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신과 운그룬트(Ungrund) – 심연의 신비

by 이호창

제2장: 신(神)과 운그룬트(Ungrund) – 심연의 신비


지금까지 야콥 뵈메(Jacob Boehme)의 생애와 그가 살았던 시대적 배경, 그리고 그의 주요 저작들과 그에게 영향을 준 여러 사상적 흐름들을 살펴보았다. 이제부터는 본격적으로 그의 독창적이고 심오한 사상 체계의 핵심을 이루는 주요 개념들을 하나씩 탐구해 나갈 것이다. 그의 사상은 때로는 매우 복잡하고 난해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그 근저에는 인간과 세계, 그리고 신의 근원적인 신비에 대한 깊은 통찰과 뜨거운 영적 체험이 자리 잡고 있다.


뵈메 사상의 가장 근원적인 출발점이자 그의 모든 우주론과 신학의 토대가 되는 개념은 바로 ‘운그룬트(Ungrund)’이다. 이 독특한 용어는 그의 사상을 이해하는 데 있어 핵심적인 열쇠와 같으며, 동시에 가장 파악하기 어려운 신비 중 하나이기도 하다. 운그룬트에 대한 이해 없이는 그의 다른 주요 개념들, 예를 들어 일곱 자연 성질이나 세 가지 원리 등을 올바로 파악하기 어렵다. 따라서 우리는 먼저 이 ‘심연의 신비’ 속으로 조심스럽게 발을 내디뎌 보고자 한다.


2.1. 운그룬트(Ungrund): 무저갱, 근원 없는 근원, 비존재, 영원한 자유 (예시 통합 수정본)


‘운그룬트(Ungrund)’는 야콥 뵈메(Jacob Boehme)가 만들어낸 독일어 용어로, 문자 그대로 번역하면 ‘바닥 없는 바닥(Unground, groundless)’, ‘근거 없는 근거’, 또는 ‘근원 없는 근원’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이는 모든 존재와 생각, 그리고 심지어 신 자신보다도 앞서 있는, 규정할 수도 없고 파악할 수도 없는 궁극적인 실재의 상태를 가리킨다. 뵈메는 이 운그룬트를 종종 ‘무(Nichts, Nothing)’, ‘고요한 침묵(stille Ruhe)’, ‘영원한 자유(ewige Freiheit)’, 또는 ‘심연(Abyssus, 라틴어 또는 Ungrund의 다른 표현)’과 같은 다양한 이름으로 부르며 그 신비로운 성격을 설명하려고 시도했다.


운그룬트를 ‘무저갱(Abyss)’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그것이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어떠한 깊이나 한계도 가지고 있지 않음을 의미한다. 마치 끝없이 깊은 바다나 밤하늘의 별들 너머로 펼쳐지는 무한한 공간처럼, 운그룬트는 인간의 이성이나 감각으로는 도저히 그 바닥을 가늠할 수 없는 신비로운 영역이다. 그곳에는 어떠한 형태도, 색깔도, 소리도, 심지어 우리가 아는 시간이나 공간이라는 개념조차도 존재하지 않는, 모든 규정을 넘어서는 깊이를 지닌다.


또한, 운그룬트는 모든 존재의 ‘근원(Grund, ground 또는 Cround)’이 되지만, 그 자신은 어떠한 다른 근원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의미에서 ‘근원 없는 근원’으로 이해된다. 즉, 세상 만물은 운그룬트로부터 비롯되었지만, 운그룬트 자신은 그 무엇으로부터도 생겨나지 않은, 스스로 존재하는 궁극적인 실재인 것이다. 우리가 “이 세상은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또는 “신은 누가 만들었을까?”와 같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며 생각의 한계에 부딪힐 때, 뵈메는 이러한 모든 질문이 멈추는 지점, 더 이상 “왜?”라고 물을 수 없는 궁극적인 출발점을 운그룬트라고 본다. 이는 마치 모든 숫자가 나오기 이전의 ‘0(영)’과도 같아서, 0 자체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모든 숫자의 가능성을 품고 있는 것처럼 여겨질 수 있다.


뵈메는 운그룬트를 종종 ‘비존재(Nicht-Sein, Non-being)’ 또는 ‘무(Nichts, Nothing)’라고도 표현하는데, 이는 운그룬트가 우리가 일반적으로 ‘존재(Sein, Being)’라고 생각하는 범주를 넘어선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존재한다’고 말할 때는 보통 어떤 형태나 성질, 또는 한계를 가진 것을 떠올리지만, 운그룬트는 이러한 모든 규정과 한계 이전의 상태이기 때문에, 그러한 의미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것’ 또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어떤 조각 작품을 만들기 전의 점토 덩어리가 아직 어떤 특정한 형태를 갖지 않아 ‘아직 아무것도 아닌’ 상태이지만 동시에 수많은 다른 형태로 만들어질 수 있는 ‘모든 것의 가능성’을 품고 있듯이, 뵈메의 운그룬트는 아직 어떤 특정한 신이나 세계로 드러나기 이전의 순수한 잠재력과 가능성의 상태를 의미한다. 그것은 단순한 공허나 결핍으로서의 ‘무’가 아니라, 모든 것을 낳을 수 있는 ‘신비로운 무(mystical Nothingness)’이다.


더불어 운그룬트는 ‘영원한 자유(ewige Freiheit)’의 상태로 묘사된다. 이는 운그룬트가 어떠한 필연성이나 법칙, 또는 외부적인 제약에도 얽매이지 않는 절대적인 자유 그 자체임을 뜻한다. 그곳에는 선과 악, 빛과 어둠, 기쁨과 고통과 같은 어떠한 대립이나 분열도 존재하지 않으며, 오직 순수하고 무한한 자유만이 있을 뿐이다. 넓고 푸른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새를 볼 때 우리는 어떤 해방감을 느끼지만, 새의 자유조차 자연법칙의 제약을 받는다. 그러나 운그룬트의 자유는 이러한 모든 종류의 제약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난, 상상할 수 있는 가장 궁극적이고 절대적인 자유의 상태이며, 그 안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고 어떠한 것도 미리 결정되어 있지 않다.


이처럼 야콥 뵈메가 제시한 운그룬트라는 개념은 인간의 이성적 이해를 넘어서는 매우 심오하고도 신비로운 실재를 가리킨다. 그것은 모든 존재와 규정 이전의 ‘바닥 없는 심연’이자 ‘근원 없는 근원’이며,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모든 것의 가능성을 품고 있는 무’이자, 어떠한 제약도 없는 ‘영원한 자유’ 그 자체이다. 이 운그룬트에 대한 이해는 뵈메의 사상 체계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적인 열쇠이며, 뒤에서 살펴볼 신의 자기 현현 과정과 우주 창조, 그리고 인간 영혼의 신비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기초가 된다. 그의 사상 여정은 바로 이 형언할 수 없는 운그룬트의 신비로부터 시작하여, 그것이 어떻게 구체적인 현실 세계로 드러나게 되는지를 탐구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2.2. 신의 자기 현현(Self-Manifestation)의 과정: 무(Nichts)에서 유(Etwas)로


앞서 살펴본 것처럼, 야콥 뵈메(Jacob Boehme)의 사유 안에서 모든 존재의 가장 근원적인 출발점은 ‘운그룬트(Ungrund)’라는 형언할 수 없는 신비로운 실재이다. 운그룬트는 그 자체로는 어떠한 규정이나 형태도 없는 ‘무(Nichts, Nothing)’이지만, 동시에 모든 것을 생성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 있는 ‘영원한 자유(ewige Freiheit)’의 상태이다. 그렇다면 이처럼 아무것도 규정되지 않은 ‘무’로부터 어떻게 구체적인 ‘유(Etwas, Something)’, 즉 신 자신과 우주 만물이 생겨나게 되는 것일까? 뵈메는 이 과정을 신의 ‘자기 현현(Self-Manifestation 또는 Selbstoffenbarung)’이라는 역동적인 드라마로 설명한다. 이는 마치 깊은 잠에 빠져 있던 존재가 서서히 깨어나 자신을 인식하고 활동을 시작하는 과정과도 흡사하다. 이 자기 현현의 과정은 몇 가지 중요한 단계를 거치는데, 그 가장 첫 번째 움직임이 바로 ‘영원한 의지’와 ‘갈망’의 등장이다.


