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야콥 뵈메(Jacob Boehme)의 사상 체계에서 신(神)의 본질과 자기 현현, 우주의 창조 원리인 일곱 자연 성질(Sieben Quellgeister / Natureigenschaften)과 세 가지 원리(Drei Principien), 그리고 천사와 인간의 창조, 타락, 구원의 우주 드라마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제부터는 이러한 거시적인 우주론적 통찰을 바탕으로, 뵈메가 인간 존재 자체를 어떻게 이해했는지, 즉 그의 인간론(anthropology)과 영혼론(psychology, 영혼에 관한 학문)의 핵심적인 내용들을 탐구할 것이다. 뵈메에게 있어서 인간은 단순한 피조물 중 하나가 아니라, 우주 전체의 비밀을 담고 있는 ‘작은 세계(kleine Welt)’, 즉 ‘소우주(microcosm)’였다. 따라서 인간 자신에 대한 깊은 이해는 곧 우주와 신을 이해하는 열쇠가 된다고 그는 보았다. 이 장에서는 먼저 인간을 구성하는 기본적인 요소들에 대한 그의 견해를 살펴볼 것이다.
6.1. 인간의 구성: 육체, 영혼, 영(Geist)
야콥 뵈메는 사람이라는 존재를 하나의 덩어리로 보지 않았다. 그는 사람이 서로 다른 차원의 요소들이 복잡하게 섞여 이루어진 존재라고 이해했다. 그는 전통적인 기독교에서 사람을 이해하는 방식(예를 들어 영혼과 육체, 이렇게 둘로 나누는 것)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자신만의 독특한 우주 원리를 적용해서 사람의 구조를 더욱 여러 층으로 나뉘고 활발하게 움직이는 모습으로 설명하려고 했다. 그가 사람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말할 때 중요하게 제시하는 것은 크게 ‘육체(Leib)’, ‘영혼(Seele)’, 그리고 ‘영(Geist)’이다. 이 세 가지 요소는 각각 어디서 왔는지와 그 특징이 서로 다르며, 사람 안에서 서로 아주 가깝게 관계를 맺고 영향을 주고받는다. (뵈메의 생각과 삶에 대해 적힌 "The Life and Doctrines of Jacob Boehme"라는 책의 찾아보기에는 "영혼(Soul)"에 대한 언급이 아주 많이 나오는데, 이것은 그의 사람에 대한 이론에서 영혼의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또한 "영(Spirit)" 역시 중요한 개념으로 다루어진다.)
육체(Leib)는 사람 존재의 가장 바깥쪽에 있고 눈에 보이는 부분을 가리킨다. 이것은 우리가 보통 물질적인 몸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흙, 물, 공기, 불이라는 네 가지 원소로 이루어져 있으며, 하늘의 별들로부터 끊임없이 영향을 받는다고 보았다. 이것은 앞서 뵈메의 책 《인간의 세 가지 생명》에서 언급된 ‘첫 번째 생명’, 즉 ‘바깥의, 원소로 된 또는 별들의 생명’과도 연결된다. 이는 마치 우리가 집을 지을 때 나무, 흙, 돌 같은 여러 재료로 만들고, 또 집이 바깥 날씨나 환경의 영향을 받는 것처럼, 사람의 육체 역시 자연계의 여러 물질로 이루어져 있으며, 우주의 힘(예를 들어 해, 달, 별들의 기운) 아래에서 살아가는 것과 같다. 이 육체 자체는 착하지도 악하지도 않으며, 영혼이 이 세상에서 활동하고 자신을 표현하는 데 필요한 도구이자 그릇과 같다. 하지만 사람이 타락한 뒤로, 이 육체는 약해지고 죽음에 이르는 존재가 되었으며, 때로는 영혼을 가두고 세상적인 욕심과 유혹에 빠지게 만드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뵈메는 육체를 완전히 나쁘게 보거나 무시하지 않는다. 그는 육체 역시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며, 영혼이 성장하는 데 중요한 바탕이 되고, 마지막에는 부활을 통해 새롭게 바뀌어 영광스러운 상태에 이를 수 있다고 보았다. 예를 들어, 우리가 몸의 감각을 통해 아름다움을 느끼거나, 몸을 써서 착한 일을 할 수 있듯이, 육체는 영적인 가치를 이루는 길이 될 수도 있다.
영혼(Seele)은 뵈메가 사람을 이해하는 데 있어 아주 중심이 되는 부분이며, 사람 존재의 핵심이자 각 사람을 다른 사람과 구별해 주는 정체성의 바탕이다. 육체가 주로 바깥 자연세계에 속해 있다면, 영혼은 보이지 않는 마음속 세계, 즉 하나님의 본질로부터 직접 온 영적인 존재이다. 뵈메는 이 영혼 안에 앞서 살펴본 ‘세 가지 원리(Drei Principien)’가 모두 작용하며, 이 세 원리가 활발하게 서로 작용하고 싸우는 것이 바로 인간 영혼의 드라마를 만들어낸다고 보았다. 첫 번째 원리, 즉 어둠과 분노의 불이 영혼 안에서 작용하면, 자기중심적인 마음, 모든 것을 자기 안으로 끌어당기려는 경향, 그리고 격렬한 감정(분노, 미움, 불안 같은 것)의 바탕이 되는 어두운 힘이 나타난다. 이것은 사람이 타락한 본성과 연결되며, 만약 이것이 조절되지 않으면 영혼을 고통과 절망 속으로 끌고 간다. 예를 들어, 우리가 어떤 일에 실패했을 때 느끼는 좌절감이나 자기를 미워하는 마음, 또는 다른 사람을 심하게 질투하거나 원망하는 마음 같은 것은 영혼 안의 어두운 힘이 작용하는 모습이다. 동시에 영혼 안에는 하나님의 빛과 사랑, 그리고 지혜를 향한 그리움과 가능성도 존재한다. 이것은 사람 안에 있는 ‘하나님의 불꽃’이며, 이 빛의 힘이 깨어날 때 영혼은 참된 기쁨과 평화를 누리고 하나님과 하나 될 수 있게 된다. 예를 들어, 우리가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착한 일을 하려는 마음, 또는 다른 사람의 아픔에 함께 아파하며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마음 같은 것은 영혼 안의 빛의 힘이 드러나는 모습이다. 또한 영혼은 바깥 세계, 즉 육체와 감각을 통해 들어오는 여러 경험과 유혹에도 마주한다. 이때 영혼은 자신의 ‘자유로운 선택(freier Wille)’을 사용해서 어떤 원리를 따를 것인지, 즉 어둠의 힘에 질 것인지 아니면 빛의 힘을 향해 나아갈 것인지를 결정해야 하는 중요한 책임을 진다. 예를 들어, 맛있는 음식을 보고 너무 많이 먹고 싶은 유혹(바깥 세계의 자극, 첫 번째 원리에서 오는 욕망)을 느낄 때, 건강을 생각하고 참으려는 마음(두 번째 원리에서 오는 지혜, 자유로운 선택의 작용) 사이에서 고민하는 것이 바로 영혼 안에서 벌어지는 세 원리의 다툼이다. 이처럼 뵈메에게 영혼은 착함과 악함, 빛과 어둠이 끊임없이 싸우는 활발한 전쟁터이자, 동시에 자유로운 선택을 통해 자신의 운명을 결정짓는 주체적인 존재이다.
