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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인 Sep 17. 2023

조카와의 조우

글렌 굴드, 바흐

글렌 굴드의 바흐: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 생활한 지 1년 남짓된 조카가 리스트의 ‘사랑의 꿈’을 치기 위해 피아노 레슨을 받는 중이라 했었다. 아마 지금쯤은 완숙의 경지에 이르렀을 것이다. 고3 때도 기타 학원을 주 2회 다녔으니 부모의 속을 무던히도 태웠을 것이다. 그런 조카를 보며 속으로는 제법 기특하게 여겼다. 나와 좀 통하겠구나 싶었다. 그런 그의 프사에서 글렌 굴드의 바흐 음반을 본다. 역시 내가 가장 좋아하는 피아니스트와 작곡가를 조카도 애정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반가움이 앞선다. 카톡을 해보니 바흐 ‘피아노 파르티타’ 2번을 연습 중이라며 유튜브 영상을 보내주었다. 학원에서 올린 수강생들 영상이었다. 제법이었다. 바흐를 너무 좋아한단다. 아직 완성되지는 못했지만 학구적인 자세로 진지한 연주를 들려준다. 브라보!     


베토벤:

  등학교 4학년 무렵 교과서에 실린 베토벤의 ‘월광소나타’ 일화는 나를 단박에 매료시켰다. 이후로 피아노에 대한 열병이 시작되었다. 피아노를 배우게 해달라고 조르고 졸라 6학년이 되어서 겨우 레슨을 받게 되었다. 앞집에 붙은 레슨 간판과 오며 가며 들리는 피아노 소리에 더 이상은 참을 수가 없었다. 일주일을 밥을 안 먹고 버티자 형편이 어려웠던 부모님은 결국 빚을 내어 레슨비를 마련해 주었다. 집에 피아노가 없으니 레슨 시간에 한 번이라도 더 치려고 악바리처럼 피아노를 쳐댔다. 그러다 보니 진도도 빠르고 너무 열심히 한다고 칭찬을 들었지만 음악을 느낄 새는 없었다. 그저 피아노 치는 그 순간, 음 하나하나가 무작정 좋았다. 그렇게 시작된 배움은 레슨비 조달의 어려움으로 자주 멈추어야만 했다. 그럭저럭 레슨 받은 기간은 총합 3년 정도였다.    

  고등학교 1학년 여름이었다. 방학 동안 단짝 친구와 학교에 나가 공부하던 중 음악실의 피아노를 보는 순간 다시 병이 도졌다. 음악 선생님께 허락을 받아내어 피아노를 쳐대기 시작했다. 모차르트 소나타를 연습하면, 함께하던 단짝 친구가 어제 라디오에서 들은 것 하고 똑같다고 용기를 주었다. 텅 빈 공간에 울려 퍼지던 피아노 소리는 사춘기의 모든 불안을 씻어주는 처방 약이었다. 가을에는 교내 음악경연대회에 베토벤의 소나타를 가지고 출전하였다. 계속 음악실에 남아서 너무 무리하게 연습하는 바람에 손가락 끝이 손톱과 살 사이가 벌어지며 피가 나기 시작했다. 어찌어찌 본선까지 진출하였지만 수상에는 실패하였다. 같이 경연을 펼쳤던 친구들은 서울대로 연세대로 음대 진학을 하기도 하였다. 돈도 피아노도 없었던 나는 그쯤에서 멈추었다.

  명동 ‘필하모니’, 종로 ‘르네상스’, 삼일로 ‘아폴로’. 고등학교 단짝 친구와 휩쓸고 다녔던 음악 감상실이다. 학교가 인사동에 있었으니 모두 지근거리였다. 소풍 갔다 오다가, 주말에, 단축수업 하는 날 등 틈틈이 교복을 입은 채로 다니면서 음악을 들었다. 아니 주로 잤다. 음악은 가장 좋은 수면제였다.      


로드리고 아랑페즈 협주곡:

  대학교1학년 중간고사 기간이었다. 종로 1가 양지 다방으로 기억된다. 클래식 다방이었다. 삼총사 친구들과 자주 들리던 곳이었다. 어떤 음악이 시작되는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인생의 실존과 허무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던 조각난 의식들이 하나의 샘물을 이루고 온몸을 감싸 안으며 혈맥 하나하나를 건드리며 지나갔다. 음악이 다 끝나고도 한참을 꼼짝하지 못했다. 로드리고의 유명한 기타 협주곡, 아랑페즈였다. 편곡 버전이  TV 명화극장의 시그널 음악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그 봄의 허망한 감상과 중간고사의 과제와 질곡 같은 어두운 현실로부터의 도피가 필요했다. 늘 피아노를 그리워하고 있었던 나에게 기타는 꿩대신 닭이었다. 피아노를 가질 수 없는 형편이었지만 기타는 구입이 허용되었다. 아르바이트 한 비용을 탈탈 털어서 간신히 마련하였다. 대학교 3, 4학년이 되도록 기타를 끼고 다니며 ‘전공이 뭐냐’는 교수님들의 놀림까지 받아가면서도 그저 좋았다. 영양상태가 불량이었는지 다시 손가락 끝이 말썽이었다. 현을 뜯어야 하는 오른손 손톱이 갈라지고 깨지고 재생 불능이었다. 또 기타와의 작별을 고하였다.      