2.2.1. 영원한 의지(Der ewige Wille)와 갈망(Begierde/Sucht)


뵈메에 따르면, 규정할 수 없는 운그룬트의 고요한 침묵 속에서 가장 먼저 생겨나는 것은 바로 ‘영원한 의지(Der ewige Wille)’이다. 이 ‘의지’는 아직 어떤 특정한 대상을 가지고 있거나 구체적인 목적을 지닌 의지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자기 자신을 찾고, 느끼고, 드러내고자 하는 일종의 근원적인 ‘충동’ 또는 ‘경향성’과 같다. 운그룬트가 ‘무’라면, 이 영원한 의지는 그 ‘무’ 안에서 ‘무엇인가(Etwas)’가 되고자 하는 최초의 움직임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영원한 의지는 마치 깊은 어둠 속에서 희미한 빛을 향해 손을 뻗는 것과 같이 자신을 찾으려는, 어둠 속의 첫 눈뜸과 같다. 그 의지는 아직 자신이 무엇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명확히 알지 못한 채, 단지 자기 자신을 느끼고 경험하고자 하는 막연하지만 강력한 충동만이 있을 뿐이다. 아주 깊은 잠에서 깨어날 때 처음에는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에 있는지조차 알 수 없는 몽롱한 상태이지만, 그 속에서도 ‘나’라는 존재를 어렴풋이 느끼고 주변을 파악하려는 아주 미약한 의식이 꿈틀거리기 시작하는 것처럼, 운그룬트 안의 ‘영원한 의지’는 아직 아무것도 아닌 상태에서 자기 자신을 향해 나아가려는 최초의 움직임으로 볼 수 있다. 이 영원한 의지는 그 자체로는 여전히 운그룬트의 일부이며, 어떠한 형태나 성질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것은 마치 ‘거울 없는 눈’과 같아서, 자기 자신을 비춰볼 대상이 없기 때문에 여전히 어둠 속에 머물러 있는 듯하다. 그러나 이 의지는 가만히 정체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찾고 드러내고자 하는 내적인 역동성을 지니고 있다.


이 ‘영원한 의지’는 곧바로 ‘갈망(Begierde 또는 Sucht)’이라는 또 다른 힘을 낳는다. ‘갈망’은 독일어로 ‘욕망’, ‘탐욕’, ‘끌어당김’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 영원한 의지가 자기 자신을 느끼고 경험하고자 할 때, 그것은 필연적으로 무엇인가를 ‘붙잡고(ergreifen)’, ‘소유하고(innehaben)’, ‘자신 안으로 끌어들이려는(einziehen)’ 욕구를 갖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갈망이다. 갈망은 마치 텅 빈 공간이 무엇인가로 채워지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


영원한 의지는 운그룬트라는 ‘무’ 속에서 자기 자신을 ‘유(Etwas)’로 만들기 위해, 무엇인가를 자신의 대상으로 삼아 그것을 통해 자신을 느끼고 규정하려고 한다. 갓 태어난 아기가 아직 엄마가 누구인지, 젖이 무엇인지 명확히 알지 못하지만 생존에 대한 강렬한 갈망으로 무엇인가를 찾고 붙잡아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도록 이끌리듯이, 뵈메의 ‘갈망’은 자기 자신을 실현하고 유지하려는 근원적이고 강력한 힘을 의미한다. 처음에는 그 대상이 명확하지 않지만, 이 갈망은 점차 자신을 채워줄 대상을 향해 나아가게 된다.


뵈메는 이 갈망을 종종 ‘마법(Magie, Magic)’이라는 용어와 연결시키기도 한다. 그에게 있어서 마법은 모든 것을 생성하고 형성하는 근원적인 힘이며, 이 마법의 핵심이 바로 갈망이라는 것이다. "Science, Meaning and Evolution" 부록에서는 "마법은 욕망이며, 욕망은 마법의 어머니다." (Sex Puncta Theosophica, 1:18)라는 구절과 "욕망은 혹독하고 건조하며, 배고픔과 같다. 그것은 부드러운 것을 단단하게 만들며, 모든 것 안에 존재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신성 안에서 가장 위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닥 없는 것을 기초로 이끌고, 무를 유로 이끈다." (Sex Puncta Theosophica, 1:10)라는 구절을 통해, 이 갈망이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역동적인 힘임을 보여준다.) 이 갈망은 마치 자석이 쇠를 끌어당기듯, 운그룬트의 무한한 가능성 속에서 무엇인가를 ‘응축’시키고 ‘형상화’하려는 힘으로 작용한다.


이 ‘영원한 의지’와 ‘갈망’은 아직 선도 악도 아니며, 빛도 어둠도 아니다. 그것은 모든 분화 이전의 순수한 동력이며, 신의 자기 현현 과정에서 가장 첫 번째로 일어나는 내적인 움직임이다. 그러나 이 두 힘의 상호작용은 이후에 나타날 모든 존재와 현상의 씨앗을 품고 있으며, 특히 다음에 살펴볼 ‘일곱 자연 성질’의 첫 번째 성질인 ‘수축(contraction)’ 또는 ‘자기중심성(self-centeredness)’의 근원이 된다.


요컨대, 야콥 뵈메의 사유 안에서 신의 자기 현현은 고요하고 규정할 수 없는 ‘무(Nichts)’인 운그룬트 안에서 ‘영원한 의지’가 깨어나고, 이 의지가 자기 자신을 느끼고 드러내고자 하는 ‘갈망’을 일으키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 원초적인 의지와 갈망은 마치 어둠 속에서 빛을 향한 최초의 몸짓과 같으며, 아직 아무것도 아닌 상태에서 ‘무엇인가(Etwas)’가 되려는 신적인 생명의 역동적인 첫걸음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두 힘은 이후 전개될 복잡하고 다층적인 창조 과정의 가장 근원적인 동력이 되며, 뵈메 사상의 심오한 신비를 이해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출발점을 제공한다.


2.2.2. 상상력(Imagination)과 자기 응시


앞서 야콥 뵈메(Jacob Boehme)의 사상에서 신의 자기 현현(Self-Manifestation) 과정이 ‘무(Nichts)’인 운그룬트(Ungrund) 안에서 ‘영원한 의지(Der ewige Wille)’와 ‘갈망(Begierde/Sucht)’이 깨어나는 것으로 시작된다고 살펴보았다. 그러나 이 원초적인 의지와 갈망은 아직 그 자체로는 아무런 형태나 내용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것은 마치 텅 빈 거울과 같아서, 자기 자신을 비추어 볼 대상이 없이는 여전히 규정되지 않은 상태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바로 이 지점에서 뵈메는 신의 자기 현현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또 다른 힘, 즉 ‘상상력(Imagination, 독일어: Einbildung 또는 Imagination)’‘자기 응시(self-contemplation)’의 개념을 도입한다.


뵈메의 사유 안에서 ‘상상력’은 단순히 인간의 심리적인 능력을 의미하는 것을 넘어, 신적인 본질 그 자체 안에 내재하는 근원적인 창조적 힘을 가리킨다. 영원한 의지가 자기 자신을 느끼고 경험하고자 하는 갈망을 일으킬 때, 이 갈망은 곧 자기 자신을 어떤 ‘형상(Gestalt, form 또는 image)’으로 만들고자 하는 힘, 즉 상상력을 발동시킨다. 상상력은 마치 씨앗 속에 숨겨진 청사진처럼, 아직 드러나지 않은 가능성들을 구체적인 모습으로 펼쳐내려는 내적인 능력이다. 운그룬트 안의 영원한 의지는 그 자체로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이 상상력을 통해 자기 자신을 ‘대상화(objectify)’하고, 마치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듯이 스스로를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이 상상력은 ‘무’로부터 ‘유(Etwas, Something)’를 만들어내는 마법적인 힘이며, 모든 창조의 어머니와도 같다.


예를 들어, 한 예술가가 아직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흰 캔버스 앞에서 어떤 형상을 그리고자 하는 ‘의지’와 그것을 표현하고자 하는 뜨거운 ‘갈망’을 느낄 때, 그의 ‘상상력’은 마음속의 추상적인 아이디어를 구체적인 선과 색, 그리고 형태로 캔버스 위에 펼쳐내는 역할을 한다. 뵈메가 말하는 신적인 상상력은 이와 유사하게, 아직 아무것도 아닌 운그룬트의 무한한 가능성 속에서 신적인 본질이 자기 자신의 ‘모습(image)’을 떠올리고 그것을 향해 나아가도록 하는 힘이다. "Science, Meaning and Evolution" 부록에서는 상상력에 대해 "상상력은 부드럽고 온화하며 물과 같다. 그러나 욕망은 가혹하고 건조하며 굶주림과 같다... 그것은 마법 안에 모든 존재의 모든 존재 형식이 있다. 그것은 세 가지 세계 모두의 어머니이며, 각 사물을 그 사물의 의지의 모형에 따라 만든다." (Sex Puncta Theosophica, 1:10-11)라고 설명하며, 이 상상력이 욕망과 결합하여 구체적인 형상을 만들어내는 창조적 힘임을 보여준다. 이 상상력은 처음에는 어떤 외부적인 대상을 향하는 것이 아니라, 신적인 본질 그 자체가 자기 자신을 향하는 ‘자기 상상(self-imagination)’이다. 즉, 신은 자기 자신 안에서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고, 그 상상된 모습을 통해 비로소 자기 자신을 인식하고 경험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영원한 의지가 상상력을 통해 자기 자신을 어떤 ‘형상’으로 떠올릴 때, 그것은 동시에 그 형상을 ‘바라보는(anschauen, to behold or contemplate)’ 행위를 수반한다. 이것이 바로 ‘자기 응시’ 또는 ‘자기 관조’이다. 신적인 본질은 자기 자신을 응시함으로써 비로소 자신이 무엇인지를 어렴풋이나마 깨닫기 시작한다.


