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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인 Feb 20. 2024

봄날

-마음의 풍경

어제는 하루종일 잤다. 오늘은 2만보를 걸었다. 며칠 전에도 같은 턴이었다. 얼마 전부터 조짐이  있었다.


몇 년 동안 괜찮았는데 조금 겁이 난다.  게으름인지 우울인지 구분이 안 되는 행태들을 하게 된다. 늘 바쁘게 계획을 짜놓고 딴생각할 여지를 주지 않는다. 그러나 지나치면 안 된다.  잠시 숨을 돌리면 지난 간의 모든 상실감이 물밀 듯이 몰려온다. 그 앞에서 속수무책이다. 모래알갱이 사이의 모든 숨구멍들이 바닷물에 순식간에 잠겨버린다. 숨을 쉴 수가 없다. 잠시 숨을 참은 채 썰물 때까지 기다리는 방법밖에 없다.       

    

오래전 처음 병원 문턱을 넘은 것이 5일 연속 자고 난 이후였다. 이틀 연속 자고 나서는 사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들어서 번아웃이 와서 그런 거라 여겼다. 그 이후로 계속 자면서 이건 분명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꼈다. 지인에게 이야기하였더니 병원에 예약했으니 반드시 가라고 전화가 왔다. 혼자서는 절대 넘을 수 없는 정신과 문턱을 그렇게 넘게 되었다. 3년 여의 분석 치료를 끝내고 이제는 혼자 헤쳐 나갈 수 있다 생각했다. 예전엔 죽고 싶어서 한밤중 한강 다리를 건넜는데 이제는 죽고 싶지 않아서 4시간씩 걸었다.        


중학생 시절의 어느 크리스마스였다. 흑백 TV 속은 온통 연기와 아우성으로 난장판이었다. 명동 대연각호텔에서 불이 나서 사람들이 고층에서 뛰어내리고 그걸 지켜보는 사람들은 비명을 질러댔다. 우리 식구는 그 광경을 방 안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죽은 사람들은 참 좋겠다.

엄마의 말이었다. 늘 몸이 아프고 사는 것이 힘들어, 죽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달고 살던 엄마였다. 나는 아무 말도 못 했다. 필사적이던 그들의 모습도, 그걸 보면서 부러워하던 엄마도 끔찍한 광경이었다. 내 기억에 각인되어 있는 죽음의 풍경이다.      


우울이 잠을 깬다. 겨우내 추위와 어두움에 묻혀 안락함을 유지했던 우울감이 봄바람과 밝은 햇빛 앞에서 더 이상 자신의 존재를 숨길 곳이 없다. 피할 곳이 없다. 겨울보다 엄청나게 확대된 듯한 공간을 겨우내 좁아진 시야가 따라잡을 방법이 없다. 문을 박차고 나와 현실과 마주할 용기와 인내도 없다. 동굴 속의 어두운 마음과 밝은 햇빛과의 괴리감이 우울감을 극대화시킨다.

그래서 봄은 가장 잔인한 계절이다. 살랑거리는 봄바람의 손길도, 샛노랗게 무더기를 이루는 개나리의 찬란함도 근원모를 서글픔만을 가져다준다. 깨어나는 모든 생명력과 함께할 에너지가 없다. 자꾸 뒤처지고 주저앉는다. 나를 스쳐 지나가는 모든 것들을 허망한 눈으로 그저 바라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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