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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영 Oct 01. 2023

학부모의 편견

 한 초등 교사의 죽음을 두고 교권의 실추와 학부모 갑질에 대한 이야기로 주요 언론이 도배되는 상황을 바라보는 교사의 한 사람으로서 우리 교육에 대한 염려와 안타까움이 밀려온다.       

이 상황을 만들어 낸 교육의 문제가 하나, 둘이 아니기에 문제의 원인과 해결책에 대한 시각도 다양할 수밖에 없지만, 공교육을 바라보는 학부모와 교사의 시각 차이가 어디에서 출발하는가에 대한 성찰이 문제 해결의 시작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의 삶 속에 선생님은 어떤 모습으로 기억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혹시 학교가 준 상처 속에 살고 있지 않은가?                

나의 경우 좋은 기억보다 부정적인 모습이 먼저 떠오른다. 그것도 ‘미친 개’라는 최악의 선생님의 별칭이 먼저 떠오른다. 학생을 폭력적으로 과도하게 징계하는 선생님에 대한 아픈 추억들이 크게 자리 잡고 있다. 

물론 선생님에 대한 좋은 추억도 있다. 초등학교 시절 학교 정글 집에서 다친 나를 병원까지 업고 가신 선생님의 따뜻한 등도 있고, 책이 주는 즐거움을 일상의 삶 속에 실천해 보여주셨던 분도 있으셨다.               

  하지만 지나온 삶을 돌이켰을 때, 좋은 기억보다 부정적인 것이 먼저 떠오르는 현상 때문인지 고교 시절 친구들의 모임에서 이야기를 나누면 다들 선생님에 대한 추억은 부정적인 모습이 더 강하게 살아난다. 그 시절이 그랬었기 때문이겠지만 반에 70명 가까운 아이들을 상대해야 하는 선생님들은 학생들의 의견을 듣지 않거나, 비난하거나, 체벌하거나, 욕설하거나, 비방하거나, 무시하거나, 강요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선생님들은 학생들의 자존감이나 자신감을 떨어뜨리고, 학습 동기를 감소시키고, 심리적 스트레스를 유발했다. 때로는 학생들의 인권이나 존엄성을 침해하고, 신체적이나 정서적인 상처를 남기고, 폭력성이나 반항성을 불러왔다.       

 이런 상처들이 치유되지 않은 채 성장한 이들이 이제 학부모가 되었다.  이런 아픈 기억을 지닌 학부모들은 자기를 성장시켜 준 선생님들의 헌신과 수고를 생각하기보다는 좋지 못한 과거의 상처에 얽매여 현재 교직에 계신 선생님들을 과거의 기준으로 바로 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점검해봐야 한다.     


 자신의 믿음이나 가설을 뒷받침하는 증거에만 주목하고, 반대되는 증거는 무시하거나 왜곡하는 인지적 편향을 확증편향이라고 한다.  


 학교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갈등 상황을 바라보는 인식의 출발이 만약 교사에 대한 부정적인 확증편향에서 시작된 것이라면 이에 대한 재인식이 문제의 해결의 출발일 수 있다.       

시대의 변화 속에 자녀들이 만나는 교사들은 학부모들이 만나왔던 선생님이 아니다. 모든 선생님이 다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부모들의 기억 속에 부정적으로 자리하고 있는 그런 선생님들은 현재의 학교 현장에 존재하고 있지 않다. 오히려 반 학생 전원에게 주꾸미 라면을 끓여주는 기쁨을 위해 일요일에 바다낚시 가시는 선생님도 계시고 취업 자기소개서와 면접지도를 위해 방과 후와 주말 시간을 밥 먹듯이 반납하시는 선생님도 존재한다. 


 또한 학부모의 소중한 아이는 선생님에게도 소중한 아이이다. 그러기에 그 아이가 어떤 삶을 살아가는 것이 올바른가에 대한 끝없는 고민을 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교사는 학생들의 학업과 인성을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교육과정과 평가에 맞춰 수업을 계획한다. 또한 학생들이 학교의 규정과 문화를 준수하는 과정에서 사회성과 인성을 키울 수 있도록 격려하고 있다.   