뵈메는 이 자기 응시의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또 다른 신비로운 실재를 언급하는데, 그것이 바로 ‘영원한 지혜(ewige Weisheit)’ 또는 ‘소피아(Sophia, 그리스어: Σοφία, 지혜를 의미)’이다. 소피아는 마치 신적인 본질 앞에 놓인 순수하고 깨끗한 ‘거울(Spiegel, mirror)’과 같다. 영원한 의지는 이 지혜의 거울에 자기 자신을 비추어 봄으로써, 자신의 무한한 가능성과 아름다움을 인식하게 된다. 우리가 거울을 통해 우리 자신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인식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매개체를 경험하듯이, 뵈메의 사유 안에서 소피아는 아직 규정되지 않은 신적인 본질이 자기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 보고 스스로를 깨달을 수 있도록 하는 ‘신적인 거울’ 또는 ‘신의 자기 인식의 장(場)’과 같은 역할을 한다. 이 지혜의 거울에 비친 신적인 본질의 상상된 모습은 아직 구체적인 물질세계나 개별적인 존재들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신적인 본질 안에 잠재되어 있는 모든 완전한 ‘이데아(Idea, 이상적인 원형)’ 또는 ‘원형적 형상(archetypal form)’들의 세계와 같다. 뵈메는 이것을 ‘영원한 자연(ewige Natur)’ 또는 ‘신적인 감각 세계(göttliche Sinnenwelt)’라고도 부른다. 이곳은 모든 아름다움과 조화, 그리고 완전한 지혜로 가득 찬 이상적인 세계이며, 이후에 창조될 모든 가시적인 세계의 원형이 된다.


이처럼 영원한 의지가 상상력을 통해 지혜의 거울 속에서 자기 자신을 응시하는 과정은, 운그룬트라는 ‘무’로부터 구체적인 ‘유’가 생성되기 위한 매우 중요한 중간 단계이다. 이 자기 응시를 통해 신적인 본질은 비로소 자기 자신에 대한 어렴풋한 ‘앎(Wissen, knowledge)’ 또는 ‘감각(Empfindung, sensation)’을 가지게 되며, 이것이 더욱 발전하여 다음 단계인 ‘일곱 자연 성질’의 발현으로 이어지게 된다.


요약하자면, 야콥 뵈메의 사유 안에서 신의 자기 현현 과정은 ‘영원한 의지’와 ‘갈망’이 깨어난 후, 이 의지가 ‘상상력’이라는 창조적인 힘을 통해 자기 자신을 어떤 형상으로 떠올리는 것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이 상상된 형상은 ‘지혜(소피아)’라는 신적인 거울에 비추어져 ‘자기 응시’의 대상이 된다. 이 과정을 통해 규정할 수 없었던 운그룬트는 비로소 자기 자신에 대한 최초의 인식을 얻게 되며, 모든 존재와 현상의 근원이 되는 신적인 생명의 드라마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것이다. 이 상상력과 자기 응시는 단순한 심리적인 과정이 아니라, 신적인 본질 그 자체 안에서 일어나는 우주적인 창조의 원리이며, 뵈메 사상의 심오한 신비를 이해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2.3. 변증법적 신관: 신 안의 어둠(Finsternis)과 빛(Licht)의 원리


야콥 뵈메(Jacob Boehme)의 신(神) 이해에서 가장 독창적이고도 논쟁적인 부분 중 하나는 바로 그의 ‘변증법적(dialectical)’ 신관이다. 여기서 ‘변증법적’이라는 말은, 서로 반대되는 두 가지 힘이나 원리가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관계 속에서 역동적으로 작용하며 새로운 것을 생성하거나 더 높은 차원의 통일로 나아가는 방식을 의미한다. 뵈메는 신을 단순히 선하고 빛으로만 가득 찬 정적인 존재로 보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신적인 본질 그 자체 안에,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서로 대립하면서도 궁극적으로는 하나로 통합되는 두 가지 근원적인 힘, 즉 ‘어둠(Finsternis, Darkness)’의 원리‘빛(Licht, Light)’의 원리가 존재한다고 보았다. 이러한 생각은 전통적인 기독교 신관에서는 매우 낯설고 위험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었지만, 뵈메의 사유 안에서는 세상에 존재하는 악과 고통의 문제를 설명하고, 동시에 신의 자기 현현(Self-Manifestation) 과정의 역동성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통찰이었다.


운그룬트(Ungrund)로부터의 첫 번째 분화 과정에서, 모든 존재의 가장 근원적인 출발점인 운그룬트는 아직 어떠한 규정이나 분화도 없는 ‘무(Nichts)’의 상태이다. 그러나 이 운그룬트 안에서 ‘영원한 의지(Der ewige Wille)’와 ‘갈망(Begierde)’이 깨어나 자신을 드러내고자 할 때, 가장 먼저 나타나는 것은 일종의 ‘어둠’ 또는 ‘수축(contraction)’의 힘이다.


뵈메는 이것을 ‘첫 번째 원리(das erste Principium)’ 또는 ‘신의 분노(Zorn Gottes)’라고도 부른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어떤 물체를 꽉 움켜쥐려는 강한 힘처럼, 첫 번째 원리, 즉 어둠의 원리는 모든 것을 자기 자신 안으로 끌어들이고 단단하게 만들며 외부와 분리시키려는 경향을 지닌다. 이는 자기중심적이고 수축하며, 때로는 격렬하고 파괴적인 성격을 띠는데, 마치 씨앗이 단단한 껍질 속에 자신을 가두고 있는 모습과도 같다. 이 어둠의 원리는 그 자체로 ‘악(evil)’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모든 존재가 자기 자신의 고유한 정체성을 형성하고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근원적인 힘이다. 만약 이 수축하고 자신을 주장하는 힘이 없다면, 모든 것은 규정되지 않은 운그룬트의 상태로 흩어져 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어둠의 원리가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으로 작용하여 다른 모든 것을 배제하고 자신만을 고집하게 될 때, 그것은 진정한 ‘악’ 또는 ‘신의 분노’로 나타날 수 있다. 인간의 이기심이나 증오, 파괴적인 충동 등은 이 어둠의 원리가 왜곡되고 극단화된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뵈메는 이 어둠의 원리를 종종 ‘불타는 불(brennendes Feuer)’ 또는 ‘쓴맛(bitter quality)’과 같은 이미지로 묘사하며, 그 격렬하고 고통스러운 성격을 강조한다.


그러나 뵈메의 신관은 이 어둠의 원리에서 멈추지 않는다. 그는 이 어둠의 원리 그 자체 안에서, 그리고 그것과의 역동적인 투쟁을 통해, 정반대의 성격을 지닌 ‘빛(Licht)’ 또는 ‘사랑(Liebe)’의 원리가 생겨난다고 본다. 이것이 바로 ‘두 번째 원리(das zweite Principium)’ 또는 ‘신의 사랑(Liebe Gottes)’이다. 어둠이 수축하고 자신을 향하는 힘이라면, 빛은 확장하고 자신을 내어주며 모든 것을 감싸 안는 사랑의 힘이다. 앞서 예로 든 단단한 씨앗이 어두운 땅속에서 자신의 단단한 껍질(어둠의 원리)을 깨고 나와야만 부드러운 싹(빛의 원리)을 틔울 수 있듯이, 어둠은 빛의 탄생을 위한 전제 조건이 되며, 빛은 어둠을 극복하고 새로운 생명을 드러내는 힘이 된다. 뵈메의 사상에서 빛의 원리는 이와 유사하게, 어둠의 원리의 격렬한 고통과 투쟁 속에서 마치 번개(Blitz)처럼 터져 나오며, 새로운 차원의 생명과 기쁨을 가져온다. 이 빛의 원리는 어둠의 원리를 완전히 소멸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감싸 안고 조화롭게 만들며, 그것의 파괴적인 힘을 창조적인 에너지로 변형시킨다. 뵈메는 이 빛의 원리를 예수 그리스도(Jesus Christ)를 통해 계시된 신의 사랑과 자비, 그리고 성령의 부드러운 역사와 연결시킨다. 그는 이 빛의 원리를 종종 ‘달콤한 물(süßes Wasser)’ 또는 ‘기쁨의 소리(freudiger Schall)’와 같은 이미지로 묘사하며, 그 생명을 주고 치유하며 조화롭게 하는 성격을 강조한다.


뵈메의 신관에서 핵심적인 것은 바로 이 어둠의 원리와 빛의 원리가 서로 분리되어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서로를 필요로 하며 역동적인 관계 속에서 함께 존재한다는 점이다. 그는 “어둠이 없다면 빛은 자신을 드러낼 수 없으며, 빛이 없다면 어둠은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한다”고 말한다. 즉, 빛은 어둠이라는 배경이 있어야만 자신의 밝음을 인식할 수 있고, 어둠 역시 빛과의 대조를 통해서만 자신의 어두움을 드러낼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그림을 그릴 때 밝은 색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어두운 색을 배경으로 사용하거나 그림자를 넣는 것처럼, 어둠과 빛은 서로 반대되지만 함께 있을 때 비로소 풍부한 표현과 깊이를 만들어낸다. 또한, 음악에서 불협화음이 때로는 더 큰 조화를 위한 긴장감을 조성하듯이, 뵈메는 신 안의 어둠의 원리가 빛의 원리의 아름다움과 사랑을 더욱 강렬하게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고 보았다.


