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불행해서 다행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의 소식을 들었다. 친구는 다니던 직장을 때려치우고 이리저리 방황하고 있다고 한다. 꽤 많은 돈을 주식으로 날리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이라고 한다. 난 위로를 건넸다. 잘 될 거라고 응원도 해주었다.
근데 왜 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을까? 왜 안도의 한숨이 나온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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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친구가 헤매고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직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에 마음이 놓였다. 나 혼자만 밑바닥에서 허우적거리는 게 아니구나. 그래도 같이 걸어갈 누군가가 있구나. 난 그 사실에 안도했다.
"쓰레긴가..?"
난 내가 쓰레기처럼 느껴졌다. 진심으로 위로해도 모자랄 판에 다행이라고? 친구가 불행한데 안도했다고? 난 고개를 숙인 채 피식거렸다. 알 수 없는 희열이 느껴졌다. 난 내가 더러웠다. 그렇게 느껴졌다. 설명할 수 없는 감정들이 엉키고 뒤엉켰다. 도덕적이어야 한다는 마음과 그게 무슨 상관이냐는 마음이 전투를 벌였다.
나는 쓰레기인 걸까? 아니면 투명한 걸까? 심연을 너무 오랫동안 봐서 심연에 빠진 걸까? 내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 채, 내가 어떤 인간이어야 하는지도 까먹은 채.
이런 이야기가 있다. 친구의 성공을 진심으로 축하해 주는 친구가 좋은 친구다. 난 좋은 친구는 아닌가 보다. 이 말대로라면 쓰레기 중에 쓰레기겠지.
아니 어쩌면 이게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 타인의 행복은 내 행복이 충족된 뒤에야 나에게 의미가 있는 법이다. 내가 당장 하루 먹고 하루 사는데, 주위 사람들의 행복에 진심으로 축하할 여유가 있을까? 그렇다고 불행에 기뻐하는 건 아니지 않냐고? 그렇다. 맞는 말이다. 자기가 허우적거린다고 남까지 허우적거리길 바라는 것은 악마 같은 인간이지.
근데 어쩌면 우리는 모두 악마이지 않을까? 천사의 가면을 벗겨내면 누구나 악마의 얼굴이 조금씩 묻어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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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나를 정당화하고 싶지 않다. 더러운 감정에 젖었던 내 몸을 숨기고 싶지 않다. 그렇더라. 그런 생각이 들었고 그런 감정들이 느껴지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