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메랄드 타블렛』제11장

제11장: 열한 번째 구절 주해

by 이호창

제11장: 열한 번째 구절 주해


원문:

“이로부터 놀라운 적응이 일어나니, 그 방식은 여기에 있다.”

(Ex hac una re sunt et fuerunt omnes adaptationes mirabiles, quarum modus est hic.)


11.1. 우주론적 해석: 자연의 끊임없는 창조와 변용


열 번째 구절이 “이처럼 세상이 창조되었다”고 선언하며 태초의 창조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설명했다면, 열한 번째 구절은 그 창조가 결코 과거의 단 한 번의 사건으로 끝나지 않았음을 밝힙니다. 창조는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되고 있으며, 그 방식은 바로 “놀라운 적응(adaptationes mirabiles)”을 통해서입니다. 이 구절은 우리에게 우주가 정적인 완성품이 아니라, ‘하나의 실체’라는 근원적인 힘이 끊임없이 새로운 형태로 자신을 변용시키고 펼쳐내는, 살아있고 역동적인 과정임을 가르쳐줍니다. 세상의 창조는 완결된 것이 아니라, 영원히 지속되는 창조의 ‘과정’ 그 자체입니다.


창조의 제2막: ‘적응’의 드라마


세 번째 구절에서 ‘적응(adaptatione)’이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했을 때, 그것은 ‘하나’가 ‘여럿’으로 분화되는, 즉 유출의 방식을 설명하는 개념이었습니다. 그러나 열한 번째 구절에서 이 단어는 복수형, 즉 ‘적응들(adaptationes)’로 사용되며, 훨씬 더 역동적이고 구체적인 의미를 띠게 됩니다. 이제 ‘적응’은 단순히 근원적인 힘이 다른 형태로 나타나는 것을 넘어, 이미 창조된 것들 사이의 상호작용을 통해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놀라운” 새로운 것들이 태어나는, 창조의 제2막을 의미합니다.

이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생명의 진화 과정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는 수십억 년 전, 하나의 공통된 조상, 즉 ‘하나의 실체’로부터 비롯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원초적 생명은 자신을 둘러싼 다양한 환경(바다, 육지, 공중)에 ‘적응’하는 과정을 통해, 오늘날 우리가 보는 수백만 종의 경이로운 생명체들로 분화하고 발전해 왔습니다. 기린의 긴 목, 독수리의 날카로운 눈, 심해 물고기의 발광 기관 등, 이 모든 “놀라운 적응들”은 근원적인 생명의 힘이 다양한 현실적 조건과 만나 상호작용하며 빚어낸 창조의 결과물입니다.

마찬가지로, 우주 자체도 이러한 끊임없는 적응의 과정 속에 있습니다. 별들은 수소라는 단일한 원소로부터 시작하여, 자신의 내부 용광로에서 헬륨, 탄소, 산소, 그리고 철에 이르는 모든 무거운 원소들을 ‘창조’해냅니다. 그리고 초신성 폭발을 통해 이 원소들을 우주 공간에 흩뿌리면, 그것들은 다시 새로운 행성과 생명의 재료가 됩니다. 이처럼, 우주는 하나의 완성된 그림이 아니라, 모든 존재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는, 거대하고도 역동적인 연금술의 용광로입니다.


방식은 여기에 있다: 상응의 원리의 실천


타블렛은 이 놀라운 적응이 일어나는 “방식은 여기에 있다(modus est hic)”고 말하며, 그 비밀이 바로 『에메랄드 타블렛』 자체에 담겨 있음을 암시합니다. 그 방식이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지금까지 설명된 모든 원리들, 특히 ‘상응의 원리’와 ‘진동의 원리’, 그리고 ‘성의 원리’의 조화로운 적용입니다.

『키발리온』은 ‘성의 원리(The Principle of Gender)’가 창조의 모든 차원에서 작동한다고 가르칩니다. 모든 것에는 남성적 원리(방출)와 여성적 원리(수용)가 있으며, 창조는 반드시 이 두 원리의 결합을 통해 일어납니다. 자연 속에서, 태양(남성성)의 빛과 열은 땅(여성성)과 만나 식물을 싹 틔웁니다. 이처럼, 우주 안의 모든 존재는 서로의 남성적 원리와 여성적 원리가 되어,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잉태하고 탄생시키는 ‘우주적 성교(cosmic coitus)’의 과정 속에 있습니다.