이러한 어둠과 빛의 변증법적 관계는 뵈메의 사상 전체를 관통하는 중요한 원리이다. 그는 우주의 창조 과정, 자연 만물의 다양성, 인간 영혼의 내면적 투쟁, 그리고 구원의 역사에 이르기까지 모든 영역에서 이 두 가지 상반된 원리의 역동적인 상호작용을 발견한다. 그에게 있어서 신적인 생명은 정체되어 있거나 단순한 조화 속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긴장과 투쟁, 그리고 그를 통한 새로운 생성과 화해의 과정 그 자체이다.


뵈메의 이러한 변증법적 신관은 몇 가지 중요한 함의를 지닌다.


첫째, 그것은 세상에 존재하는 악과 고통의 문제에 대해 새로운 이해의 지평을 열어준다. 악은 단순히 신의 선함에 반하는 외부적인 힘이 아니라, 오히려 신적인 본질 그 자체 안에 있는 어둠의 원리가 왜곡되거나 균형을 잃었을 때 발생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이는 악의 존재를 신의 전능함이나 선하심과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 하는 오랜 신학적 난제에 대한 독창적인 답변이 될 수 있다.


둘째, 그것은 신적인 본질을 매우 역동적이고 살아있는 과정으로 이해하도록 이끈다. 신은 완성되어 고정된 존재가 아니라, 자기 자신 안의 대립적인 힘들 사이의 끊임없는 상호작용을 통해 영원히 자신을 새롭게 창조하고 드러내는 존재라는 것이다. 이러한 역동성은 그의 ‘일곱 자연 성질’이나 ‘세 가지 원리’와 같은 개념들 속에서 더욱 구체적으로 전개된다.


셋째, 그것은 인간의 영적인 삶에 있어서도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인간 영혼 안에도 어둠과 빛의 투쟁이 있으며, 참된 영적 성장은 어둠을 단순히 부정하거나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인식하고 빛의 힘으로 변화시켜 나가는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처럼, 야콥 뵈메의 변증법적 신관, 즉 신 안의 어둠과 빛의 원리에 대한 그의 통찰은 그의 사상 체계에서 매우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이는 전통적인 신 이해에 도전하는 동시에, 존재의 근원적인 신비와 그 역동성을 설명하려는 그의 깊은 고민을 반영한다. 이 두 가지 상반된 원리의 상호작용에 대한 이해는 그의 복잡한 우주론과 인간론, 그리고 구원론을 관통하는 중요한 열쇠이며, 그의 사상이 지닌 독창성과 심오함을 드러내는 핵심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다.


2.4. 삼위일체(Heilige Dreifaltigkeit)의 역동적 이해


야콥 뵈메(Jacob Boehme)의 사상 체계에서 신(神)에 대한 이해는 그의 모든 우주론과 인간론의 기초를 이룬다. 특히 기독교 신앙의 핵심 교리인 삼위일체(라틴어: Trinitas, 독일어: Heilige Dreifaltigkeit 또는 Dreieinigkeit) 하나님에 대한 그의 이해는 매우 독창적이고 역동적인 특징을 보여준다. 그는 삼위일체를 단순히 교리적으로나 추상적으로 파악하는 것을 넘어, 살아있는 신적인 생명이 자기 자신을 드러내고 활동하는 역동적인 과정으로 이해하고자 했다. 그의 삼위일체론은 앞서 살펴본 운그룬트(Ungrund), 신 안의 어둠과 빛의 원리, 그리고 이후에 다룰 일곱 자연 성질(Sieben Quellgeister) 및 세 가지 원리(Drei Principien)와 같은 그의 핵심 개념들과 불가분하게 연결되어 있다.


전통적인 기독교 삼위일체 교리는 한 분 하나님 안에 성부(Father), 성자(Son), 성령(Holy Spirit)이라는 세 위격(Person, 페르소나)이 동일한 본질(essence)을 공유하며 존재한다고 가르친다. 각 위격은 서로 구별되지만, 분리될 수 없으며, 영원 전부터 서로 사랑과 교통 가운데 함께 존재한다. 야콥 뵈메 역시 이러한 기본적인 삼위일체 신앙을 받아들였고, 자신을 정통 기독교인으로 여겼다. 그러나 그는 교회가 가르치는 교리적 설명에만 만족하지 않고, 자신이 직접 체험한 영적 조명(Illumination)을 통해 삼위일체의 신비를 더욱 깊이 이해하고 살아있는 실재로 경험하고자 했다.


뵈메의 사유 안에서 삼위일체는 영원 전부터 완성되어 고정된 형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운그룬트라는 규정할 수 없는 신적인 심연으로부터 역동적으로 발현되어 나오는 과정으로 이해된다. 그는 삼위일체의 각 위격을 신적인 생명이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세 가지 근원적인 방식 또는 원리와 연결시켜 설명한다.


성부(Der Vater)는 모든 존재의 가장 깊은 근원이자 보이지 않는 토대인 운그룬트와 밀접하게 관련된다. 성부는 운그룬트 안에서 자기 자신을 드러내고자 하는 ‘영원한 의지(Der ewige Wille)’이며, 이 의지는 동시에 강력하고 수축적인 힘, 즉 ‘어둠의 불(finstere Feuer)’ 또는 ‘신의 분노(Zorn Gottes)’의 성격을 지닌다. 이것은 앞서 살펴본 ‘첫 번째 원리(das erste Principium)’에 해당한다. 마치 모든 씨앗 안에 잠재된 생명력이 밖으로 터져 나오려는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듯이, 성부는 모든 창조의 가능성을 품고 있는 근원적인 의지이자 힘이다. 그러나 이 힘은 아직 형태를 갖추지 않았고, 때로는 화산 폭발이나 지진과 같은 자연의 거대한 힘처럼 격렬하고 파괴적인 성격을 띨 수도 있다.


성자(Der Sohn)는 성부의 영원한 의지가 자기 자신을 인식하고 드러내는 과정에서 탄생하는 ‘영원한 말씀(das ewige Wort, 그리스어: Logos, 로고스)’이자 ‘신의 마음(Gemüt Gottes)’이다. 성부의 어두운 불 속에서 마치 번개처럼 터져 나오는 ‘빛(Licht)’과 ‘사랑(Liebe)’의 원리가 바로 성자이며, 이는 ‘두 번째 원리(das zweite Principium)’에 해당한다. 성자는 또한 신적인 ‘지혜(Sophia, 소피아)’라는 거울을 통해 성부의 본질을 비추고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캄캄한 밤하늘에 갑자기 떠오르는 밝은 별이나 어둠을 가르는 번갯빛처럼, 성자는 성부의 규정할 수 없는 어둠 속에서 명확한 형태와 빛을 가지고 나타나는 신적인 계시이다. 또한, 예술가가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아름다운 이미지를 그림이나 음악으로 표현하듯이, 성자는 성부의 보이지 않는 본질을 구체적인 말씀과 사랑으로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성령(Der Heilige Geist)은 성부와 성자로부터 발출되어(proceeding), 이 두 원리의 사랑과 지혜를 구체적인 현실 세계로 가져오고 만물에 생명과 운동, 그리고 형상을 부여하는 ‘살아있는 힘(lebendige Kraft)’이다. 성령은 ‘세 번째 원리(das dritte Principium)’와 관련되며, 우리가 경험하는 가시적인 자연세계와 그 안에서 활동하는 모든 생명 현상의 주관자이다. 성령은 성부의 의지와 성자의 말씀을 통해 창조된 세계를 유지하고 완성하며, 모든 피조물을 궁극적인 조화와 통일로 이끌어간다. 바람이 씨앗을 옮겨 새로운 곳에서 싹트게 하고, 비가 대지를 적셔 생명을 자라나게 하며, 태양 에너지가 모든 생명 활동의 근원이 되듯이, 성령은 보이지 않는 신적인 힘을 구체적인 생명 현상으로 나타나게 하고, 모든 것을 서로 연결하며 역동적으로 움직이게 하는 원리이다. 또한, 건축가가 설계도(성자의 말씀)에 따라 건물을 짓듯이(성령의 역사), 성령은 신적인 계획을 현실 세계에 구현하는 역할을 한다.


