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인간의 목자, 포이만드레스

제1장. 인간의 목자, 포이만드레스

by 이호창

제1장. 인간의 목자, 포이만드레스(Poemandres, The Shepherd of Men)


헤르메스주의 문헌들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이 기록은, 한 인간의 영혼이 우주적 지성과 만나 우주의 창조, 인간의 본질과 운명에 관한 장엄한 계시를 받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르네상스 시대부터 수많은 사상가들은 이 창조 신화가 구약의 「창세기, Genesis」로부터 일부 영감을 받은 듯하면서도, 동시에 그에 맞서 새로운 구원의 길을 제시하는 독창적인 방식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이곳에서 인류의 타락(Fall)은 불순종의 죄가 아니라 사랑(love)이라는 신성한 동기에서 비롯된 원초적 인간(Primal Man)의 하강으로 그려지며, 그 여정은 신의 축복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또한 문헌의 9절, 14절, 25절에 걸쳐 논의되는 운명의 일곱 지배자들은 일곱 행성의 아르콘(archon)들을 가리키는데, 이는 플라톤(Plato)의 『티마이오스, Timaeus』를 비롯하여 보통 ‘영지주의(Gnostic)’라 통칭되는 여러 고대 문헌들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개념입니다. 다만 이곳에서 그들의 역할은 기묘할 정도로 양가적인데, 그들은 조화(Harmony)의 권능들이면서 동시에 인류가 지닌 악한 경향성의 근원이 되기도 하는 모순적인 존재로 묘사됩니다.


1. 어느 한때 나의 마음이 존재의 심연을 깊이 명상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나의 사유는 위대한 고양의 경지에 이르렀고, 기름진 음식을 가득 채운 뒤나 육체의 고단함으로 깊은 잠에 빠진 사람들처럼, 내 몸의 모든 감각은 그 활동을 멈추었습니다. 그때, 그 크기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광대무변한 한 존재가 나의 이름을 부르며 이같이 말하는 듯하였습니다. “네가 듣고 보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며, 배우고 알고자 마음에 품은 것은 무엇이냐?”


2. 나는 답하여 물었습니다. “당신은 누구이십니까?” 그가 말하기를, “나는 인간의 목자, 포이만드레스(Poemandres)이며, 만물의 주재자이신 마음(Mind of all-masterhood)이다. 나는 네가 무엇을 갈망하는지 알고 있으며, 나는 어디에나 너와 함께 있노라.”


3. 나는 다시 답하였습니다. “저는 존재하는 것들을 배우고, 그 본질을 이해하며, 신을 알고 싶나이다. 이것이 제가 듣고 싶은 전부입니다.” 그가 내게 응답하였습니다. “네가 알고자 하는 모든 것을 네 마음속에 굳게 붙잡아라, 그러면 내가 너를 가르치리라.”


4. 그 말이 끝나자마자 그의 모습은 변하였고, 눈 깜짝할 사이에 모든 것이 내 앞에 열렸습니다. 나는 한계 없는 환영(Vision)을 보았으며, 모든 것이 달콤하고 기쁨에 찬 빛(Light)으로 변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나는 그 광경을 응시하며 황홀경에 빠져들었습니다. 그러나 잠시 후, 어둠(Darkness)이 그 환영의 일부에 뱀처럼 꿈틀거리는 형상으로 내려앉았으니, 실로 경외롭고 음울한 광경이었습니다. 이윽고 그 어둠은 형언할 수 없는 기세로 요동치는 일종의 축축한 본성(Moist Nature)으로 변하여, 마치 불에서 피어오르듯 연기를 내뿜고 형용할 수 없는 비통한 신음 소리를 내었습니다. 그 뒤를 이어, 마치 불의 목소리(Voice of Fire)인 듯한, 분절되지 않은 외침이 터져 나왔습니다.


5. 바로 그때, 빛으로부터 하나의 거룩한 말씀, 로고스(Logos)가 그 축축한 본성 위로 내려왔습니다. 그러자 축축한 본성으로부터 순수한 불(Fire)이 솟아올라 높은 곳으로 도약하였으니, 그 불은 가볍고 빠르며 활기에 차 있었습니다. 공기(Air) 또한 가벼웠기에 그 불의 뒤를 따랐으며, 흙과 물(Earth-and-Water)로부터 솟아올라 불에 매달려 있는 듯 보였습니다. 그러나 흙과 물은 서로 너무나 뒤섞여 있어, 누구도 흙을 물에서 분간할 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그들 안에 스며든 영의 말씀, 곧 스피릿-워드(Spirit-Word)에 귀 기울이며 움직였습니다.


6. 그때 인간의 목자가 내게 말하였습니다. “너는 이 환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였느냐?” 내가 답하기를, “아니옵니다, 이제부터 알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가 말하였습니다. “그 빛은 바로 나, 너의 신이며 마음(Mind)이다. 나는 어둠 속에서 나타난 저 축축한 본성보다 앞서 존재하였다. 마음으로부터 나타난 빛의 말씀, 곧 라이트-워드(Light-Word)는 신의 아들(Son of God)이니라.” “그러면 무슨 의미입니까?” 내가 물었습니다. “알아라, 네 안에서 보고 듣는 것은 주님의 말씀(Logos)이요, 마음(Mind)은 아버지-신(Father-God)이라는 것을. 그 둘은 서로 분리되어 있지 않으며, 바로 그들의 합일 속에 생명(Life)이 있느니라.” “당신께 감사하나이다.” 내가 말하였습니다. “그러니 빛을 이해하고, 그것과 벗이 되어라.” 그가 답하였습니다.


7. 그렇게 말하며 그는 오랫동안 나의 눈을 응시하였고, 나는 그의 시선에 전율하였습니다. 그가 고개를 들었을 때, 나는 나의 마음 안에서 그 빛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 빛은 셀 수 없는 권능(Powers)들 안에서 빛나고 있었고, 우주(Cosmos)는 모든 한계를 넘어 성장해 있었으며, 불은 지극히 강력한 힘에 둘러싸여 마침내 정복당한 채 고요히 멈추어 서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것을 보았을 때, 나는 인간의 목자의 말씀을 통하여 비로소 그 의미를 이해하였습니다.


8. 내가 깊은 경이감에 빠져 있을 때, 그가 다시 내게 말하였습니다. “너는 마음 안에서 원형적 형상(Archetypal Form)을 보았으니, 그 존재는 시작 없는 시작 이전부터 끝없이 존재하느니라.” 인간의 목자가 이같이 말하자, 내가 다시 물었습니다. “그렇다면 자연의 원소들은 어디로부터 그 존재를 얻었나이까?” 이에 그가 답하였습니다. “신의 의지(Will of God)로부터 비롯되었다. [자연은] 말씀을 받았고, 아름다운 우주를 바라보며 그것을 본떠, 자신의 원소들과 영혼들의 탄생을 통해 스스로를 하나의 우주로 만들었느니라.”


