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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기정 Jul 06. 2024

수리산과 군포시

은판나비의 숲은 지켜질수 있을까

 

수리산과 군포시. 지역을 둘러싸고 있다./군포시 제공


   돌이켜보면 늘 산과 멀지 않은 곳에 살았다. 어릴 때는 팔달산 아래에 살았고 지금은 광교산 인근에 거주한다. 몇십 분만 느릿느릿 걸으면 어느덧 초록의 세상이 펼쳐졌다. 어린 시절엔 놀이터였고 성인이 된 지금은 쉼의 공간이다. 산을, 숲을 벗 삼아 산다는 것은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다. 숨 쉬기가 편하고 마음이 평온하다.

   군포시민들은 그런 의미에서 행복하다. 지역 어디에서라도 수리산에 쉽게 닿을 수 있어서다. 등산 코스가 크게 6개로 나뉘어져있는데 지역 여기저기에서 제각각 출발할 수 있다. 수리산이 군포시를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데다, 지역 임야 면적의 55%를 차지할 정도로 면적이 상당해서다. 안양이나 안산에도 걸쳐있지만 전체 면적의 62%가 군포시에 해당한다. 가히 군포시의 상징과 같은 산이다.

   경기도가 지난 2009년 남한산성, 연인산에 이어 수리산을 세 번째 도립공원으로 지정한 것도 이곳이 도심 속에 있는 대규모 녹지라는 점 때문이었다. 도민들에게 휴식 공간을 제공하는 한편, 도시 개발로 수리산의 생태 환경이 훼손되지 않게끔 하는 취지였다. 도시 규모는 작지만 아늑하고 쾌적한 군포시 특유의 도시 분위기는 상당부분 수리산에서 기인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리산 산림욕장. 수리산을 오르는 여러 등산 코스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수리산을 걸었다, 정확히는 산림욕장 황톳길을


 30여년 평생을 산 아래에서 살았으면서도 등산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도 매일 군포를 오가면서 수리산을 가보지 않는 것은 직무유기와 같은 기분이었다. 수리산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인 태을봉이 489.2m로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았지만, 도심과 맞닿아있는 수리산은 그만큼 접근성이 뛰어나다는 게 큰 장점이다. 수리산의 초록은 만끽할 수 있으면서도 차로 쉽게 갈 수 있는 지점이 적지 않은데, 그 중 한 곳이 군포중앙도서관 옆에 있는 수리산 산림욕장이다. 6개의 등산 코스 중 1.1㎞ 남짓 가장 짧은 코스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평일 오후였음에도 산림욕장엔 많은 군포시민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여름이 본격화돼 기온이 제법 높은 날이었는데도 나무가 울창해 선선했다. 산림욕장 입구에서 조금만 걸어 올라가니 다수의 시민들이 맨발로 길을 걷는 진풍경을 볼 수 있었다. 황톳길을 조성해놓은 탓이었는데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신발과 양말을 벗고 저마다 느릿느릿 축축한 흙길을 걸었다. 눈코뜰 새 없이 바쁜 도심의 하루, 그 한 켠은 시간이 멈춘 듯한 평온함으로 채워졌다.

 산의 면적이 상당한 만큼, 등산 코스 6개의 난이도는 제각각이다. 길게는 8.7㎞ 구간부터 짧게는 1.1㎞까지 다양하다. 등산을 위해 산을 오르는 이들도 많았다. 도립공원으로 지정돼 보전 노력을 기울여온 탓인지 수리산은 도심 속에 있는 산이면서도 생태 보전이 잘 돼있다는 평을 받는다. 이곳에 서식하는 대표적인 생물은 멸종위기종으로 분류되는 은판나비다. 검은빛 날개에 하얗고 큰 무늬가 새겨진 예쁜 나비다. 최근엔 수리산 자락에 조성된 초막골 생태공원에서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으로 지정된 참호박뒤영벌이 발견되기도 했다.


수리산 산림욕장 옆에 조성된 수리산황톳길. 많은 시민들이 신발을 벗은 채 길을 걷고 있다.

#도로와 산


 지난 2011년 군포시장실 앞에서 단식 농성이 이뤄졌다. 수원~광명 민자 고속도로가 수리산을 관통해 지나가는 계획이 발표되자, 이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면서 단식까지 불사한 것이다. 2007년부터 수원~광명 민자도로는 수리산 일대를 5㎞ 구간으로 관통하는 노선으로 계획돼왔는데 수년간 시민단체들의 거센 반대에 부딪혔다. 공사 과정에서 산사태 우려가 크고 자연 환경이 파괴돼 도립공원으로서의 가치를 잃을 것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반대 목소리는 일부에 국한되지 않고 시 전반에 큰 공감대를 형성했다. 수리산이 군포시민들에게 어떤 존재인지 단적으로 보여준 사건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때의 격렬했던 반대를 기억한다. 한 시청 관계자는 "어휴, 그때는 정말 대단했다"고 회고했다. 그래서 최근 군포시 안팎에선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한다. 수원~광명 민자도로에 이어 다시금 수리산을 관통해 도로를 개설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어서다.


지난 2011년 수원~광명 민자도로가 수리산을 관통하는 것을 반대하는 단식 농성이 진행되고 있다./경인일보DB


 해당 도로는 시흥시 금이동에서 의왕시 고천동까지 15.2㎞를 연결하는, 이른바 시흥~수원 민자도로다. 도로가 개설되면 경기 남부권에서 인천공항으로의 이동 시간이 30분 이상 단축되는 등 서남부권 교통 혼잡도가 완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지난해 KDI 공공투자관리센터의 민자 적격성 조사를 통과한 후 전략환경영향평가를 준비하는 등 순항 중이다.

 관건은 이번에도 수리산이다. 총 15.2㎞ 중 군포를 통과하는 구간이 3분의 1이 넘는 5.4㎞인데 일부는 수리산을 관통한다. 군포를 가장 많이 지나가면서도 군포지역과는 직접 연결되지 않아 시민들이 이용하기 어려운 점도 불만 요인이다. 당연히 시 안팎에선 반대 목소리가 거세다.


시흥~수원 민자도로 노선 계획도. 수리산을 관통해 도로가 개설된다./군포시 제공


 지난달 25일 군포시민사회단체협의회는 해당 사업을 철회하라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수리산 생태에 다시금 큰 악영향이 우려된다는 게 성명서의 주된 내용이다. 성명서를 통해 협의회는 수원~광명 민자도로 건설 이후 훼손된 수리산의 자연성이 어느 정도로 회복됐는지, 또 회복 가능한지 미지수인 상황에서 다시금 수리산을 관통하는 도로가 개설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했다. 군포시청에서도, 군포시를 지역구로 둔 정윤경·성기황 도의원도 잇따라 반대하고 나선 상황이다. 경기도와 민간 업체는 군포시 등 관련 지자체와 협의해 사업을 진행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지역사회 안팎에선 10여년 전의 격렬한 저항이 재현될까 걱정이다. 수리산은 초록의 평온함을 지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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