영(Geist)에 대해 말하자면, 뵈메는 때로 ‘영혼(Seele)’과 ‘영(Geist)’을 엄격하게 나누지 않고 섞어 쓰기도 하지만, 어떤 때는 ‘영’을 영혼보다 더 깊고 근본적인 차원, 즉 사람 안에 있는 순수한 하나님의 본질 또는 ‘영원한 정신(ewiger Geist)’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한다. 이 ‘영’은 타락 때문에 어두워지거나 비뚤어질 수 있는 영혼과는 달리, 항상 순수하고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빛 그 자체이며, 사람이 마지막으로 도달해야 할 참된 자기 자신의 모습이다. 이는 마치 거울(영혼) 표면에 먼지가 묻거나 얼룩이 생겨 사물을 제대로 비추지 못할 수도 있지만, 거울 자체가 빛을 반사하는 능력(영)은 변하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는 것과 같다. 또는, 해(영)는 항상 빛나고 있지만, 구름(타락한 영혼의 상태)이 끼면 그 빛이 가려져 보이지 않을 수 있는 것과도 비슷하다. 이 ‘영’은 사람 영혼의 가장 깊은 중심에 있는 ‘하나님의 불꽃’과 같은 것이라고 볼 수 있으며, 이것이 바로 사람이 하나님과 직접 마음을 나누고 하나님의 생명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이 된다. ‘새로운 태어남(Wiedergeburt)’, 즉 거듭남이란 바로 이 마음속 깊은 곳의 ‘영’이 깨어나 영혼 전체를 다스리고, 육체까지도 변화시켜 하나님의 빛으로 가득 채우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성령(Der Heilige Geist)은 바로 이 사람의 ‘영’ 안에서 일하며, 그 사람을 진리와 생명으로 이끄는 역할을 한다.
야콥 뵈메는 사람을 육체, 영혼, 그리고 영이라는 세 가지 요소가 복잡하게 서로 작용하는 존재로 이해한다. 육체는 우리가 살아가는 바깥 세계와 만나는 지점이자 영혼의 도구이며, 영혼은 착함과 악함, 빛과 어둠이 싸우는 마음속 중심이자 자유로운 선택의 자리이다. 그리고 영은 사람 존재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순수한 하나님의 본질로서, 구원과 영적 성장의 마지막 목표를 향해 우리를 이끈다. 이러한 그의 사람에 대한 이해는 단순한 심리 분석을 넘어, 사람 존재가 가진 여러 층의 신비와 그 안에 담긴 하나님의 가능성, 그리고 영적인 길을 가는 활발한 모습을 깊이 있게 탐구하려는 시도였다. 그의 사람에 대한 이론은 그가 생각한 우주 전체의 모습과 아주 가깝게 연결되어 있으며, 독자들로 하여금 자기 자신의 존재를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고 그 안에서 하나님의 빛을 발견하도록 이끌어준다.
6.2. 영혼의 기원과 본질: 신적 불꽃
앞서 야콥 뵈메가 사람을 육체, 영혼, 그리고 영이라는 세 가지 요소로 이루어진 존재로 이해했다는 것을 살펴보았다. 이 중에서 특히 ‘영혼’은 그의 사람에 대한 이론에서 가장 중심이 되며, 사람 존재의 핵심이자 각자의 개별적인 모습, 그리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이루어지는 특별한 자리로 여겨진다. 뵈메는 이 사람의 영혼이 단순히 물질적인 현상이거나 육체가 하는 일의 곁가지가 아니라, 그 시작부터 하나님의 본질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강조한다. 그는 영혼의 가장 깊은 곳에 ‘하나님의 불꽃(göttlicher Funke)’이 있으며, 이것이 바로 영혼의 참된 본질이자 사람이 하나님의 생명에 참여할 수 있는 바탕이라고 보았다.
뵈메의 생각 안에서, 사람 영혼의 궁극적인 시작은 모든 존재의 바탕인 ‘운그룬트(Ungrund, 근원 없는 근원)’ 또는 ‘영원한 의지’로 거슬러 올라간다. 운그룬트가 자기 자신을 드러내고 구체적인 존재로 나타나는 과정에서, 하나님의 생명력이 ‘일곱 자연 성질’과 ‘세 가지 원리’를 거쳐 마침내 각 사람의 영혼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즉, 사람의 영혼은 단순히 흙으로 빚어진 육체에 불어넣어진 숨결이 아니라, 하나님의 본질 그 자체로부터 직접 나온 영적인 존재이다. 이는 마치 해(하나님의 본질)로부터 수많은 빛줄기(각 사람의 영혼)가 뻗어 나오는 모습과 같다. 각 빛줄기는 해와는 다른 하나하나의 존재처럼 보이지만, 그 시작은 해이며 해의 빛과 열기를 그대로 가지고 있다. 뵈메에게 사람의 영혼은 이와 비슷하게, 하나님의 생명으로부터 직접 흘러나와 그 하나님의 성품과 가능성을 지니고 있는 존재이다. 이렇게 영혼이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생각은 사람에게 특별한 존엄성과 가치를 준다. 사람은 단순한 물질 덩어리가 아니라, 그 안에 하나님의 씨앗을 품고 있는 영적인 존재이며, 따라서 하나님과 깊은 관계를 맺고 그분의 모습을 반영하도록 창조되었다는 것이다.
뵈메는 사람 영혼의 가장 깊은 중심, ‘영혼의 바탕’ 또는 ‘영혼의 성채’라고도 불리는 곳에 꺼지지 않는 ‘하나님의 불꽃’이 있다고 강조한다. 이 하나님의 불꽃은 영혼의 참된 본질이자, 하나님의 빛과 사랑, 그리고 지혜가 머무는 자리이다. 이것은 마치 어두운 방 안에 켜진 작은 촛불과 같아서, 비록 주변이 어둡고 혼란스러울지라도 그 빛은 결코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영혼의 길을 비추어 준다. 캄캄한 밤하늘에 빛나는 별들을 생각해 보자. 각 별은 멀리 떨어져 있고 작아 보이지만, 그 자체로 빛을 내며 어둠을 밝힌다. 사람 영혼 안의 ‘하나님의 불꽃’은 이 별과 같이, 비록 타락 때문에 그 빛이 약해지거나 가려질 수는 있지만, 결코 없어지지 않고 영혼의 가장 깊은 곳에서 하나님을 향한 그리움과 간절한 마음을 일깨운다. 또한, "야콥 뵈메의 고백"에서 뵈메는 이 하나님의 사랑의 불꽃을 "해보다 밝고... 이 세상의 모든 즐거움보다 더 즐겁다"고 표현하며, 그것이 사람 영혼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기쁨과 만족을 강조한다. 이 하나님의 불꽃은 사람이 하나님을 알아보고 그분과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사람의 머리나 감정만으로는 결코 하나님의 진리를 온전히 알 수 없으며, 오직 이 마음속 하나님의 불꽃이 성령의 도움으로 밝혀지고 활발해질 때 비로소 사람은 참된 지혜와 영적인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뵈메는 보았다.