또한, ‘진동의 원리(The Principle of Vibration)’는 이 창조적 상호작용이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설명합니다. 모든 것은 고유한 진동수를 가지고 있으며, 비슷한 진동수는 서로를 끌어당기고 공명합니다. ‘놀라운 적응’이란, 서로 다른 진동수를 가진 존재들이 만나, 서로의 진동에 영향을 주고받으며,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진동의 패턴, 즉 새로운 존재를 만들어내는 과정입니다.


결론적으로, 열한 번째 구절은 우리에게 우주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합니다. 이 세계는 신이 한번 창조하고 완성시킨 뒤 내버려 둔 박물관이 아닙니다. 그것은 매 순간 새롭게 창조되고 변용되는, 살아있는 예술 작품입니다. 태초의 ‘하나의 실체’로부터 시작된 창조의 드라마는,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주변의 모든 ‘놀라운 적응들’을 통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 진리를 깨달을 때, 우리는 더 이상 세상의 방관자가 아니라, 그 끊임없는 창조와 변용의 과정에 동참하는 능동적인 참여자가 됩니다. 우리 자신의 삶을 통해, 우리는 ‘하나의 실체’가 자신을 표현하는 또 하나의 새로운 방식을 창조해내는, 위대한 우주적 예술가가 되는 것입니다.


11.2. 연금술적 해석: ‘증식(Multiplication)’의 비밀과 엘릭시르


연금술의 위대한 작업은 현자의 돌(Lapis Philosophorum)이라는 완벽한 실체의 탄생으로 절정에 이릅니다. 그러나 진정한 아뎁트(adept), 즉 이 비밀을 성취한 자에게, 이것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차원의 작업, 즉 ‘두 번째 작업’의 시작입니다. 열한 번째 구절은 바로 이 두 번째 작업의 핵심 비밀, 즉 완성된 돌이 어떻게 “놀라운 적응들”을 통해 자신을 무한히 ‘증식(Multiplication)’시키는지를 암시합니다. 이 증식의 능력을 통해, 고정된 ‘돌(Stone)’은 유동적이고 모든 것에 스며드는 ‘엘릭시르(Elixir)’, 즉 ‘보편적 의약(Universal Medicine)’으로 변모합니다.


완성에서 증식으로: 효모(Leaven)의 비의


완성된 현자의 돌은 그 자체로 완벽하지만, 그 양은 유한합니다. 만일 그 힘을 단 한 번의 변성 작업에 모두 사용해 버린다면, 연금술사는 다시 처음부터 기나긴 작업을 반복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에메랄드 타블렛』은 이 돌이 단순한 물질이 아니라, 자신과 같은 본성을 가진 새로운 돌을 무한히 창조해낼 수 있는 ‘살아있는 효모(leaven)’임을 가르칩니다.

이것이 바로 “이로부터(Ex hac una re)”라는 구절의 연금술적 의미입니다. 즉, 모든 후속 작업과 놀라운 변성들은, 바로 이 완성된 ‘하나의 실체’로부터 파생되어 나온다는 것입니다. 『헤르메스 비의』의 저자는 이 과정을 매우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그는 “완성된 돌의 아주 작은 한 조각이라도, 준비된 제1질료 위에 놓으면, 그것은 전체 덩어리를 발효시켜 자신과 같은 본성으로 만들 것”이라고 증언합니다.

이 과정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사워도우(sourdough) 스타터’를 만드는 과정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제빵사는 밀가루와 물을 섞어, 공기 중에 존재하는 야생 효모와 박테리아를 배양하여 살아있는 ‘스타터(효모)’를 만듭니다. 이 스타터의 아주 작은 일부만을 떼어내어 거대한 밀가루와 물의 반죽에 넣으면, 그 작은 효모는 스스로 증식하며 반죽 전체를 발효시켜, 독특한 풍미와 구조를 가진 빵으로 변화시킵니다. 그리고 남은 스타터는 계속해서 새로운 빵을 만드는 데 무한히 사용될 수 있습니다.

현자의 돌은 바로 이 사워도우 스타터와 같습니다. 그것은 불완전한 제1질료(밀가루와 물)를 완전한 상태(빵)로 변성시키는 살아있는 힘이며, 그 과정에서 자신을 소모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힘을 더욱 확장하고 증식시킵니다.


엘릭시르: 유동하는 생명의 물


이 증식의 과정에서, 단단하고 고정된 ‘돌’은 종종 유동적이고 침투하는 힘을 지닌 ‘엘릭시르’라는 형태로 묘사됩니다. 아랍어 ‘알-익시르(al-iksir)’에서 유래한 이 단어는 ‘마른 가루’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종종 모든 것을 녹이고 생명을 부여하는 ‘생명의 물(Aqua Vitae)’ 혹은 ‘보편적 의약’과 동일시되었습니다.