뵈메의 삼위일체론에서 매우 중요한 점은 성부, 성자, 성령이 단순히 정적으로 분리된 세 위격이 아니라, 영원 전부터 서로 사랑과 생명을 주고받으며 역동적으로 관계하는 살아있는 과정 그 자체라는 것이다. 그는 이를 ‘영원한 생성(ewige Zeugung 또는 ewige Geburt, eternal generation 또는 eternal birth)’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즉, 성부는 영원히 성자를 낳고(generating the Son), 성부와 성자로부터 영원히 성령이 발출되는(proceeding of the Holy Spirit) 과정이 멈추지 않고 계속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역동적인 상호 관계는 마치 하나의 불꽃 안에서 불 자체(성부), 그 불에서 나오는 빛(성자), 그리고 그 빛에서 나오는 열기(성령)가 서로 구별되면서도 분리될 수 없이 하나를 이루는 것과 같다. 또는, 하나의 샘에서 물이 솟아나와(성부) 강을 이루고(성자) 그 강물이 대지를 적시며 생명을 주는(성령) 과정으로도 비유할 수 있다. 뵈메의 사유 안에서 삼위일체 하나님은 바로 이러한 끊임없는 내적인 생명의 운동과 자기 전개의 과정 그 자체이며, 이 과정 속에서 모든 창조와 구원의 역사가 이루어진다.


뵈메는 그의 독특한 우주론적 개념인 ‘일곱 자연 성질(Sieben Quellgeister)’을 통해서도 삼위일체의 역동적인 작용을 설명하려고 시도한다. 일곱 자연 성질은 신적인 생명이 운그룬트로부터 발현되어 나오는 일곱 단계의 근원적인 힘 또는 원리들이다. 그는 이 일곱 성질들이 세 그룹으로 나뉘어 각각 성부, 성자, 성령의 작용을 반영한다고 보기도 한다. 예를 들어, 처음 세 성질(수렴, 확장, 회전)은 성부의 어둡고 격렬한 힘과 관련되고, 네 번째 성질인 ‘불(Feuer)’ 또는 ‘번개(Blitz)’는 어둠에서 빛으로 넘어가는 전환점이자 성자의 탄생을 예비하며, 다섯 번째(빛), 여섯 번째(소리), 일곱 번째(형상 또는 본질) 성질은 성자와 성령을 통해 드러나는 빛과 사랑, 지혜와 조화의 세계와 관련된다. 이처럼 일곱 자연 성질의 역동적인 상호작용은 곧 삼위일체 하나님의 내적인 생명의 표현이자, 만물이 생성되고 유지되는 근본적인 원리가 된다.


이와 같이 야콥 뵈메의 삼위일체 이해는 전통적인 교리에 바탕을 두면서도, 그것을 훨씬 더 역동적이고 체험적이며 우주론적인 차원으로 확장시킨다. 그의 관점에서 삼위일체 하나님은 단순히 교리적으로 믿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모든 존재의 근원이자 지금도 살아 역사하며 만물을 새롭게 창조하고 구원하는 생명의 과정 그 자체였다. 그의 이러한 삼위일체론은 그의 다른 핵심 사상들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그의 신비주의 사상의 깊이와 독창성을 잘 보여주는 중요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통찰은 우리로 하여금 삼위일체 하나님을 더욱 풍부하고 생생하게 이해하도록 이끌며, 신적인 생명이 우리 자신의 내면과 온 우주 안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새롭게 깨닫게 한다.


2.4.1. 성부: 운그룬트(Ungrund), 첫 번째 원리, 분노의 불(Zornfeuer)


야콥 뵈메(Jacob Boehme)의 역동적인 삼위일체(Heilige Dreifaltigkeit) 이해에서 첫 번째 위격(Person, 페르소나)인 성부(Der Vater, the Father) 하나님은 모든 존재와 생성의 가장 근원적인 출발점이자 보이지 않는 토대로 묘사된다. 뵈메는 전통적인 기독교의 성부 하나님 개념에 자신만의 독특한 형이상학적 통찰을 결합하여, 성부를 단순히 인격적인 아버지의 모습으로만 이해하는 것을 넘어, 훨씬 더 심오하고 역동적인 실재로 그리고자 했다. 그가 성부를 설명하기 위해 사용하는 핵심적인 개념들은 바로 ‘운그룬트(Ungrund)’, ‘첫 번째 원리(das erste Principium)’, 그리고 ‘분노의 불(Zornfeuer)’이다. 이 개념들은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며, 성부의 본질과 작용을 다층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뵈메의 사유 안에서 성부의 가장 깊은 본질은 모든 규정과 이해를 초월하는 ‘운그룬트(Ungrund)’와 맞닿아 있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운그룬트는 ‘바닥 없는 바닥’ 또는 ‘근원 없는 근원’을 의미하며, 어떠한 형태나 성질도 없는 ‘무(Nichts, Nothing)’이자 ‘영원한 자유(ewige Freiheit)’의 상태이다. 성부는 바로 이 규정할 수 없는 운그룬트 안에서 자기 자신을 드러내고자 하는 최초의 움직임, 즉 ‘영원한 의지(Der ewige Wille)’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다. 마치 어떤 그림을 그리기 전의 하얀 캔버스가 아직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무’의 상태이지만 동시에 어떤 그림이든 그려질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 즉 ‘자유’를 품고 있는 것처럼, 그리고 화가의 ‘그리고자 하는 의지’가 바로 이 캔버스라는 ‘무’에서부터 시작되듯이, 성부는 운그룬트라는 신비로운 ‘무’ 안에서 모든 것을 생성하고자 하는 근원적인 의지의 출발점과 같다. 그러나 성부 자신도 처음에는 이 운그룬트의 규정할 수 없는 심연 속에 숨겨져 있는 것처럼 묘사된다. 성부를 운그룬트와 연결시키는 것은, 성부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존재나 신적인 속성들보다도 더 앞서 있으며, 그 어떤 것에도 의존하지 않는 절대적인 자존자(自存者)임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그는 모든 것의 아버지이지만, 그 자신은 아버지가 없는, 즉 그 어떤 것에도 근거하지 않는 궁극적인 실재라는 것이다.


운그룬트 안의 영원한 의지가 자기 자신을 느끼고 경험하고자 하는 ‘갈망(Begierde)’을 일으킬 때, 가장 먼저 나타나는 구체적인 힘의 양상이 바로 ‘첫 번째 원리(das erste Principium)’이다. 뵈메는 이 첫 번째 원리를 성부의 고유한 ‘성질(Eigenschaft)’ 또는 ‘활동 영역’으로 본다. 이 첫 번째 원리는 강력하고, 수축하며(contractive), 자기중심적이며, 때로는 어둡고 격렬한 성격을 띤다. 강력한 자석이 주변의 모든 쇠붙이를 자기 자신에게로 끌어당기듯이, 첫 번째 원리는 모든 것을 자기 자신 안으로 끌어들이고 응축시키려는 경향을 지닌다. 또한, 웅크리고 있는 씨앗이나 겨울잠을 자는 동물처럼, 모든 에너지를 안으로 모으고 외부와 단절하려는 모습도 이 첫 번째 원리의 특징을 보여준다. 이러한 수축과 자기중심성은 자기 자신의 고유한 정체성을 형성하고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힘이지만, 동시에 다른 존재들과의 관계를 어렵게 만들 수도 있다. 뵈메는 이 첫 번째 원리를 종종 ‘어둠의 세계(finstere Welt)’라고도 부르며, 이곳은 아직 빛이 분리되지 않은 원초적인 상태이다. 이곳은 마치 깊은 바닷속이나 캄캄한 동굴처럼, 모든 것이 하나로 뭉쳐져 있고 분화되지 않은 상태를 상징한다. 이 첫 번째 원리는 이후에 나타날 빛의 원리(두 번째 원리)와 외적인 자연세계(세 번째 원리)의 기초가 되지만, 그 자체로는 아직 완전한 조화나 기쁨을 드러내지 못한다.


뵈메는 성부와 관련된 이 첫 번째 원리의 역동적이고 때로는 격렬한 성격을 ‘분노의 불(Zornfeuer)’이라는 강력한 이미지로 표현한다. 이 ‘분노의 불’은 단순히 인간적인 감정으로서의 분노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소멸시키고 정화하며, 동시에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근원적인 신적인 힘을 상징한다. 화산이 폭발할 때 용암이 모든 것을 삼켜버리거나 거대한 산불이 숲을 태워버리는 것처럼, 이 ‘분노의 불’은 엄청난 파괴력을 지닌다. 그러나 동시에 화산 폭발 이후 새로운 땅이 생겨나고 산불 이후 새로운 식물들이 자라나듯이, 이 파괴적인 힘은 새로운 창조를 위한 정화의 과정이기도 하다. 또한, 대장장이가 쇠를 불에 달구어 단단한 연장을 만들듯이, 이 ‘분노의 불’은 모든 존재를 단련시키고 강하게 만드는 힘으로도 작용할 수 있다. 뵈메의 관점에서 이 ‘분노의 불’은 그 자체로 악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신적인 생명력의 가장 근원적이고 강력한 표현이며, 모든 존재가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악에 저항하기 위해 필요한 힘이다. 그러나 이 ‘분노의 불’이 제어되지 않고 자기중심적으로 폭발할 경우, 그것은 진정한 ‘신의 진노(Gottes Zorn)’ 또는 ‘지옥의 불(höllisches Feuer)’로 나타나 심판과 파괴를 가져올 수도 있다. 따라서 이 ‘분노의 불’은 항상 다음에 나타날 ‘사랑의 빛(Liebeslicht)’에 의해 조명되고 부드럽게 조절되어야만 창조적이고 생명을 주는 힘으로 작용할 수 있다.