비록 사람 영혼이 하나님의 불꽃을 그 본질로 하고 있지만, 동시에 영혼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의지(freier Wille)’를 가진 존재로서 두 가지 상반된 가능성 또한 가지고 있다. 즉, 영혼은 자신의 자유로운 선택을 사용해서 하나님의 빛을 향해 나아갈 수도 있고, 반대로 자기중심적인 어둠과 세상적인 유혹에 빠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인간 영혼의 드라마이자 싸움의 핵심이다. 이는 마치 나침반 바늘(영혼의 자유로운 선택)이 항상 북쪽(하나님의 빛)을 가리키려는 성향이 있지만, 주변에 강한 자석(세상적 유혹이나 자기중심적 욕망)이 있으면 그 방향을 잃고 흔들리거나 잘못된 방향을 가리킬 수도 있는 것과 같다. 사람 영혼은 이와 같이 끊임없이 착함과 악함, 빛과 어둠 사이에서 선택해야 하는 존재이다. 뵈메는 영혼이 이처럼 두 가지 가능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항상 깨어 기도하며 자기 마음을 지키고, 하나님의 은혜와 이끄심을 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영혼의 참된 본질인 하나님의 불꽃을 되찾고 그것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것이 바로 사람의 마지막 과제이자 구원의 길이라는 것이다.
사람의 타락은 바로 이 영혼의 자유로운 선택이 잘못 사용되어, 하나님의 빛을 향하는 대신 자기중심적인 어둠과 물질세계의 유혹에 빠짐으로써 비롯되었다. 타락 때문에 영혼 안의 하나님의 불꽃은 그 빛을 잃고 마치 재 속에 묻힌 불씨처럼 약해지거나 가려지게 되었다. 그러나 뵈메는 이 불꽃이 결코 완전히 꺼지지는 않는다고 강조한다. 그것은 여전히 영혼의 가장 깊은 곳에 숨겨져 있으며,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역사와 성령의 감동을 통해 다시 밝혀지고 타오를 수 있다는 희망을 제시한다.
이 모든 것을 종합해 볼 때, 야콥 뵈메의 생각 속에서 사람 영혼의 시작은 하나님 자신에게 있으며, 그 핵심은 바로 영혼 가장 깊은 곳에 있는 꺼지지 않는 ‘하나님의 불꽃’이다. 이 불꽃은 사람이 하나님과 이어지고 하나님의 생명에 참여할 수 있는 바탕이자, 모든 영적 성장과 구원의 출발점이다. 비록 타락 때문에 이 빛이 가려지고 영혼이 어둠과 고통 속에 빠지게 되었지만, 스스로의 선택을 통해 다시 하나님의 빛을 향하고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아들일 때, 이 하나님의 불꽃은 다시 타올라 영혼 전체를 비추고 참된 생명과 기쁨으로 이끌 수 있다. 뵈메가 이처럼 영혼을 이해한 것은, 사람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존엄하며 그 안에 얼마나 무한한 하나님의 가능성이 담겨 있는지를 일깨워주고, 각자가 자기 마음 가장 깊은 곳에서부터 시작되는 영적인 길을 통해 참된 자신을 발견하도록 이끌어 준다.
6.3. 마음(Gemüt)의 역할: 의지와 상상력의 중심
야콥 뵈메가 설명하는 사람의 복잡한 구조, 즉 육체, 영혼, 그리고 영 가운데, 사람의 마음속 세계에서 특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 핵심 기능이 바로 ‘마음(Gemüt)’이다. 뵈메에게 ‘마음’은 단순한 감정이나 생각 덩어리를 넘어, 사람의 ‘의지(Wille)’와 ‘상상력(Imagination, 독일어: Einbildung)’이 나타나고 작용하는 중심 장소이자, 영적인 세계와 물질세계를 이어주는 다리와 같은 역할을 한다. 이 ‘마음’이 어떤 방향으로 향하고 무엇을 간절히 바라느냐에 따라 사람 영혼의 운명이 결정된다고 할 만큼, 뵈메는 마음의 역할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
뵈메가 사용하는 독일어 ‘게뮈트(Gemüt)’는 우리말로 정확히 옮기기 다소 어려운 복합적인 뜻을 가진 단어이다. 보통 ‘마음’, ‘정신’, ‘기질’, ‘심성’ 등으로 번역될 수 있으며, 사람의 생각하고 느끼고 뜻을 세우는 모든 내면세계의 중심 부분을 가리킨다. 뵈메에게 이 ‘마음’은 마치 영혼의 ‘얼굴’ 또는 ‘거울’과 같아서, 영혼의 상태와 그 안에 있는 여러 힘, 즉 착함과 악함, 빛과 어둠이 싸우는 모습이 그대로 비쳐 나타나는 곳이다. 또한, ‘마음’은 사람의 ‘의지’가 머무는 곳이자, 그 의지가 구체적인 방향을 정하고 활동을 시작하는 출발점이다. 사람이 가진 자유로운 선택 의지는 바로 이 ‘마음’을 통해 무엇을 사랑하고 무엇을 미워하며, 무엇을 향해 나아가고 무엇을 거부할지를 결정한다. 이는 마치 우리가 어떤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할 때, 가장 먼저 우리 ‘마음’속에서 그 목표에 대한 강한 ‘의지’와 열망이 생겨나야 하는 것과 같다. 그 의지가 없다면 어떤 행동도 시작될 수 없다. 뵈메의 ‘마음’은 이처럼 모든 사람 활동의 근본적인 힘이 되는 의지가 자리 잡고 활동하는 중심 공간이다.
‘마음’은 또한 사람의 ‘상상력(Imagination)’이 나타나고 작용하는 중요한 장소이다. 뵈메에게 상상력은 단순히 없는 것을 만들어내는 공상 능력이 아니라, 마음속 의지와 간절한 바람을 구체적인 ‘모습(image 또는 form)’으로 만들고 그것을 현실로 이루려는 강력한 창조적인 힘이다. 이 상상력은 바로 ‘마음’을 통해 움직이며, 마음이 무엇을 상상하고 어떤 모습을 품느냐에 따라 사람의 생각과 감정, 그리고 행동이 결정된다. 이는 마치 예술가가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그것을 그림으로 표현하고자 할 때, 그의 ‘마음’속에는 먼저 그 풍경에 대한 생생한 ‘상상’이 떠오르는 것과 같다. 그리고 그 상상을 바탕으로 붓을 들어 캔버스 위에 구체적인 모습을 만들어낸다. 뵈메는 이와 비슷하게, 사람의 ‘마음’이 어떤 대상을 향해 상상력을 발휘하느냐에 따라 그 대상의 성질을 닮아가고 그것과 하나가 되려는 경향이 있다고 보았다. 만약 마음이 착하고 아름다운 것을 상상하면 영혼은 깨끗해지고 하나님의 빛으로 채워지지만, 반대로 악하고 추한 것을 상상하면 영혼은 어둠과 고통 속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뵈메는 ‘마음’을 어떻게 다스리고 어떤 것으로 채우느냐가 영적인 삶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마음이 하나님의 지혜(Sophia, 소피아)와 영원한 진리를 향해 상상력을 발휘할 때, 사람은 자신의 참된 본성을 발견하고 하나님과 하나 되는境지에 이를 수 있다. 그러나 마음이 세상적인 욕심이나 자기중심적인 헛된 생각에 사로잡히면, 사람은 타락의 길을 걷게 된다.
