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뭐 제가 언제는 안 했습니까?
자꾸 좀 보채지 마세요"
난 더 이상 참지 않았다. 간섭도 어느 정도껏 해야지, 이건 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뭐 그게 아니라 혹시나 해서 당부드리는 거예요"
거래처 직원은 당혹한 표정으로 말했다.
예전 같았으면 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화가 나고 짜증 나도 그냥 넘어갔을 것이다. 아니면 어떻게든 이해해 보려고 노력했거나. 난 30대 초반까진 그렇게 살았다. 화내서 뭐 해~ 화내봤자 싸우기만 하고 전혀 도움 될 거 없어~라고 생각했다. 나를 열받게 하는 사람들도 저마다 이런저런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살다 보니, 난 내가 괜찮은 줄 알았다.
언제부터였을까? 가슴이 조금씩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가슴 속에 박힌 응어리가 생명을 얻어 내 숨통을 조이고 있었다. 난 날이 갈 수록 예민해지고 불안해졌다. 난 내가 왜이러는지 알지 못했다. 누가 이 답답함을 속 시원하게 뚫어주길 갈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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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그동안 내가 누군가를 미워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원한? 증오? 난 타인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사람인데~ 그런 게 있을리 있겠어? 난 그렇게 믿었다.
하지만 그렇지 않더라. 누군가를 미워하고 증오하기도 하더라. 그 사람만 생각하면 치가 떨리고, 스멀스멀 떠오르는 기억에 잠 못 이루기도 하더라.
내가 이 사실을 언제 깨달았을까?
더 이상 참지 않고 나서부터 깨달았다.
난 어느 순간 참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해하는 것만으로는 상황을 해결할 수 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말했다. 화나면 화난다고 말했고 부당하면 부당하다 말했다. 상대방이 비꼬면 똑같이 비꼬았다. 선을 넘으면 이해하려 하지 않았고, 적당히 하라며 쏘아붙혔다.
그러자 응어리는 사라졌다. 그 사람이 미워지지 않았다. 예전보다 더 미운 행동을 해도 밉지 않았다. 하고 싶은 말을 하니까, 해야 할 말을 하니까 숨통을 조이던 응어리는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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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미워하고 싶으면? 참으면 된다. 누군가를 증오하고 싶다면? 어떻게든 이해하려고 노력하자. 도저히 이해되지 않아도, "그래... 그럴 수 있지. 그럴 의도가 아니었을 거야" 하며 분노를 삼키자. 그러면 내 가슴속에 응어리가 자라, 매일 밤 숨통을 조이며 나를 괴롭힐 것이다.
난 그렇게 생각한다.
내 가슴속에 박힌 응어리를 녹이는 유일한 방법은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거라고. 그 어떤 것도 응어리를 녹이지 못한다. 오직 하고 싶은 말을 입 밖으로 꺼낼 때, 응어리는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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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난 부처님 같은 이해심을 가지길 원했다. 내가 깨달으면 모든 분노, 모든 원망으로부터 벗어날 줄 알았다. 아니더라. 물론 내가 깨달은 건 아니지만 지금 와서 되돌아보면 그동안 나 자신에게 최면을 걸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나 자신에게 되뇌면 되뇔수록 결국은 더 고통스러워졌으니까. 인내심? 이해? 용서? 글쎄, 필요하긴 하겠지만 더 이상 나에게는 중요한 단어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