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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영 Oct 22. 2023

습작

붓을 잡는 것이 어색하다면 붓을 놓아야 한다.

쓰고자 하는 욕망이 넘쳐서 붓을 잡아도 글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제 멋대로 흐를 수 있다. 그런데 어색한 마음으로 시작한 붓놀림으로는 좋은 글을 만들 수 없다.

하지만 이석은 시작하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쓰다 보면 글이 완성되지 않을까? 하는 미련에 계속 붓을 잡고 있다.

진하게 우려낸 먹물이 다 마르기 전 한 자라도 더 써 보고자 팔에 힘을 준다. 꿈틀거리는 한 마리의 용이 힘을 쓰듯 손목의 힘이 붓에 전해지고 붓 끝은 화선지를 따라 힘차게 달려간다.


兩人對酌山花開 一杯一杯復一杯(양인 대작 산화 개 일 배 일 배 부 일 배: 둘이 마주 앉아 술잔 들다 보니 산엔 꽃이 활짝 피었구나. 한 잔 한 잔, 또 한 잔.)


그런데, 잠시 후 그 힘찬 기세가 채 끝나기도 전에 이석은 스스로 붓을 던졌다. 그림은 몇 번을 덧칠할 수 있지만 글씨는 단 한 번에 써 내려가야 하기에 붓놀림에 망설임이 있어서는 안 되는데, 이석의 붓 끝은 한순간의 망설임에 멈추어 서고 말았기 때문이다.

송골송골 맺히던 땀 방울이 화선지 한 구석을 적시고 있지만 쓰다만 글은 그렇게 서재 한 구석에 구겨져 또 버려지는 신세가 된다.     


박이경이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발견한  이태백의 ‘산중 대작(山中對酌)’ 행서를 모티브 삼아서 써 본 습작이다. 소지 강창원 선생이 친구와 술을 마신 뒤 즉석에서 쓴 글을 소재로 글 쓰는 이의 흥취를 살려 표현해보고자 한 글이지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소지 선생이 평생을 연마해 낸 필력을 모티브 삼아 글을 쉽게 써 내려가지 못하는 소설 속 주인공 이석의 심정을 그려내려고 한 시도였다. 하지만 꼭 집어 말할 수 없지만 잘못된 것 같은 느낌이 강했다.

컴퓨터 화면에 깜빡이는 커서와 오랜 시간 눈싸움해 보았지만 좀처럼 자신이 쓴 문장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전문 작가가 아니더라도 지닌 생각을 의도대로 글로 풀어내는 것만큼은 자신 있게 해 보고 싶었는데 그 일도 쉽지 않음을 느낄 뿐이었다. 글쓴이로서 가장 취약한 묘사력 부족을 해결하고자 연습해 본 것이었지만 결과는 실패다. 글자가 모인다고 해서 글이 될 수 없듯이 묘사의 힘은 이처럼 쉽게 키워지지 않았다.

글씨 연습을 하느라 검게 물든 옷과 베, 그리고 붓을 자주 빨다 보니 연못 물이 모두 까맣게 물들었다는 엣 선인들의 경지에 이르려면 아직 멀었음 느꼈다. 하지만 항상 쓸 수 있다는 조급한 마음이 앞서기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처음의 의도와 다르게 쓰인 문장을 보면서 마음 아팠다.

벼가 무르익어 고개를 숙이듯 가슴속에서 할 말이 넘쳐나야 글이 쓰인다는 단순한 진리를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할 말을 담을 그릇이 너무 준비 안 되어 있음에 더 큰 고뇌가 따라오는 것도 사실이었다. 글자 나열이 아닌 장면을 그려낼 수 있는 힘이 많이 부족한 느낌을 곱씹으며, 그간 써 온 방식이 아닌 새로운 방법을 찾고자 시작한 연습이지만 글은 묘사의 힘을 잃고 어떻게 써 갈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한 예로 비 오는 길에 멈추어 선 한 남자를 그려낼 때, 그의 젖은 발등부터 무심한 눈빛에 이르기까지 전할 소재는 많았지만 글자로 만들어낸 장면이 선명하게 타인에게 전달하지 못하는 것 같은 조바심에 빠져 있는 것이었다.


무엇이 문제일까? 박이경은 이 상황을 글쓴이라면 누구나 다 겪는 문제라고 자기 합리화해보기도 했지만 여러 갈래로 얽혀 전혀 풀 수 없는 실타래 앞에 선 느낌은 지울 길이 없었다.

묘사력이 뛰어난 글을 찾아 따라 써 보는 방법도 해봤고 다양한 글에서 영감을 얻고자 글 읽는 시간 늘려 왔다고 생각하지만 아직 차고 넘칠 정도의 독서력이 부족한 탓일까? 아니면 습작시간의 부족일까?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오롯이 담기에는 아직 많은 시간이, 그리고 연습이 부족한가 보다는 잠정적인 결론만 내릴 뿐이었다.

박이경이 이렇게 글 쓰는 일에 몰입하기 시작한 것은 사실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박이경은 교사로서 하루하루를 보내며 만나는 아이들과의 관계에서 의미를 만들어 내고 싶었다. 그것이 본인에게 주어진 길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길을 걷는 것이 갈수록 쉽지 않음을 느끼고 있었다.

'수많은 연습과 실패의 연속이 인생'이라는 말로 포장할 수 있지만 그 삶을 오롯이 살아내야 하는 개인으로서 박이경의 하루는 힘들게 지나가고 있었다. 더구나 쓰던 글은 구겨 쓰레기통에 버릴 수 있지만 삶의 실수나 실패는 폐기하거나 재생할 수도 없기에 더 크게 다가옴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이전과는 다르게 많은 상황 속에서 실패의 원인을 찾아 재도전하기도 어렵다고 생각하는 시간이 늘어나고 있었다. 그만큼 상처는 크게 다가오고 있었다.

학교-집만 반복하며 다른 곳에 눈 돌리지 않고 살아왔다 생각했지만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온전한 자리를 찾지 못한 느낌만 밀려왔다. 그래서 글  쓰기를 통해서라도 돌파구를 찾아보려 했지만 그것도 쉽지 않았다.

하지만 영영 뒤처질까 봐, 혹은 실패할까 봐 도전하지 않는 삶을 살아간다고 해서 행복할 수 없는 것이 인생이라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기에 뛰다가 넘어져 생채기가 나더라도 용기 내어 다시 도전해 보려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긍정적인 마음도 자라날 수 있음을 바탕으로 긍정의 마음 근력을 키우는 연습이 가장 필요한 것이라 생각했다. 이 연습의 반복과 도전이 삶을 아름답게 그려갈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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