9. 그리고 신-마음(God-the-Mind)은 빛과 생명으로 존재하는 남성이자 여성이었으니, 만물에 형상을 부여하기 위해 또 다른 마음을 낳았습니다. 그는 불과 영의 신으로서, 감각이 인지하는 우주를 둘러싸는 일곱의 지배자들(Seven Rulers)을 빚어내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들의 지배를 운명(Fate)이라 부릅니다.


10. 그 즉시, 신의 이성, 곧 로고스(Logos)는 하강하는 원소들로부터 도약하여 자연의 순수한 형성물 속으로 올라가, 형상을 빚는 마음과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는 로고스가 본질적으로 그 마음과 같았기 때문입니다. 이리하여 자연의 하강하는 원소들은 이성을 상실한 채 순수한 물질(matter)로 남게 되었습니다.


11. 그 후, 이성과 하나가 된 형상을 빚는 마음은, 여러 천구(sphere)들을 둘러싸고 소용돌이치게 하며 자신의 창조물들을 회전시켰습니다. 그는 그 창조물들이 무한한 시작으로부터 끝없는 끝을 향해 회전하도록 내버려 두었습니다. 이는 그 천구들의 순환이 마음의 의지에 따라 끝나는 바로 그 지점에서 다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강하는 원소들로부터, 자연은 이성 없는 생명들을 낳았습니다. 신께서 그들에게까지 이성을 확장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공기는 날개 달린 것들을, 물은 헤엄치는 것들을 낳았으며, 마음의 의지에 따라 흙과 물은 서로에게서 분리되었습니다. 그리고 대지는 그 품속에서 자신이 지닌 생명들, 곧 네 발 가진 것들과 파충류, 그리고 길들여진 짐승과 야생의 짐승들을 낳았습니다.


12. 그러나 만물의 아버지이신 마음(All-Father Mind)은, 생명이자 빛으로서, 그 자신과 동등한 인간(Man)을 낳으셨습니다. 그는 자신의 아이인 그 인간과 사랑에 빠지셨으니, 그는 그 아버지의 형상(Image)으로서 비할 데 없이 아름다웠습니다. 진실로, 신은 자신의 형상과 사랑에 빠지셨고, 그에게 자신의 모든 창조물들을 선사하셨습니다.


13. 그 인간이, 형상을 부여하는 자가 아버지 안에서 창조한 것들을 바라보았을 때, 그 또한 형상을 부여하기를 원하였고, 아버지는 이를 허락하셨습니다. 그는 자신의 온전한 권위를 가지기 위해 형성의 천구로 자신의 상태를 바꾸어, 그의 형제가 만든 피조물들을 바라보았습니다. 피조물들은 그와 사랑에 빠졌고, 각자 자신의 질서의 일부를 그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들의 본질을 잘 배우고 그들의 본성을 공유하게 된 후, 그는 그들의 천구의 경계(Boundary)를 꿰뚫고 나아가, 불 위에 군림하는 힘의 권능을 정복하고자 하는 마음을 품었습니다.


14. 그리하여 우주 안의 모든 필멸의 존재들과 이성 없는 생명들을 다스리는 온전한 권위를 지닌 그는, 조화(Harmony)의 체계를 뚫고 그 힘을 부수며 자신의 얼굴을 아래로 향하여, 하강하는 자연에게 신의 아름다운 형상을 보여주었습니다. 자연이 결코 채워질 수 없는 그 아름다운 형상과, 일곱 지배자들 각각의 에너지뿐만 아니라 신 자신의 형상까지 내면에 지닌 그를 보았을 때, 그녀는 사랑으로 미소 지었습니다. 그것은 마치 그녀의 물 위에 비친 인간의 가장 아름다운 형상의 이미지와 그녀의 땅 위에 드리워진 그의 그림자를 본 것과 같았습니다. 그 역시 그녀 안에, 그녀의 물 안에 존재하는 자신과 같은 형상을 보고, 그것을 사랑하여 그 안에 살기를 원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의지와 함께 행동이 뒤따랐으니, 그는 이리하여 이성 없는 형상에 생명을 불어넣었습니다. 그리고 자연은 사랑의 대상을 품에 안고 자신을 온전히 그에게 감았으며, 그들은 연인들이었기에 서로 뒤섞였습니다.


15. 이것이 바로 지상의 모든 피조물을 넘어 인간이 이중적(twofold)인 이유입니다. 육체로 인하여 필멸의 존재이지만, 본질적 인간으로 인하여 불멸의 존재입니다. 죽음을 모르고 만물을 다스리는 권능을 지녔음에도, 그는 필멸의 존재처럼 고통을 겪으며 운명에 종속됩니다. 이처럼 조화의 체계 위에 있으면서도, 조화의 체계 안에서 노예가 되었습니다. 남성-여성인 아버지로부터 나와 남성-여성이며, 잠들지 않는 아버지로부터 나왔기에 잠들지 않아야 함에도, 그는 잠에 정복당합니다.


16. 이에 내가 말하였습니다. “오, 나의 마음이시여, 가르침을 이어주소서. 저 자신 또한 말씀(Logos)을 열렬히 사랑하나이다.” 목자가 말하였습니다. “이것은 오늘날까지 숨겨져 온 신비이니라. 인간에게 포옹된 자연은 오, 실로 경이로운 하나의 경이를 낳았다. 그가, 내가 네게 말했듯이, 불과 영으로 만들어진 일곱 조화의 본성을 지녔기에, 자연은 지체하지 않고 즉시 일곱의 본성에 상응하는 일곱의 ‘인간들’을 낳았으니, 그들은 남성-여성이며 공중에서 움직이는 존재들이었다.” 이에 내가 말하였습니다. “오, 목자시여, ... 이제 저는 위대한 갈망으로 가득 차 듣기를 원하오니, 서둘러 떠나지 마소서.” 목자가 말하였습니다. “침묵을 지켜라, 아직 나는 너를 위해 첫 번째 담론(logoi)을 다 펼치지 않았노라.” “보소서, 저는 고요히 있나이다.” 내가 말하였습니다.