타락 이후 사람의 ‘마음’은 어둠과 혼란, 그리고 여러 욕심들 때문에 더러워지고 비뚤어졌다. 따라서 영적으로 성장하는 첫걸음은 바로 이 ‘마음’을 깨끗하게 하고 새롭게 하는 것이다. 뵈메는 참된 뉘우침(Buße, 회개)과 자기를 버리는 것(Selbstverleugnung), 그리고 하나님의 빛을 향한 간절한 바람을 통해 마음이 깨끗해질 수 있다고 가르친다. 이는 마치 더러운 거울(타락한 마음)이 사물을 있는 그대로 비출 수 없지만, 깨끗하게 닦으면(뉘우침과 정화) 비로소 사물의 참된 모습을 선명하게 반사할 수 있게 되는 것과 같다. 사람의 마음도 이와 같이 깨끗해질 때, 비로소 하나님의 진리의 빛을 올바로 알아보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깨끗해진 ‘마음’은 더 이상 세상의 시끄러움이나 자기중심적인 욕심에 흔들리지 않고, 조용함 속에서 하나님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성령의 이끄심을 따르게 된다. 이러한 마음의 상태를 뵈메는 ‘내려놓음(Gelassenheit, 체념)’이라고도 부르며, 이것이 바로 하나님과 하나 되는 데 이르는 중요한 길이라고 강조한다.
뵈메는 사람을 ‘작은 우주(microcosm, 소우주)’로 보았는데, 이때 ‘마음’은 바로 이 작은 우주인 사람과 ‘큰 우주(macrocosm, 대우주)’인 하나님의 세계를 이어주는 중요한 통로이자 다리 역할을 한다. 마음이 하나님을 향해 열려 있을 때, 사람은 우주의 신비와 하나님의 지혜를 자기 마음속에서 직접 경험하고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마음이 세상적인 것에 닫혀 있거나 더러워져 있으면, 이 연결은 끊어지고 사람은 영적으로 외로운 상태에 빠지게 된다. 따라서 뵈메에게 ‘마음’을 다스리고 올바른 방향으로 이끄는 것은 단순히 개인적인 마음 닦기의 문제를 넘어, 우주적인 차원에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창조 질서에 참여하는 중요한 영적 과제였다.
살펴본 바와 같이, 야콥 뵈메의 생각에서 ‘마음(Gemüt)’은 사람 내면세계의 중심부로서, 의지와 상상력이 나타나고 작용하는 핵심적인 장소이다. 마음이 무엇을 향하고 어떤 것을 상상하느냐에 따라 사람 영혼의 상태와 운명이 결정되며, 타락한 마음은 깨끗하게 하는 과정과 모든 것을 내려놓는 과정을 통해 하나님의 빛을 되찾고 영적인 성장의 길로 나아갈 수 있다. 뵈메는 이 ‘마음’의 역할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으며, 그것을 작은 우주인 사람과 큰 우주인 하나님의 세계를 이어주는 통로이자, 모든 영적 체험과 변화가 시작되는 근본적인 장소로 이해했다. 그의 깊은 생각은 우리에게 자기 마음을 살피고 다스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주며, 마음 가장 깊은 곳에서부터 시작되는 참된 자유와 평화를 향한 길을 보여준다.
6.4. 중생(거듭남 : Wiedergeburt)의 과정: 옛 자아의 죽음과 새 생명의 탄생
야콥 뵈메의 생각 속에서 사람의 타락은 절망적인 끝이 아니다. 그의 우주 이야기는 항상 하나님의 사랑과 지혜를 통해 회복되고 구원받을 수 있는 가능성을 향해 열려 있으며, 그 중심에는 바로 ‘중생(Wiedergeburt, 독일어로 ‘다시 태어남’ 또는 ‘새로운 탄생’을 의미)’이라는 깊은 영적 변화의 과정이 있다. 뵈메에게 중생은 단순히 교리를 받아들이거나 겉으로 보이는 종교 활동을 넘어선다. 그것은 사람의 가장 깊은 본질이 바뀌어 옛날의 자기 모습이 죽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하나님의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는, 실제적이고 직접 경험하는 사건이다. 이 중생의 과정은 그의 실천적인 영성이 잘 나타난 책 모음집인 《그리스도께 나아가는 길, Der Weg zu Christo》에서 핵심적으로 다루어지며, 그의 모든 생각의 마지막 목표라고 할 수 있다.
뵈메가 볼 때, 아담의 타락 이후 모든 사람은 그 안에 하나님의 불꽃(göttlicher Funke)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중심적인 어둠의 힘(첫 번째 원리)과 물질세계에 대한 욕심에 사로잡혀 하나님의 생명으로부터 멀어진 상태에 놓여 있다. 사람의 마음(Gemüt)은 비뚤어진 상상력으로 가득 차 있으며, 그의 의지(Wille)는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고 자기 자신만을 향하고 있다. 이러한 상태에서 사람은 참된 기쁨과 평화를 누릴 수 없으며, 불안과 고통, 그리고 죽음의 두려움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사람이 이 비참한 상태에서 벗어나 원래의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모습(Imago Dei)을 되찾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변화, 즉 ‘다시 태어남’의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는 마치 오랫동안 병들어 몸이 약해진 사람이 단순히 약을 먹는 것만으로는 건강을 완전히 되찾기 어려울 수 있는 것과 같다. 때로는 그의 생활 습관 전체를 바꾸고,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건강한 삶을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것처럼, 타락한 사람 역시 단순히 자기 잘못을 뉘우치는 것을 넘어, 그의 존재 전체가 새롭게 바뀌는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뵈메는 중생의 과정을 몇 가지 중요한 단계 또는 모습으로 나누어 설명하는데, 이것들은 서로 떨어진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이어져 일어나는 하나의 통합된 과정이다. 그의 책 《그리스도께 나아가는 길》에 포함된 글들의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주요 단계는 다음과 같다.
