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를 치유하는 중입니다.

이제는 그래도 돼,

by 꽃신

융 심리학 서적을 읽고 있는 요즘이다. 문득 16년 전인 대학원에 다닐 적 생각이 났다. 마침 기존에 일했던 선생님들이 각자의 사정으로 그만두는 바람에 일손이 달려 석사 3학기차에 한 대학에서 인턴으로 일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에 비해 공부나 수련이 턱없이 부족했던 시절, 나는 겁도 없이 상담을 시작했다. 그때 나는 내가 꽤 대단한 사람이라도 된 것처럼 자신감에 가득 차 있었다.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내가 얼마나 모르는 것이 많았는지를 새삼 깨닫는다. 어렴풋하게 알고만 있던 내용들이 이젠 조금 더 또렷해지는 느낌이다. 그러나 여전히 갈 길이 멀다. 상담자로 인한 경험이 더해져 책의 내용이 그저 개념으로만 이해되는 게 아니라, 머릿속에 내가 만난 사람들의 모습이 떠오르면서 이해가 깊어짐을 느낀다. 그러다 보니 공부가 재미있게 느껴지지만 일의 무게는 점점 무겁게 느낀다. 쉽다고 느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나는 나 자신을 알기 위해 그만큼 애쓰지 않았음에도 늘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알기 위해 노력해 왔다. 요즘은 일을 내려놓고 공부를 하듯 어렴풋이 나에 대해 알아가고 있는 중인 것 같다.


어제 오빠한테서 전화가 왔다. 엄마는 오빠에게 계속해서 아빠가 자신을 학대한다고 말하며 운다고 했다. 오빠는 여전히 엄마를 불쌍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엄마가 스스로 몸을 가누지도 못할 정도로 중증의 환자라 더 그럴지도 모른다. 자신이 어릴 적 아빠가 엄마를 폭행하는 것을 또렷이 기억한다는 오빠는 엄마가 하는 말이 사실일지도 모른다고 했다. 엄마는 우리가 어릴 때부터 아빠 욕을 했고 결국 우리는 아빠에 대한 존경심을 가질 수 없게 되었다. 이는 딸인 나보다 아들인 오빠에겐 크나큰 결핍이 되었다. 아들은 결코 아빠와 가까워질 수 없게 되었다. 엄마가 아닌 아빠를 이상화해야 하는 시기에도 엄마는 여전히 자리를 내주지 않았다. 남편에겐 아들 욕을 하고, 아들에겐 아빠 욕을 한다. 그 결과 성인이 된 아들은 마음속에 여전히 엄마를 지켜주지 못해 죄책감을 느끼는 어린아이가 있다. 이제는 노인이 된 아빠보다 체구도 커지고 충분히 힘을 가졌다. 그래서 엄마에게 전화를 받고 나서 집에 찾아가 아빠와 몸싸움을 벌였다. 이제 아빠는 아들이 집으로 찾아올 것 같으면 미리 밖으로 도망을 간다고 했다. 한 번은 술을 먹고 비틀거리며 정신이 없는 아들을 거리에서 만난 아빠는 아들에게 정신 차리라는 뜻으로 뺨을 한 차례 때렸다고 했다. 그러고 나서 아빠는 아들에게 바로 목이 졸렸고, 그 후유증으로 한동안 병원을 다녔다고 했다. 한 번은 오빠가 잔뜩 흥분해서 전화가 온 적이 있었다. 아빠를 죽이러 가겠다는 것이다. 엄마는 자식들이 찾아가거나 전화를 하면 늘 아빠 욕을 하며 울었다. 엄마는 결코 어른이거나 자식을 먼저 생각하는 엄마가 아니었다. 아들을 패륜아로 만들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가족들 모두가 아빠를 욕하고 엄마를 불쌍하게 여기고 엄마에게만 관심을 가져주는 것은 엄마의 끝없는 의존욕구를 채워주는 일일지도 모른다. 나는 오빠와 달리 엄마가 불쌍하지 않다. 그저 무서울 뿐이다.


'독립할 시기가 되어 부모와 분리를 시도하면 모든 인간은 죽거나 미칠 것 같은 경험을 한다고, 너무나 당연한 감정이니 회피하지 말고 맞서 감당하라고 신화는 말한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서도 감정에 압도되는 것이 두렵고 자신이 나쁜 사람이 되는 것 같아 괴로운 나머지 부모와의 감정적 분리를 포기하는 경우는 허다하다. 반항이든 싸움이든 부모에게서 독립을 선언하고,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자신만의 삶을 살기로 작정한 것 자체가 대단하고 훌륭한 일이다.' (쉽게 읽는 융의 분석심리학과 가족, 김수연)


어떻게 딸이 그러냐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아픈 엄마를 찾아가 보지 않을뿐더러 전화도 하지 않는다고.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결심하기까지의 숱한 고뇌의 시간들은 모르니까 당연히 할 수 있는 말이겠거니 생각한다. 일일이 말로 다 꺼내 설명할 수도 없고, 그 필요성도 느끼지 못한다. 그 누구에게도 변명할 이유는 없다. 말로 다 하지 못할 만큼 정신적으로 시달렸고 고통받았다. 이제는 심신이 너무 지쳐서 아무리 부모라 해도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에너지가 남아있지 않다. 이제는 정말 마음이 내키지 않아서 앞으로는 마음 가는 대로 살아가보려고 한다. 내가 살고자 하는 강력한 내 안의 생존 욕구처럼 느껴진다.


오늘은 오전에 채소를 손질하고 데치고 믹서기에 갈아 스무디를 만들었다. 어릴 적엔 하고 싶은 것이 참 많았는데, 나이를 먹을수록 점점 하고 싶은 것들이 없어졌다. 지금 생각해 보면 금방 에너지가 고갈되는 내 체력에 육아와 살림과 일하는 것만으로도 벅차서 하고 싶은 것을 생각할 여력이 없었던 것 같다. 다시 내 안의 에너지가 회복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다시 하고 싶은 것들이 생각나고, 그때마다 메모해 두고 있다. 부모든 아이든 일이든 외부로 에너지를 쏟던 것을 점차 줄여나가고, 나에게 집중해 보는 요즘이다. 하고 싶은 것이 이토록 많은데, 언젠가는 시간이 남아돌아 지겹고 지루하다고 여길 날이 과연 올까? 오늘은 내게 남은 생 중에 가장 젊고 건강한 날이다. 내 안의 어린아이가 하고 싶다는 것들을 맘껏 하게 해 주면서 건강하게 쑥쑥 잘 키워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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