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갑지 않은 소식이 카카오톡으로 전해질 때면 차라리 이 메신저 없는 세상이 그리워질 때가 많았다. 하지만 박이경의 바람과 달리 시대의 대세를 거스르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실제 소리는 조금 다르지만, 박이경에게 ‘깨톡’으로 인식되는 알림음이 울리면 여지없이 손을 뻗어 메시지를 확인해야만 했다. 밤 11시 40분이 넘은 시간에도.
교감: 밤늦었는데 부득이 카톡방 열었습니다. 기현희 선생님이 무증상 확진이 되셨어요. 지금 교육청 당직실엔 연락했고, …….
박이경은 교감의 메시지 중 '확진'이라는 단어에 눈이 멈췄다. 그리고 일순간 숨이 탁 막히는 느낌이었다. 그 단어가 불러올 파장이 얼마나 클지 솔직히 짐작할 수 없었다.
교장: 기현희 선생님께 날짜별로 동선, 접촉자 등 기억나시는 대로 기록 부탁드렸습니다.
교감: 일단 내일 필수 인력 외 모두 원격 수업 전환해야 합니다.
박이경은 ‘올 것이 드디어 왔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방이 열리기가 무섭게 메시지가 쏟아지는 것을 보니 이 방이 개설되기 전 이미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갔으리라 생각했다.
보건교사: (1차 안내 문자 내용입니다.)
7월 00일 본교에서 코로나 19 확진자 1명이 발생하여 보건당국에서 역학조사 중입니다. 모든 학생과 교직원은 등교(출근) 중지해 주시고 외출 및 타인과의 접촉을 자제하고 자택에서 대기하여 주십시오. 보건당국에서 역학조사 후 코로나 19 검사가 필요한 경우, 따로 연락을 드릴 예정입니다. 문의 사항은 ( 000-000-000 )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교장: 보건소에서 온 내용인가요?
보건교사: 지금 야간이라 대응이 안 되고 관련 지침 내용입니다.
박이경은 발 빠르게 대응 방법을 찾고 있는 보건 교사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하지만 한편으로 문자가 전달되는 그 순간부터 쏟아질 수많은 질문에 뭐라 답변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어느 누구도 겪어 보지 않은 질병 앞에 교육청도 학교도 대응할 방안이 마땅히 없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해결책을 요구하고 있었다. 박이경이 맡은 교무부장이라는 자리가 그런 자리였다. 이번 일뿐만 아니라 사건이 터지고 나면 항상 문제 상황의 최일선에 있는 느낌이 들었다. 교육청에서 내려보낸 방침이 있기는 했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기본 지침이고 그 해석과 적용에 많은 시행착오가 있기 마련이었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박이경에게 개별 사안에 대해 질문을 했고, 그들이 원하는 답을 찾아 응답하느라 진땀을 흘리기가 일쑤였다. 규정에 언급된 사안은 차라리 답변이 쉬웠다. 하지만 항상 다양한 예외 상황들이 뒤따랐다. 사실 대부분의 결정 권한이 박이경에게 있는 것도 아니지만 질문의 화살은 박이경을 향하고 있었다.
보건교사: 이 내용으로 교무부장님, 전체 문자 보내주셔야 하는데…. 내일 학생들 등교 전에 보내야 하는데, 제가 e-알리미 패스워드를 외우고 있지 않아서요.
박이경: e-알리미보다는 문자 메시지 전송하겠습니다. 일단 학생, 학부모에게 문자 전송하고 담임교사를 통해 반 단체 카카오톡에 올려주는 것으로 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교장: 그렇게 조치해 주시기 바랍니다. 너무 늦은 시간이기는 하지만 사안의 긴급성이 있으니 각 부장 단톡방을 통해 전달 여부 확인도 부탁드려요.
박이경: 일단 보건 선생님께서 주신 내용 발송하겠습니다.
박이경은 학교 비상 연락망을 통해, 문자 발송을 하고 부장 단톡방 관련 내용을 올려 담임교사와 행정 부서원들에게 전달할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읽었다는 표시를 알 수 있는 숫자가 쉽게 줄어들지 않고 있었다. 박이경은 자신처럼 카카오톡 메시지에 즉각적으로 반응하지 않은 것이 서운했다. 하지만 그들을 탓하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이었다. 그래서 몇몇 학과 부장에게는 전화로 알렸다. 덕분에 잠에 취한 그들의 짜증 어린 목소리는 덤으로 수용하여야 했다.
