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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인 Sep 25. 2023

피아노 일기 1

모차르트 소나타의 배신

10개월 만에 모차르트소나타 5번을 드디어 완주했다. 처음 열정과는 달리 실제 연습한 시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 그 옛날 모차르트를 몇 곡 치긴 했어도 이 곡은 난생처음 쳐보는 것이었다. 중간중간 틀리기도 하고, 3악장 Presto는 도저히 따라잡지 못하여 빠르기 무시하고 악보만 간신히 익힌 상태이다. 그야말로 한 땀 한 땀 조심조심 연결한 끝에 총 13쪽 마지막 페이지, 마지막 음을 쳐냈다.      

바이엘을 끝내면 처음 치는 소나타가 아마 모차르트일 것이다. 악보가 비교적 쉬워 보여서 일단은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다. 나도 중학생 시절 악보만 보고 무작정 쳐댔다. 당시의 레슨이라는 것이 그저 틀린 음 없이, 셈여림의 악상 기호를 따라 하는 정도였다. 지금처럼 곡 전체 구조를 분석하고 각 부분을 어떤 느낌으로 쳐야 하는지 따위의 전문적인 레슨은 없었다.        

중학생 시절 쳤던 모차르트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스케일, 아르페지오, 왼손 오른손 화음 부분들이 구석구석 보이고 느껴졌다. ‘너무 좋다’ ‘역시 천재야’ ‘아름다워’를 연발하며 쳤다. 마음과는 달리 진도는 지지부진하다. 게다가 연습이 좀 되어 흐름이 이어지는 부분도  모차르트의 음색을 살려서 치기는 어려웠다. 후속곡으로 16번을 쳐보니 이건 거대한 산을 마주한 느낌이었다. 모차르트 중에서도 악보가 가장 쉬운 곡이다. 어렸을 때 쳤던 기억을 더듬으니 어찌어찌 끝까지 쳐졌다. 간신히 악보만 익힌 상태였다. 첫 부분에 간단한 스케일이 나오는데 이 부분부터 정말 자연스럽게 제대로 치기 어려웠다. 100번 정도 치면 손에 익고, 몸에 익어 자연스럽게 쳐 질까? 어려서는 가장 쉬운 모차르트가 어른이 되어서는 가장 어렵다는 말을 이제야 실감했다.      

그냥 남은 생애 동안 피아노를 칠 수 있는 환경과 상황에 감사하며 한음 한음을 느끼고 즐길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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