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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인 Sep 22. 2023

콩이를 추억하는 법 2

안락사

먹는 것도 시원찮아지고, 계속 잠만 잤다. 강아지 유모차를 타고 나가기만 하면 내려서 걸어가겠다고 난리 치던 녀석이 어느 날부터 내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원래 관절이 좋지 않은 페키니즈여서 다리나 허리가 아픈 것이 아닌가 싶었다. 관절에 좋다는 주사라도 놓아줄 양으로 병원에 갔다. 그 주사를 맞으려면 신장기능검사가 우선이라 하였다. 검사 결과는 충격이었다. 신장의 기능이 20%만 남았다고 한다. 당장 입원을 권했다. 단골 병원은 야간과 주말을 안 하는데 마침 토요일 저녁이라 가까운 24시 연계병원에 입원하라는 것이었다. 영문도 모른 채 낯 선 곳에 가서 스트레스 받을 콩이를 생각하니 기가 막혔다. 입원한다 하여도 급한 불만 끌 수 있을 뿐 신장 기능이 나아지지는 않을 것이다. 현 상태에서 서서히 나빠지기만 할 것이다. 고통의 강도와 시간을 조금 유예하는 것일 뿐. 수액을 맞히고, 약만 받아 들고 왔다. 사실상 치료를 포기한 것이다.  

나름 멀쩡한 상태였는데 그 이후로 하루가 다르게 여러 가지 현상들이 나타났다. 잘 먹지도 못하면서 구토와 설사가 계속되었고 어지러워서 머리를 벽에 부딪히면서 간신히 움직였다. 결국엔 전혀 먹지 못하게 되었다. 저 상태로 그냥 옆에 끼고 앉아서 힘들어하는 것을 볼 수가 없었다.

친한 후배와 만나면 농담처럼 하는 말이 있다. 나중에 천만 원 모아서 스위스에 안락사하러 가자고. 이사 오기 전 다니던 동물병원 수의사는 나중에 1주일 정도 밥을 먹지 못하면 안락사를 시켜주겠노라고 했다. 콩이가 점점 나이를 먹어가면서 어떻게 보낼 것인가 마음의 결정을 하고 있었다. 어떤 모습일지 모르지만 너무 고통스러워한다면 편하게 보내주겠다고. 결국 그 순간이 온 것이다.

수의사와 상의를 하니 안락사를 해주겠다 하였다. 못 먹은 지 일주일째 화요일 오후에 가서 부탁하니 아직은 아니라면서 완강하였다. 오랜 시간 돌보아 주었던 수의사도 마음의 준비가 필요한 듯하였다. 토요일 오후로 약속을 잡았다.        

토요일 한적한 오후시간에 병원으로 갔다. 바로 앞의 단지에 있는 병원이라 평소에는 늘 강아지 유모차에 태워 다녔는데 오늘은 화장장으로 바로 가기 위하여 콩이를 마지막으로 차에 태웠다. 남편은 밖에서 기다리라 하고 나 혼자 콩이를 데리고 처치실로 들어갔다.

몇 년 전부터 귀가 들리지 않는 콩이를 위해서 가끔 내 성대를 콩이의 머리에 대고 이야기를 하곤 했었다. 마지막 인사를 하라 해서 같은 방법으로 성대로 대화를 했다. 잘 가고, 다시 만나자고, 기다리고 있으라고. 콩이가 거의 혼수상태라서 내 말을 들었는지는 모르겠다. 수면제를 놓으니 바로 눈이 풀렸고 바로 주사를 놓았다. 금방 심장 박동 기계가 멈추었다. 모든 것이 일순간에 끝나버렸다. 후 처치를 위해 나가 있으라 해서 나오니 병원 밖에서 기다리던 남편은 눈물, 콧물 범벅으로 어린아이처럼 울고 있었다. 검은 상자에 넣어진 콩이를 고 나오니 병원 안의 다른 보호자들이 술렁거린다. 예약해 두었던 화장장으로 향했다.      


아버지는 팔순 오전에 병원으로부터 전화로 폐암을 선고받았다. 그리고 치료를 거부하고 1년 만에 돌아가셨다. 마지막 1달은 입원해서 통증 완화 처치를 하였다. 집에서 패치를 붙이는 것만으로는 통증을 다스리지 못하여 모르핀을 투약하기 위하여 병원에 입원한 것이었다. 약물로 인한 환청과 환각을 치매로 여길 정도로 우리는 무지하였다. 그만큼 아버지의 고통도 헤아리지 못하였고, 죽음 앞에선 아버지의 두려움과 고독도 헤아리지 못하였다. 같이 살고 있던 엄마마저도 아버지의 고통을 헤아리지 못하였다. 하루는 가만히 있던 아버지가 “얼마나 더 아프면 죽게 되는 걸까?”라며 엄마를 쳐다보았다고 한다. 극심한 고통을 참고 참다가 내뱉은 말이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안락사가 합법이었다면 아버지는 실행했을 것 같다.     

 

죽음 앞에서 어떤 결정을 내릴 것인가에 대한 권리는 그 주체에게 있다. 콩이가 자신의 죽음에 어떤 결정을 했을지는 모르겠다. 우리 곁에 조금이라도 더 있고 싶었다며 나를 원망했을지 아니면 고통을 덜어줘서 고마워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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