17. 내가 말한 바와 같이, 그러한 방식으로 이 일곱의 생성이 이루어졌습니다. 대지는 여인과 같았고, 그 물은 갈망으로 가득 찼으며, 불로부터 성숙을, 에테르(Aether)로부터 영을 취하였습니다. 자연은 이처럼 인간의 형상에 걸맞은 틀들을 낳았습니다. 그리고 인간은 빛과 생명으로부터 영혼과 마음으로 변화하였으니, 생명으로부터는 영혼으로, 빛으로부터는 마음으로 변화하였습니다. 그리고 감각 세계의 모든 부분들은 그들의 종말과 새로운 시작의 시기가 올 때까지 이처럼 지속되었습니다.


18. 이제 네가 듣기를 갈망하는 담론의 나머지를 들어라. 그 시기가 끝나자, 그들 모두를 묶고 있던 결박이 신의 의지에 의해 풀렸습니다. 모든 동물들이 남성-여성이었으나, 인간과 함께 동시에 분리되었습니다. 어떤 것들은 부분적으로 남성이 되었고, 어떤 것들은 같은 방식으로 부분적으로 여성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즉시 신께서 그의 거룩한 말씀(Logos)으로 선포하셨습니다. “너희 모든 피조물과 창조물들아, 번성하여 늘어나고, 수가 많아져라. 그리고 그 안에 마음을 지닌 인간은, 자기 자신이 불멸의 존재이며, 죽음의 원인이 사랑임을 배우게 하라, 비록 사랑이 전부일지라도.”


19. 그가 이같이 말씀하셨을 때, 그의 예지(Forethought)는 운명과 조화를 통해 그들의 결합과 생식의 토대를 마련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모든 것들은 그 종류에 따라 번성하였습니다. 이처럼 자신을 알게 된 자는 풍요를 초월하는 선(Good)에 이르렀으나, 길을 잃게 만드는 사랑을 통해 자신의 사랑을 육체에 쏟는 자는 어둠 속에 머물며 방황하고, 감각을 통해 죽음의 것들을 겪으며 고통받습니다.


20. 내가 물었습니다. “무지한 자들이 불멸성을 박탈당할 만큼 저지르는 그토록 큰 잘못은 무엇입니까?” 그가 말하였습니다. “오, 너는 네가 들은 것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듯하구나. 내가 네게 생각하라고 명하지 않았더냐?” “예, 저는 생각하고 기억하며, 그러므로 당신께 감사하나이다.” “네가 그에 대해 생각했다면 내게 말해보아라. 죽음 안에 있는 자들은 왜 죽음을 받아 마땅한가?” “그것은 음울한 어둠이 물질적 구조의 뿌리이자 토대이기 때문입니다. 그로부터 축축한 본성이 나왔고, 이로부터 감각 세계의 육체가 구성되었으며, 이 육체로부터 죽음이 물기를 짜내기 때문입니다.”


21. “너의 생각이 옳도다! 그러나 신의 말씀(Logos)이 선언하셨듯이, ‘자신을 아는 자는 어떻게 그분께로 가는가’?” 그리고 나는 답합니다. “만물의 아버지는 빛과 생명으로 이루어져 계시며, 그분으로부터 인간이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네가 잘 말하는구나. 빛과 생명은 아버지-신이시며, 그분으로부터 인간이 태어났다. 만약 네가 너 자신이 생명과 빛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들로부터 나왔음을 배운다면, 너는 다시 생명으로 돌아가리라.” 인간의 목자가 이같이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제 마음이시여, 제게 더 말씀해주소서.” 내가 외쳤습니다. “저는 어떻게 다시 생명에 이를 수 있습니까? 신께서 ‘마음을 지닌 자는, 그 자신이 불멸임을 알게 하라’고 하셨나이다.”


22. “모든 인간이 마음을 가지고 있지 않느냐?” “네가 잘 말하는구나. 나, 마음은 거룩하고 선하며, 순수하고 자비로운 자들, 경건하게 사는 자들과 함께 있노라. 그러한 자들에게 나의 현존은 도움이 되며, 그들은 즉시 만물에 대한 그노시스(gnosis)를 얻고, 순수한 삶을 통해 아버지의 사랑을 얻으며, 그분께 감사하고, 축복을 기원하며, 뜨거운 사랑으로 그분을 향해 찬가를 부른다. 그리고 그들이 육체를 그 본연의 죽음에 내어주기 전에, 그들은 육체의 감각들과 그것들이 작동하는 방식에 대한 앎으로부터 혐오하며 돌아선다. 아니, 바로 나, 마음이 육체에 일어나는 작용들이 그 자연적인 끝에 이르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나는 문지기로서 모든 입구들을 닫고, 저급하고 악한 에너지들이 유발하는 정신적 활동들을 차단할 것이다.”


23. “그러나 마음 없는 자들, 사악하고 타락한 자들, 질투하고 탐욕스러운 자들, 그리고 불경을 행하고 사랑하는 자들에게 나는 멀리 떨어져, 복수하는 다이몬(Avenging Daimon)에게 내 자리를 내어준다. 그는 불을 더욱 날카롭게 하여 그를 고문하고, 그에게 불 위에 불을 더하며, 그의 감각을 통해 그에게 돌진하여, 그가 법을 어길 준비가 더 잘 되도록 만든다. 그리하여 그는 더 큰 고통을 만나게 되며, 끝없이 무절제한 욕망에 대한 갈망을 멈추지 않고, 어둠 속에서 만족할 줄 모르고 분투한다.”


24. “오, 마음이시여, 당신은 제가 원했던 모든 것을 잘 가르쳐주셨습니다. 이제 부디, 저를 위해 지금 존재하는 저 위의 길(Way Above)의 본질에 대해 더 말씀해주소서.” 이에 인간의 목자가 말하였습니다. “물질적 육체가 해체될 때, 먼저 너는 육체 자체를 변화의 작용에 내어준다. 그리하여 네가 가졌던 형상은 사라지고, 너는 너의 삶의 방식을 그 에너지가 없는 채로 다이몬에게 넘겨준다. 다음으로 육체의 감각들은 그들의 근원으로 돌아가 분리되어 에너지로 부활하며, 정념과 욕망은 이성이 없는 본성으로 물러난다.”


25. “그리고 이리하여 인간은 그 후 조화의 체계를 통해 위로 빠르게 나아간다. 첫 번째 구역(zone)에서 그는 성장과 쇠퇴의 에너지를 내어놓는다. 두 번째 구역에서, 이제는 에너지가 고갈된 악의 계략을 내어놓는다. 세 번째 구역에서, 에너지가 고갈된 욕망의 간계를, 네 번째 구역에서, 역시 에너지가 고갈된 그의 지배적인 오만을 내어놓는다. 다섯 번째 구역에서, 불경한 대담함과 무모한 만용을, 여섯 번째 구역에서, 그 확대가 박탈된 채 악한 수단으로 부를 추구하는 노력을, 그리고 일곱 번째 구역에서, 에너지가 고갈된 함정에 빠뜨리는 거짓을 내어놓는다.”


