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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영 Oct 28. 2024

나는 쓰지 않을 수 없다

    블로거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지 3개월이 되었다. 사실 1년 전부터 비공개로 블로그활동을 해왔지만, 주로 책을 읽고 인상 깊은 부분을 메모하는 낙서장처럼 활용했다. 가끔 자작시도 써봤지만, 서툰 솜씨가 드러날까 부끄러워 공개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렇게 1년이 흘렀다. 나와 달리 한 지인은 블로그와 각종 SNS는 물론, 브런치 작가로서 공개적으로 활동하며 작가의 꿈을 탄탄히 쌓아가고 있었다. 1년 동안 그 차이를 보면서 부러움과 시샘이 섞인 마음으로 결심해야 할 때가 왔다는 것을 느꼈다. '공개하자. 이 나이에 부끄러울 게 뭐가 있어! 마음 가는 대로 글을 쓰고 용기 내서 공개하자. 그게 지금 나에게 필요한 도전이다.' 그렇게 나는 숨겨뒀던 블로그를 공개하게 되었다. 벌써 3개월째 활동하고 있고 ‘블로그 이웃’도 311명. 앗싸! 이만하면 꽤 괜찮은 출발 아닌가? 아직 갈 길은 멀지만, 온라인상의 글 친구들도 생겼고, 함께 가는 길이 외롭지 않다는 생각에 아침에 일어나는 일상이 즐거워졌다.




    오늘은 어떤 새로운 친구들이 생길까? 내 글에 공감해줄 이들은 있을까? 비공개로 블로그를 운영할 때는 몰랐던 글쓰기에 대한 열정까지 생겼다. 아마도 그게 공개와 비공개의 차이일 것이다. 아니, 독자가 있고 없고의 차이겠지. 나는 매일 짧게라도 글을 쓰는 습관을 들이기 위해 하루에 적어도 한 개 이상의 글을 포스팅하려고 노력 중이다. 독서를 할 때는 물론이고 밥을 할 때나 산책을 할 때도 끊임없이 글감을 찾느라 분주하다. 지난 주말에 일주일치 장을 보면서 김밥 재료로 분명 시금치를 샀는데, 월요일 아침 김밥을 싸려고 아무리 찾아봐도 시금치가 보이질 않았다. 아뿔사! 시금치를 산 줄 알았던 것이 알고 보니 비슷하게 생긴 고들빼기였다. 내 눈에는 영락없는 시금치로 보였는데 너무 어이가 없었다. 결국 그날 아침은 시금치 빠진 김밥으로 만족해야 했다. 생전 처음 접하는 고들빼기라 당황스러웠지만 레시피를 찾아 반찬을 만들어 보니 쌉싸름한 맛이 의외로 입맛을 돋웠다. 저녁에 고들빼기 무침을 식탁에 올렸더니 남편이 맛있다며 엄지척을 해줬다. 실수 덕분에 고들빼기도 먹어보고 블로그에 새 에피소드를 올리게 됐다. 이제는 실수도 반갑다. 내 일상에 새로운 글감이 생겼다는 뜻이니까.


 


    릴케는 자신의 시가 좋은지 어떤지를 물어보는 젊은 시인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무엇보다 먼저, '나는 쓰지 않으면 안 되는가?'라고 스스로 물어보라. 만약 이 진지한 물음에 굳건하고 단순하게 '나는 쓰지 않을 수 없다'라고 대답할 수 있다면, 그때에는 당신의 삶을 이 필연성에 맞춰 살아가라." 나는 릴케가 했던 이 말을 스스로에게 물어봤다.'나는 쓰지 않으면 안 되는가?' 나는 스스로 대답했다.'나는 쓰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왜 나는 글을 써야만 할까? 나는 '나'라는 옷을 입고 50여 년을 살았지만, 여전히 내가 누구인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마치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살아온 것처럼 말이다. 나는 누구이고,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잘하고, 또 무엇을 하고 싶은지 여전히 명확하지 않다. 22년간의 직장 생활을 하다가, 종착역에 가까워졌을 때 회의감이 들었고, 남들보다 5년 먼저 조기퇴직을 선택했다. 경제적 여유와 시간적 자유를 맞바꾼 셈이다. 나는 마치 우물 안 개구리가 세상 밖으로 뛰쳐나온 기분이었다. 이 결정은 누군가에게 객기로 보였을 것이고, 주변 사람들 중에는 금방 후회할 거라고 말하는 이들도 많았다. 나는 제2의 인생을 살기 위해 이 길을 선택했지만, 사실 특별한 계획이 있던 것은 아니었다. 단지 조금이라도 젊을 때 자유를 누리고 새로운 무언가를 찾고 싶었을 뿐이다. 그런데 블로그에 일상들을 글로 적기 시작하면서 나를 들여다보게 되었다. 내가 누군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일에 기뻐하고 즐거워하는지 점차 알게 되었다. 그리고 글을 써야만 하는 이유도 그제서야 깨달았다. 나는 익숙한 길에서 벗어나 나를 돌아보고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내가 누구인지 알아가야만 했다. 그래서 나는 내 삶을 글로 기록하고 있다. 나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 위해서, 나의 존재 이유를 찾아가기 위해 나는 글을 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제 글쓰기는 나의 꿈이자 목표가 되었다. 90세가 넘어 시를 쓰기 시작했던 일본 시인 시바타 도요는 99세에 생에 첫 시집 '약해지지 마’를 출간했다. 150만 부가 넘게 팔렸다. 시바타 할머니를 보며 나도 작가라는 새로운 꿈을 꾸는게 결코 늦지 않았다는 용기와 도전 의식을 얻게 되었다. 한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려면 '1만 시간의 법칙'이 적용된다고 한다. 하루 5시간씩 투자하면 5년이 걸린다고 하는데, 나도 5년이라는 시간을 아낌없이 글쓰기에 투자하자고 스스로 다짐해본다. 마치 한그루의 사과나무에게 물을 주듯이. 나는 글쓰기를 통해 그동안 맞추지 못했던 내 삶의 퍼즐을 하나씩 맞춰가고 있다는 확신이 든다. 5년 뒤 동네 서점에 내 시집이 깔리고, 도서관 한편에 내 에세이가 꽂혀 있을 모습을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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