응하지 못했다. 그리고 미안함 감정이 일었다. 말로는 옛 친구 이야기를 하고 있었지만, 몸으로는 윤주의 가능성을 확신하지 못한 태도를 보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야, 넌 잘할 수 있어. 네게 확신을 심어주는 말 먼저 못해서 미안하구나. 지금의 너의 태도를 보니, 넌 충분히 해낼 것 같구나. 선생님이 너보다 못한 것 같아.”
경석은 윤주와 대화하고 있는 이 상황이 자신이 윤주의 문제를 해결해 주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학생을 상담할 때 지녀야 하는 기본 태도에 대해 교육받고 있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경석은 윤주에게 자신의 친구가 경험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더 들려주면서 윤주의 마음을 다독여 주었다. 그리고 윤주가 어떤 결과를 보이더라도 그 노력하는 모습을 인정하는 한 사람이 되기로 약속을 했다.
경석은 윤주가 상담을 마치고 가는 뒷모습을 한참 바라봤다. 그리고 고민 가득한 윤주의 발걸음이 한 번에 가벼워지지는 않겠지만 그 아이의 마음의 무게를 생각하면서 수업을 진행하리라 다짐했다. 그러면서 경석은 아이의 마음을 어루만질 수 있는 교사로서의 삶을 한동안 잊고 살아왔음을 돌아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