26. “그런 다음, 조화의 모든 에너지가 벗겨진 채, 자신의 본래 권능(Power)을 입고, 그는 여덟 번째에 속한 본성에 이른다. 그리고 그곳에서 존재하는 자들과 함께 아버지를 찬양한다. 그곳에 있는 자들은 그의 도착을 기쁨으로 환영하며, 그는 그곳에 거하는 자들과 같이 되어, 여덟 번째에 속한 본성 위에 있는 권능들이 그들 자신의 언어로 신께 찬양의 노래를 부르는 것을 듣는다. 그런 다음 그들은 무리를 지어 아버지의 집으로 간다. 그들은 스스로를 권능들에게 내어주고, 그리하여 권능들이 되어 신 안에 존재하게 된다. 이것이 그노시스를 얻은 자들을 위한 선한 끝이니, 곧 신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그러니 너는 왜 지체하느냐? 네가 모든 것을 받았으니, 마땅히 합당한 자들에게 길을 가리켜, 너를 통해 필멸의 인류가 너의 신에 의해 구원받도록 해야 하지 않겠느냐?”


27. 이 말씀을 마치시고, 인간의 목자는 권능들 속으로 섞여 드셨습니다. 그러나 나는 만물의 아버지께 감사와 축복을 드리며 자유로워졌고, 그가 내게 부어주신 힘과, 만물의 본질과 가장 고귀한 환영에 대해 가르쳐주신 것으로 가득 찼습니다. 그리고 나는 사람들에게 경건함과 그노시스의 아름다움을 설교하기 시작했습니다.


28. “오, 땅에서 태어난 사람들이여, 그대들은 무지의 술에 취하고 잠에 빠져 신을 알지 못하는도다. 이제 정신을 차리고, 그대들의 과음에서 깨어나, 비이성적인 잠에 현혹되기를 멈추어라!” 그들이 이 말을 듣고, 일제히 내게로 왔습니다. 이에 내가 말합니다. “땅에서 태어난 사람들이여, 어찌하여 그대들은 불멸을 나눌 힘이 있으면서도 스스로를 죽음에 내어주었는가? 오류와 팔짱을 끼고 걷고 무지를 그대들 식탁의 동반자로 삼는 그대들이여, 회개하라! 어둠의 빛에서 벗어나, 불멸에 참여하고, 파괴를 버려라!”


29. 그들 중 일부는 입술에 조소를 띠고 나를 떠나, 스스로를 죽음의 길에 내던졌습니다. 다른 이들은 가르침을 간청하며 내 발 앞에 엎드렸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들을 일으켜 세워, 인류를 고향으로 인도하는 지도자가 되어, 그들이 어떻게 구원받을 것인지 그 말씀(logoi)을 가르쳤습니다. 나는 그들 안에 지혜의 말씀을 심었고, 그들은 불멸의 물을 마셨습니다.


30. 저녁이 되어 태양의 모든 빛이 지기 시작했을 때, 나는 그들 모두에게 신께 감사하라고 명했습니다. 그들이 감사의 기도를 마쳤을 때, 각 사람은 자신의 안식처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나는 내 마음에 인간의 목자의 은혜를 기록했고, 나의 모든 희망이 이루어져 기쁨에 넘쳤습니다. 육체의 잠은 영혼의 깨어남이 되었고, 눈을 감음은 참된 환영이 되었으며, 나의 침묵은 선으로 가득 찼고, 내 말의 발화는 선한 것들을 낳았습니다. 이 모든 것이 나의 마음, 곧 만물의 주재자이신 말씀이신 인간의 목자로부터 내게 일어난 일이니, 그로 말미암아 신의 영감을 받아 나는 진리의 평원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므로 나의 온 영혼과 힘을 다해 아버지-신께 감사를 드리노라.


31. “거룩하시도다, 오, 신이시여, 만물의 아버지시여. 거룩하시도다, 오, 신이시여, 당신의 뜻은 당신 자신의 권능들을 통해 스스로를 완성하시나이다. 거룩하시도다, 오, 신이시여, 당신 자신에 의해 알려지기를 원하시고 알려지시는 분이시여. 거룩하시도다, 당신은 말씀을 통해 존재하는 것들을 존재하게 하셨나이다. 거룩하시도다, 당신은 만물이 그 형상이 되신 분이시여. 거룩하시도다, 당신의 형상은 자연이 결코 만들지 못했나이다. 거룩하시도다, 당신은 모든 권능보다 더 강력하시나이다. 거룩하시도다, 당신은 모든 탁월함을 초월하시나이다. 거룩하시도다 당신, 모든 찬양보다 더 나으신 분이시여. 오, 발설할 수 없고, 말할 수 없으며, 당신의 이름은 오직 침묵만이 표현할 수 있는 분이시여, 영혼과 마음으로부터 당신을 향해 영원히 뻗은 저의 순수한 이성의 제물을 받으소서.”


32. “우리 공동 존재의 본질인 그노시스를 결코 잃지 않도록 기도하는 저의 말을 들어주소서. 당신의 권능과 당신의 은총으로 저를 채우사, 인류의 무지 속에 있는 자들, 저의 형제들이며 당신의 아들들에게 제가 빛을 줄 수 있게 하소서. 이 까닭에 저는 믿고 증언하며, 생명과 빛으로 나아가나이다. 오, 아버지시여, 복되시도다. 당신의 사람이 당신께서 그에게 온전한 권위를 주셨듯이, 당신께서 거룩하신 것처럼 거룩하기를 원하나이다.”


포이만드레스, 인간의 목자」 주해


1. 마음의 목자, 포이만드레스의 현현(顯現)


모든 신성한 계시는, 그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된 영혼에게만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코르푸스 헤르메티쿰』의 첫 번째 논고인 「포이만드레스」는 바로 이 계시의 근원적인 전제 조건을 묘사하는 것으로 그 장엄한 서사를 시작합니다. 화자(話者)인 헤르메스는 어느 날 우연히 신적인 존재와 마주친 것이 아닙니다. 그는 “나의 마음이 존재하는 것들을 깊이 명상하고 있을 때, 나의 사유는 위대한 고양의 경지에 이르렀고, 내 몸의 모든 감각은 그 활동을 멈추었다”고 증언합니다. 이는 마치 “기름진 음식을 가득 채운 뒤나 육체의 고단함으로 깊은 잠에 빠진 사람들”과 같은 상태였다고 묘사되는데, 이는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외부 세계를 향한 모든 감각의 문을 닫고, 의식을 온전히 내면으로 집중시키는 깊은 명상적 삼매(三昧) 상태에 이르렀음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위대한 작업을 위한 첫 번째 필수적인 단계, 즉 ‘내면 성소(聖所)의 마련’입니다. 외부 세계의 소음과 감각적 자극으로 가득 찬 의식이라는 그릇을 먼저 깨끗이 비워낼 때, 비로소 그 안에 신성한 지혜의 감로(甘露)가 담길 수 있습니다. 육체의 감각이 활동을 멈추고, 사유가 물질적 현실을 넘어 ‘존재하는 것들’이라는 형이상학적 본질을 향해 높이 들어 올려지는 바로 그 순간, 인간의 유한한 마음은 신성한 무한의 마음과 만날 준비를 마치게 됩니다.


