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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영 Oct 01. 2023

엎드린 자

점심 식사 후 이루어지는 5교시 수업이 가장 힘들다. 식사 후 몰려오는 식곤증 때문이겠지만 아이들이 수업 중에 엎드려 자는 숫자가 다른 수업에 비해, 평균적으로 많다.           

엎드린 한 아이를 깨운다. 공부할 생각은 전혀 안 보인다. 귀찮게 왜 깨우느냐는 표정이 역력하다. 하지만 이 아이를 깨우는 것이 중요하다. 사람을 살리는 긍정의 3의 법칙이 있듯이 부정의 3의 법칙이 교실에서도 일어난다.           

자는 아이 하나를 방치하면 그 옆의 아이가 자신도 그렇게 할 수 있다는 태도를 보이기 시작한다. 그런 아이가 하나, 둘 늘고 세 명이 엎드려 자는 분위기 조성되면 그 수업은 이미 끝나버린다. 하지만 자는 아이를 깨우느라 몇 번 아이와 감정싸움을 하고 나면, 수업의 리듬도 깨어지고 분위기가 어색해지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최대한 분위기 좋게 이끌고자 약간의 농담을 섞어 수업 참여를 유도해 본다. 다행히 엎드린 아이가 긍정적으로 반응해 주면 수업은 순조롭게 흘러갈 수 있다. 하지만 매번 그런 일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코로나를 겪으면서 학습 무기력이 누적된 아이들이 더 많아졌다. 왜 아이들은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는 걸까? 밤에 잠을 못 잤다거나 아르바이트를 했기에 피곤하다는 이유를 찾으면 차라리 낫다. 하지만 학습 무기력에 빠진 학생들을 상대해야 하는 경우, 문제를 풀어가기가 쉽지 않다. 모든 게 귀찮고 어차피 안 될 것에 목메기도 싫다는 반응 앞에서 교사로서 답답함이 밀려온다. 잘해보고자 했으나 스스로 원하는 성과가 나오지 않아 자포자기하고 싶은 상황을 겪는 아이들에게 노력하면 된다는 말은 이미 공염불이 될 뿐이다.           

아이들은 처음에 노력을 통해 주변 사람들에게 인정받고자 한다. 하지만 늘 그렇듯이 학교는 경쟁이란 굴레 속에서 서열이 만들어진다. 그 서열이 아이들을 괴롭히는 것이다. 마치 십 층 건물의 옥상을 꿈꾸고 정말 힘들게 올랐으나, 아직 5층도 오르지 못한 자신의 현재 모습을 발견하면, 10층까지 오르는 것은 불가능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래서 더 힘차게 도전의 발걸음으로 오르려 하는 것이 아니라 아직 한 층 더 오를 힘이 있음에도 그저 주저앉아 버리고 마는 것이다.          

 ‘나도 예전에 그랬었어.’ ‘선생님도 수포자였어.’ 이런 말로 아이와 공감대를 형성해 보고자 시도해 보지만 그때 잠깐 위로가 되는 말일지 몰라도 아이 스스로 자기 노력에 대한 성취감을 회복하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는 일임을 우리는 안다.           

 같은 번호로 쭉 찍어 20점 맞은 아이가 정말 마음 잡고 공부한 3개월 뒤 시험 봤을 때, 18점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어른들이야 누적된 수업결손 때문이라 말하지만, 그 점수를 겪어내야 하는 아이에게는 끝없는 마음의 추락만 존재하기도 하는 것이다.           

더구나 수행평가 비율이 늘어난 교실에서 힘들게 겪어내는 하루하루는 아이들이 자포자기하기 쉬운 환경이 되고 있다. 하루에 2~3개의 수행을 감당하는 가운데 의욕을 끌어올려 누적된 수업결손을 채우는 일이 쉽지 않은 것이다.           

더구나 학교에서 지속적인 실패 경험과 가정에서의 무관심과 소외감은 학습에 대한 효능감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자기 효능감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교사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론적으로는 맞는 말이다. 학생들이 학교에서 성공 경험을 많이 가질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학생들의 수준을 고려한 수업 목표를 세우고 이들이 가지고 있는 선행 지식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게 쉽다면 문제는 아예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수업에 임하는 교사는 대입을 위해서나 취업을 위해서 적정 수준의 학습력을 발휘하도록 교과 진도를 나갈 수밖에 없는 현실 앞에 서 있다. 아이들 눈높이에 맞추겠다고 고3에게 중3 수업을 진행하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은 것이다.          

우리 속담에 ‘말을 물가로 끌고 갈 수는 있어도 물은 억지로 먹일 수 없다’라는 말이 있다. 너무도 당연한 이 말은 성공적인 수업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학생의 능동적인 참여가 필요함을 의미한다.           

현실적으로 교사라 해서 학생들을 수업에 끌어들이기 위한 하나의 확고한 대안이나 새로운 방안을 갖고 있지 않다. 다만 매시간 교실에서 무기력한 아이들을 만나야 하는 교사이기에 ‘어떤 동기유발로 어떤 학습 분위기를 조성하여 수업을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끝없이 해나가고 있을 뿐이다.           

수십 개의 방법 가운데 우연히 하나라도 들어맞아 아이들이 즐겁게 물을 마시러 갈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한다면, 이어지는 학습 또한 어렵지 않게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오늘도 또 하나의 방법을 찾아 도전해 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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