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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영 Sep 24. 2022

학교 길에 서다.

24 학급 소식지 최종본

모든 이별이 힘든 것은 아니다 말해왔지만, 오늘 너희를 떠나보내는 내 마음이 가볍지만 않구나. 

‘함께 있으면 좋은 사람이 되자’고 1호를 쓰던 설렘이 아직 남아있는 것 같은데, 이제 마지막 학급 소식지를 작성하고 있는 지금을 돌이켜 보니, 너희에게 전한 학급 소식지에 칭찬보다는 질책이 더 많았던 것 같다. 그리고 희망의 메시지보다는 코로나 상황이 만들어낸 취업상황의 냉혹한 현실을 직시하라고 쓴소리만 해온 1년이었던 것 같아 미안하다. 공부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세 시간 이상 집중하고 앉아 있는 것 자체가 어렵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한계를 뛰어넘지 못하면 인생 망한다고 쏟아냈던 나의 거친 말들이 너희 가슴에 상처가 될 수도 있었을 거야. 더구나 노력하기만 하면 된다고 안 하고 다른 곳에서 탓할 것 찾지 말라고 했지만, 세상에는 노력만으로 안 되는 일도 많다는 사실을 보게 한 것 같아 네 마음이 아프다. 특히 묵묵히 나의 잔소리를 따라준 너희 앞에 놓인 현실이 고교 3년의 행복한 결말로 끝나지 못한 면이 있어 더욱 안타깝다. 

하지만 누가 뭐라 해도 너희들은 이제 학교가 아닌 사회에 나가 당당히 너희 몫의 삶을 살아갈 것을 믿기에 나는 너희와의 아름다운 이별을 준비할 수 있구나. 

세정아 네가 질문했었지. 선생님은 세상이 내 뜻대로 되어주지 않을 때 무슨 힘으로 버티냐고? 처음에는 가족이라고 대답했었지. 그런데. 네가 던진 그 말의 답을 찾기 위해 고민하다 보니 내가 옳다고 믿는 것에 대한 끝없는 도전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나의 어설픈 고집인지는 몰라도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은 꼭 이루고 싶고, 나도 한다면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크다는 것을 확인했지. 누구나 어느 자리에서나 겪을 수밖에 없는 힘듦을 끝까지 견뎌낼 수 있는 나만의 답이지. 너도 너만의 답을 찾아내기 바래. 그리고 세정아 네 앞에 닥친 현재의 문제에 낙심하고 돌아서기보다 주어진 현실을 직시하고 다시 도전하는 용기 잃지 말기 바란다. 

‘삶이 당신에게 레몬을 주면 그것으로 레모네이드를 만들어라.’ 이것은 내가 한 말이 아니라 지나영 교수라는 분이 유튜브 강연에서 한 말씀이야. 삶에 쓰고 신 레몬 같은 어려움이 올 때, 못 먹을 것이라고 버리지 말고 그것을 짜고 설탕을 넣어서 누구나가 좋아하는 레모네이드를 만들라고 하신 말씀이야. 힘들 때 그분 강연 들어 보는 것도 도움 되리라 생각한다.

이제 너희를 떠나보내며 당부하는 마지막 잔소리를 시작 하마. 사실 나 역시 잘 살았다고 확신할 수 없는 삶을 살면서 너희에게 충고한다는 것이 맞는가 망설여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래도 이 말은 꼭 전하고 싶구나.

결과가 어떻게 나타났던 것과 관계없이 최선을 다해온 자기에게 꼭 칭찬해주는 시간은 갖기 바래. 스스로 사랑하지 않으면 누구 앞에서도 당당할 수 없단다. 남들이 보는 비교의 눈이 아닌 본인이 세운 기준을 이루어냈다면 그것은 충분히 칭찬받아야 하는 일이란다. 그렇게 작은 성취감을 모아가는 일이 너희 삶을 살찌워가는 일임을 잊지 말기 바란다. 그런 의미에서 너희 모두는 아낌없이 칭찬받을 수 있는 1년을 보냈음을 난 알고 있단다. 

경영 컨설턴트의 꿈인 지후, 꼭 성공해서 네가 약속한 우리 학교 개선 보고서 잘 작성해줘. 네가 입에 달고 살았던 우리 학교 문제점 분석 보고뿐만 아니라 우리 학교를 정말 멋지게 변신시켜 놓을 개선 방안도 잘 담아줄 것이라 믿는다.

미영이는 나도 보고 싶은 드라마 연출가 꼭 되렴. 네가 그랬었잖아. 내가 언제든지 다음 대사를 맞출 수 있는 뻔한 구성의 드라마가 아니라 모두가 다음 장면이 기다려지는 드라마 만들 것이라고. 기대하마.

희지와 연우는 세무 부분에서 초고속 승진하는 9급 공무원의 신화 주인공이 되어주고. 혜수는 반려견의 마음까지 어루만지고 소중히 담아내는 애견 미용사로 성공해주렴, 

지혜는 같이 취업 나간 승지랑 싸우지 말고 잘 지내. 너도 머지않아 느끼겠지만 회사에서 동기만큼 소중한 대상은 없다. 힘들 때 서로 의지할 수 있는 상대니까. 서로 잘 챙겨 주기 바래.

승주, 지선, 다은이와 승희는 대학 장학금 받을 것이라고 한 약속 꼭 지키고, 우진이는 너의 버킷리스트 하나 달성할 때마다 보낸다는 편지 기쁜 마음으로 기다리마. 

현주와 유진이는 현장실습 때부터 모은 돈으로 내년이면 차 살 돈 다 모을 수 있다고 했지. 꼭 도로 연수 잘 받고 운전하렴. 너무 속도 내지 말고.

그리고 면접 대기 중인 슬기, 희선이, 나은이 너희에게도 좋은 소식 곧 올 것이니까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자. 너희의 가치를 알아주는 멋진 회사에서 보란 듯이 출발하면 되니까.

아직 무엇을 할지 모르겠다고 망설이고 있는 도희, 채원, 현정, 지호 남들과 비교하지 말고 자신이 무엇을 할 때 가장 열의가 생기는지부터 꼼꼼히 점검하고 그 분야에 어떻게 도전해갈지 정리하다 보면 나름의 길이 보일 것이라 믿어.

2021년 힘들게 같이 살아 준 너희가 있어서 한 해 잘 보낼 수 있었다. 이제 새로운 해에 가까이서 보지는 못하겠지만 너희 각자가 처한 상황 속에서 꼭 승리하는 삶 살기를 멀리서 기도하는 한 사람이 있음을 기억하길 바란다. 

                            3학년 7반 졸업 축하해!

                                   사랑한다. 내 자랑스러운 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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