바로 이 준비된 고요 속으로, 신성한 존재가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는 “그 크기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광대무변한 한 존재”이며, 유한한 인간의 언어나 개념으로는 도저히 파악할 수 없는 초월적 실체입니다. 이 존재는 자신의 이름을 ‘포이만드레스(Poemandres)’라고 밝히는데, 이 이름의 의미를 파악하는 것은 텍스트 전체를 해독하는 중요한 열쇠가 됩니다. 저명한 헤르메스주의 연구가 G.R.S. 미드(G.R.S. Mead)를 비롯한 많은 학자들은 이 이름을 그리스어 ‘포이멘(poimen, 목자)’과 ‘안드로스(andros, 인간의)’의 합성어, 즉 ‘인간의 목자(Shepherd of Men)’로 해석합니다. 이 해석에 따르면, 포이만드레스는 길 잃은 인간의 영혼들을 진리의 길로 인도하고 보살피는, 자비롭고 인격적인 신성한 안내자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그러나 앙투안 파브르(Antoine Faivre)와 같은 학자들은 이 이름의 또 다른 가능성, 즉 이집트어 어원 ‘페-이메-엔-레(Pe-ime-n-Re)’에 주목합니다. 이는 ‘레(Re)의 지식’ 혹은 ‘라(Ra)의 마음’을 의미하며, 포이만드레스가 이집트의 태양신 ‘라’의 신성한 지성(Nous) 그 자체임을 암시합니다. 이 두 가지 해석은 서로 모순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포이만드레스라는 존재의 다층적인 본질을 보여줍니다. 그는 우주를 창조하고 유지하는 초월적이고 비인격적인 ‘우주적 마음(Cosmic Mind)’인 동시에, 개별 인간의 영혼을 구원으로 이끄는 인격적이고 내재적인 ‘선한 목자’이기도 한 것입니다. 그는 “만물의 주재자이신 마음”이며, 동시에 “어디에나 너와 함께 있다”고 말하며, 신의 초월성과 내재성을 완벽하게 통합하여 보여줍니다.


이처럼 압도적인 신성의 현현 앞에서, 헤르메스의 첫 반응은 경배나 두려움이 아니라, 철학적인 질문이었습니다. “당신은 누구이십니까?” 이는 헤르메스주의가 맹목적인 신앙이 아니라, 존재의 근원을 향한 능동적인 탐구의 길임을 상징합니다. 더 나아가, 포이만드레스가 그의 소망을 물었을 때, 헤르메스는 부나 명예, 혹은 개인적인 축복을 구하지 않습니다. 그의 유일한 열망은 “존재하는 것들을 배우고, 그 본질을 이해하며, 신을 알고 싶나이다”라는 순수한 지혜, 즉 ‘그노시스(Gnosis)’에 대한 갈증입니다.


바로 이 순수한 구도(求道)의 자세야말로, 포이만드레스라는 신성한 지혜의 문을 여는 유일한 열쇠입니다. 그의 열망이 세속적인 욕망이 아닌, 오직 진리를 향한 순수한 사랑임을 확인한 포이만드레스는 비로소 “네가 알고자 하는 모든 것을 네 마음속에 굳게 붙잡아라, 그러면 내가 너를 가르치리라”고 약속하며, 위대한 계시의 막을 올립니다.


「포이만드레스」의 서막은 위대한 작업 전체의 과정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하나의 완벽한 만다라(mandala)입니다. 그것은 외부 감각의 소음을 차단하는 내면의 정화(명상)를 통해, 우리 안에 내재한 신성한 마음(포이만드레스)과 마주하고, 순수한 진리에 대한 열망(철학적 질문)을 통해 그와 대화하며, 마침내 존재의 모든 비밀을 전수받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이 첫 장면에서 이루어지는 헤르메스와 포이만드레스의 만남은, 궁극적으로 우리 각자의 인간적 의식(human consciousness)이 자기 내면의 신적인 자기(Divine Self)와 나누는 거룩한 대화의 원형인 것입니다.

2. 빛과 어둠의 우주 창조론: 헬레니즘 시대의 창세기


포이만드레스가 준비된 헤르메스의 영혼 앞에 펼쳐 보인 첫 번째 환영은, 모든 존재의 기원에 관한 장엄한 서사시입니다. 이는 단순한 신화의 재현이 아니라, 당대 헬레니즘 세계의 가장 심오한 철학적, 종교적 사유가 응축된 하나의 ‘심리적 창세기’라 할 수 있습니다. 구약의 창세기가 역사적이고 서사적인 틀 안에서 세계의 창조를 이야기했다면, 「포이만드레스」의 창조론은 우주의 탄생과 인간 의식의 탄생을 하나의 동일한 과정으로 묘사하며, 존재의 기원을 외부가 아닌 내면의 원리로부터 설명하고자 합니다. 이 과정의 핵심에는 빛과 어둠, 말씀(Logos), 그리고 마음(Nous)이라는 네 가지 근원적인 힘의 역동적인 상호작용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태초의 이원성: 빛과 어둠


히브리적 창세기에서 태초는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는 상태, 즉 신의 창조 행위 이전에 이미 존재하는 어둠으로 시작합니다. 그러나 「포이만드레스」의 환영은 근본적으로 다른 출발점을 보여줍니다. 모든 것의 시작은 어둠이 아니라, “한계 없는… 달콤하고 기쁨에 찬 빛”입니다. 이 빛은 단순한 물리적 광선이 아니라, 모든 존재의 근원이자 실체인 ‘신성한 마음(Nous)’, 즉 포이만드레스 자신입니다. 이것은 존재의 근원이 결핍이나 부재가 아닌, 완전하고 충만한 지성의 빛이라는, 플라톤주의와 영지주의를 관통하는 핵심적인 사상을 반영합니다.

