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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영 Oct 22. 2023

푸른 하늘

 하늘이 파랗다. 차에서 내려 무심결에 본 하늘이 어느 때보다 선명하게 박이경의 눈길을 끌었다. 사람들의 입에서 초가을 날씨를 만끽하기 좋다는 말이 나올 수 있는 그런 하늘의 모습이었다. 긴 장마에 이어 태풍까지 몰아친 뒤에 모처럼 나타난 푸른 하늘은 박이경에게 산뜻한 기분을 선물해 주었다. 

코로나 19로 인해 모두가 힘든 과정을 겪고 있었지만, 학교 현장도 무척 혼란스럽기만 했다. 박이경은 원격 수업과 등교 수업 준비를 병행하는 것도 힘들었다. 하지만 거리 두기 단계가 격상되는 과정에서 이미 제출했던 평가 계획과 기준을 세 번째 바꾸느라 밤새 시달린 탓인지 몸은 천근만근이었다. 

‘이 또한 지나가리다.’ 옆 반 담임 성준이 늘 입버릇처럼 달고 있는 말이 떠올라 쓴웃음이 나왔다. 평소에 저런 태도는 버려야 한다고 생각했던 성준의 모습을 자신도 닮아 가고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흐린 하늘이 푸르러진 것처럼 혼란스럽기만 한 학교의 일상도 곧 안정될 수 있겠지. 박이경은 마음을 다잡으며 교문을 들어섰다.

 “선생님, 좋은 일 있으신가요? 기분 좋아 보이세요.”

 마스크 때문에 표정을 살필 수 없을 듯도 한데, 이미 2년이란 시간이 그렇게 만들어버린 것인지 때론 마스크로 가려진 타인의 감정을 읽어내는 능력을 쌓여가고 있었다. 그러기에 눈치가 빠른 2반 반장 지율이 박이경을 반갑게 맞아 주었다.

 “응, 지율아, 좋은 아침. 내 기분이 너에게 느껴지니? 버스 내리면서 본 하늘이 한 폭의 그림 같아서 기분 전환이 된 것 같아. 너도 좋은 하루 보내라.”

“네, 선생님, 발걸음이 되게 가볍게 느껴졌어요. 흐흐.” 

“네 발걸음을 네가 아니? 흐흐, 아! 한 가지 부탁하자. 오늘 수능 원서 접수 마지막 날인 것 알지? 아직 안 한 사람 2교시까지 마무리 지어달라고 전해 줘.”

 수능 관련 업무는 늘 조심스러웠다. 수시 비중이 늘고는 있지만, 수능으로 인생이 좌우되는 현실에서 실수가 조금이라도 있다는 것은 말 그대로 대박 사건이기에 업무 스트레스가 높았다. 

 ‘수능 원서 접수, 생활기록부 정정 사안 처리, NCS 실무 교과 회의, 고입 홍보 회의’ 

 9월 학사 일정표에 적힌 오늘의 일정을 보니, 오늘 하루도 쉼 없이 달려야 할 것 같다. 

하지만 급할수록 돌아가라고 했으니, 업무를 시작하기 전에 커피 한 잔쯤의 여유를 갖고 싶어졌다. 

 “이 선생 내리는 김에 나도 한 잔 부탁할까?” 

마침 커피를 내리고 있는 교무부 이 선생에 커피 부탁을 했다. 

 “네, 박이경 선생님, 물 양 적은 것 드시죠?”

귀찮아할 수 있는 요구지만 반갑게 반응해 주는 이 선생의 응대가 고마웠다. 

 “네, 고마워요. 다음 주에 내가 캡슐 한 박스 사 드릴게.”

 “아니에요. 아직 많이 남았어요. 희준 선생님이 두 박스 기증하고 가셨어요.”

 “그 친구도 노랑이 파였는데, 선생님 덕분에 우리 교무실 사람들의 입이 고급이 되어 가나 봐요. 흐흐”

박이경의 기분 때문인지 캡슐에서 커피를 추출하는 소리가 경쾌하게 들렸다.

 “습관이 무서운 것 같아요. 저 역시 전에는 맥심 모카 골드만 마셨는데, 작년부터 이것에 길들이다 보니 이제는 이것만 마시고 있어요. ”

 “난 노랑이를 하루에 일곱 번 넘게 마실 때, 길들인 탓인지 쉽게 끊어지지 않아요. 몸에 좋지 않은 것을 뻔히 알면서도 잘 안 돼요.” 

이 선생은 하루에 커피를 일곱 잔이나 먹는다는 경석의 말에 조금 놀란 표정을 애써 감추며, 내린 커피를 건넸다. 

 “그래도 바꾸셔야죠. 몸 생각을 하셔서. 그리고 하루 일곱 잔은 좀 심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흐흐”

웃음을 담아 전하는 진심을 박이경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야지 하면서도 잘 안되네요. 그뿐 아니라 학교생활이란 것도 관성으로 흘러가는 것이 너무 많아요.”

 “그렇죠. 해마다 많은 것들이 변하고 있는데, 선생님들의 모습은 잘 안 변하시죠.”

박이경은 받은 커피를 마시기 전 먼저 향을 맡았다. 고소하고 진한 향이 밀려왔다. 향기를 느끼는 것이 커피 마시는 이유라 말하는 사람들의 기분이 이런 것이리라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자신은 아직 노랑이가 더 끌리는 속마음을 떨쳐내며 이 선생의 말을 받았다.

