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어느 월요일이었다. 시어머니 생각만 하면 가슴이 답답해지던 나는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선전포고하듯 말했다. "지금 혼자 여행 갈 거야. 금요일에 돌아올 테니까 어머니께 말씀드려줘." 간단히 짐을 챙기고 무작정 집을 나섰다. 며칠 혼자 쉬다 보면 마음이 정리되지 않을까 싶어 차를 몰고 안동으로 향했다. 4시간을 달려 안동에 도착하니, 저녁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다. 장거리 운전으로 몸도 마음도 지친 나는 간단하게 저녁을 먹고 숙소에서 쉬기로 했다. 낯선 곳에서 혼자 맞이하는 밤이었다. 전화 한 통 없는 남편이 무심하게 느껴져 마음이 여전히 어수선했다. 그렇게 첫날 밤이 흘러갔다. 다음 날 새벽 6시에 눈이 떠졌다. 기분 전환을 할 겸 갈 만한 곳을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병산서원이 자동차로 20분 거리에 있었다.
병산서원은 조선 시대 대표적인 성리학 교육기관으로 서애 류성룡 선생과 그의 셋째 아들 수암 류진을 모신 서원이다. 1575년 풍산읍에 있던 풍악서당이 병산으로 옮겨온 거였다. 서애 선생 사후 이곳 존덕사에 그의 위패를 모시면서 서원으로 격상됐다. 조선 말기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도 살아 남은 47개 서원 중 하나다.
병산서원 입구에 들어서자 햇빛을 듬뿍 받은 배롱나무 꽃밭이 마치 나를 환영하듯 레드 카펫을 펼치고 있었다. 그 빛나는 꽃밭은 서원에 생명력을 더하며, 고요한 공간에 화사함을 불어넣고 있었다. 배롱나무 꽃밭을 지나며 바라보는 서원은 과거와 현재가 하나로 이어지는 듯한 모습으로 다가왔다. 나는 과거속으로 빨려들 듯 한걸음에 병산서원의 복례문으로 들어섰다. 가장 먼저 나를 반긴 것은 마치 7폭 병풍처럼 낙동강의 하얀 백사장과 병산의 풍경을 담고 있는 만대루였다. 학문을 강론하고 휴식하는 공간인 만대루는 정면 7칸, 측면 2칸의 누각으로, 아래층은 막돌기단, 덤벙주초, 휘어진 굵은 기둥을, 위층은 잘 다듬어진 둥근 기둥과 우물마루가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품고 있었다. 450년 전 유성룡 선생도 이 넓은 누각에서 강변 바람을 맞으며 시를 읊었으리라. 만대루의 정경을 뒤로한 채 마당에 들어서서 정면을 바라보니, 동재와 서재를 끼고 중앙에 위엄 있게 자리 잡은 입교당이 보였다. '가르침을 바로 세우다’란 뜻을 지닌 곳으로 유생들은 여기서 인간 윤리를 닦았다. 나도 모르게 옷매무새를 단정하게 가다듬었다.
입교당에서 잠시 머물다 마당으로 나와 동재와 서재를 기웃거렸다. 동재와 서재는 유생들이 머물던 기숙사로 동재는 동직재, 서재는 정허재라 불렸다. 주렴계의『통서』제20 성학편에 나오는‘고요할 때 텅 비면 밝아지고, 밝아지면 이치에 통하게 된다. 움직일 때 곧으면 공평하게 되고, 공평하면 모든 일을 널리 처리할 수 있다.’라는 구절에서 유래했다. 정허재에서 많은 생각을 했다. 결혼 22년차에 시부모님을 모신 지 20년차인 나는 그동안 시어머니를 친정엄마처럼 대하며 살아왔다고 자부해 왔다. 그런데 얼마전, 어머니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일이 있었다. 친정아버지가 위암 초기 판정을 받으셔서 며칠 친정에 내려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내일 아버지가 위암 시술차 입원하셔서 친정에 다녀와야 할 것 같아요" 친정 아버지를 걱정하는 내 얘기를 듣는 둥 마는 둥 시어머니는 딴 불평을 늘어놨다. "쌈장도 없고, 뭐도 없고,... " 나는 속으로 " 그까짓 쌈장이 떨어졌다고 가지 말아야 하는 건가" 라는 생각이 들었고, 96세 친정아버지의 병을 걱정하는 나에게 그런 반응을 보인 시어머니께 화가 치밀었다. 그리고 쭉 시어머니에 대한 서운한 감정이 나를 괴롭혀왔다. 그런 나에게 정허재가 고요하게 속삭이는 듯했다. "고요해져라. 비워라. 밝아져라. 그러면 통하게 될 것이다."
입교당을 돌아 뒷마당으로 나가니, 흐드러지게 핀 배롱나무 가지가 전사청문 앞에서 나를 유혹하듯 손짓했다. 전사청은 향사 전날 제수를 준비하고 보관하는 공간으로, 서원의 다른 곳들보다 한적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배롱나무 붉은 꽃과 푸른 하늘, 고즈넉한 한옥의 기와가 어우러져 고풍스러운 아름다움을 더했다. 나는 그 배롱나무 그늘 아래에 앉아 쉬며 다시 생각에 잠겼다. 최근 나는 너무 예민해졌다. 시어머니가 내 말을 잘 듣지 못하는 까닭도 한몫했던 것 같다. 시어머니는 청력이 좋지 않아 보청기를 끼고 있다. 대화를 나누려면 같은 말을 두세 번씩 반복해야 한다. 성격 급한 나는 잘 듣지 못하는 시어머니에게 어느새 몰아치듯 말하고 있다. 친정아버지 걱정에 마음이 무거워선지 시어머니에게 도통 살가워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곳에서 모처럼 홀로 시간을 보내다 보니 왠지 마음이 누그러진다. 나는 그저 잠시 숨을 고를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던 거다. 8월의 뜨거운 햇살 아래 살갗이 익어 가는 줄도 모르고 병산서원을 이곳저곳 둘러보며 단아하면서도 정교한 건축물이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풍경 속에서 나는 자연과 하나 된 기쁨을 만끽했다. 파란 하늘과 노니는 구름 사이로 퍼지는 배롱나무 꽃향기에 취해 내 마음이 위로받는 듯했다. 서원을 둘러보는 동안 내 마음은 고요하고 평온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