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랜선 졸업식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여파가 2년 넘게 이어지면서 학교의 많은 행사가 취소되었다. 하지만 졸업식은 제대로 진행하기를 바랐다. 백신 접종도 이루어졌기에 작년과 달리 올해는 정상적인 졸업식이 이루어지리라 기대가 컸다. 하지만, 희진의 바람과는 달리 돌파 감염이 늘어나고 확진자 발생에 따라 결국 졸업식도 비대면 형식으로 치르게 되었다.
코로나19 전파 차단을 위해 졸업식 행사를 전면 비대면으로 전환하라는 교육청의 결정에 따라 화상회의 프로그램을 사용한 ‘랜선 졸업식’을 치른 후 오후에 반별로 졸업장만 받고 귀가하는 ‘드라이브 스루’ 방식으로 진행된다는 e-알림이 가정통신문이 전해진 것이다. 희진은 너무 속상했다. 졸업장과 상장만 택배로 받는 방식으로 진행하는 옆 학교보다는 다행이라지만 인생의 가장 축복받아야 하는 날을 송두리째 빼앗긴 것 같은 기분을 떨쳐낼 수 없었다. 희진은 1학년 때 경험한 선배들의 졸업식이 떠올라 더 아쉬웠다. 자신을 비롯한 동아리 후배들의 마지막 코스프레 깜짝 이벤트 축복 속에 환하게 웃던 언니들의 모습을 자신은 꿈꿀 수 없는 것이다, 더구나 대학에 진학하는 친구들과 달리 바로 사회에 나가야 하는 자신과 같은 사람은 인생의 마지막 졸업식인데 사진 한 장 기쁘게 남길 수 없다는 것에 화가 나기도 했다.
코로나 상황 첫해는 모든 행사가 원칙적인 취소 위주였다면 올해는 그래도 온라인 체육대회와 온라인 축제도 진행되었다. 그리고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한 전면 등교도 해왔었다. 그렇기에 졸업식이 정상적으로 진행될 줄 알았다.
‘가정통신문 봤니? 우리 같이 사진도 못 찍는 거야’
2학년 때 같은 반 주희도 아쉬웠는지 핸드폰에 e 알림이가 뜨자 카톡을 보내왔다.
‘아 진짜 이게 뭐야. ㅠㅠ’
더구나 주희랑 반이 달라 등교 시간이 다르게 배분되어 있었다.
‘시간 봤어?’
‘응, 등교 시간이 나뉘었던데 ㅠㅠㅠ’
‘너랑 사진도 못 찍는 거니?’
‘글쎄, 그 정도는 될 거야.’
‘강제로 귀가시키고 그런 것은 아닐까?’
‘글쎄, 그러기야 하겠어. 마지막인데 ㅠㅠ’
‘못 하게 해도 해야지. 남아있어.’
‘졸업식 때 하려고 했던 계획 다 수정해야 할 것 같아.’
‘할 것도 없으면서 ㅋㅋㅋ’
‘계집애, 너보다 많아’
‘야 애들 난리다. 카톡 계속 들어와’
‘당근, 할 말이 좀 많아’
‘영희가 제일 속상한가 봐.’
2학년 생활을 늘 셋이서 붙어 다녔지만 두 달 전 먼저 취업을 나가면서 함께 할 시간이 부족했다. 그러기에 이번 졸업식을 많이 기다렸던 영희의 실망 역시 컸을 것이다.
‘동아리 이벤트도 없겠지?’
‘그것을 할 상황이겠니?’
‘가족도 참가할 수 없다는데 ㅠㅠ’
‘너무 아쉽다.’
‘희진이 너 할 거니?’
‘뭘’
‘고백 ㅋㅋ’
고백이라는 말에 희진은 저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졌다. 뭐라 답을 하기가 어색해 멈칫했다.
‘넌 천연기념물이야. 요즘 선생님 좋아하는 애들이 어디 있니?’