중생의 첫걸음은 자신의 타락한 상태, 즉 자기중심적인 어둠과 죄 많은 욕심의 지배 아래 놓여 있음을 깊이 깨닫고 그것에 대해 진심으로 슬퍼하며 뉘우치는 ‘참된 회개(Wahre Buße)’이다. 이것은 단순히 감정적으로 후회하는 것을 넘어, 자신의 비참함과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깨닫고 하나님의 도움을 간절히 바라는 영혼의 외침이다. 이 과정은 종종 깊은 마음속 고통과 불안을 동반하는데, 이는 마치 어둠 속에 있던 영혼이 처음으로 빛을 간절히 바라며 겪는 출산의 고통과 같다. 오랫동안 어두운 방 안에 갇혀 지내던 사람이 창문으로 새어 들어오는 한 줄기 빛을 보고 자신이 얼마나 어둡고 비참한 상태에 있었는지 깨닫고 절규하는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다. 회개는 이와 같이 자신의 죄와 어둠을 똑바로 보고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의 변화이다.
뉘우침을 통해 자기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깨달은 영혼은 이제 자신의 모든 의지와 욕심, 그리고 세상적인 것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고 모든 것을 온전히 하나님의 뜻에 맡기는 ‘참된 체념(Wahre Gelassenheit, 모든 것을 내려놓음)’의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이것은 자기 힘으로는 결코 구원에 이를 수 없음을 인정하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불쌍히 여기시는 마음에 자신을 완전히 맡기는 것이다. 이 내려놓음을 통해 사람의 자기중심적인 ‘옛 자아’는 죽음을 맞이하게 되며, 그 빈자리에 하나님의 생명이 들어올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된다. 이는 물에 빠진 사람이 살기 위해 발버둥 칠수록 더욱 깊이 가라앉지만, 오히려 모든 힘을 빼고 물의 흐름에 몸을 맡길 때 물 위로 떠오를 수 있는 것처럼, 체념은 자신의 모든 노력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은혜에 자신을 완전히 내맡기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씨앗이 땅속에서 썩어 없어짐으로써 새로운 싹을 틔울 수 있는 것과 같이, 옛 자아의 죽음을 통해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는 놀라운 과정이다. "야콥 뵈메의 고백(The Confessions of Jacob Boehme)"에서는 "네가 만일 그것(하나님의 사랑)을 찾는다면 너는 모든 것을 버려야 한다... 너는 너 자신의 것이 되어서는 안 되며, 네가 너 자신인 모든 것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며, 이처럼 자기를 포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참된 뉘우침과 내려놓음을 통해 영혼이 깨끗해지고 비워질 때, 마침내 성령의 역사와 그리스도와의 신비로운 하나됨(unio mystica)을 통해 ‘새로운 탄생’ 또는 ‘중생’이 이루어진다. 이것은 사람 영혼 가장 깊은 곳에 있는 ‘하나님의 불꽃(göttlicher Funke)’이 다시 타올라 영혼 전체를 비추고, 그리스도의 생명이 그 안에서 새롭게 살아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새로운 탄생을 통해 사람은 더 이상 자기 자신의 의지나 세상의 욕심에 따라 사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의 영의 이끄심에 따라 사랑과 자유 속에서 살아가는 ‘새로운 창조물(neue Kreatur)’이 된다. 어둡고 차가운 방 안에 불을 지피면(그리스도의 생명이 들어옴) 방 전체가 밝고 따뜻해지며 새로운 생기가 넘치게 되는 것처럼, 중생은 사람 영혼이 하나님의 빛과 사랑으로 가득 채워져 완전히 새로운 존재로 변화되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애벌레가 고치를 벗고 아름다운 나비로 바뀌어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것과 같은 근본적인 변화이다.
중생을 경험한 영혼은 더 이상 감각적인 세계나 물질적인 것에 얽매이지 않고, ‘감각을 넘어서는 삶(übersinnliches Leben, 초감각적 삶)’, 즉 하나님과 직접 마음을 나누고 사귀는 영적인 삶을 살아가게 된다. 그의 마음(Gemüt)은 하나님의 지혜(Sophia, 소피아)로 채워지고, 그의 의지는 하나님의 뜻과 하나가 된다. 그는 모든 존재를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며,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하는 ‘하나님의 자녀(Kind Gottes)’로서 살아가게 된다. 이러한 중생의 과정은 단 한 번의 사건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평생에 걸쳐 계속해서 깊어지고 성장해 나가는 과정이라고 뵈메는 강조한다. 사람은 끊임없이 자신의 옛 본성과 싸우며, 날마다 새롭게 그리스도 안에서 죽고 다시 살아나는 영적인 순례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야콥 뵈메가 말하는 ‘중생’은 타락한 사람이 하나님과 같은 성스러운 생명을 되찾고 구원에 이르는 핵심 과정이다. 그것은 참된 뉘우침을 통해 자신의 죄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깨닫고, 참된 내려놓음을 통해 자기중심적인 옛 자아를 죽이며, 마침내 그리스도와 하나 됨을 통해 새로운 하나님의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는 깊은 영적 변화이다. 이 중생의 과정을 통해 사람은 비로소 자신의 참된 본성인 ‘하나님의 모습’을 되찾고, 어둠과 고통의 묶임에서 벗어나 영원한 기쁨과 자유를 누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다. 뵈메의 이러한 중생에 대한 생각은 그의 사상이 가진 실천적이고 직접 경험하는 성격을 잘 보여주며, 모든 사람에게 마음 가장 깊은 곳에서부터 시작되는 근본적인 변화와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6.4.1. 회개(Buße)와 자기 인식
야콥 뵈메가 말하는 ‘다시 태어남(Wiedergeburt, 중생)’의 과정은, 사람의 영혼이 타락한 상태에서 벗어나 하나님과 같은 성스러운 생명을 되찾는 깊은 영적 여행이다. 이 여행의 가장 첫 번째 문이자 반드시 거쳐야 하는 출발점은 바로 ‘참된 뉘우침(wahre Buße, 참된 회개)’과 그것을 통한 ‘자기 자신을 아는 것(Selbsterkenntnis, 자기 인식)’이다. 뵈메에게 뉘우침은 단순히 지난 잘못을 후회하거나 감정적으로 슬퍼하는 것을 넘어선다. 그것은 자기 존재 전체가 얼마나 하나님의 빛으로부터 멀어져 있으며, 자기중심적인 어둠과 죄 많은 욕심에 깊이 사로잡혀 있는지를 뼈저리게 깨닫는 근본적인 자기 인식의 과정이다.
뵈메에 따르면,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이 얼마나 깊이 타락한 상태에 있는지, 그리고 자기 의지와 욕심이 얼마나 하나님의 뜻과 어긋나 있는지를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살아간다. 사람은 종종 자기 자신을 속이며(Selbsttäuschung, 자기기만) 자기 죄와 어둠을 괜찮다고 생각하거나 못 본 체하고, 겉으로는 착하고 믿음이 좋은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 마음속은 여전히 자기중심적인 교만과 욕심, 그리고 여러 나쁜 생각들로 가득 차 있을 수 있다. 따라서 참된 영적 변화는 먼저 이러한 자기 자신의 비참한 실제 모습을 정직하게 마주하고 인정하는 데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이는 마치 오랫동안 더러운 거울을 보며 자기 얼굴이 깨끗하다고 착각하고 살던 사람이, 어느 날 밝은 빛 아래서 그 거울을 다시 보았을 때 비로소 자기 얼굴에 묻은 수많은 얼룩과 먼지를 발견하고 충격을 받는 모습과 같다. 자기 인식은 이처럼, 이전에는 깨닫지 못했던 자기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어둠과 죄 많은 본성을 발견하고 그것에 대해 놀라움과 슬픔을 느끼는 과정이다. 이러한 자기 인식은 종종 매우 고통스럽고 불편한 경험일 수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자기가 지금까지 소중하게 여겨왔던 자기 모습이나 가치관이 얼마나 헛되고 거짓된 것이었는지를 깨닫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고통스럽게 자기를 마주하는 과정 없이는 진정한 뉘우침과 변화도 불가능하다.
