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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영 Sep 24. 2022

학교 길에 서다

22. 기간제 교사


“따뜻한 차 한 잔 하세요.”

이른 아침부터 고교학점제 선도학교 보고서를 쓰고 있는 윤건호에게 서준호가 차를 들고 왔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기분 좋은 아침 선물 받은 것 같아요.”

“차 한 잔인데요. 뭘, 너무 일만 하지 마세요. 늘 바쁘신 것은 알지만 부장님 보고 있으면 학교 일 혼자 다 하시는 것 같아요. 몸도 생각하세요.”

윤건호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차를 건네고 가는 서준호의 마음이 고마웠다. 교육과정 부장 자리를 맡고 있기에 누구보다 분주한 연말을 보내고 있는 처지였다. 이것저것 챙겨야 할 일 많아서 심적으로 힘든데, 그런 그의 마음을 알아주는 마음이 전해진 기분이었다. 손에 들린 차의 온기보다도 더 따뜻한 위로를 받은 느낌이었다. 

그러고 나서 생각해 보니, 서준호는 누구보다 일찍 출근해서 학교의 아침을 여는 한 사람이다. 생활인권부 소속이라는 이유도 있다. 하지만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즐겁다는 그는 한결같이 아침맞이 활동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이다. 일할 때 말로만 아이를 위하는 척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실천하는 모습이 항상 보기 좋았다. 누가 뭐라고 해도 아이들과 학교에 꼭 필요한 사람인 것이다. 하지만 서준호 같은 사람이 학교에 자리 잡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라는 사실이 윤건호의 마음 한편을 아프게 했다. 서준호는 아직 기간제 교사 딱지를 떼 놓지 못했다. 윤건호가 근무하고 있는 사립학교의 경우 채용 문제에 있어서 많은 난제가 있었다. 하지만, 한때 언론에 떠들썩하게 다루어진 것과 같은 재단의 인사개입이나 채용 비리와 같은 문제가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학생 수가 줄어드는 추세이다 보니 교사 정원을 쉽게 늘릴 수 없었다. 학령인구가 줄고 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교육과정 부장님, 아침부터 뭘 혼자 그렇게 생각하고 계세요?”

 “아, 네 별일 아니에요”

 “아닌 것 같은데, 출근 인사도 안 받아주시고 무슨 걱정거리가 있으신가요?”

 서준호 생각에 빠져 있다 보니, 이은주의 출근 인사에 응대하지 못했다.

 “서준호 선생님이 아침에 차를 건네주고 갔는데, 그 선생님 처지를 잠깐 생각했어요.” 

이은주는 윤건호의 말의 의미를 빠르게 추측해 봤다. 얼마 전 경기도 교육청 임용 1차 발표가 있었는데, 아쉽게 2점 차로 탈락했다는 소식을 들었던 기억이  났다.

“올해 우리 학교에서도 정식 교원 채용 계획이 없으니 그 선생님도 답답하겠네요. 아침부터 고민 상담해주신 것인가요?”

이은주는 서준호가 올해 채용 관련 문의를 하고 갔다고 생각한 것이다. 

“아니에요. 오히려 절 위로하고 갔어요. 너무 일만 하고 있다고, 그 선생님 자신 처지도 답답할 것인데, 제 몸 챙기며 일하라고 말하더라고요.”

이은주는 자기 생각이 거기까지는 미치지 못했음을 인정했다. 

“그랬군요. 서준호 선생님 참 괜찮은 사람 같아요. 한결같이 성실한 것도 그렇고 늘 밝은 표정으로 아이들 대하는 모습이 보기 좋은 사람이에요.”

누구나 보는 눈은 있는 것이다. 이은주 역시 서준호에 호의적인 마음을 갖고 있었다.

“그렇죠. 참 아까운 사람이에요.” 

“그나저나 우리 학교에 자리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정원 직제표상 결원 상태이니 충분히 가능할 것도 같은데 안 그런가요?”

“선생님도 잘 아시잖아요. 우리 학교 같은 경우 교원 채용 부분은 교육청의 협의가 중요한 것, 관리자도 뽑고 싶지만 여의치 않은 것 같아요.”

 윤건호가 근무하고 있는 학교의 경우, 사립학교이지만 법인의 물질적 지원이 거의 없는 학교이기에 교육청의 인건비 보전을 받아야 한다. 그 말은 신규 교사 채용을 교육청이 결정하고 있는 학교라는 것이다. 법인의 경제적 역할이 미미하다는 것은 교사 정원 수를 학교 마음대로 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설사 교육청에서 교사 채용을 승인하더라도 또 다른 문제가 있었다.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사립학교 교사 채용은 교육청 위탁 채용을 채택하고 있었다. 채용의 공정성을 확보하는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기에 그 문제가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현재 기간제 근무를 하는 교사의 경우 학원에서 몇 년간 공부만 하고 있는 수험생과 경쟁에서 이기기는 쉽지 않았다. 지난해에 선발된 신규교사 역시 3년간 근무했던 기간제 교원이 아닌 다른 교사로 임용이 결정되었다. 온종일 아이들과 시달린 후 퇴근하고 나서 공부할 수밖에 없는 기간제 교사들의 임용률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쉽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현실이었다. 