증식의 과정은 완성된 붉은 돌(루베도)을 다시 그것의 ‘붉은 물’, 즉 정화된 수은과 결합시켜 용해하는 것으로 이루어집니다. 이 과정을 통해, 돌의 고정된 힘은 다시 한번 유동성을 얻게 되며, 어떤 물질에도 쉽게 침투하여 그 본질을 변화시킬 수 있는 액체 형태의 ‘팅크제(Tincture)’가 됩니다. 이것이 바로 “놀라운 적응들”이 일어나는 방식입니다. 하나의 고정된 실체(돌)가, 새로운 조건(수은과의 결합)에 ‘적응’하여, 유동하는 엘릭시르라는 새로운 형태와 능력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방식은 여기에 있다: 상응 원리의 재확인


그렇다면 이 놀라운 증식의 “방식은 여기에 있다”는 선언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것은 증식의 법칙 또한, 창조의 법칙과 마찬가지로, 『에메랄드 타블렛』 자체에 담겨 있다는 뜻입니다. 연금술사는 돌을 만들기 위해 사용했던 바로 그 원리들—상응의 원리, 진동의 원리, 성의 원리 등—을 다시 사용하여 돌을 증식시킵니다.

예를 들어, 그는 ‘성의 원리(The Principle of Gender)’를 다시 적용합니다. 완성된 돌(남성성/유황)을, 그것의 짝인 정화된 수은(여성성/물)과 다시 한번 결합시켜 새로운 탄생을 이끌어냅니다. 또한 그는 ‘리듬의 원리(The Principle of Rhythm)’에 따라, 위대한 작업의 전 과정(솔베와 코아굴라)을 더 짧은 주기로 반복함으로써, 돌의 힘을 기하급수적으로 강화시킵니다.


이처럼, 증식의 과정은 새로운 법칙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이미 배운 창조의 법칙을 더 높은 차원에서 능숙하게 적용하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하나의 돌을 만드는 데 평생이 걸렸던 연금술사는, 이제 그 법칙에 통달하여, 하루 만에 수많은 돌을 만들어낼 수 있는 창조의 거장이 되는 것입니다.이 열한 번째 구절이 우리에게 주는 연금술적 가르침은 심오합니다. 진정한 완성은 결코 정적인 상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끊임없이 자신을 확장하고, 나누어주며, 새로운 창조를 잉태하는 역동적인 생명의 과정입니다. 현자의 돌은 박물관에 전시되는 보석이 아니라, 세상을 비옥하게 만드는 강물의 근원입니다. 이 증식의 비밀을 이해하고 실천하는 자만이, 개인적인 완성을 넘어, 세상 전체를 치유하고 황금으로 변성시키는, 위대한 작업의 최종적인 목적을 성취하게 될 것입니다.


11.3. 심리학적 해석: 개성화된 자아의 창조적 삶


심리적 연금술의 여정 끝에, 마침내 한 개인이 자신의 내면에서 ‘현자의 돌’, 즉 온전하고 통합된 ‘자기(Self)’를 발견했을 때, 그의 이야기는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시작됩니다. 열한 번째 구절은 바로 이 ‘개성화된(individuated)’ 자아가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심리적 지침입니다. 개성화는 결코 완벽한 인간이 되어 모든 변화가 멈추는 정적인 상태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이로부터 놀라운 적응이 일어나니”라는 구절이 암시하듯, 안정된 내면의 중심(하나의 실체)으로부터, 삶의 모든 새로운 도전에 창조적으로 반응하고 자신을 끊임없이 확장해나가는 역동적인 삶의 방식입니다.


완성에서 창조로: 개성화된 자아의 삶


이전까지 구도자의 삶은, 내면의 분열과 갈등을 해결하고 통일성을 회복하기 위한 ‘치유’의 과정에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일단 내면의 중심이 확립되고, 의식과 무의식이 조화로운 관계를 맺게 되면, 그의 심리적 에너지는 더 이상 내적 갈등을 해결하는 데 소모되지 않습니다. 이제 그 에너지는 외부 세계를 향해 창조적으로 흘러나가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바로 “이로부터(Ex hac una re)”라는 구절의 심리학적 의미입니다. 즉, 모든 창조적인 삶의 활동은, 바로 이 통합된 ‘하나의 실체’, 즉 ‘자기’로부터 자연스럽게 파생되어 나온다는 것입니다.