이 절대적인 빛의 전체성 속에서, “잠시 후 어둠이 그 일부에 내려앉으니, 경외롭고 음울하며, 뱀처럼 꿈틀거리는 형상”이었습니다. 여기서 어둠은 빛과 동등한 대립적 원리가 아니라, 빛의 일부에서 파생된 이차적인 현상으로 묘사됩니다. 이 어둠은 곧 “형언할 수 없는 기세로 요동치는 일종의 축축한 본성(Moist Nature)”으로 변하는데, 이는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 만물의 근원적 질료로 여겨졌던 ‘원초적 물’ 혹은 ‘혼돈(Chaos)’의 이미지를 연상시킵니다. 이처럼 「포이만드레스」는 빛(형상/정신)과 어둠(질료/물질)이라는 두 가지 근원적 원리의 상호작용을 통해 창조가 시작됨을 보여줍니다. 이는 영지주의 문헌들, 예컨대 『나그 함마디 라이브러리』에 수록된 여러 텍스트에서 발견되는 빛의 영역(플레로마)과 어둠의 영역(결핍) 사이의 드라마와 깊은 유사성을 보입니다.


말씀과 물: 로고스의 역할


이 혼돈스러운 ‘축축한 본성’ 위에 질서를 부여하는 것은 바로 “빛으로부터… 내려온 거룩한 말씀(Logos)”입니다. 로고스는 헤라클레이토스에서부터 스토아학파와 필론(Philo)에 이르기까지, 헬레니즘 사상의 핵심을 이루는 개념으로, 우주를 관통하는 합리적 법칙이자 신의 창조적 이성을 의미합니다. 말씀이 혼돈의 물 위에 내려앉자, 비로소 분리의 기적이 일어납니다. “축축한 본성으로부터 순수한 불이 솟아올라 높은 곳으로 도약하였고, 공기 또한 그 뒤를 따랐습니다. 그러나 흙과-물은 서로 너무나 뒤섞여” 아래에 머물렀습니다. 이는 연금술에서 묘사하는 네 원소의 분리 과정과 정확히 일치하며, 창조가 곧 무질서한 혼합물로부터 각 원소의 고유한 자리를 찾아주는 과정임을 보여줍니다.


포이만드레스는 이 상징의 의미를 직접 해설합니다. 빛은 ‘아버지-신’인 ‘마음(Nous)’이며, 그 마음으로부터 나타난 ‘빛의 말씀(Logos)’은 바로 ‘신의 아들(Son of God)’입니다. 그리고 이 둘의 결합이 바로 ‘생명(Life)’이라고 선언합니다. 이는 아버지(마음)와 아들(말씀), 그리고 그들의 결합(생명/성령)이라는 삼위일체적 구조를 명확히 제시하는 것으로, 당시의 초기 기독교 신학이나 발렌티누스파 영지주의의 신학적 사변과도 깊이 공명합니다.


데미우르고스와 일곱 지배자들


「포이만드레스」의 창조론이 구약의 창세기와 가장 뚜렷한 차이를 보이는 지점은 바로 제2의 창조주, 즉 ‘데미우르고스(Demiurge)’의 등장입니다. 지고의 신인 ‘신-마음’은 “만물에 형상을 부여하기 위해 또 다른 마음”을 낳는데, 이 두 번째 마음이 바로 플라톤의 『티마이오스』에서 이데아의 세계를 모방하여 가시적인 우주를 만드는 제작자, 데미우르고스에 해당합니다.


이 데미우르고스는 “불과 영의 신으로서, 감각이 인지하는 우주를 둘러싸는 일곱의 지배자들(Seven Rulers)”을 빚어냅니다. 이 일곱 지배자들은 태양, 달, 그리고 당시 알려졌던 다섯 행성의 영들을 의미하며, 그들의 운행과 지배가 바로 인간이 벗어날 수 없는 ‘운명(Fate)’을 구성합니다. 이는 많은 영지주의 체계에서 물질세계를 창조하고 인간의 영혼을 육체에 가두는 하위의 신 ‘얄다바오트(Yaldabaoth)’와 그의 일곱 ‘아르콘(Archon)’들의 이야기와 구조적으로 매우 유사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차이점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영지주의 문헌에서 데미우르고스와 아르콘들은 무지하거나 심지어 악의적인 존재로, 지고의 신에 대적하는 세력으로 그려집니다. 반면, 「포이만드레스」에서 데미우르고스와 일곱 지배자들은 지고의 ‘신-마음’의 의지에 따라 창조된, 신성한 질서의 일부입니다. 그들이 만든 코스모스는 사악한 감옥이 아니라, 지고의 신이 자신의 형상을 보고 사랑에 빠질 만큼 “비할 데 없이 아름다운” 것입니다. 다만, 그들의 지배인 ‘운명’은 인간이 궁극적으로 그노시스를 통해 ‘초월’해야 할 한계로 설정된다는 점에서, 헤르메스주의는 급진적인 이원론보다는 미묘하고 점진적인 상승의 구원론을 제시합니다.


「포이만드레스」의 우주 창조론은 고대의 신화적 서사를 헬레니즘 시대의 철학적, 심리학적 통찰로 재해석한 ‘헬레니즘 시대의 창세기’입니다. 이 창조 이야기는 우주의 기원을 설명하는 동시에, 우리 각자의 의식이 어떻게 원초적 무의식(어둠/축축한 본성)의 혼돈에서 벗어나, 이성(로고스)의 빛을 통해 자신을 분별하고, 마침내 자신을 지배하는 내면의 힘들(일곱 지배자들)을 인식하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심오한 심리적 지도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가에 대한 답변일 뿐만 아니라, 우리가 무엇이며, 궁극적으로 무엇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한 영원한 질문의 서막인 것입니다.


3. 사랑에 의한 추락: 헤르메스적 인간의 원죄(原罪)


모든 위대한 지혜의 전통은 인류가 왜 지금과 같은 불완전하고 고통스러운 상태에 놓이게 되었는가에 대한 근원적인 이야기를 품고 있습니다. 서양 정신사의 가장 깊은 곳에 자리한 것은 에덴동산에서의 불순종, 즉 신의 명령을 어기고 선악과를 따먹은 행위로 인해 낙원으로부터 추방당했다는 ‘원죄(Original Sin)’의 서사입니다. 이 이야기는 죄책감과 처벌, 그리고 신과의 단절이라는 비극적 패러다임을 설정합니다. 그러나 『코르푸스 헤르메티쿰』은 이와는 전혀 다른, 놀랍고도 아름다운 인간의 기원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포이만드레스」에 나타난 원초적 인간의 ‘타락’은 불순종의 죄가 아니라, 창조를 향한 열망과 자연(Nature)을 향한 거룩한 ‘사랑’의 행위였습니다. 그것은 신으로부터의 추방이 아니라, 오히려 신의 축복 속에서 이루어진 의지적인 하강(下降)입니다.


