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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영 Oct 22. 2023

화가 밀려올 때

“오늘 7교시 진로 활동 시간 조정 가능해?”

“네? 갑작스럽게 무슨 말씀이신지?”

 김진영은 2학년 부장의 전화에 짜증이 몰려왔다. 교육 계획서 계획과 월중 일과 협의 시 아무런 언급 없던 일을 구체적 실행 단계에서, 그것도 시행 당일에서야 변경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더구나 이번과 같은 상황이 처음이 아니라 더 화가 났다.

 “2학년 전체 협의회를 해야 하는데, 선생님들 다 모이시기 힘드니까 진로 2시간을 1시간으로 조정해야 할 것 같아서…….”

 “아니, 이미 다 원격으로 수업 만들고 학과별 진로 학습으로 만들어 놓은 것을 어떻게 바꾸나요?”

 “김 선생님 그것을 누가 모르나요? 코로나가 계획대로 할 수 없게 만들고 있잖아요. 나도 계획된 대로 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사회적 거리 두기 단계 때문에 학년 계획이 다 틀어진 것이잖아요. 그래서 학년 협의회가 필요한 것이고, 선생님들 일과 후에 모이라고 하면 좋아할 사람도 없잖아요?”

김진영은 말싸움을 해봤자 소용없다는 생각에 전화를 끊었지만, 씩씩거리는 숨소리는 숨길 수 없었다.   

“차 한 잔 하시죠?”

 차 마시자고 불러냈지만 차보다는 걷는 것이 났겠다는 생각에 박이경은 김진영을 운동장 쪽으로 이끌었다.

“내가 이상한 건가요? 그 부장님 하고 매번 이런 식으로 일 처리되는 것이 너무 싫어요.”

김진영은 흥분이 아직 가라앉지 않은 탓에 목소리에 감정이 잔뜩 실려 있었다. 

“많이 힘들죠? 선생님의 기준으로 볼 때, 지극히 상식적인 상황을 뒤엎고 상대는 자신의 기준으로 만든 억지 상황을 상식이라 주장하는 것도, 더구나 자신이 아닌 선생님이 이상하다는 반응을 보이니 참 황당하죠?”

“네, 바로 그거예요. 선생님이 제 마음 정확히 알아주어서 고마워요.” 

“아니에요. 저도 그런 경험이 많아서 그래요. 그분 유명하잖아요. 그럴 때 누구에게든지 하소연이라도 하고 나면 속이 풀리더라고요. 아 이럴 게 아니라 저랑 편의점에 갑시다. 내가 사 줄 게 있어요.”

 교문 앞에 있는 편의점에서 박이경이 집어 든 것은 옛날 과자 중에서 딱딱해서 평소에는 잘 먹지 않는 소라 모양의 튀김 스낵이었다.

“이것 먹어봐요. 전 스트레스 풀고 싶을 때, 이 과자를 먹어요. 이는 조금 아프지만 막 씹고 나면 속이 풀리는 느낌이 들어요.”

“막 씹어야겠네요. 마구마구 흐흐.” 

소라 과자를 입에 넣는 김진영의 얼굴에 약간의 미소가 번지는 것을 볼 때, 어느 정도 기분이 풀린 것 같아 박 이경의 어깨도 가벼워진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순간 기분이 풀린다고 감정의 응어리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상대와 충돌 후 아프고 힘들 때, 하소연을 들어주는 것도 큰 힘이 되기는 하지만 되돌아봐야 하는 지점은 상대에 대한 비판적 시선이 아니라 자기 안 화의 근원에 대한 성찰이 될 때 풀린다는 점을 많이 느껴왔었다. 

왜 화가 나는가? 정말 상대의 잘못 때문인가? 아니면 상황을 겪어내야 하는 자신의 또 다른 힘듦이 있는가? 살필 필요가 있었다. 세상에 자신이 생각한 대로 일이 되는 경우가 몇 % 나 있을까? 더구나 나이 든 사람을 말로써 변화시킬 수 있는 확률이 얼마나 될까? 모두가 알고 있듯이 그 확률은 매우 낮다. 그렇다면 그 낮은 확률에 몰두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의 방향을 조금 바꿀 수 있을 때라야 내면의 평화를 찾을 수 있음을 박이경은 알고 있지만, 아직 김진영에게 그것까지 기대하기는 힘들었다. 단지 지금 필요한 것은 긍정적 공감의 신호를 보내주는 것이 최선인 상황이었다. 

“이 안 아파요? 너무 적극적으로 씹네요.”

“아니요. 아직 더 씹어야 해요.” 

장난기 섞인 말투였지만 조금 기분이 풀려가고 있는 것은 분명했다. 

 “그럼 한 봉지 더 사 줄까요?”

최소한 화가 분출되는 몇 분 동안만이라도. 박이경은 김진영에게 맞장구쳐주고 싶었다. 

 “선생님 그것 알고 있죠? 선생님이 아무리 고민한다고 해도 그분이 안 바뀔 거라는 것, 상대가 변하지 않는다면 애써 그와 더 이상의 이야기 진전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여기에 답이 있을 수 있어요.”

과자 봉지의 입구를 오므리면 김진영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박이경은 싫은 사람과는 적당한 거리 두기와 무시를 통해 상대와의 간격을 두는 것이 문제 상황에서 자신을 지키는 길임을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업무적으로 매일 부딪힐 수밖에 없는 김진영의 상황에서 이런 이론적인 내용은 별 도움이 될 수 없는 것이란 생각도 들었다.

“상대는 변하지 않는다. 그냥 무시해 버리는 것이 최선일까요?”

“글쎄요. 상대가 있는 문제 중 선생님의 의지로 바꿀 수 없는 문제 때문에 너무 아파하지 말기를 바랄 뿐이에요. 사실, 이 방법은 제가 견디고 있는 방법이기도 해요. 상대와 소리 높여 싸우고 나도 결국, 내게 남는 것이 내 내면의 평화가 아니라면, 싸우느라 힘을 뺄 필요가 없다는 것이 제가 내린 결론이죠.”

“너무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아닌가요?” 

“글쎄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선생님도 알고 있잖아요. 아무리 내가 옳다고 주장하더라도 상대가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되어있으면, 그것은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이에요. 차라리 상대를 내버려 두고 나의 감정에 충실한 것이 정신 건강에 이로운 것 같아요.”

말은 이렇게 하고 있었지만, 박이경도 확실한 답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단지 나름의 생존전략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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