골드베르크 변주곡:

  2000년대 초. 우연히 가게 된 양수리 북한강 가 ‘두물워크숍’. 소규모의 음악 공연장이었다. 그즈음 우리 사회에 시작된 하우스뮤직을 선도한 곳이다. 한 달에 한두 번 주말 음악회가 열렸다. 당대의 기라성 같은 프로 연주자들이 초대되어 수준 높은 공연을 펼쳤다.

  개성 있는 건축가에 의해 지어진 무채색 3층 건물. 1, 2층을 하나로 합친 높은 층고의 객석은 250여 석 정도. 무대 배경은 전면이 창으로 되어 있었고 그 밖으로 조명이 부드러웠다. 때로는 달빛이 조명을 대신하기도 하였다. 유럽의 어느 곳을 가도 이렇게 아름다운 무대를 만나기는 힘들 것이었다. 연주회가 시작되면 너무나도 아름다운 시간과 공간이 펼쳐졌다. 내부와 외부를 하나로 연결하는 건축가의 마술은 놀라웠다. 연주자도 관객도 무대의 아름다움에 빠져들었다. 청중들은 대부분 단골손님 몇 십 명 혹은 몇 명. 때로는 관객보다 연주자의 수가 더 많을 때도 있었다. 수준 높은 연주자들의 바로 앞에서 그들의 호흡을 느끼며 음표를 따라 비상하다 보면 그대로 하늘에 닿을 것 같기도 하였다. 음악회가 끝나면 3층 테라스에 조촐한 다과를 즐기며 그날의 여운을 달래곤 하였다. 그러다가 클래식음악 동호회가 결성되었다.

  일주일에 한 번 청담동의 ‘로프트’로 자리를 옮겨 모임을 갖게 되었다. 그 공간도 같은 건축가가 설계한 것으로 규모는 작지만 비슷한 콘셉트의 공간이었다. 무대 배경을 대신하는 2개의 벽면이 통창. 그 너머로 조명을 받은 대나무들이 아주 작게 흔들리곤 하였다. 아직도 그 대나무들의 속삭임과 숨결이 느껴진다. 멤버들은 많은 음악을 듣고, 느끼고, 해설을 들으며 층층이 내면의 울림을 다스리고 있었다. 때로는 하우스음악회가 열리기도 하고 리처드 용재오닐 같은 세계적인 연주자들의 리허설 모습도 지켜볼 수 있었다.

   2008년 6월. 어린 소녀의 연주회가 있었다.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그녀의 연주를 들으며 나는 나비가 되어 음과 음, 변주와 변주 사이를 잘 지어진 집의 내부를 구경하듯이 날아다녔다. 어린 연주자의 순수한 상상력과 놀라운 집중력이 만들어내는 시공간에 대한 타고난 장악력 때문이었다. 시간의 순차를 두고 뿌려지는 음의 파편들이 곡 전체를 아우르며 한 공간에 펼쳐졌다. 시간적 요소들을 공간으로 재배치하고 구성해 내는 작업은 기성 연주자들도 도달하기 힘든 경지였다. 덕분에 글렌 굴드가 연주하는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찾아내서 듣고 또 들으며 한동안을 보냈다. 그의 바흐 해석은 독보적이었다. 아마도 뒤틀린 나의 내면이 그의 기행들에 공감하며 환호하였을 것이다. 인생의 밑바닥에 떨어졌을 때 가장 고양된 정신세계를 향유할 수 있었다. 나는 더 이상 갈 곳이 없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시기는 내 삶을 지탱해 준 시간이었으며 공간이었다.      


다시 피아노, 바흐:

  주상 복합인 우리 아파트 현관 입구 양쪽이 음악 교실이다. 하나는 피아노, 또 하나는 성악 레슨실이다. 이런 운명 같은 일이 일어나는구나. 피아노 레슨을 받으려는데 코로나가 터지는 바람에 차일피일 미루다 2년이 넘었다. 현관 앞에 있으니 언제든지 할 수 있다는 안일한 생각에 2년을 허비한 셈이다. 어렸을 때의 열정을 생각하니 배가 불렀다는 생각이 든다. 조카의 끝없는 학구열도 자극제가 되었다. 코로나도 어느 정도 끝이 보이니 조만간 피아노 레슨을 시작하리라. 우선 아주 오랜만에 피아노를 열고 바흐를 연주해 본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가 너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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