신성한 안트로포스: 신의 사랑받는 형상


헤르메스적 인간의 이야기는 죄가 아닌 사랑으로 시작합니다. 지고의 ‘아버지-마음(All-Father Mind)’은 자신의 첫 창조물로서, “자신과 동등한 인간(Man)”을 낳으셨습니다. 여기서의 ‘인간’은 개별적인 필멸의 존재가 아니라, 신성한 원형으로서의 인간, 즉 ‘안트로포스(Anthropos)’입니다. 그는 단순한 피조물이 아니라 “그 아버지의 형상(Image of his Sire)”이며, 너무나 아름다워 “진실로, 신은 자신의 형상과 사랑에 빠지셨다”고 텍스트는 증언합니다. 이 첫 장면은 헤르메스주의 인간관의 핵심을 보여줍니다. 인간의 본질은 죄로 오염된 것이 아니라, 신이 스스로 사랑에 빠질 만큼 완벽하고 신성한 것입니다. 신과 인간의 관계는 군주와 죄인의 관계가 아니라, 자신의 완벽한 형상을 사랑하는 아버지와 그 사랑받는 자녀의 관계로 설정됩니다. 이 원초적 사랑의 관계 속에는 어떤 단절이나 소외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창조의 충동과 물질로의 하강


타락의 동기는 죄가 아니라 창조적 열망입니다. 신성한 인간은, 제2의 마음인 데미우르고스가 창조한 일곱 행성의 영역을 보고, 그 아름다움에 감탄하며 자신 또한 “형상을 부여하기를 원하였습니다.” 이는 아버지를 모방하여 창조의 기쁨에 동참하고자 하는 자연스러운 신적 충동입니다. 이에 아버지는 기꺼이 “허락하셨고”, 인간은 자신의 권능을 가지고 일곱 행성의 하늘, 즉 운명의 영역(Harmony)을 통과하여 아래로 향합니다.


그가 아래의 자연(Nature)에게 “신의 아름다운 형상”을 드러내자, 자연은 그 아름다움에 “사랑으로 미소”지었습니다. 그리고 인간은, 자연이라는 거울, 즉 “그녀의 물 위에 비친 자신과 같은 형상”을 보고, 그 모습과 사랑에 빠져 “그 안에 살기를 원하였습니다.” 마침내 “자연은 사랑의 대상을 품에 안고 자신을 온전히 그에게 감았으며, 그들은 연인들이었기에 서로 뒤섞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헤르메스적 타락의 전모입니다. 그것은 유혹이나 속임수, 혹은 금지된 명령을 어긴 결과가 아닙니다. 그것은 신성한 인간과 원초적 자연 사이의 거부할 수 없는 상호적 이끌림, 즉 우주적 사랑의 행위였습니다. 많은 영지주의 문헌들이 물질세계를 사악한 창조주가 만든 영혼의 감옥으로 묘사하는 것과 달리, 헤르메스주의에서 자연은 사악한 유혹자가 아니라, 신의 아름다운 형상을 보고 사랑에 빠지는 순수한 파트너입니다. 그들의 결합은 비극적인 실수가 아니라, 두 위대한 원리의 필연적이고도 창조적인 합일입니다.


인간의 역설적 상태: 이중적 본성


그러나 이 사랑의 합일은 중대한 결과를 낳습니다. 바로 인간 존재의 ‘이중적 본성’입니다. 이 결합을 통해, 인간은 “육체로 인하여 필멸의 존재이지만, 본질적 인간으로 인하여 불멸의 존재”가 됩니다. 그는 신성한 마음으로부터 왔기에 불멸하며 모든 것을 다스릴 권능을 지녔지만, 자연의 육체를 입었기에 필멸의 고통을 겪고 운명에 종속됩니다. 이것이 인간의 위대함이자 비극입니다. 그는 “조화의 체계 위에 있으면서도, 조화의 체계 안에서 노예가” 된 역설적인 존재입니다.


만일 우리가 ‘헤르메스적 원죄’를 정의해야 한다면, 그것은 바로 이 ‘얽힘(entanglement)’과 그로 인한 ‘망각(forgetfulness)’입니다. 인간의 죄는 신을 거역한 행위가 아니라, 물질적 자연과의 사랑스러운 결합 속에서 자신의 신성한 기원을 잊어버리고, 자신이 본래 하늘 위에 속한 존재임을 망각하게 된 상태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헤르메스주의에서의 구원은, 죄를 회개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노시스(Gnosis), 즉 ‘앎’을 통해 자신의 참된 본성을 ‘기억’하고, 운명의 지배를 넘어 다시 한번 신성한 마음의 세계로 상승하는 것입니다.


「포이만드레스」가 그리는 인간의 타락은 기독교 신학자들이 ‘행복한 타락(felix culpa)’이라 부르는 개념과 맞닿아 있습니다. 그것은 슬프지만 필요한 사건이었습니다. 이 사랑에 의한 하강이 없었다면, 인간은 신과 함께 순수한 빛의 영역에 머물렀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로 이 하강을 통해, 인간은 하늘과 땅, 정신과 물질, 불멸과 필멸을 잇는 유일한 다리가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이중적 본성 안에서 우주 전체를 품고 있으며, 물질세계를 신성한 빛으로 고양시킬 수 있는 유일한 존재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삶은 원죄의 굴레 속에서 고통받는 형벌의 시간이 아니라, 사랑의 결과로 주어진 위대한 가능성을 실현하고, 마침내 지상의 필멸의 신에서 천상의 불멸의 인간으로 되돌아가는, 장엄한 귀향의 여정인 것입니다.


4. 일곱 하늘을 오르는 영혼의 여정: 점성학적 구원론


신성한 인간이 사랑으로 인해 물질계에 하강하여 필멸의 육체를 입게 되었다면, 이제 그에게 남겨진 과업은 어떻게 다시 자신의 신성한 고향으로 돌아갈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포이만드레스」는 이 귀향의 여정을, 영혼이 자신을 옭아매고 있던 일곱 행성의 하늘을 차례로 통과하며 상승하는 장엄한 우주적 드라마로 묘사합니다. 이는 단순한 신화적 비상이 아니라, 인간이 자신의 운명(Fate)을 극복하고, 그노시스(Gnosis)를 통해 자신의 참된 본성을 회복하는 과정을 상징하는 정교한 ‘점성학적 구원론’입니다. 영혼은 내려왔던 길을 그대로 거슬러 올라가며, 각 행성의 영역에서 빌려왔던 세속적인 성질들을 하나씩 벗어던지고, 마침내 본래의 순수한 빛의 존재로 되돌아갑니다.