이 과정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한 명의 위대한 예술가의 삶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젊은 시절, 그는 자신의 미숙한 기술과 내면의 불안, 그리고 세상의 비판과 싸우며 자신만의 독창적인 화풍(현자의 돌)을 확립하기 위해 고군분투합니다. 마침내 그가 자신만의 스타일을 완성했을 때, 그의 작업은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이제 그 확립된 스타일이라는 견고한 토대 위에서,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자유와 깊이를 가지고, 다양한 주제와 형식을 탐구하며 수많은 “놀라운 적응들”, 즉 위대한 걸작들을 창조해냅니다. 그의 모든 후기 작품들은, 그가 이룩한 ‘하나의 경지’로부터 자연스럽게 흘러나온 창조적 변주들입니다.

개성화된 자아의 삶 또한 이와 같습니다. 그는 더 이상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는 자신의 중심을 찾았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는 그 안정된 중심으로부터, 자신의 삶에 주어진 모든 새로운 관계와 과제, 그리고 위기 상황에 대해 이전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반응하기 시작합니다.


놀라운 적응들: 창조적 삶의 방식


“놀라운 적응들”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것은 개성화된 자아가 삶의 예측 불가능한 변화에 대해, 경직된 규칙이나 과거의 방식이 아닌, 매 순간 새롭고 창조적인 방식으로 반응하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갑작스러운 실직이라는 위기를 맞았다고 가정해 봅시다. 개성화되지 않은 사람은 이 사건을 재앙으로 여기며, 절망과 자기 연민에 빠지거나, 세상을 원망하며 분노를 터뜨릴 것입니다. 그의 반응은 과거의 상처와 두려움에 의해 결정되는, 예측 가능한 ‘자동적 반응’입니다.

그러나 개성화된 자아는 이 동일한 사건에 다르게 ‘적응’합니다. 그는 물론 슬픔과 두려움을 느끼지만, 그 감정에 압도당하지 않습니다. 그는 이 사건이 자신의 삶에 어떤 새로운 의미와 가능성을 가져다줄 수 있는지를 성찰합니다. 그는 이것이 어쩌면 자신이 진정으로 원했던 다른 길을 탐색해 보라는, 내면의 ‘자기’가 보내는 신호일 수 있음을 알아차립니다. 그는 이 위기를, 자신의 숨겨진 재능을 발견하거나, 새로운 기술을 배우거나, 혹은 삶의 방향을 근본적으로 재설정하는 ‘창조적 기회’로 변환시킵니다. 이것이 바로 『키발리온』의 ‘원인과 결과의 원리(The Principle of Cause and Effect)’를 마스터한 자의 모습입니다. 그는 더 이상 결과의 평면에서 수동적으로 반응하는 존재가 아니라, 원인의 평면으로 올라가, 모든 사건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을 자신의 성장 동력으로 사용하는 창조자가 됩니다.


방식은 여기에 있다: 내면의 나침반


이러한 창조적 삶의 “방식은 여기에 있다”고 타블렛은 말합니다. 그 방식은 외부의 어떤 규칙이나 스승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내면의 ‘자기’와의 끊임없는 대화 속에 있습니다. 개성화된 자아는 더 이상 사회의 기대나 타인의 평가라는 외부의 나침반에 의존하지 않습니다. 그는 자신의 가장 깊은 곳에서 울려 퍼지는 ‘자기’의 목소리, 즉 직관과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 내면의 나침반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자신의 길을 걸어갑니다.

이것은 결코 이기적인 삶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진정한 ‘자기’와 연결된 사람은, 필연적으로 타인과 세상 전체와의 깊은 연결감을 느끼게 됩니다. 그가 행하는 창조적인 활동은 단지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가 속한 공동체와 세상 전체를 치유하고 풍요롭게 하는 ‘보편적 의약’, 즉 엘릭시르가 됩니다.

이처럼 열한 번째 구절은 우리에게, 심리적 성장의 최종 목표가 고요한 안식처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한복판에서 춤추는 것임을 가르쳐줍니다. 진정한 완성은, 안정된 내면의 중심을 잃지 않으면서도, 삶의 모든 변화와 도전에 유연하고 창조적으로 반응하는 역동적인 과정입니다. 이 ‘놀라운 적응’의 비밀을 이해하고 실천하는 자만이, 개인적인 구원을 넘어, 자신의 삶 자체를 통해 세상을 치유하고 변성시키는, 위대한 작업의 진정한 결실을 맺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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