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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영 Sep 24. 2022

학교 길에 서다

05. 우회전

컴퓨터 앞에 앉은 지 세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커서의 깜빡임만 있을 뿐 한 줄 쓰기가 너무 힘들게 여겨졌다. 글쓰기가 익숙하지 않은 것도 문제지만 학교생활 중에 어떤 경험을 소재로 글을 시작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1번 항목에서부터 막히다 보니 애가 타기만 했다. 

‘재희, 잘 돼?’

친구인 재희에게 카톡을 보냈지만, 카톡을 읽지도 않고 있었다. 전화해 볼까도 생각했지만 답답한 것은 재희도 마찬가지일 것 같아 망설여졌다. 취업을 준비하다가 갑자기 진로를 바꾼 탓인지 지난 3년의 학교생활이 무의미한 것 같아 답답하기만 했다. 이 모든 게 코로나 19 때문이라고 생각하니 화가 치밀어 올랐다. 

희수는 스스로 생각해 보아도 학교생활을 열심히 했었다. 인문계에 진학해 대학을 갈 수도 있었지만, 남들과 조금 다른 방식의 희망 사다리를 통해 삶을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기에 특성화고 진학을 결정했었다. 그리고 자신의 선택에 후회가 없었다. 

 1학년부터 대기업을 목표로 자격증과 성적관리를 해오고 있어 친구들 사이에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도 했었다. 선배들이 그렇게 했듯이, 대기업에 취업해 안정적인 직장을 갖춘 뒤 3년 후 대학에 가면 학비를 포함한 다양한 혜택이 따르리라 굳게 믿고 있었다. 그런데 코로나로 인해 자신이 목표로 한 기업에서 고졸자 공채를 하지 않기로 하면서 일이 꼬여 버렸다.

‘몇 번 쓰고 있어?’

답이 없던 재희에게 카톡이 왔다. 

‘넌?’

‘나 2번’

‘난 1번 시작도 못 했어.’ 

‘어쩌냐? 나도 쓰긴 했는데 마음에 안 들어.’

희수는 재희가 그래도 1번을 쓰고 2번으로 넘어갔다는 것이 부럽기만 했다. 

‘너 생활기록부 갖고 있어?’ 

‘아니. 왜?’ 

희수는 재희가 갑작스럽게 생활기록부 이야기를 꺼내나 싶었다. 

‘생활기록부 내용을 바탕으로 써야 할 것 아니야?’

생활기록부와 자기소개서 내용이 관련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은 있지만, 취업용 입사지원서를 작성할 때는 굳이 그 내용의 일치 여부를 따지기보다는 기업의 인재상에 맞추어 쓰면 되는 것이라 거기까지 생각을 못 했었다. 

‘너 담임하고 상담 안 했지?’

‘응’ 

‘그럴 줄 알았어. 우리 담임한테 진로 변경을 이야기했더니, 기본적인 안내 해 주셨어.’

‘도움 많이 돼?’

‘당근’ 

‘뭐가?’

‘카톡으로 할 이야기는 아니고 너도 찾아가 봐. 아마 네가 더 많이 도움받을 거야. 너희 담임 그 분야에서는 전문가잖아. 더구나 넌 나보다 성적도 좋고 한 게 많으니까.’

재희가 담임과의 상담을 권하고 있었지만, 희수는 마음이 썩 내키지 않았다. 사실 부모님과도 아직 자신의 결정에 대해 상의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만큼 진로 변경에 대한 자신만의 어떠한 확신도 아직 없었다. 내일이라도 괜찮은 취업 의뢰가 들어올지 모른다는 생각과 불확실한 것에 매달리다 시간을 낭비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혼란스러운 가운데 수시 원서 접수 기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내일이라도 담임을 찾아가야 하나? 그런데, 어느 대학 무슨 과에 진학하고자 한다고 분명하게 말할 자신도 없었다. 좋은 기업에 취직할 것으로 믿고 계신 부모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 만큼 괜찮은 대학이 두 손 벌려 기다려 주고 있는 것도 아닌 상황이라 너무 힘들게 느껴졌다.     

“뭔가 심각한 것 같은데? 뭐로 기분 전환시켜주지?”

 경석은 쭈뼛거리며 말하지 못하고 있는 희수의 마음을 열고자 장난 섞인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하지만 희수는 쉽게 말문을 못 연 채 얼굴만 빨갛게 상기되고 있었다.

이런 희수를 보며 경석은 태도를 바꿔 조금은 진지한 음성으로 말문을 열었다. 

“이 시기에 내게 심각하게 나타나는 아이들은 대게 두 종류지. 진로를 바꾸고 싶다는 것, 아니면 자기소개서 쓰다 막혔다는 경우지. 넌 둘 중 어디니?”