죽음: 육체의 해체와 영혼의 해방


헤르메스주의에서 죽음은 끝이 아니라, 위대한 귀향의 시작입니다. 인간의 육체가 해체될 때, 그를 구성했던 요소들은 각자의 근원으로 돌아갑니다. “몸의 물질적인 부분은 자연의 변화 속으로, 보이지 않는 부분들은 그들의 근원으로 되돌아가니, 이제는 분리되어 다시 한번 하나가 되기 위함입니다.” 육체의 감각들은 사라지고, 분노와 욕망 같은 격정적인 감정들은 더 이상 영혼을 괴롭히지 못하는 “비합리적인 자연” 속으로 돌아갑니다. 이처럼 육체라는 감옥이 무너질 때, 비로소 내면의 본질적 인간은 상승을 위한 첫걸음을 내디딜 준비를 마칩니다.


일곱 겹의 옷을 벗는 여정


영혼의 상승은 자신을 지배하던 ‘일곱 지배자들’, 즉 일곱 행성의 영역을 통과하는 것으로 이루어집니다. 이 여정은 마치 일곱 겹의 더러운 옷을 한 겹씩 벗어던지는 정화의 과정과 같습니다. 인간은 물질계로 하강하면서 각 행성의 영역을 지날 때마다 그 행성이 관장하는 특정한 성질, 즉 세속적인 욕망과 격정을 자신의 영혼에 덧입게 되었습니다. 이제 상승의 과정에서, 그는 각 행성의 문을 지날 때마다 그곳에서 빌려왔던 것을 다시 되돌려주어야 합니다.


달(Moon)의 문:

첫 번째로, 영혼은 달의 하늘에 “성장과 감소의 힘”을 되돌려줍니다. 달은 변화와 생성을 주관합니다. 이 힘을 돌려준다는 것은, 더 이상 물질세계의 끊임없는 변화와 생멸의 순환에 얽매이지 않게 됨을 의미합니다.


수성(Mercury)의 문:

두 번째로, 수성의 하늘에 “사악한 교활함”을 되돌려줍니다. 수성은 지성과 소통을 관장하지만, 타락했을 때 그것은 기만과 속임수로 나타납니다. 이 힘을 버린다는 것은, 세속적인 잔꾀와 이기적인 계산을 넘어선 순수한 지혜의 영역으로 들어서는 것을 뜻합니다.


금성(Venus)의 문:

세 번째로, 금성의 하늘에 “욕망의 기만”을 되돌려줍니다. 금성은 사랑과 아름다움을 주관하지만, 그것은 종종 덧없는 쾌락과 감각적 욕망에 대한 집착으로 나타납니다. 이를 버린다는 것은, 조건적인 사랑을 넘어선 보편적이고 신성한 사랑을 향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태양(Sun)의 문:

네 번째로, 태양의 하늘에 “군주된 오만함”을 되돌려줍니다. 태양은 자아와 권력, 명예를 상징합니다. 이 오만을 버린다는 것은, 자신의 에고를 내세우려는 모든 욕망을 내려놓고, 더 큰 전체의 일부임을 깨닫는 겸손을 배우는 것입니다.


화성(Mars)의 문:

다섯 번째로, 화성의 하늘에 “불경한 대담함과 경솔한 서두름”을 되돌려줍니다. 화성은 용기와 행동을 주관하지만, 그것은 종종 파괴적인 분노와 성급한 공격성으로 나타납니다. 이를 버린다는 것은, 맹목적인 투쟁을 멈추고 평화와 조화의 길로 들어서는 것을 의미합니다.


목성(Jupiter)의 문:

여섯 번째로, 목성의 하늘에 “부(富)에 대한 사악한 탐욕”을 되돌려줍니다. 목성은 확장과 풍요를 상징하지만, 그것은 물질적 부에 대한 끝없는 탐욕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를 버린다는 것은, 외부의 소유가 아닌 내면의 충만함에서 진정한 풍요를 찾는 것입니다.


토성(Saturn)의 문:

마지막으로, 영혼은 가장 바깥의 문인 토성의 하늘에 “모든 것을 속이는 거짓말”을 되돌려줍니다. 토성은 한계와 구조, 그리고 물질세계의 근본적인 환상을 주관합니다. 이 거짓말을 버린다는 것은, 마침내 물질세계가 유일한 현실이라는 가장 큰 환상에서 깨어나, 영원한 진실의 세계로 들어설 준비를 마쳤음을 의미합니다.


여덟 번째 하늘: 빛 속으로의 귀환


일곱 겹의 세속적 옷을 모두 벗어던지고 “벌거벗은” 순수한 상태가 된 영혼은, 마침내 운명의 영역을 넘어 ‘여덟 번째 하늘(the Eighth Sphere)’로 들어섭니다. 이곳은 더 이상 행성들의 지배가 미치지 않는, 순수한 빛과 영들의 세계입니다. 이곳에서 영혼은 자신보다 먼저 상승한 다른 영들과 합류하여, “자신에게 고유한 힘”을 가지고 “기쁨 속에서 아버지께 찬미의 노래를 부릅니다.”

이 찬미의 노래와 함께, 영혼들은 마침내 “아버지께로 올라가, 그들 자신을 권능들(Powers) 속에 내어주고, 권능들이 되어, 신 안에 있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구원의 최종적인 목표, 즉 ‘신화(神化, theosis)’입니다. 개별적인 영혼은 더 이상 분리된 존재로 머무르지 않고, 신성한 권능 그 자체가 되어, 마침내 모든 것의 근원인 ‘신-마음’ 속으로 완전히 귀환합니다.


그러므로,「포이만드레스」가 제시하는 영혼의 상승 여정은, 인간이 자신의 운명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로드맵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세속적인 삶 속에서 당연하게 여기는 모든 성격적 특성과 욕망들이, 사실은 우리가 벗어던져야 할 우주적 감옥의 일부임을 보여줍니다. 이 일곱 개의 문을 통과하는 길은, 끊임없는 자기 성찰과 정화를 통해, 우리를 지배하는 내면의 힘들로부터 스스로를 해방시키는 ‘영적 연금술’의 과정입니다. 이 지난한 여정의 끝에서, 우리는 비로소 자신이 필멸의 죄인이 아니라, 본래부터 신의 일부였던 불멸의 빛의 존재였음을 기억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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