자기 자신의 타락한 상태에 대해 깊이 깨닫게 되면, 영혼은 자연스럽게 ‘참된 뉘우침’으로 나아가게 된다. 뵈메가 말하는 참된 뉘우침은 자기 죄와 어둠이 얼마나 하나님을 슬프시게 하고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자기를 멀어지게 만들었는지를 깨닫고, 그것에 대해 마음 깊이 슬퍼하며 뉘우치는 것을 포함한다. 이것은 단순한 감상적인 눈물이 아니라, 자기 존재 전체를 뒤흔드는 영혼의 통곡이다. 이는 사랑하는 부모님의 마음을 아프게 한 자녀가 자기 잘못을 깨닫고 진심으로 눈물을 흘리며 용서를 구하는 모습과 같다. 또한, 지난날의 죄 많은 삶의 방식과 자기중심적인 욕심으로부터 단호하게 돌아서서, 다시는 그런 삶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굳은 결심을 하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나쁜 습관(예를 들어 지나친 음주나 도박)에 빠져 있던 사람이 그 습관이 자기 자신과 주변 사람들에게 얼마나 해로운지를 깨닫고, 다시는 그 길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굳게 다짐하며 모든 관련된 환경을 정리하는 모습이다. 그리고 자기 힘만으로는 결코 이 죄와 어둠의 묶임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인정하고, 오직 하나님의 끝없는 은혜와 불쌍히 여기시는 마음만이 자기를 구원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으며 그분께 간절히 도움을 구하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구조를 요청하는 것과 같은 절박한 외침이다. 길을 잃고 캄캄한 숲 속에서 헤매던 사람이 멀리서 희미한 불빛을 발견하고 그곳을 향해 필사적으로 나아가는 모습과도 같다. 이때 불빛은 하나님의 은혜를, 숲 속은 죄와 절망의 상태를 상징한다.
참된 뉘우침의 과정을 통해 사람은 점차 자기 마음속 세계를 더욱 깊이 들여다보게 되며, 그 안에서 벌어지는 착함과 악함, 빛과 어둠의 치열한 싸움을 알게 된다. 그는 자기 마음(Gemüt)속에 얼마나 많은 교만과 이기심, 미움과 욕심, 그리고 온갖 더러운 생각들이 숨겨져 있는지를 발견하고 깜짝 놀라게 된다. 동시에, 그는 자기 가장 깊은 곳에 여전히 하나님의 빛을 향한 아주 작은 그리움과 착한 일을 하고자 하는 작은 불꽃(신적 불꽃, göttlicher Funke)이 남아 있음을 발견하고 희망을 갖게 된다. 이처럼 자기 인식은 단순히 자기 죄를 깨닫는 것을 넘어, 자기 존재 전체가 얼마나 복잡하고 여러 층으로 되어 있으며, 그 안에서 얼마나 치열한 영적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이해하는 과정이다. 이러한 깊은 자기 이해는 이후에 이어질 ‘모든 것을 내려놓음(Gelassenheit, 체념)’과 ‘새로운 태어남(Wiedergeburt, 중생)’의 단계를 위한 중요한 준비가 된다. 왜냐하면 자기가 얼마나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도움이 필요한 존재인지를 깨달을 때 비로소 사람은 자기 모든 것을 하나님께 내어 맡기고 그분의 구원을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논의한 내용을 통해 볼 때, 야콥 뵈메에게 ‘참된 뉘우침’과 ‘자기 인식’은 다시 태어남에 이르는 영적 여정의 반드시 필요한 첫걸음이다. 그것은 자기 자신의 타락한 실제 모습을 정직하게 마주하고, 죄에 대해 깊이 슬퍼하며, 옛 삶으로부터 단호히 돌아서서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을 간절히 구하는 근본적인 마음의 변화이다. 이 과정을 통해 사람은 자기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어둠과 빛의 싸움을 알게 되며, 자기 힘만으로는 결코 구원에 이를 수 없음을 깨닫고 겸손하게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게 된다. 이러한 깊은 자기 인식과 진정한 뉘우침이야말로 영혼이 깨끗해지고 새로운 생명으로 나아가는 문을 여는 열쇠라고 뵈메는 힘주어 말하고 있다.
6.4.2. 체념(Gelassenheit): 자기 의지의 포기
앞서 ‘참된 뉘우침’과 ‘자기 인식’을 통해 자신의 타락한 실상과 무력함을 뼈저리게 깨달은 영혼은, 이제 ‘다시 태어남(Wiedergeburt, 중생)’이라는 신비로운 변화를 향한 여정에서 다음으로 넘어가야 할 매우 중요한 문턱에 이르게 된다. 그것이 바로 야콥 뵈메가 강조하는 ‘체념(Gelassenheit)’의 단계이다. 이 독일어 단어 ‘게라센하이트’는 단순히 모든 것을 포기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수동적인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자신의 가장 깊은 곳에서부터 일어나는 능동적이고 의식적인 ‘내려놓음’, ‘맡김’, ‘고요함 속의 내맡김’을 뜻하며, 특히 하나님 앞에서 자기 자신의 의지(Eigenwille)를 온전히 포기하고 그분의 뜻에 자신을 내맡기는 심오한 영적 태도이자 과정이다. 뵈메에게 이 ‘체념’은 마치 낡은 집을 허물어야 새 집을 지을 수 있듯이, 옛 자아가 죽고 새로운 신적인 생명이 영혼 안에 태어나기 위한 필수적인 공간을 마련하는 행위이다. "그리스도께 나아가는 길(Der Weg zu Christo)"에서 이 체념의 길은 중생으로 가는 핵심 경로로 제시되며, 영혼이 참된 자유와 평화를 얻고 하나님과 하나 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관문으로 그려진다.