교감: 내일 출근자 결정하시죠. 이 방에 있는 분 출근, 기현희 선생님 제외
교장: 최소한 어제 같이 식사나 밀접 접촉하신 분들과 같은 교무실 선생님은 출근하지 않고 검사받아야 하지 않을까요?
보건교사: 아마, 내일 역학조사에서 밀접 접촉으로 분류된 분들, 검사 연락이 올 것으로 생각됩니다.
기현희: 일단 오늘 기준 2일 전 기억나는 순서대로 적어보았습니다.
16일: 오전 8시 20분경 약 5분간 3 교무실 방문(그 당시 전원 7명 모두 출근 상태)
16일: 오전 2 교무실 근무, 점심 식당에서 먹음(한 테이블 동반 착석인: 정지우, 구승현, 김문희, 정혜리)
17일: 오전 2 교무실 근무, 1 교무실도 방문, 기억나는 접촉자
(이영은, 한승혜, 우연수, 박이경), 상담 학생(3반 강다빈, 7반 김우빈),
점심 교사 쉼터에서 혼자 취식.
교감: 위 내용 보건소에 전달된 건가요?
기현희: 아니요. 제가 지금 일단 정리해 본 내용입니다. 빠진 부분이 있을지도 모를 것 같아요.
교감: 수업하신 반도 알려주세요.
기현희: 이번 주는 원격이라 대면 수업 한 반이 없었습니다. 대신 3학년 원서 작성하는 학생들과 접촉이 있었습니다. 바로 옆자리 3-5반 학생들이 담임 선생님을 만나러 교무실 출입을 한 일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교장: 일단 기현희 선생님께서 언급하신 사람들 꼭 등교 정지 조치와 검사 의뢰 조치할 수 있도록 부탁합니다.
보건: 코로나 확진 발생 대응 지침, 대응 지침 요약본 메신저 첨부파일로 보내드립니다. 확인해 주시기 바랍니다.
교감: 행정실장님, 일단 소독조치는 먼저 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저는 담당 장학사에게 보고하겠습니다.
학생부장: 회의 시간을 8시로 했으면 합니다. 9시 보건소 통화 전에 저희 회의가 완료되어야 합니다.
교장: 내일 아침 회의 준비해 주시고 각 부서에서 검토할 내용 미리 준비 부탁드립니다.
교장님의 말씀으로 카톡방의 대화는 멈추었지만, 이경의 스마트폰은 또 다른 카톡들로 넘쳐나기 시작했다. 확진자가 누구냐는 질문을 시작으로, 언제 검사받아야 하느냐?, 자녀가 등교 중지인 셈인데 자신은 출근해도 되느냐는 학부모의 질문, 본인의 자녀를 등교시켜도 되는가? 에 대한 교사의 질문에 이르기까지 생각이 미처 따라가지 못했던 상황이 새벽이 올 때까지 계속 벌어지고 있었다. 그만큼 처음 겪는 코로나 19 감염에 대한 불안감은 모두가 크게 느끼고 있었다.
이경은 보건 교사에게 받은 내용을 바탕으로 우선 기현희 선생님이 언급한 대상에 보낼 문구를 다듬기 시작했다.
000께서는 확진 환자와 접촉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아직 역학조사 중이지만 보건소 문의 결과 학교에서 접촉자로 파악한 인원은 선제적 검사 진행을 권한다는 답변이 있어 연락드립니다. 가까운 선별 진료소(보건소) 전화 문의 후 검사 진행하시고 검사하신 분들은 보건 교사에게 문자 주시기 바랍니다. 검사장으로 가실 경우, 자차 또는 도보 이용하시고, 신분증 꼭 지참 바랍니다. 검사 후 자택에서 방역수칙 지키시면서 대기해 주세요. 역학조사 결과 밀접 접촉자로 판정되게 되면, 개인별로 연락이 갈 예정입니다. 많은 협조 부탁드립니다.
자신이 쓰고 있는 내용에 자신이 포함되기도 한 현실에서 마음이 무겁기만 했다. 기현희 선생님이 언급한 대상에 자신의 이름이 있었다. 어제 기현희 선생님과 교과 진도 관련 이야기를 나누었었다. 그러기에 당장 내일 대책 회의에 참석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도 따랐다.
k-94 방역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었지만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와의 싸움에 박이경 자신이 예외라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단톡방에 있는 누구도 회의에 참여하지 말라는 언급은 없었다. 그 판단의 몫은 오로지 박이경 자신에게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