뵈메는 성부 하나님을 이러한 운그룬트의 신비, 첫 번째 원리의 어둡고 수축하는 힘, 그리고 분노의 불이라는 격렬한 생명력과 연결시킴으로써, 전통적인 신 이해에 깊이와 역동성을 더했다. 그는 성부를 단순히 멀리 떨어져 있는 인자한 아버지가 아니라, 모든 존재의 가장 깊은 근원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드러내고 활동하는 살아있는 실재로 파악하고자 했다. 그의 이러한 성부 이해는 때로는 오해를 받기도 했지만, 우주와 인간 존재의 근원적인 신비를 탐구하려는 그의 치열한 노력을 보여주는 중요한 부분이다.


정리하자면, 야콥 뵈메의 삼위일체론에서 성부 하나님은 모든 규정을 초월하는 운그룬트의 심연에서부터 자신을 드러내고자 하는 영원한 의지의 근원이다. 이 의지는 첫 번째 원리로서 어둡고 수축하며 자기중심적인 힘으로 나타나며, 이는 다시 모든 것을 소멸시키고 새롭게 창조하는 근원적인 생명력인 ‘분노의 불’로 표현된다. 이러한 뵈메의 성부 이해는 그의 독특한 신관의 출발점이며, 이어지는 성자와 성령의 발현, 그리고 일곱 자연 성질과 세 가지 원리의 전개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기초를 제공한다. 그의 통찰은 우리로 하여금 신의 본질에 대해 더욱 깊이 사유하도록 이끌며, 존재의 근원에 숨겨진 어둠과 빛의 역동적인 드라마를 엿보게 한다.


2.4.2. 성자: 영원한 말씀(Logos), 빛, 사랑, 두 번째 원리


야콥 뵈메(Jacob Boehme)의 역동적인 삼위일체(Heilige Dreifaltigkeit) 이해에서, 성부(Der Vater) 하나님이 모든 존재의 근원적 의지이자 어둠의 불(Zornfeuer)로서 첫 번째 원리(das erste Principium)를 형성한다면, 두 번째 위격(Person, 페르소나)인 성자(Der Sohn, the Son) 하나님은 이 어둠 속에서 발현되는 빛과 사랑, 그리고 신적인 지혜의 중심으로 묘사된다. 뵈메의 사유 안에서 성자는 단순히 역사 속의 예수 그리스도(Jesus Christ) 개인을 넘어, 영원 전부터 성부와 함께하며 신적인 본질을 드러내고 우주를 창조하며 인간을 구원하는 우주적인 원리이자 신적인 말씀 그 자체이다. 그가 성자를 설명하기 위해 사용하는 핵심적인 개념들은 ‘영원한 말씀(das ewige Wort, 그리스어: Logos, 로고스)’, ‘빛(Licht)’, ‘사랑(Liebe)’, 그리고 ‘두 번째 원리(das zweite Principium)’이다.


뵈메는 성자를 요한복음 서두에 나오는 ‘말씀(Logos, 로고스)’과 동일시한다. 이 ‘말씀’은 단순히 인간의 언어가 아니라, 신적인 이성이자 창조적인 능력, 그리고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신의 계시 그 자체를 의미한다. 성부의 영원한 의지가 규정할 수 없는 운그룬트(Ungrund)의 심연에서 자신을 드러내고자 할 때, 그 의지는 ‘지혜(Sophia, 소피아)’라는 신적인 거울을 통해 자기 자신을 바라보게 되는데, 이때 지혜의 거울에 비친 신의 모습, 즉 신의 자기 인식이 바로 ‘영원한 말씀’인 성자라는 것이다. 우리가 어떤 생각을 할 때 그 생각이 처음에는 막연하고 형태가 없지만 점차 언어라는 틀을 통해 구체적인 문장으로 표현되면서 명확해지듯이, 그리고 그때 언어가 우리의 내면적인 생각을 외부로 드러내고 다른 사람과 소통할 수 있게 하는 매개체가 되듯이, 뵈메의 사유 안에서 성자는 성부의 보이지 않고 규정할 수 없는 본질을 구체적인 ‘말씀’ 또는 ‘형상(image)’으로 드러내어, 신 자신이 스스로를 인식하고 또한 피조물에게 자신을 알릴 수 있도록 하는 신적인 매개자이다. 이 ‘영원한 말씀’은 모든 창조의 원형(archetype)이자 설계도와 같다. 모든 존재는 이 말씀을 통해 그 의미와 목적을 부여받으며, 이 말씀 안에서 비로소 자신의 참된 본질을 발견할 수 있다. 성자는 성부의 마음(Gemüt Gottes) 또는 신적인 이해력(Verstand Gottes)으로도 불리며, 성부의 무한한 가능성을 구체적인 현실로 이끌어내는 창조적인 지혜의 중심이다.


성자는 성부의 어둡고 격렬한 ‘분노의 불(Zornfeuer)’ 속에서 마치 번개(Blitz)처럼 터져 나오는 ‘빛(Licht)’의 원리이다. 이 빛은 단순한 물리적인 빛이 아니라, 생명을 주고 치유하며 모든 것을 조화롭게 만드는 신적인 사랑과 자비, 그리고 기쁨의 빛이다. 어둠이 수축하고 자신을 향하는 힘이라면, 빛은 확장하고 자신을 내어주며 모든 것을 감싸 안는 사랑의 힘이다. 캄캄한 동굴 속에 한 줄기 햇빛이 들어올 때 그 빛이 어둠을 몰아내고 동굴 안의 모든 것을 밝히 드러내며 새로운 생명의 가능성을 보여주듯이, 뵈메의 관점에서 성자는 성부의 어두운 첫 번째 원리의 고통과 불안 속에서 새로운 희망과 생명을 가져오는 빛이다. 또한, 차가운 겨울이 지나고 따뜻한 봄 햇살이 만물을 소생시키듯이, 성자의 빛과 사랑은 죽음과 절망에 빠진 영혼에게 새로운 생명과 기쁨을 불어넣는 힘이다. 뵈메는 이 빛과 사랑의 원리를 ‘두 번째 원리(das zweite Principium)’라고 부르며,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세상에 계시된 하나님의 본질적인 성품이라고 강조한다. 성자는 자신의 빛과 사랑으로 성부의 분노의 불을 감싸 안고 부드럽게 만들며, 그 파괴적인 힘을 창조적인 에너지로 변화시킨다. 이 과정은 마치 격렬한 불이 부드러운 물과 만나 조화로운 온기를 만들어내는 것과 같다. 성자의 사랑은 모든 대립과 갈등을 포용하고 화해시키는 궁극적인 힘이며, 모든 피조물을 신과의 합일로 이끄는 원동력이다.


성자는 신적인 본질 안에서 두 번째로 발현되는 원리로서, 첫 번째 원리인 성부의 어둠과 분노를 극복하고 새로운 차원의 생명과 질서를 창조하는 중심이다. 이 두 번째 원리는 ‘빛의 세계(lichte Welt)’ 또는 ‘사랑의 왕국(Reich der Liebe)’을 형성하며, 이곳은 모든 기쁨과 조화, 그리고 영원한 생명이 넘치는 영역이다. 어떤 예술가가 자신의 내면에 있는 고통과 어둠(첫 번째 원리)을 예술 작품(두 번째 원리)으로 승화시켜 아름다움과 감동을 창조해내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듯이, 예술 작품이 고통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재료 삼아 새로운 의미와 가치를 만들어내듯이, 뵈메의 사유 안에서 성자는 성부의 격렬한 힘을 바탕으로 하여 그것을 넘어서는 새로운 차원의 신적인 세계, 즉 사랑과 빛의 세계를 창조하는 원리이다. 인간의 타락 이후, 이 두 번째 원리인 성자는 타락한 인간성과 자연을 구원하고 회복시키기 위해 역사 속에 예수 그리스도로 성육신(Incarnation)하셨다고 뵈메는 설명한다. 그리스도는 자신의 삶과 죽음, 그리고 부활을 통해 첫 번째 원리의 어둠과 죽음의 힘을 이기고, 모든 믿는 자들에게 이 두 번째 원리, 즉 빛과 사랑의 생명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다. 따라서 성자는 단순한 우주론적 원리를 넘어, 구체적인 역사 속에서 활동하며 인간을 구원하는 살아있는 인격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동일시된다.


뵈메의 삼위일체론에서 성부와 성자는 서로 분리될 수 없는 깊은 관계 속에 있다. 성자는 성부로부터 영원히 ‘낳아지며(gezeugt, begotten)’, 성부의 본질을 완전히 공유한다. 성부가 없다면 성자가 존재할 수 없고, 성자가 없다면 성부의 의지와 사랑은 드러날 수 없다. 성부는 성자를 통해 자기 자신을 인식하고 사랑하며, 성자는 성부의 뜻을 온전히 이루고 그 영광을 드러낸다. 이 둘의 관계는 영원한 사랑과 생명의 교제이며, 이 관계 속에서 성령이 발출되어 삼위일체의 신비가 완성된다.