             

 교사는 가르치는 분야에 대해 깊이 있고 폭넓은 지식을 갖고 있으며, 학생들에게 그 지식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 선생님은 학생들의 질문에 정확하고 친절하게 답변해 주며, 학생들의 이해도와 관심도를 높이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사용한다. 선생님은 자신의 지식을 습득하고 갱신하기 위해 끊임없이 공부하고 최신의 연구나 정보를 학생들과 공유한다. 또한 교사들은 자신의 직업에 대해 자부심과 애정을 지니며, 학생들에게 좋은 모범이 되려고 노력한다. 학생들의 문제나 어려움에 대해 적극적으로 해결책을 찾아주며, 학생들의 안전과 행복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  

 하지만 다수의 아이들이 공존하는 학교 현장에서 학부모의 눈높이에 꼭 맞는 배려와 보살핌이 다소 부족할 수 있다. 그렇지만 나는 이 사실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두 자녀 이상을 키워보신 부모는 아실 것이다. 첫째와 둘째 모두에게 똑같이 애정을 쏟아도 아이들은 애정의 체감 정도가 다르다고 느끼며 더 나아가 같은 상황에서도 보이는 아이들의 행동도 다르게 나타난다는 사실을 말이다.


각기 다른 아이들의 성향이 가져온 이런 차이를 부모들은 가정에서 어떻게 해결하는가?         

부모님 나름의 대응법이 있으시다면 문제는 없겠지만 많은 경우 다툼과 갈등 그리고 화해 속에 서로 조금씩 서로 양보해 가며 아이들은 성장해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 점을 학교로 옮겨오면 학교에서 발생하는 많은 갈등도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먼저 교사인 나도 솔직히 고백하면 부모님이 생각하시는 것처럼 학생의 모든 부분을 다 알 수 없다. 아이들이 가장 많은 시간을 학교에서 보낸다고 해도 선생님이 아이를 만나는 시간은 부모님이 아이를 길러 오신 시간에 비하면 극히 일부이며 또 선생님이 상대해야 하는 아이는 한 명이 아니라는 점도 있다. 그러기에 학부모님과의 소통과 협력이 필요하다. 문제 상황이 발생하고 나서야 서로 얼굴 붉히는 차원에서의 소통이 아닌 서로 존중하면서 함께 아이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갈 방법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얼마 전 한 학부모님께서 문자 주시길 아이가 단짝 친구 문제로 너무 힘들다고 하셨기에 그에 대한 나 나름의 대응을 할 수 있었던 것처럼 학부모와 교사는 대립 관계에 놓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소중한 아이를 바른 길로 안내하기 위한 상호 협력의 관계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오늘날 교사의 역할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지원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그러다 보니 학교에서 교사로 일하는 것은 많은 도전과 어려움을 수반하는 일이 되었다. 특히 교사가 공격받는 사례들이 발생하면서 교육 현장은 큰 혼란 속에 놓여있게 되었다. 학생이 교사에게 폭언이나 폭행을 가하거나, 학부모가 교사에게 무리한 요구나 협박을 하거나, 동료나 상사가 교사에게 괴롭힘이나 차별을 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신체적, 정신적, 법적인 피해를 입는 교사가 늘어난다면 교사의 직업 만족도와 정체성에 영향을 미치고, 결국은 학생들의 학습 품질과 결과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                

 따라서 교사가 학교에서 행복하고 성공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사회적으로 교사의 역할과 가치를 인정하고 지원하는 학부모의 이해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학부모와 교사가 서로 손 잡고 나아가는 길이 곧 소중한 아이들에 대한 사랑의 실천임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얼마 전 우리 집에서도 아이가 학교에서 있었던 일로 교사에 대한 불만을 표현한 적이 있다. 그때 아내는 무턱대고 아이 편을 들기 앞서서 아이에게 문제 상황 속에서 네가 선생님이라면 어떤 태도를 취했을 것 같냐고 물어보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물론 엄마의 이런 태도를 아이가 100% 수긍하지는 않았지만 아이 앞에서 훈육자인 교사의 자리를 지켜주는 일이 결국 아이를 올바른 길로 이끌어 가는 것이라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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