 “하긴 그래요. 나이 들수록 꼰대가 되어 간다고 하잖아요? 왜 저러나 싶은 일도 많고 답답하시죠?”

 “아니에요. 교직 생활이라는 것이 반복되는 일상인 경우가 많다 보니까 그렇죠.”

 근무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나름 아이들로부터 인정받는 교사로 자리 잡은 이 선생이었다.

 “코로나 19라는 상황이 많은 것을 변화하게 하겠지만, 늘 변화에 너무 둔감한 것이 교직 생활인 것은 분명해요. 지금 선생님이 담당하고 있는 생활기록부 정정 건만 하더라도 그렇죠.”

수시 전형을 앞두고 생활기록부 정리로 바쁜 이 선생의 업무를 위로해주고 싶은 생각에 한 말이다. 

 “네. 솔직히 조금 버거운 일인 것 같아요. 고교 정보 블라인드 처리 사안이 발생해서 정정 건수가 수십 건 나오는 것도 힘든데, 부장님께서 작년에 연수 때마다 언급하셨음에도 반복되는 정정 사안이 올해도 발생하고 있어요. 가끔 무슨 정신으로 그러시나 쉽기도 하고, 전년도 선생님이 조금만 신경 썼으면 안 해도 될 일을 하니 화가 불쑥 나기도 하고……. 자기 자식이라도 저럴까 하는 생각도 들 때가 있어요.”

울고 싶은 아이 뺨 때린 듯한 반응을 보이는 이 선생을 조금 누그러뜨릴 필요가 있겠다 싶었다. 박이경은 빨리 상황을 정리하고자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을 이었다.

“아침부터 너무 열 올리지 말자고요. 이 선생 요즘 힘든 것 아니까 조금 쉬면서 해요.”

“사람이니까 실수도 할 수 있고 죽고 사는 문제가 아니니까 그럴 수 있다지만, 해도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선생님 한 분의 무신경이 그 반 출신 모두를 정정해야 하는 사안을 볼 때면 솔직히 너무 화가 나요.” 

이 선생이 느끼는 점을 박이경도 느낄 때가 많았기에 동조해주고 싶었지만, 아침에 하늘을 보며 산뜻하게 마음 잡았던 마음가짐이 흩어지는 것 같아. 빨리 분위기를 바꾸고 싶었다. 

“커피 잘 마실게요. 스트레스 너무 받지 말고 쉬엄쉬엄해요.”

이 선생도 박이경의 그런 마음을 읽었는지 더는 말을 잇지 않았다.

자기 자리로 돌아온 박이경은 구글 클래스룸에 접속했다. 원격 수업 기간인 2학년 해당 반에 수업 과제를 링크 걸고 어제 늦게까지 출석 안 한 아이의 대체 과제 제출 여부를 점검하기 위해서다. 비대면 수업 장기화에 따라 여러 가지 방식의 수업을 시도하고 있지만 제일 큰 문제는 원격 수업 시 아이들을 수업으로 불러오는 문제였다. 

교실이 아닌 가정에서 수업을 참여하다 보니, 가정환경에 따라 수업 시간의 출발부터 많은 고충이 있었다. 매 교과 수업 시에 수업 참석률 점검부터 시작해 수업과 수업 과제 제출 확인, 그리고 과제 채점, 질문내용 피드백 등도 바쁜데, 해당 학급의 학생이 출석을 안 할 경우, 카톡과 구글 비공개 대화에 이어 직접 전화도 해야 했다. 더구나 학생이 응답하지 않는 많은 경우, 학부모에게까지 전화해야 하는데, 학부모의 반응이 호의적이지 않아 감정적으로 상처를 받기도 했다. 코로나 전 상황에서는 상상도 못 할 잡무가 이어지고 있었다. 

 ‘우와! 지수가?’ 

지난주 내내 접속하지 않던 지수가 출석 대체 과제를 해 놓은 것을 보니, 기분이 좋아졌다. 

급작스럽게 교육부가 원격 수업을 가이드를 제공하면서, 실시간 수업으로 큰 방향은 잡았지만, 학생마다 원격 수업 여건이 다르기에 출석 기준을 열어두고 있기에 발생하는 문제였다. 

박이경이 맡은 교과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환경 속에서 수업에 참여하는 아이들 때문에, 실제 수업 시 미 참여한 학생에 대해, 수업 참여 확인을 3일 이내 대체 과제 수행으로 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수업을 시작할 때, 구글 출석 링크에 모두 참여해 출석 완료가 이루어져 할당 자가 ‘0’ 되는 순간 수업이 반은 끝난 느낌을 받고 있었다. 복잡한 차후 점검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메신저로 담임에게 출석 상황을 알려주고 새로운 수업 과제를 링크 걸었다. 그리고 어제 바뀐 평가 계획에 따라 평가 일정과 내용 방법에 대한 공지 글을 올렸다. 학생들이 등교하는 기간에만 실시할 수 있는 수행평가이기에 학년 초에 세웠던 수업 방식과는 많은 부분에 차이가 났다. 원래 계획했던 토론 수업 평가가 아닌 새로운 방식의 평가이기에 아이들이 어떤 결과물을 내놓을지도 쉽게 예측이 되지 않아 부담스럽기도 했다. 

모든 부분에서 새롭게 상황이 전개되고 있었다. 하지만 박이경은 왠지 오늘은 긍정적인 부분만 보고 싶었다. 잠시나마 마음에 푸름을 담아두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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