요약하자면, 야콥 뵈메의 관점에서 삼위일체의 두 번째 위격인 성자는 성부의 어두운 심연에서 발현되는 ‘영원한 말씀’이자 ‘빛과 사랑’의 원리이다. 그는 신의 자기 인식과 계시의 중심이며, 모든 창조와 구원의 근원이다. 성자는 ‘두 번째 원리’로서 어둠을 이기고 새로운 생명과 조화의 세계를 열며, 역사 속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로 성육신하여 타락한 인간과 세계를 구원한다. 그의 이러한 성자 이해는 전통적인 기독교 교리에 바탕을 두면서도, 그것을 훨씬 더 역동적이고 우주론적인 차원으로 심화시킨다. 뵈메의 통찰은 우리로 하여금 성자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과 지혜, 그리고 그 구원의 능력을 더욱 깊이 깨닫게 하며, 그 빛 안에서 참된 생명을 발견하도록 이끈다.


2.4.3. 성령: 생명, 운동, 힘, 현현된 세계, 세 번째 원리


야콥 뵈메(Jacob Boehme)의 역동적인 삼위일체(Heilige Dreifaltigkeit) 이해에서 성부(Der Vater)가 모든 존재의 근원적 의지이자 첫 번째 원리(das erste Principium)로서 어둠의 불(Zornfeuer)을 형성하고, 성자(Der Sohn)가 영원한 말씀(Logos)이자 두 번째 원리(das zweite Principium)로서 빛과 사랑을 드러낸다면, 세 번째 위격(Person, 페르소나)인 성령(Der Heilige Geist, the Holy Spirit)은 이 두 원리로부터 발출되어(proceeding) 신적인 생명과 능력을 구체적인 현실 세계로 가져오는 역할을 한다. 뵈메의 사유 안에서 성령은 단순한 추상적인 힘이나 영향력이 아니라, 삼위일체 하나님의 한 위격으로서 고유한 역할을 수행하며, 만물의 생성과 유지, 그리고 궁극적인 완성에 필수적인 존재이다. 그가 성령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하는 핵심적인 개념들은 ‘생명(Leben)’, ‘운동(Bewegung)’, ‘힘(Kraft)’, ‘현현된 세계(offenbarte Welt)’, 그리고 ‘세 번째 원리(das dritte Principium)’이다.


뵈메의 관점에서 성령은 무엇보다도 ‘살아있는 생명’ 그 자체이며, 모든 존재에게 생명을 부여하고 그것을 유지시키는 근원적인 힘이다. 성부의 의지와 성자의 말씀(지혜)이 아직 드러나지 않은 가능성의 상태라면, 성령은 이러한 가능성을 현실적인 생명으로 구체화하고 활동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잘 설계된 자동차(성자의 말씀 또는 지혜)가 있고 그것을 움직이려는 운전자(성부의 의지)가 있다고 해도, 실제로 자동차를 움직이게 하는 연료나 엔진의 힘(성령)이 없다면 자동차는 그 자리에 멈춰 있을 수밖에 없는 것처럼, 뵈메의 사유 안에서 성령은 신적인 계획과 의지를 구체적인 현실 속에서 살아 움직이게 하는 ‘에너지’ 또는 ‘동력’과 같다. 또한, 성령은 모든 존재 안에 ‘운동(Bewegung)’을 일으키는 원리이다. 정체되어 있거나 죽어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고 발전하며 서로 관계 맺도록 하는 것이 바로 성령의 작용이다. 자연계의 끊임없는 순환, 별들의 움직임, 식물의 성장, 동물의 활동, 그리고 인간 영혼의 내적인 역동성 등 모든 종류의 운동과 변화는 성령의 살아있는 임재와 활동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잔잔한 호수 표면에 바람이 불면 물결이 일고 호수 전체에 생기가 도는 것처럼, 성령은 이 바람처럼 보이지 않지만 강력한 힘으로 작용하여 정체된 것처럼 보이는 존재들에게 새로운 움직임과 활력을 불어넣는다.


성령은 성부의 의지와 성자의 말씀을 현실 세계에 구현하는 ‘힘(Kraft)’ 또는 ‘능력(Macht)’이다. 성령은 신적인 계획을 단순히 전달하는 것을 넘어, 그것을 실제로 이루어내는 강력한 실행자이다. 모든 창조와 구원의 역사 속에서 성령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하며, 그 어떤 장애물도 극복할 수 있는 무한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 건축가가 훌륭한 설계도(성자의 말씀)를 가지고 있고 건물을 짓고자 하는 강한 의지(성부의 의지)가 있다고 해도, 실제로 그 설계도에 따라 벽돌을 쌓고 기둥을 세우는 건설 노동자들(성령의 힘)이 없다면 건물은 완성될 수 없는 것처럼, 성령은 신적인 아이디어를 구체적인 현실로 만들어내는 ‘일하는 손’과 같다. 성경의 창세기에서 “하나님의 영(성령)이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라는 구절은 바로 이러한 성령의 창조적인 능력을 암시한다.


뵈메는 성령을 ‘세 번째 원리(das dritte Principium)’와 밀접하게 연결시킨다. 이 세 번째 원리는 앞서 살펴본 성부의 어두운 첫 번째 원리와 성자의 빛나는 두 번째 원리의 역동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생성되고 유지되는, 우리가 경험하는 구체적이고 가시적인 세계, 즉 ‘현현된 세계(offenbarte Welt)’ 또는 ‘생성된 자연(geschaffene Natur)’을 가리킨다. 성령은 바로 이 세 번째 원리 안에서 주관자로서 활동하며, 하늘과 땅, 별과 원소들, 그리고 식물, 동물, 인간을 포함한 모든 피조물을 다스리고 인도한다. 화가가 빨간색 물감(첫 번째 원리의 격렬함)과 파란색 물감(두 번째 원리의 고요함)을 섞어 아름다운 보라색(세 번째 원리, 현현된 세계)을 만들어내는 것을 상상해 볼 수 있듯이, 이때 성령은 두 가지 다른 색을 조화롭게 섞어 새로운 색을 만들어내는 화가의 솜씨와 같다. 성령은 신적인 본질 안의 서로 다른 힘들을 조화시켜 구체적인 형태와 질서를 가진 세상을 만들어내고, 그 안에서 각 존재가 자신의 고유한 역할을 수행하며 전체적인 조화에 기여하도록 이끈다. 이 세 번째 원리로서의 성령은 시간과 공간의 지배를 받는 이 세상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며, 모든 피조물을 궁극적인 완성으로 이끌어가는 역할을 한다. 자연의 아름다움과 질서, 인간의 창조적인 능력, 그리고 역사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의미 있는 사건들은 성령의 섬세하고도 강력한 활동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뵈메의 사유 안에서 성령은 성부와 성자로부터 ‘발출되어(ausgehend, proceeding)’ 나오지만, 결코 그들과 분리되거나 종속적인 존재가 아니다. 성령은 성부, 성자와 동일한 신적인 본질을 공유하며, 삼위일체 하나님의 한 위격으로서 동등한 영광과 존엄성을 지닌다. 이 세 위격은 마치 하나의 불꽃이 불 자체(성부), 그 빛(성자), 그리고 그 열기(성령)로 이루어져 있듯이, 서로 구별되면서도 하나의 분리될 수 없는 유기적인 통일체를 이룬다. 성령은 성부의 근원적인 의지와 성자의 창조적인 말씀을 받아, 그것을 구체적인 생명과 운동, 그리고 형태로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성령 없이는 성부의 의지도, 성자의 말씀도 현실 세계에 나타날 수 없다. 반대로 성령은 성부와 성자로부터 끊임없이 생명과 능력을 공급받으며 활동한다. 이처럼 삼위일체 하나님은 내적인 사랑과 생명의 교제를 통해 영원히 자신을 드러내고 창조하며 구원하는 살아있는 실재이다.


요컨대, 야콥 뵈메의 삼위일체론에서 성령 하나님은 성부의 의지와 성자의 말씀을 현실 세계에 구현하는 살아있는 생명, 운동, 그리고 힘의 원리이다. 그는 ‘세 번째 원리’로서 현현된 세계를 주관하며, 모든 피조물에게 생명을 부여하고 그것을 유지하며 궁극적인 완성으로 이끌어간다. 성령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역동적인 자기 현현 과정에서 필수적인 역할을 하며, 그의 작용을 통해 우리는 비로소 신적인 사랑과 지혜를 구체적인 삶 속에서 경험하고 신과의 합일에 이를 수 있다. 뵈메의 이러한 성령 이해는 전통적인 교리를 심화시키면서도, 그의 독창적인 우주론과 영성론을 풍부하게 만드는 핵심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다. 그의 통찰은 우리로 하여금 성령의 살아있는 임재와 활동을 우리 주변의 모든 존재와 우리 자신의 내면 깊은 곳에서 발견하도록 이끈다.