하지만 학교는 여러 이유로 기간제 교사가 꼭 필요한 상황에 놓인 경우가 많았다. 육아 휴직을 비롯해 병가, 각종 공모 사업 등으로 필요한 인력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래서 많은 학교에서는 정원의 30% 이상을 기간제 교사로 채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과거 많은 사립학교에서 이루어진 방식 중 하나인 기간제 교원 생활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여러 방면의 검증 후 정식 교사로 채용되는 길이 사실상 사라져 버린 것이다.

기간제 근무 기간에 학교 현장에서 우수한 자질과 인품을 확인받은 교사라 할지라도 교육청 주관 경쟁시험에서 살아남지 못하면 채용될 수 없는 구조가 되어 버린 것이다. 가끔 머리만 좋고 가슴이 따뜻하지 않은 교사들을 만날 경우, 서준호 같은 교사가 더 생각나지만, 심정과 현실의 차이는 늘 존재할 수밖에 없었다.

“교육청도 이해는 되지만 교사 수급 문제에 있어서 문제가 많은 것 같아요. 신설학과 승인을 해 놓고 그 학과의 정식 교사 채용에는 소극적이니 문제가 많아요. 새로 만든 학과가 잘 운영되려면 소속감을 느끼고 열정을 다할 교사가 존재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시설 같은 것도 중요하지만 결국 아이들을 만나는 것은 교사인데, 교사 수급도 경제적 원리로만 귀결되는 현장의 모습을 알고는 있는지 답답해요.”

 예전에 상업, 공업, 농업, 가사 계열로 대변되던 특성화 학교의 양상이 몇 년 전부터 학생들이 조금이나마 선호하는 학과로 탈바꿈하지 않으면 학교 자체가 유지되지 않기에 거의 3년 단위로 학과 개편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 결과 한 학교에 이전에 볼 수 없었던 다양한 계열의 학과가 공존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에 맞춘 교원 조직을 변형해 가는 것이 쉽지 않았다. 공립의 경우 상황에 따라 해당 과목 과원 교사가 발생하면 다른 학교로 옮겨가면 되지만 사립학교의 경우 그런 방법이 적용되지 않고 있었다. 정식 임용된 교사를 내보낼 수 없기에 최대한 배정 정원 안에서 가용인원에 대한 인력 조정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많은 사립학교에서는 차후 학과 개편 작업의 가장 큰 걸림돌인 교사 정원 문제에 민감하게 대응하고자 전체 정원을 정식 교사로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기간제 교원을 20~30% 이상을 운영하는 곳이 허다했다. 

“하루 이틀 고민해온 문제가 아니잖아요. 안타깝지만 현실적인 것은 또 받아들여야 하니, 단지 열정 가득한 그들의 마음을 잘 안아 줄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야겠죠.”

“그렇기는 하네요. 동료 선생님 중 그런 마음을 이해하지는 못한 채 많은 힘든 일들을 기간제 선생님들에게 떠넘기는 경우도 많은 것 같아요. 저도 기간제 교사 생활을 해봐서 그런지 연말 무렵 그들이 고민하는 부분이 무엇인지 잘 알아요.”

 “참 그러셨죠. 쌓인 것이 많았겠네요. 저 같은 경우 바로 임용된 경우라 그런 경험이 없어요. 우리 교직 사회가 개선해야 할 부분이 많긴 하죠?”

“글쎄요, 저도 이제 자리 잡고 보니, 초심을 잃어가고 있는 경우라 뭐라 말할 수 없는 부분도 많지만, 가장 큰 문제는 곧 있을 업무분장 같은 경우도 정규 교사 위주로 먼저 조직되니 후 순위에 놓일 수밖에 없는 힘든 부서 업무의 경우 대부분 기간제 교사들에게 배정되는 것이 현실인 것 같아요.”

윤건호는 이은주가 한 말에 많은 부분 동의한다. 힘들고 어려운 일은 누구도 나서 하고 싶지 않기에 결국 가장 힘이 약한 기간제 교원들에게 일이 돌아가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선택권이 없었다. 심지어 한 학교에 몇 년간 계속 근무하고 있는 경우도 해마다 새롭게 임용이 결정되기에 그런 경우를 당하고 나면 상대적 박탈감이 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기획위원회나 인사위원회 같은 회의 시 이 부분을 언급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아시는 줄 모르지만, 기간제 교사들 네트워크에서 우리 학교가 그다지 좋지 못한 평가를 받고 있다는 소문도 있어요. 이런 분위기가 지속되면 괜찮은 선생님들은 우리 학교 지원을 꺼리지 않을까 걱정이에요.”

윤건호는 이은주의 마지막 말에 가슴이 아팠다. 결국 자신이 몸을 담고 있는 학교가 누군가에게 갑질을 하고 있다는 말로 들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구조가 계속되다 보면, 가슴 따뜻하고 유능한 교사들은 다 떠나버리고 그 빈자리를 다른 이들로 채울 수밖에 없기에 학교 현장은 또 다른 부분의 약점을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자신의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 조직에서 충성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사명감을 근간으로 하는 것이 교사라지만 기간제 교사에게 사명감만 요구하는 것 역시 다른 형식의 갑질일 수 있다는 생각에 윤건호는 마음이 무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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