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도 난 똑같은 실수를 반복했다.
진짜. 진짜 진짜 가지고 싶은 게 아니면 사지 말았어야 했는데, 또 본능에 이끌려 돈을 써버렸다. 내가 정말 만족했다면. 돈을 쓴 만큼 뽕을 뽑았다면 이렇게 후회하진 않을 텐데. 땅을 치고 후회할 땐 이미 늦은 법. 이번에도 난 똑같은 실수를 반복했다.
모든 사람들이 이런 경험을 한 번쯤은 한다. 정말 사고 싶었는데, 막상 사면 별로 안 쓰게 되는. 가장 대표적인 예시가 옷 아닐까? 난 어릴 때 옷을 정말 좋아했다. 알바해서 월급을 받으면 80%를 옷에 쏟아부었다. 셔츠사고 신발사고 바지사고 잠바사고. 명품을 좋아하진 않았다. 오히려 명품은 낭비라고 생각했지. 명품 셔츠 하나 살빠에 보세 셔츠 10장 사 입는 걸 훨씬 선호했다.
아무튼 난 어릴 때 충동적으로 옷을 구매한 적이 많았다. 그때마다 뼈저리게 후회했다. 5년 동안 방치한 뒤 버려버린 체크무늬 바지. 막상 입으려니 부담이 됐을까? 아니면 생각보다 이쁘지 않아서일까? 이상하다. 이 놈을 처음 봤을 땐 홀렸었는데, 막상 집으로 데려오니 다르게 보였다. 이뿐이었을까? 신발, 가방, 자켓 등등 종류별로 2 3번씩은 그랬던 것 같다.
휴... 이때 난 충분히 깨달은 줄 알았다. 진짜... 정말 정말 정말 필요한 게 아니면. 너무너무 가지고 싶은 게 아니면 사지말자 라는 깨달음. 하지만 인간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분야만 바뀌었을 뿐 습성은 여전했다. 이번엔 향수였다.
최근 난 향수에 꽂혔다. 담배도 끊었겠다, 나도 이제 향수나 좀 뿌려볼까? 했던 게 시작이었다. 처음엔 내가 무슨 향을 좋아하는지 몰랐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당연히 시향이다. 난 부산에 있는 모든 백화점을 쏘아 다녔다. 어느 백화점에나 있는 1층 뷰티라인. 여기서 듣고 저기서 들은 향수는 모조리 시향한 것 같다.
어느 정도 향을 맡다 보니 가닥이 잡히기 시작했다. 음. 내가 스킨향은 싫어하고, 무화과도 싫고, 너무 단향도 싫고...... 난 계속 이향 저 향 맡아보며 데이터를 축적했다. 그러자 마음에 드는 향수가 몇 개 눈에 들어왔다. 가격도 적당. 향도 나쁘지 않고. 데일리로 뿌리기에 적당해 보였다. 그래서 샀다. 세병이나. 한순간에.
들뜬 마음에 난 집으로 돌아와 향수를 뿌렸다. 나쁘지 않았다. 근데 마음속 한구석에서 이런 말이 들렸다.
"야. 진짜 좋은 거 맞아?ㅋㅋㅋ시향 하면서 별로인 향을 계속 맡다 보니까 이게 좋게 느껴지는 거 아냐? 현아, 이거 100ML야. 너 이거 다 뿌릴 만큼 좋아? 아니잖아"
난 내 마음속에서 울리는 목소리를 무시했다. 그 말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난 향수들을 서랍에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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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가 가고 이틀이 갔다. 이상했다. 난 향수를 뿌려야 하는 날에도 향수를 뿌리지 않았다. 자꾸 사소한 문제들이 내 발목을 잡았다. 아~ 친구 만나러 갈 땐 너무 쎈 향인데? 아~ 이향은 좀 댄디하게 입어야 딱 맞는데~ 아~ 이 향은 좀 어디가 아쉬운데~
문득 두 가지 생각이 들더라. 첫째. 진짜 이런 문제들이 내 발목을 잡고 있거나. 둘째. 아니면 그냥 내가 이 향수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데, 좋아한다고 생각했거나. 그래서 지금 이런저런 핑계 대며 안 쓰려고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나 자신을 속이고 있는 거지. 좋아하지도 않는 향수를 비싼 돈 주고 샀다는 사실이 분명해지면 나 자신이 한심해지니까.
언제까지 나 자신을 속일 수 있을까?그렇다. 결국 난 인정하고야 말았다. 내가 졌다. 내가 어리석었다. 또. 또 어릴 때와 같은 실수를 반복했다.
그냥. 정말 마음에 드는 향. 하지만 비싸서 고개를 돌렸던 향을 무리해서라도 사는 게 차라리 나았을 것이다. 정말 필요하지도 않은데, 정말 갖고 싶은 것도 아닌데, 충동적으로 사버렸다. 하...이번에 또...또 깨닫는다. 그런데, 언제까지 깨닫기만 해야 해...?현아 앞으로는 좀 그만 깨달으면 안 되겠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