2.5. 신적 지혜, 소피아(Sophia): 영원한 처녀, 신의 거울, 창조의 매개


야콥 뵈메(Jacob Boehme)의 복잡하고 심오한 사상 체계에서 매우 독특하고 매력적인 개념 중 하나는 바로 ‘신적 지혜(Divine Wisdom)’, 즉 ‘소피아(Sophia, 그리스어: Σοφία)’이다. 소피아는 뵈메의 글 속에서 다양한 모습과 역할로 등장하며, 그의 신관, 우주론, 인간론, 그리고 구원론을 이해하는 데 있어 중요한 열쇠를 제공한다. 그녀는 때로는 신적인 본질 그 자체와 깊이 연관된 존재로, 때로는 창조의 매개자이자 신과 인간을 연결하는 다리로, 또 때로는 인간 영혼이 추구해야 할 궁극적인 신부(bride)이자 영적인 어머니로 묘사된다. 뵈메의 사유 안에서 소피아는 단순한 추상적인 개념이나 알레고리(allegory, 풍유)를 넘어, 살아있는 영적인 실재이자 신비로운 여성적 원리였다.


뵈메는 소피아를 종종 ‘영원한 처녀(die ewige Jungfrau)’ 또는 ‘하늘의 처녀(die himmlische Jungfrau)’라고 부른다. 이는 소피아가 모든 창조 이전에 신적인 본질 안에서 순수하고 훼손되지 않은 상태로 존재하며, 어떠한 피조물적인 제한이나 오염에도 물들지 않은 신적인 완전성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그녀는 마치 때 묻지 않은 깨끗한 거울처럼, 신적인 본질의 아름다움과 지혜를 그 자체로 반영한다. 아직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순백의 캔버스나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원시 자연의 깨끗하고 아름다운 모습처럼, 소피아는 모든 가능성을 품고 있으면서도 그 자체로는 순수하고 완전한 상태, 즉 신적인 아이디어나 원형(archetype)들이 아직 구체적인 형태로 드러나기 이전의 이상적인 상태를 나타낸다. 그녀는 신랑을 기다리는 순결한 신부처럼, 신적인 의지와 사랑이 자신을 통해 표현되기를 기다리는 존재이다. 이 ‘영원한 처녀’로서의 소피아는 뵈메의 운그룬트(Ungrund) 개념과도 밀접하게 관련된다. 운그룬트가 모든 규정 이전의 ‘무(Nichts)’라면, 소피아는 이 ‘무’ 안에서 신적인 본질이 자기 자신을 처음으로 인식하고 상상할 수 있도록 하는 일종의 ‘신적인 공간’ 또는 ‘가능성의 장(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녀는 신적인 지혜 그 자체이며, 모든 창조의 잠재적인 씨앗들을 품고 있다.


앞서 신의 자기 현현(Self-Manifestation) 과정에서 언급되었듯이, 뵈메는 소피아를 ‘신의 거울(Spiegel Gottes)’ 또는 ‘지혜의 거울(Spiegel der Weisheit)’이라고 묘사한다. 규정할 수 없는 운그룬트 안의 ‘영원한 의지(Der ewige Wille)’가 자기 자신을 인식하고 드러내고자 할 때, 그것은 바로 이 소피아라는 거울에 자기 자신을 비추어 봄으로써 비로소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스스로를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거울을 통해 우리 자신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듯이, 아직 형태가 없는 신적인 의지는 소피아라는 거울을 통해 자신의 무한한 가능성과 잠재된 형상들을 바라보게 된다. 이 거울에 비친 모습은 아직 구체적인 창조물은 아니지만, 모든 창조물의 이상적인 원형, 즉 신적인 ‘이데아(Idea)’들의 세계와 같다. 예를 들어, 예술가가 작품을 만들기 전에 마음속으로 그 작품의 완벽한 모습을 상상하듯이, 신적인 의지는 소피아의 거울 속에서 창조될 모든 것의 완벽한 가능성을 미리 본다는 것이다. 이처럼 소피아는 신이 자기 자신을 인식하고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매개자 역할을 한다. 그녀 없이는 신적인 의지가 맹목적인 충동에 머무를 수밖에 없으며, 구체적인 형상과 질서를 가진 세계로 나아갈 수 없다. 소피아는 신적인 본질의 ‘눈(eye)’이자 ‘마음(mind)’으로서, 신이 스스로를 알고 사랑하며 창조할 수 있도록 하는 근원적인 지혜이다.


소피아는 단순히 신의 자기 인식을 위한 거울에 머무르지 않고, 나아가 신적인 본질로부터 구체적인 세계가 창조되는 과정에서 중요한 매개자 역할을 한다. 그녀는 신적인 ‘말씀(Logos, 로고스)’ 또는 ‘형상화하는 힘(bildende Kraft)’과 결합하여, 운그룬트의 무한한 가능성을 구체적인 존재와 형태로 이끌어낸다. 즉, 소피아는 신적인 계획과 지혜를 담고 있는 ‘설계도’와 같으며, 성령은 이 설계도에 따라 만물을 창조하는 ‘실행자’라고 비유할 수 있다. 건축가가 아름다운 건물을 짓기 위해서는 먼저 그 건물의 청사진(소피아의 지혜)을 그려야 하고, 그 청사진에 따라 실제 건물을 짓는 기술자들(성령의 힘)이 필요한 것처럼, 소피아는 신적인 창조의 이상적인 계획과 질서를 제공하며, 모든 피조물이 그 안에서 자신의 고유한 위치와 목적을 찾도록 돕는다. 그녀는 마치 어머니가 자녀를 잉태하고 양육하듯이, 신적인 생명을 받아 그것을 구체적인 형태로 양육하고(nurturing) 발전시키는 역할을 한다. 뵈메는 소피아를 종종 ‘영원한 자연(ewige Natur)’ 또는 ‘신적인 감각 세계(göttliche Sinnenwelt)’라고도 부르는데, 이는 그녀가 모든 가시적인 자연세계의 보이지 않는 원형이자 영적인 토대가 됨을 의미한다. 타락 이전의 아담(Adam)은 이 소피아와 깊은 교제 가운데 있었으며, 그녀를 통해 신적인 지혜와 능력을 누렸다고 뵈메는 설명한다.


뵈메의 사상에서 소피아는 단지 우주론적인 원리에 그치지 않고, 인간 영혼의 구원과 영적 성장 과정에서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타락으로 인해 인간 영혼은 자신의 참된 신부이자 어머니인 소피아로부터 분리되어 고통과 어둠 속에 빠지게 되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길은 바로 이 잃어버린 소피아와의 관계를 회복하고 그녀와 다시 하나가 되는 과정이라고 뵈메는 강조한다. 소피아는 인간 영혼에게 ‘영원한 처녀’이자 ‘하늘의 신부(himmlische Braut)’로서 다가오며, 영혼이 모든 죄악된 욕망과 자기중심적인 의지를 버리고 순결한 마음으로 그녀를 갈망할 때, 그녀는 영혼 안으로 들어와 신적인 빛과 사랑, 그리고 지혜로 채워준다.


이것이 바로 참된 ‘중생(Wiedergeburt, 새로운 탄생)’이자 신과의 합일(unio mystica)의 경험이다. 마치 신랑을 기다리는 신부처럼, 인간 영혼은 자신의 내면 가장 깊은 곳에서 소피아와의 만남을 갈망한다. 그리고 영혼이 모든 세상적인 것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오직 순수한 마음으로 신적인 지혜를 구할 때, 소피아는 마치 사랑하는 연인처럼 영혼에게 다가와 그를 감싸 안고 새로운 생명으로 이끈다. "The Confessions of Jacob Boehme"의 한 구절은 이러한 사랑의 신비를 암시한다: "그것(신적인 사랑)은 태양보다 밝고, 달콤하다고 불리는 어떤 것보다 달콤하며, 모든 힘보다 강하고, 어떤 음식보다 영양가가 높으며, 포도주보다 마음을 더 기쁘게 하고, 이 세상의 모든 즐거움보다 더 즐겁다." 이처럼 소피아는 인간 영혼에게 구원의 길을 보여주는 안내자이자, 영적인 성장의 궁극적인 목표이기도 하다. 그녀와의 합일을 통해 인간은 비로소 자신의 참된 신적인 본성을 회복하고 영원한 기쁨과 평화를 누릴 수 있게 된다는 것이 뵈메의 핵심적인 가르침이다.


야콥 뵈메의 사상에서 신적 지혜, 소피아는 매우 다층적이고 신비로운 역할을 수행하는 중요한 개념이다. 그녀는 모든 창조 이전의 순수한 가능태인 ‘영원한 처녀’이자, 신이 자기 자신을 인식하는 ‘신의 거울’이며, 신적인 계획을 현실 세계로 가져오는 ‘창조의 매개자’이다. 더 나아가, 그녀는 타락한 인간 영혼이 다시 신과의 합일에 이르도록 이끄는 ‘영혼의 신부’이자 영적인 어머니이기도 하다. 뵈메의 소피아론은 그의 사상 체계 전체에 여성적이고 인격적인 차원을 부여하며, 그의 신비주의가 지닌 풍부함과 깊이를 잘 보여준다. 이 신비로운 지혜의 여인에 대한 이해는 뵈메의 복잡한 사상을 관통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열쇠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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