그러면 왜 이 ‘자기 의지’를 포기하는 것이 그토록 중요할까? 뵈메의 사상 안에서 ‘자기 의지’는 인간 타락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자,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이다. 이 자기 의지는 모든 존재의 근원인 첫 번째 원리, 즉 자신을 한없이 수축시키고 모든 것을 자기중심적으로 끌어당기려는 어둡고 격렬한 ‘분노의 불’의 성질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 타락한 상태에서 인간의 의지는 마치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고 오직 자기 자신의 만족과 영광만을 추구하게 된다. 교만, 이기심, 소유욕, 지배욕, 그리고 세상을 향한 끝없는 갈망 등은 모두 이 자기 의지가 잘못 발현된 모습들이다. 영혼이 이러한 자기 의지에 사로잡혀 있는 한, 마치 스스로 만든 감옥에 갇힌 죄수처럼, 하나님의 빛과 사랑으로부터 멀어져 고통과 불안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영혼이 참된 생명과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이 완고하고 이기적인 자기 의지가 부서지고 하나님의 부드러운 뜻 앞에 온전히 굴복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뵈메가 말하는 ‘체념(Gelassenheit)’은 결코 운명론적인 체념이나 삶에 대한 무기력한 포기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자기 자신이 얼마나 헛되고 무력한지를 깊이 깨달은 영혼이, 더 이상 자기 자신의 힘이나 지혜를 의지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에만 자신을 온전히 내어 맡기기로 결단하는, 매우 적극적이고 용기 있는 영적 행위이다. 이것은 마치 항해사가 거친 풍랑 속에서 자신의 힘만으로는 배를 구할 수 없음을 깨닫고, 키를 놓고 바람과 물결의 흐름에 배를 온전히 맡기되, 그 흐름이 자신을 안전한 항구로 인도할 것이라는 깊은 믿음을 가지는 것과 같다. 영혼은 이 ‘체념’을 통해 자기 자신에 대해 ‘아무것도 아닌 존재(Nicht-Sein)’가 되기를 선택한다. 즉, 자기중심적인 ‘나’라는 생각과 욕망을 비우고 또 비워, 마침내 하나님께서 그 빈자리를 당신의 ‘모든 것(All-Sein)’으로 채우실 수 있도록 자신을 온전히 내어드리는 것이다. 야콥 뵈메 자신의 영적 체험을 담은 "야콥 뵈메의 고백(The Confessions of Jacob Boehme)"에서도 그는 “네가 만일 그것(하나님의 사랑)을 찾는다면 너는 모든 것을 버려야 한다... 너는 너 자신의 것이 되어서는 안 되며, 네가 너 자신인 모든 것이 되어야 한다.”라고 말하며, 이러한 자기 비움과 포기의 중요성을 간절하게 역설한다.
이러한 ‘체념’의 상태에 이르는 길은 결코 쉽거나 안락하지 않다. 그것은 마치 오랜 시간 동안 자기 몸의 일부처럼 익숙해진 낡은 습관이나 생각을 버리는 것과 같이, 깊은 내면의 저항과 고통스러운 싸움을 동반한다. 자기 의지는 쉽게 포기하려 하지 않으며, 마치 죽음을 앞둔 짐승처럼 격렬하게 반항한다. 영혼은 이 과정에서 종종 극심한 절망과 어둠,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버려진 것 같은 고독감을 경험할 수도 있다. 뵈메 자신도 이러한 영적 시련(Anfechtung)을 겪었으며, 그의 글 곳곳에는 이 고통스러운 과정을 통과하며 얻은 깊은 통찰이 담겨 있다. 그러나 이러한 고통과 시련은 결코 무의미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마치 대장장이가 뜨거운 불과 망치질을 통해 단단한 쇠를 연단하여 예리한 칼을 만들듯이, 완고한 자기 의지를 부수고 영혼을 정화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담을 수 있는 깨끗한 그릇으로 만드는 데 필요한 과정이다. 씨앗이 땅속에서 썩고 부서지는 아픔을 겪어야만 새로운 생명의 싹을 틔울 수 있듯이, 옛 자아는 이 ‘체념’이라는 죽음의 과정을 통과해야만 비로소 새로운 생명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 이 길고 어두운 터널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인내와 꾸준함, 그리고 하나님의 자비에 대한 변함없는 믿음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영혼이 마침내 자기 자신의 모든 노력을 포기하고, 마치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절박하게 하나님께 자신을 온전히 내던질 때, 바로 그 순간 ‘체념’의 신비가 일어난다. 그때 영혼은 더 이상 자기 자신의 의지로 살아가려 애쓰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이 자기 안에서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라며 그분의 손길에 모든 것을 맡긴다. 이렇게 자기 의지가 침묵하고 영혼이 고요하게 비워질 때, 비로소 성령(또는 뵈메의 용어로는 하나님의 지혜인 소피아)께서 그 영혼 안에서 자유롭게 활동하실 수 있는 공간이 열린다. 마치 잔잔하고 깨끗한 호수만이 하늘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비출 수 있듯이, 모든 소란과 자기주장이 멈춘 ‘체념’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빛과 진리가 선명하게 반사된다. 영혼의 가장 깊은 곳에 숨겨져 있던 ‘하나님의 불꽃(göttlicher Funke)’은 이제 성령의 부드러운 입김에 의해 다시 타오르기 시작하며, 영혼은 마치 마른 땅이 단비를 기다리듯 하나님의 은혜와 생명을 간절히 빨아들이는 열린 그릇이 된다.
이처럼 깊은 ‘체념’을 통해 영혼이 얻게 되는 가장 큰 선물은 바로 내면의 참된 평화와 고요함, 그리고 진정한 안식이다. 더 이상 세상의 변화나 자기 욕망의 성취 여부에 따라 흔들리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깊은 만족과 평안을 누리게 된다. 이것이 바로 뵈메가 말하는 영혼의 ‘참된 안식일(Sabbath)’이다. 또한, 영혼은 자기 의지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 참된 자유를 경험하게 된다. 이것은 무엇이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방종의 자유가 아니라, 더 이상 죄와 이기심의 노예가 되지 않고 오직 선하고 아름다운 것을 향해 자유롭게 나아갈 수 있는, 하나님 안에서의 참된 자유이다. "야콥 뵈메의 고백"에서 그는 “그러므로 침묵하고 기도에 힘쓰라. 그러면 네 마음이 그 보석을 찾을 수 있도록 준비될 것이다.”라고 권고하는데, 여기서 ‘보석’은 바로 이 체념을 통해 얻게 되는 하나님의 사랑과 지혜, 그리고 내면의 평화를 상징한다. 이러한 평화와 자유 속에서 영혼은 비로소 하나님의 음성을 분명히 듣고 그분의 뜻을 깨달을 수 있는 맑고 투명한 상태에 이르게 되며, 이것이 바로 ‘새로운 탄생(Wiedergeburt)’을 위한 가장 완전한 준비 상태가 된다.
그러나 이 ‘체념’은 단 한 번의 결단이나 체험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마치 우리가 매일 숨을 쉬고 음식을 먹듯이, 영적인 삶 전체를 통해 끊임없이 반복되고 심화되어야 하는 지속적인 태도이자 실천이다. 타락한 인간의 본성은 쉽게 변하지 않으며, 자기 의지는 끊임없이 다시 고개를 들고 영혼을 지배하려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생한 영혼이라 할지라도 매일 순간순간 자기 자신을 부인하고 자기 의지를 십자가에 못 박으며, 오직 그리스도의 인도하심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려는 의식적인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좁은 문으로 들어가 좁은 길을 걷는 영적인 순례자의 삶이다.
