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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영 Oct 22. 2023

자소설

박이경은 지후가 써온 글을 읽어 내려갈수록 표정이 굳어졌다.  어느 한 부분이 문제가 아니라 학교에 제출하기 위해서는 글 전체를 다시 써야할 것 같았다. 

뾰루퉁한 얼굴로 박이경의 표정을 살피는 지후의 눈빛도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마침내 박이경이 수정할 부분이 너무 많아 아예 다시 시작하는 것이 낫다고 이야기하자. 

“선생님 왜 저만 미워하시죠? 저도 많이 힘들어요. 그냥 제가 알아서 마무리 지을게요.”

앙칼진 목소리를 남기며 지후는 자기소개서를 마무리 짓지 않고 교무실을 나가 버렸다.

“저런 싹수없는 것 뭐하러 도와주세요? 옆에서 듣고 있는 제가 더 화가 나더라고요.”

윤 선생은 화가 많이 난 말투였다. 

“자기가 뭐라고 마치 빚쟁이가 빚 받으러 온 투로 말하는 것 아니에요? 제가 며칠 옆에서 보면서 참 이것은 아니다 싶었어요. 선생님은 왜 화도 안 내세요?”

“윤 선생님 보기에 그렇게 보였나요? 제 나름대로 화도 낸 것이긴 한데. 애가 너무 다급하니까 그런 것이에요.” 

학교 생활을 하면서 가장 바쁜 시기가 수시 상담과 원서 접수 그리고 자기소개서 지도가 있는 9월이다. 한 명이 6개의 원서를 쓰다 보니, 그에 따른 서류 준비가 만만한 일이 아니다. 특성화고라고 해도 상대적으로 많은 학생이 진학하기에 그에 따라 신경 써 줘야 하는 일이 많았다. 더구나 학부모나 사교육 시장을 통해 자기소개서를 쓰거나 진학 지도의 도움을 받는 경우를 기대할 수 없는 특성화고에서는 오로지 학생과 교사의 끈질긴 씨름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자기들이 준비하고 조언 정도 해주시면 될 것을 너무 많이 고쳐 써 주시니까 이런 일도 벌어지는 것 같아요. 선생님이 그렇게 애쓰는 것 저 애들은 하나도 고맙게 생각하지 않는다고요. 아까 그놈 말하는 것 보셨잖아요?”

다른 친구들에 비해 첨삭 과정에 문제가 많은 아이를 지도하는 과정을 옆에서 바라본 윤 선생이 작심한 듯 말을 이었다. 

“제출일이 오늘이라 그 아이가 예민한 탓이죠. 오죽 답답하겠어요?”

말은 그렇게 하고 있었지만 사실 박이경도 속이 좋지는 않았다. 학생이 여럿이다 보니 짧은 시간 안에 다 같은 비중으로 지도를 할 수 없는 현실인 탓이다. 

자기소개서를 고쳐주다 보면 어떤 경우는 조언만을 해도 잘 고치는 아이가 있고 어떤 경우는 차라리 빨리 방향을 찾아 고쳐 써 주는 것이 지도 시간 절약에 도움이 되다 보니, 많은 부분을 직접 수정하는 일이 있었는데, 그것을 바라보는 아이들은 선생이 어떤 결과물을 만들어 주는냐를 각자 자기 시각에서 바라봐 서운함을 표현하기도 하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진짜 가르쳐야 할 부분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어요. 결과만 좋으면 과정은 다 무시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에요. 선생님이 알고 있으신지 모르겠지만 선생님이 기껏 고쳐주신 것을 가지고 또 다른 선생님을 찾아가 글이 마음에 드니 안 드니 하는 경우도 많다고요.”

박이경을 옆에서 많이 걱정해주는 윤 선생은 마치 자기가 당한 일처럼 얼굴에 열을 내며 말을 이었다. 

사실 박이경은 그런 일을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박이경이 조언해 주고 때로는 직접 수정까지 해준 글이라도 학생 자기 마음에 흡족하지 않은 경우, 또 다른 선생을 찾아가 수정을 부탁하는 경우가 많이 있었다. 

하지만 그 부분을 알면서도 내버려 두고 있었다. 글이란 것이 각자의 관점과 표현 방식이 있기에 접근 시각을 조금만 바꿔도 글은 전혀 다른 글이 될 수 있다. 그렇기에 박이경은 자기 기준에서 조언하거나 수정해 줄 때, 마지막 결정은 학생 자신이 하도록 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옆에서 바라보는 사람의 관점에서는 기껏 시간 내어 수정해 준 것이 무시되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아니 이런 부분 때문에 사실 몇몇 선생님은 학생의 글 고치기를 주저하기도 한다. 

하지만 박이경은 오히려 그런 아이들에게 연민의 감정이 많이 앞선다. 아이들은 조금이라도 좋은 글을 내고 싶어서 이렇게 수정하고 저렇게 고치고 있지만 한 사람에게 이런 조언을 받고 다른 이에게 또 다른 조언을 받아 쓴 글은 사공이 많은 배가 산으로 간다는 속담처럼 참 어색한 글이 될 뿐이다. 

그러나 어찌하겠는가? 지나친 욕심이 화를 부르는 것을.

“자기소개서 쓰기가 쉽지 않은 탓이죠.”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디 있어요. 저런 애들이 합격하는 것도 옳지 않은 일 아니에요? 인성이 너무 아니에요.”

애써 감정을 누르고 말하는 박이경의 태도에 더 화가 나는지 윤 선생은 화를 삭이지 못했다.

“어쩌겠어요. 아이들 모두를 우리 뜻대로 할 수는 없잖아요? 결국, 그 아이 자신이 만든 손해를 느낄 때가 올 것이에요. 많은 아이가 자기소개서 작성 취지는 모른 채, 결국 자소설만 쓰고 있는 것이지요”

“자소설이라고요?”

“그래요. 좋든 싫든 대학이 제시한 글을 쓰는 과정에서 그 순간만이라도 자기 삶을 생각하고 지나간 시간에 대해 성찰해야 하는데, 많은 경우 좋은 글을 쓰겠다는 이유로 마치 자기 삶을 소재로 한 소설을 꾸며 쓰는 경우가 너무 많아요. 그것이 안타까울 뿐이에요.”

“글쎄요. 제가 보기에는 모두가 자소설만 쓰고 있는 것 같은데요. 아시겠지만 자기소개서 내용과 아이들 삶이 동떨어져 있는 경우를 많이 봐요.”

잘 보이고 싶은 욕심이 앞서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 분명하다. 하지만 열심히 하고자 애쓰는 아이들도 분명 존재하기에 그 아이들을 바라보고 박이경은 계속 지도해 왔다. 그리고 자신이 써 놓은 글 속의 주인공이 되어 현재보다는 한 단계 더 멋진 삶의 주인공이 되어주길 바라는 소망을 품고 있었다. 

오히려 원칙과 기준만 내세우면서 아이들의 힘듦을 모른 척하는 교사들의 태도가 아쉬울 때가 많았다. 다들 대학 나온 사람이고 아이들보다는 세상을 조금 더 살아온 사람이기에 완벽하지 않더라도 관심의 깊이만큼 조언 정도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해왔다. 물론 박이경의 가치 기준이 정답은 아닐 수 있다. 하지만 가장 어려울 때 옆에 있어 주는 이의 역할을 누군가는 해야 한다고 믿고 있었다. 그 마음이 아이에게 올바르게 전달될 수 없을지라도 버티고 서서 기다려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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