희수는 경석이 자신의 의중을 어느 정도 먼저 파악하고 있는 것 자체가 고맙게 여겨지기는 했으나 어떻게 말을 시작해야 할지 난감했다. 

“내가 잘못 말했나 혹시 다른 문제야?”

경석은 희수의 반응을 살펴 가며, 말을 이었다. 

“아니, 아니에요. 선생님 말씀이 맞아요. 저 진로를 바꾸고 싶어요.”

경석은 어렵게 말을 잇는 희수의 마음을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되었다. 얼마 전 동료 선생님과 취업환경 악화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예년 같으면 벌써 취업 확정을 짓고 신입생 홍보 도우미 활동을 할 학생 선발을 해야 하는 시기지만 코로나 환경으로 기업 공채 비율이 많이 줄어 지원 기회 자체를 갖지 못하는 학생이 많아 걱정인 상황이었다.

“많이 힘들겠구나. 나를 찾아온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거야. 그래 어느 정도 결정은 했어?” 

“아니요. 사실 결정짓기 힘들어서 상담받고 싶어요.”

“그랬구나. 쉽지 않은 결정이지.” 

 경석은 학년 초 면담 때 보였던 희수의 확고한 의지를 잘 알기에 진로 변경을 두고 고민하는 마음의 무게를 짐작하고 있었다.

“희수야, 이 말이 네게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삶을 살다 보면 가끔은 직진 아닌 우회전을 할 때도 있단다.”

“우회전이요?”

“그래, 우회전, 직진하고자 하는 도로가 막히면 가끔 우회전해서 다른 길도 찾아볼 필요가 있단다. 지금의 여건이 너처럼 대기업 공채를 목표를 두었던 사람에게 많이 힘들어진 상황이라는 것을 너도 알 거야. 그렇다면 조금 냉철하게 현재 상황을 보고 그에 맞춘 전략을 마련해 준비해 가야지 않을까?”

희수는 담임인 경석의 말이 틀린 것이 없다고 느껴졌다. 하지만 그러기에 더 막막한 감정이 밀려왔다. 

“말씀을 이해하기는 하겠는데, 그러기에 어떤 결정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네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을 하나씩 정리해 보자. 일단 네가 희망하는 대기업 공채를 기다리는 것이 하나의 방법일 수 있어. 하지만 이것은 지금 분위기로는 가능성 많이 없어 보이지?” 

“네” 

“다음으로 눈높이를 조금 낮추어 일단 모집 공고가 들어오는 중소기업에 응시해서 취업을 먼저 하는 것도 한 방법이 있겠지?”

희수는 경석이 제시하는 방안을 생각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니나 첫 직장 선택이 중요하다는 말을 많이 들어왔기에 선뜻 내키지 않았다. 

“또 다른 방법은 조금 길게 보고 우선 대학에 진학하는 방법이 있지.”

사실 희수는 마음으로 지금 당장 원하는 기업에 취업 못 하면 대학에 가는 방법을 생각하고 찾아온 것이라 그에 대한 조언을 듣고 싶었다.

“대학에 대해 알고 싶어서 왔어요. 제가 너무 준비가 안 된 것은 아닌지 걱정도 돼요.”

“물론 지금까지 대학 관련 준비를 많이 해오지 않아서 부담스러운 일이긴 하지. 하지만 길을 찾으면 없는 것은 아니야.”

“그럴까요. 사실 엄두가 나지 않았어요. 아직 정보가 많지 않다 보니 부모님께 말씀도 못 드렸어요.” 

경석은 고민 가득한 희수가 안쓰럽게 느껴졌다. 

“답답하지? 그럴 거야. 그런데, 한 가지 먼저 이해하고 들어주기 바란다. 내가 지금 너에게 줄 조언이란 것이 마치 시험 문제 정답 찾기 방식은 아니라는 사실이야. 여러 가지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이지 확실한 답을 찾을 수 없는 문제라는 뜻이야.”

희수는 경석의 의도를 100% 이해는 못 했지만, 자신이 품고 있는 고민이 단순한 것이 아님을 스스로 너무 잘 알기에 수긍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너도 잘 알듯이 대학 입시도 쉬운 해결책은 아니야. 네가 어느 대학을 염두에 두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학생이면 누구나 다 아는 선호도가 높은 대학의 경우는 응시 조건이 쉬운 것이 아니야.”

희수도 어느 정도는 예상했었다. 하지만 상위권 대학이 아니라면 어려운 가정 형편에 쉽게 부모님을 설득하기도 어려울 것 같았다. 그렇기에 고민이 깊었다. 

“희수 너는 무슨 과에 진학하고 싶어?”

