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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영 Sep 24. 2022

학교 길에 서다

06. 자소설

경석이 수정할 부분이 너무 많아 아예 다시 시작하는 것이 낫다고 이야기하자. 

“선생님 왜 저만 미워하시죠? 저도 많이 힘들어요. 그냥 제가 알아서 마무리 지을게요.”

앙칼진 목소리를 남기며 경석의 반 지후는 자기소개서를 마무리 짓지 않고 교무실을 나가 버렸다.

“저런 싹수없는 것 뭐하러 도와주세요? 옆에서 듣고 있는 제가 더 화가 나더라고요.”

박 선생은 화가 많이 난 말투였다. 

“자기가 뭐라고 마치 빚쟁이가 빚 받으러 온 투로 말하는 것 아니에요? 제가 며칠 옆에서 보면서 참 이것은 아니다 싶었어요. 선생님은 왜 화도 안 내세요?”

“박 선생님 보기에 그렇게 보였나요? 제 나름대로 화도 낸 것이긴 한데. 애가 너무 다급하니까 그런 것이에요.” 

고 3 담임하면서 가장 바쁜 시기가 수시 상담과 원서 접수 그리고 자기소개서 지도가 있는 9월이다. 한 명이 6개의 원서를 쓰다 보니, 그에 따른 서류 준비가 만만한 일이 아니다. 특성화고라고 해도 상대적으로 많은 학생이 진학하기에 담임이 그에 따라 신경 써 줘야 하는 일이 많았다. 더구나 학부모나 사교육 시장을 통해 자기소개서를 쓰거나 진학 지도의 도움을 받는 경우를 기대할 수 없는 특성화고에서는 오로지 학생과 담임교사의 끈질긴 씨름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자기들이 준비하고 조언 정도 해주시면 될 것을 너무 많이 고쳐 써 주시니까 이런 일도 벌어지는 것 같아요. 선생님이 그렇게 애쓰는 것 저 애들은 하나도 고맙게 생각하지 않는다고요. 아까 그놈 말하는 것 보셨잖아요?”

다른 친구들에 비해 첨삭 과정에 문제가 많은 아이를 지도하는 과정을 옆에서 바라본 박 선생이 작심한 듯 말을 이었다. 

“제출일이 오늘이라 그 아이가 예민한 탓이죠. 오죽 답답하겠어요?”

말은 그렇게 하고 있었지만 사실 경석도 속이 좋지는 않았다. 학생이 여럿이다 보니 짧은 시간 안에 다 같은 비중으로 지도를 할 수 없는 현실인 탓이다. 

자기소개서를 고쳐주다 보면 어떤 경우는 조언만을 해도 잘 고치는 아이가 있고 어떤 경우는 차라리 빨리 방향을 찾아 고쳐 써 주는 것이 지도 시간 절약에 도움이 되다 보니, 많은 부분을 직접 수정하는 일이 있었는데, 그것을 바라보는 아이들은 각자 자기 시각에서 바라봐 서운함을 표현하기도 하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진짜 가르쳐야 할 부분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어요. 결과만 좋으면 과정은 다 무시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에요. 선생님이 알고 있으신지 모르겠지만 선생님이 기껏 고쳐주신 것을 가지고 또 다른 선생님을 찾아가 글이 마음에 드니 안 드니 하는 경우도 많다고요.”

경석을 옆에서 많이 걱정해주는 박 선생은 마치 자기가 당한 일처럼 얼굴에 열을 내며 말을 이었다. 

사실 경석은 그런 일을 알고 있었다. 경석이 조언해 주고 때로는 직접 수정까지 해준 글이라도 학생 자기 마음에 흡족하지 않은 경우, 또 다른 선생을 찾아가 수정을 부탁하는 경우가 많이 있었다. 

하지만 그 부분을 알면서도 내버려 두고 있었다. 글이란 것이 각자의 관점과 표현 방식이 있기에 접근 시각을 조금만 바꿔도 글은 전혀 다른 글이 될 수 있다. 그렇기에 경석은 자기 기준에서 조언하거나 수정해 줄 때, 마지막 결정은 학생 자신이 하도록 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옆에서 바라보는 사람의 관점에서는 기껏 시간 내어 수정해 준 것이 무시되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아니 이런 부분 때문에 사실 몇몇 선생님은 학생 글 고치기 주저하시기도 한다. 

하지만 경석은 오히려 그런 아이들에게 연민의 감정이 많이 앞선다. 아이들은 조금이라도 좋은 글을 내고 싶어서 이렇게 수정하고 저렇게 고치고 있지만 한 사람에게 이런 조언을 받고 다른 이에게 또 다른 조언을 받아 쓴 글은 사공이 많은 배가 산으로 간다는 속담처럼 참 어색한 글이 될 뿐이다. 

그러나 어찌하겠는가? 지나친 욕심이 화를 부르는 것을.

“자기소개서 쓰기가 쉽지 않은 탓이죠.”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디 있어요. 저런 애들이 합격하는 것도 옳지 않은 일 아니에요? 인성이 너무 아니에요.”

애써 감정을 누르고 말하는 경석의 태도에 더 화가 나는지 박 선생은 화를 삭이지 못했다.

“어쩌겠어요. 아이들 모두를 우리 뜻대로 할 수는 없잖아요? 결국, 그 아이 자신이 만든 손해를 느낄 때가 올 것이에요. 많은 아이가 자기소개서 작성 취지는 모른 채, 결국 자소설만 쓰고 있는 것이지요”

“자소설이라고요?”

“그래요. 좋든 싫든 대학이 제시한 글을 쓰는 과정에서 그 순간만이라도 자기 삶을 생각하고 지나간 시간에 대해 성찰해야 하는데, 많은 경우 좋은 글을 쓰겠다는 이유로 마치 자기 삶을 소재로 한 소설을 꾸며 쓰는 경우가 너무 많아요. 그것이 안타까울 뿐이에요.”

“글쎄요. 제가 보기에는 모두가 자소설만 쓰고 있는 것 같은데요. 아시겠지만 자기소개서 내용과 아이들 삶이 동떨어져 있는 경우를 많이 봐요.”

잘 보이고 싶은 욕심이 앞서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 분명하다. 하지만 열심히 하고자 애쓰는 아이들도 분명 존재하기에 그 아이들을 바라보고 경석은 계속 지도해 왔다. 그리고 자신이 써 놓은 글 속의 주인공이 되어 현재보다는 한 단계 더 멋진 삶의 주인공이 되어주길 바라는 소망을 품고 있었다. 

오히려 원칙과 기준만 내세우면서 아이들의 힘듦을 모른 척하는 교사들의 태도가 아쉬울 때가 많았다. 다들 대학 나온 사람이고 아이들보다는 세상을 조금 더 살아온 사람이기에 완벽하지 않더라도 관심의 깊이만큼 조언 정도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해왔다. 물론 경석의 가치 기준이 정답은 아닐 수 있다. 하지만 가장 어려울 때 옆에 있어 주는 이의 역할을 누군가는 해야 한다고 믿고 있었다. 그 마음이 아이에게 올바르게 전달될 수 없을지라도 버티고 서서 기다려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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