희진에게 2학년 때 담임인 김연준 선생님은 특별한 분이다. 놀리기 좋아하는 친구들이 흔히 말하는 좋아하는 것과는 좀 다른 것이다. 그 감정을 좀 더 엄밀히 말하면 좋아한다는 표현보다는 ‘존경’에 가까운 것인지도 모른다.
자신이 가장 힘들었던 시절 묵묵히 옆에서 힘이 되어주신 분이다.
‘야, 네가 늘 말하고 다녔잖아. 연준 선생님에게 꼭 말하고 졸업할 거라고’
그랬다. 항상 무뚝뚝한 척하고 다니지만, 아이들이 힘들어할 수 있는 것을 미리 살펴 챙겨주시고, 늘 함께 아이들 편에 서 계신 ‘츤데렐라’ 연준 선생님에게 감사함을 꼭 표현하고 싶었다.
선생님은 희진이 가장 힘들어하고 있을 때, 무심한 척 다가와서 용기를 심어주셨다. 늘 친구들과 비교하느라 떨어진 자존감을 회복시켜준 선생님의 그 한 마디를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네가 만드는 인생 드라마의 주인공은 언제나 너라는 것 잊지 마. 그리고 네가 만들어 갈 무대 제일 앞에서 너를 응원하는 관객이 한 명은 있다는 것도’
유행어를 살짝 카피한 말씀이었지만 늘 부족한 모습에 실망만 하던 희진이 부정적 시선이 아닌 긍정의 눈으로 자기를 바라볼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셨다. 그 응원 덕분에 졸업을 앞둔 지금 취업에 성공해 당당히 사회에 나갈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너 그것 알아’
‘연준 선생님 졸업식 날 없을 수 있다는 것’
‘뭐?’
‘예전에 우리 담임한테 들었는데, 연준 선생님이 3학년 담임할 때마다 졸업식 날 학급에 들어오지도 않은 경우도 많았다고 해,’
‘뭐, 정말? 담임이 졸업식 안 오면 어떻게 해?’
‘우리 선생님 말로는 그분만의 특별한 이별 방식이라나 뭐라나 반에 아이들 물건과 선물 미리 다 만들어 놓고 나타나지 않는 경우가 있나 봐’
‘뭐?’
‘애들과 정 떼려고 그런다는 말도 있더라고’
‘설마?’
‘그 선생님 아이들 지나치게 잘 챙겨주시잖아?’
희진은 믿기지 않았지만, 한편으로는 연준 선생님이라면 그럴 것도 같았다.
‘편지 썼냐?’
‘뭔 편지?’
‘야 계집애야, 네가 너를 아는데 네가 말로 쉽게 표현할 수는 없을 테니, 네 마음을 편지로 써서 전달해. 그 선생님 특기가 아이들에게 학급 소식지 주시는 것이니까 네가 그 편지에 대한 답장 써드리는 것도 한 방법 아닐까?’
희진은 그 방법도 괜찮을 것 같았다. 꼭 한번 감사하다는 말은 전하고 싶었다.
‘난 너하고는 조금 다르지만, 여름 보충 끝나고 나올 때, 가사 실습실에서 우리 반 전체에게 선생님이 끓여 준 비빔면 그 맛은 잊을 수 없어. 몇몇은 맛이 있느니 없느니 했지만 맛있게 먹으라고 달걀까지 삶아 나눠주던 그 모습만은 멋있었어.’
그랬다. 연준 선생님은 뜨거운 햇볕 아래 놓인 아이들 뒤에서 소리 없이 묵묵히 버텨 서서 그늘을 만들어 주신 나무 같은 분이셨다.
희진은 편지를 써본 적이 너무 오래되어 잘 써질 것 같지 않았지만, 꼭 써 보리라 다짐했다. 그리고 선생님과 함께 꼭 사진도 찍으리라 결심했다. 소중한 추억을 잊지 않기 위해. 기쁘게 졸업식도 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그래도 본인에게 꼭 간직하고 싶은 고교생활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