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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영 Sep 24. 2022

학교 길에 서다.

23. 체험학습 신청서

갑작스럽게 추워진 날씨에 코트를 여미고 걷고 있던 수지는 문득 휘몰아치는 바람이 날려버린 낙엽들이 몰려가는 곳은 어디일까? 궁금했다. 떨어진 낙엽들이 찾아갈 수 있는 곳을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었다. 저 낙엽들이 마치 갈 곳 잃은 자신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 의미 있는 삶을 살아왔다고 생각했었는데 가슴에 허전함만이 가득 들어찬 느낌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선 교실 풍경도 그랬다. 웃고 떠들던 아이들 없이 주인 잃은 책상과 의자만 무질서하게 놓여 있었다.

“지수 일찍 왔네. 넌 체험학습 신청 안 했어?”

“어?”

 체험학습 이야기를 꺼내는 연우를 바라보는 수지의 표정이 굳어지고 있었다. 

“애들 다 쓰잖아. 학교 나와서 할 것도 없는데, 나도 쓰려고 이렇게 신청서 써왔는데, 넌 안 쓰니?”

딱히 뭐라 답변할 말을 찾을 수 없어 머뭇거리는데, 연우는 수지의 표정을 살펴보기보다는 자기 생각에 몰두하고 있었다. 

“난 15일 쓰려고 해.”

“뭐 15일, 그렇게 길게 어디 갔다 올 때가 있어?”

“가족 여행으로 제주도 3일 갔다 올 것이고, 나머지는 지방에 있는 친척 집에 갔다 온다고 하려고. 실제로 다 있지는 않겠지만 그것을 다 확인할 것도 아니고 가족 여행 사진 몇 장 다른 상황에서 찍고 보고서 작성하면 될 것 같아. 넌 어디 가?”

당연하듯이 말하는 연우에게 집안 사정을 말할 수 없는 수지는 자기도 모르게 나오는 한숨을 들키지 않으려고 몸을 돌렸다.

“잠깐 난 담임한테 서류 제출하고 올게. 여행 이야기 나중에 하자.” 

코로나 19로 여행이 꺼려지는 시기가 분명함에도 학교에 나오기 싫어하는 아이들은 대부분 연간 20일까지 허용된 체험학습을 쓰고 있었다. 연우처럼 실제 여행 기간과 관계없이, 최대한 길게 쓴 체험학습을 막을 방법이 없다 보니 학교에서는 계획서와 부모 동의 확인으로 신청을 허용하고 있었고 체험학습 보고서와 증빙 사진 자료를 첨부할 경우, 출석으로 인정해 주고 있었다. 

올해 유난히 체험학습 쓰는 분위기가 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수지처럼 가정 형편상 여행 갈 형편이 못 되는 경우, 소외감을 더 크게 받고 있었다. 코로나 19로 인해 가정학습 신청일이 늘어난 여파도 있겠지만, 예년에는 고3을 위한 학교 단위 집합 교육이나 학과별 행사들이 대부분 생략되거나 온라인으로 진행할 수밖에 없다 보니 학생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싶은 프로그램들이 거의 없었다. 그러다 보니 딱히 등교할 필요성을 못 느낀 학생들이 늘어났고 체험학습을 이용해 학교를 안 나오는 친구의 모습을 보면서 너도나도 따라 쓰는 분위기로 흘러갈 수밖에 없는 현실이었다.

수지 반의 경우도 12월 들어서 취업이 확정되어 현장실습을 이미 나가 있는 친구들을 제외하고 거의 모든 학생이 체험학습 신청을 하고 있었다.

수지 역시 어제 신청서를 갖고 집에 갔었다. 하지만 홀로 작은 가게를 운영하는 엄마가 줄어든 손님 때문에 임대료 걱정하시는 모습을 보며 차마 엄마에게 체험학습 계획서를 꺼낼 수는 없었다. 처음에는 엄마에게 보여주지 않고 그냥 써버릴까도 생각했었다. 하지만 신청자들이 늘어나다 보니 체험학습 신청서를 낼 경우, 담임은 꼭 부모님께 확인 전화하고 있었기에 엄마 동의 없이 쓸 방법은 없었다. 

조회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지만 등교하는 학생이 거의 없어서 교실에 휑하니 혼자 버려진 느낌이 들었다. 이럴 것이면 차라리 원격 수업 전환이 되었으면 했는데, 학교는 전면 등교 원칙을 세우고 있어서 답답하기만 했다.      

“연우, 수지, 은선, 정연 이렇게 네 명뿐인가? 야 정말 이런 일도 겪네.”

독서 수업 들어온 박경석 선생님도 약간 놀란 눈치였다. 

“연우야 아이들 다 온 거 맞아”

“네, 실습 나간 친구들 말고 대부분 체험학습 갔어요. ”

“그래. 그럼 너희만 이제 쭉 수업해야 하나?”

“아뇨. 저도 다음 주에는 체험학습 갈 것이에요.”

“그래, 그럼 다음 주에는 현재 체험학습 가 있는 아이들이 오겠지.”

“선생님 아이들 대부분 2주 이상 썼어요. 아마 졸업식 무렵이나 되어야 학교에 올 것이에요.”

“그래. 말로만 들었는데, 사실이구나.”

“선생님 오늘 수업 안 하실 거죠?”  

연우는 당연하다는 식의 질문을 던졌다.

“아니할 것인데. 너도 알다시피 특별 수업은 오후에 하도록 되어 있잖아.”

“에이, 선생님 4명이 뭘 해요. 그냥 저희에게 시간 주세요. 조용히 저희 할 것 할게요.” 

“뭐 할 것 있어?”

“…….”

“사실 오늘 너희에게 인생의 책이란 주제로 책 몇 권 소개하려고 했는데, 이 분위기는 그게 아니구나. 좋아. 자기가 하고 싶은 것 하되, 게임은 안 된다.”

“네”     

졸업 고사 이후에도 끝까지 수업을 하시던 경석 선생님마저도 시간을 주셨지만

수지는 딱히 할 것이 없었다. 핸드폰으로 유튜브를 보거나 드라마를 보는 것도 시들했고 딱히 좋아하는 게임도 없었다. 

현장 체험 가는 아이들 대부분의 마음이겠지만 그냥 집에 가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집에 간다고 해서 딱히 뚜렷하게 하고 싶은 것도 없었다. 단지 방해받지 않고 싶은 마음만 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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