“글쎄요. 실은 구체적인 지원학과 생각을 정리하지 못하고 있었어요. 말씀드리기 좀 뭐하지만, 아직 대학과 취업 둘을 놓고 고민하다 보니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했어요.”

경석은 희수의 눈빛에서 고민의 흔적을 읽을 수 있었다.

“하긴 쉬운 결정은 아니지. 내가 경험한 많은 너의 선배도 같은 고민이 많았지. 그런데, 오늘 난 네게 좀 더 힘든 고민거리를 던져줄 수밖에 없구나.”

“네?”

희수는 혹 떼러 왔다가 혹 붙이고 간다는 속담을 듣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너무 놀라지는 마. 한 번은 깊게 생각해 볼 내용이라 그래. 아이들과 대학 이야기를 하면 많은 경우 어느 대학에 갈 것인지가 먼저 나오지. 하지만 난 무슨 과에 갈 것인지를 묻고 있어. 왜 그런지 아니?” 

“글쎄요? 대학보다 학과 선택이 더 중요해서 그런 것 아닌가요?”

“맞아. 하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 아이들이 깊게 생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아니 좀 더 심하게 말하면 무시하고 있는 느낌을 많이 받아.”

“왜 그런가요?

”특성화고에 다니는 너희의 경우 대개 동일계 전형으로 대학을 지원하기에 학과 선택을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지? “

”네. 그래요. 특성화고졸 전형이란 것이 이미 동일계 전형이라는 틀을 벗어나서 가기는 힘든 것이니까 당연한 것 아닌가요?

 “맞아. 하지만 그러기에 더 생각해야 한다는 거야. 지난 3년간 배운 그 학과에 대한 자신의 만족도와 비전이 자신과 맞는지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지. 다시 4년 아니 이제는 그 분야로 평생을 살아가야 할 것이니 신중한 선택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의미야.”

 희수는 경석의 말을 듣고 보니 맞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기는 했다. 사실 중학교에서 고등학교 진학을 할 때, 취업이 잘 된다고 해서 학과를 선택한 것이지 딱히 이 전공을 꼭 배우고 싶어 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제가 배운 것이 이것이니 달리 선택할 것도 없지 않을까요?”

“반은 맞고 반은 아닐 수 있어.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대학 진학 후 전공에 대한 고민으로 학교생활에 만족 못 하는 일이 생긴다면 그 시간과 노력이 너무 아까울 수 있다는 사실이야. 그리고 취업이 안 되니 대학에 가야지 하는 현재의 판단이 올바른가 생각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이야. 도피처로써 대학 진학은 너무 많은 기회비용이 낭비될 수 있음을 이야기하고 싶어. 대학에 가야 하는 이유를 스스로 찾을 때 그에 대한 준비도 이어진다는 것이지.”

희수는 누가 자신에게 왜 대학을 가야 하냐고 질문할 때, 무슨 말을 할까? 쉽게 대답할 수 없어서 답답했다.

“사실 이런 말을 들어야 하는 네 입장이 되어 보면 힘들다는 것, 짐작이 가. 취업환경이 좋지 못해 한 선택을 놓고 어쩌란 말이냐 할 수도 있어. 하지만 그러기에 자신의 선택에 대해 좀 더 신중하라는 거야.”

경석은 희수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지고 있음을 볼 수 있었지만, 그동안 학생 지도를 하면서 많이 느꼈던 것이기에 꼭 알려주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도피 형태로 진학한 경우는 많은 경우 중도 포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날 찾은 이유는 아마도 진학 가능한 대학 안내 혹은 자기소개서 작성법을 알고 싶어 온 걸 거야. 그 부분은 얼마든지 안내해 줄 수 있어. 하지만 먼저 스스로 왜 대학을 가야 하는지 분명한 이유를 찾은 후 접근해야 한다는 점을 이야기해주고 싶었어.”

“선생님 그래도 아까 말씀하셨듯이 직진이 안 되면 우회전해도 된다고 하셨잖아요?”

“맞아. 우회전해서 갈 수 있어. 그런데 내가 왜 우회전하는지는 알고 하자는 것이지. 그리고 그 우회전을 얼마나 크게 어느 시점에서 할 것인지 살펴야 한다는 거야. 목표한 기업에서 다른 기업으로 갈 것인지 아니면 아예 대학으로 바꿀 것인지?” 

희수는 자신이 처한 상황이 우회전의 이유라고 생각했었는데, 또 다른 이유가 분명해야 한다는 생각에 머리가 아팠다. 하지만 틀린 말이 아니기에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학에 꼭 가야 하는 이유 아니, 자기의 삶에서 크게 우회전해야 하는 분명한 이유를 찾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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