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와 미니 델피늄 사이에서

작업실 한켠, 조용한 손질의 시간

by 김세윤

꽃시장에서 꽃을 사는 일은 생각보다 특별하다.
한 송이만 물병에 꽂아두어도 충분히 아름답지만, 무언가 아쉬운 마음에 오늘도 직접 꽃시장에 들렀다. 그리고 마음이 끌리는 꽃들을 천천히 고르기 시작했다.
눈에 들어온 건 장미와, 은은한 빛을 머금은 미니 델피늄이었다.

작업실에 도착한 뒤, 조용한 공간에 꽃을 펼쳐두었다.
줄기의 길이를 대략 맞춘 뒤, 잎을 하나씩 떼어내며 손질을 시작했다.
꽃마다 ‘살려두면 예쁜 부분’이 다르게 느껴진다.
장미는 잎까지 깨끗이 정리한 채 꽃과 줄기만 남겨두는 것이 단정한 인상을 준다.
반면, 은은한 푸른색과 하늘하늘하게 가벼운 꽃잎이 매력적인 미니 델피늄은 잔머리처럼 흩어진 잎이 윗꽃잎을 감싸며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더한다. 윗부분의 잎을 조금 남겨두었을 때 오히려 생기 있는 느낌이 살아났다.

손끝으로 꽃의 줄기를 쥐고 잎을 하나씩 정리하다 보니, 식물의 결과 온기가 전해졌고, 그 사이로 퍼지는 싱그러운 향이 코끝을 간질였다.
그 향기에 취한 듯,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끝내 큰 원통형 물병에 모두 장미를 꽂았다.
그러나 모양은 생각처럼 예쁘게 잡히지 않았다.
높이도 애매하고, 층이 자연스럽게 나뉘지도 않았다.
꽃 자체는 아름다웠지만, 그 조화를 만들어내는 데에는 역시 숙련된 감각이 필요하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그중 한 송이 장미의 겉꽃잎 끝부분에서 아주 미묘한 초록빛이 감지되었다.
이 꽃잎은 ‘가드 페탈(guard petal)’이라 불리며, 장미가 봉오리 상태일 때 햇빛과 공기에 노출되어 자연스럽게 변한 색이라 한다.
그라데이션처럼 스며든 초록빛은 조용하면서도 은은한 아름다움을 품고 있었다.

낯선 생명력에 망설이던 순간, 기억 속 장미들이 떠올랐다.
그 꽃잎들은 언제나 없었기에, 나도 조심스레 하나씩 떼어내보기 시작했다.
꽃잎을 하나씩 떼어낼 때마다 향기가 피어올랐고, 그 순간마다 무언가가 환하게 살아나는 듯했다.

떨어진 꽃잎을 손에 쥐고 조심스레 주먹을 쥐자, 진한 향기와 함께 묘한 생명력이 전해졌다.
도시에 살며 흙이나 잎처럼 살아 있는 것들을 만질 기회는 점점 줄어들었다.
그 때문일까.
그 잠깐의 순간이 마음을 편안히 풀어주었고, 잊고 있던 감각을 다시 불러냈다.

이것이 자연의 힘일지도 모른다.
요즘 자연과 멀어졌다고 느낀다면, 꽃 한 송이만이라도 가까이 두어보는 것은 어떨까.
그 안에서 무언가가 조금씩 되살아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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