이와 같이 야콥 뵈메에게 ‘체념(Gelassenheit)’은 인간이 자신의 타락한 상태에서 벗어나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회복하고, 마침내 새로운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자기 포기의 과정이다. 그것은 자기중심적인 의지의 죽음이자, 동시에 하나님의 의지가 내 안에서 살아 움직이시도록 자신을 온전히 내어드리는 능동적인 순종이다. 이 깊고도 어려운 자기 비움의 신비를 통과할 때, 비로소 영혼은 모든 속박으로부터 벗어나 참된 자유와 평화를 맛보며,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과 생명이 흘러넘치는 통로가 될 수 있다. 뵈메의 이러한 통찰은 우리로 하여금 진정한 변화는 바깥 세상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가장 깊은 내면에서부터, 즉 완고한 자기 의지를 내려놓고 하나님의 부드러운 손길에 모든 것을 맡기는 그 순간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이처럼 자기 자신에 대해 죽고 하나님을 향해 온전히 열리는 ‘체념’이야말로, 낡고 병든 자아가 사라지고 영원한 생명을 지닌 새로운 자아가 탄생하는 거룩한 문턱이라 할 수 있다.
6.4.3. 믿음(Glaube)과 그리스도와의 연합
앞서 ‘참된 뉘우침’을 통해 자기 자신의 비참한 실상을 깨닫고, ‘체념(Gelassenheit)’을 통해 자기중심적인 의지를 내려놓은 영혼은, 이제 새로운 생명으로 나아가는 여정에서 가장 결정적인 단계에 이르게 된다. 그것은 바로 ‘믿음(Glaube)’을 통해 그리스도와 신비롭게 하나 되는 ‘그리스도와의 연합(unio mystica)’의 체험이다. 야콥 뵈메에게 있어서 이 ‘믿음’은 단순히 어떤 교리나 사실을 머리로 인정하는 지적인 동의를 훨씬 뛰어넘는다. 그것은 영혼의 가장 깊은 곳에서부터 우러나오는 살아있는 힘이며,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실재,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하시는 능력을 붙잡고 그것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영혼의 적극적이고 창조적인 활동이다. 이 살아있는 믿음을 통해서만 영혼은 자기 자신으로부터 벗어나 그리스도와 온전히 하나 될 수 있으며, 이 연합을 통해 비로소 ‘다시 태어남(Wiedergeburt, 중생)’이라는 놀라운 변화가 실제로 일어나게 된다. 《그리스도께 나아가는 길, Der Weg zu Christo》에 담긴 여러 논문들, 특히 "참된 회개", "참된 체념", 그리고 "거듭남에 관하여" 등은 이 믿음과 연합의 과정을 다양한 각도에서 조명하며 그 중요성을 강조한다.
뵈메가 말하는 ‘믿음’은 수동적으로 무언가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영혼이 가진 상상력(Imagination)과 간절한 갈망(Begierde)이 결합된 강력한 영적 에너지이다. 여기서 상상력은 헛된 공상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조각가가 돌 속에서 아름다운 형상을 보아내고 그것을 끄집어내듯이, 영혼이 하나님의 약속과 그리스도의 형상을 마음속에 생생하게 그리고 그것을 현실로 만들어내는 창조적인 힘을 가리킨다. 영혼은 이 믿음의 상상력을 통해 자기 자신을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 안으로 던져 넣으며, 그리스도의 의로움과 거룩함을 마치 자신의 옷처럼 입게 된다. 이는 마치 굶주린 사람이 음식의 존재를 믿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손을 뻗어 그 음식을 붙잡아 먹음으로써 실제로 생명을 얻는 것과 같다. 믿음은 바로 이처럼 하나님의 구원을 향해 손을 뻗어 그것을 자기 것으로 취하는 영혼의 적극적인 행위이다. "야콥 뵈메의 고백(The Confessions of Jacob Boehme)"을 보면, 그 자신이 어둠 속에서 빛을 갈망하며 믿음으로 신적인 실재를 붙잡으려 했던 치열한 과정들이 암시되어 있으며, 이러한 믿음의 투쟁이야말로 영적 각성의 전제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믿음의 대상은 막연한 신이나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바로 우리를 위해 사람이 되시고, 고난받으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이다. 뵈메에게 그리스도는 단순히 역사 속의 인물이 아니라, 지금도 살아계셔서 믿는 자 안에서 역사하시는 우주적인 구원자이시다. 그는 첫 번째 원리의 어둡고 격렬한 ‘분노의 불’을 자신의 사랑으로 이기시고, 두 번째 원리의 부드럽고 생명을 주는 ‘사랑의 빛’을 드러내신 분이다. 따라서 믿음은 바로 이 그리스도의 구원하시는 능력과 사랑 안으로 뛰어드는 것이며, 그분의 생명에 참여하는 것이다. 영혼이 참된 뉘우침과 내려놓음을 통해 자기 자신의 무력함을 깨닫고 완전히 비워질 때, 믿음은 마치 빈 그릇이 물을 받아들이듯 그리스도의 충만하심을 받아들이는 통로가 된다. 그것은 마치 마른 나뭇가지가 포도나무에 접붙여질 때 비로소 포도나무로부터 수액을 공급받아 살아있는 가지가 되고 열매를 맺을 수 있게 되는 것과 같다. 믿음을 통해 영혼은 그리스도라는 참 포도나무에 접붙여져, 그분으로부터 새로운 생명과 힘을 공급받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살아있는 믿음을 통해 영혼이 그리스도와 깊이 연결될 때, 마침내 ‘그리스도와의 연합(unio mystica)’이라는 신비로운 체험이 일어난다. 이것은 단순히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윤리적인 변화를 넘어, 그리스도의 신적인 생명이 실제로 영혼 안에 흘러 들어와 영혼과 그리스도가 하나로 연합되는, 존재 자체의 변화를 의미한다. 뵈메는 이 연합을 종종 신랑이신 그리스도와 신부인 영혼(또는 하나님의 지혜인 소피아)의 거룩한 결혼에 비유하기도 한다. 이 신비로운 연합 속에서 영혼은 더 이상 자기 자신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안에 사시는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살아가게 된다. 그리스도의 생각과 감정, 그리고 의지가 영혼의 생각과 감정, 그리고 의지가 되는 것이다. 이는 마치 깨끗한 수정이 햇빛을 받아 그 빛을 온전히 반사하며 빛 자체와 하나 된 것처럼 보이는 것과 같다. 영혼은 그리스도의 빛으로 가득 차 그분의 성품을 드러내며,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존재로 변화된다. 이 연합 안에서 영혼의 가장 깊은 곳에 있던 ‘하나님의 불꽃(göttlicher Funke)’은 그리스도의 생명력을 통해 활짝 타오르게 되며, 영혼 전체를 밝고 따뜻하게 비춘다.
이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바로 ‘새로운 탄생(Wiedergeburt, 중생)’의 핵심이자 완성이다. 이 연합을 통해 옛사람, 즉 자기중심적이고 죄에 물든 자아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고, 그 안에서 새로운 사람, 즉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거룩하고 의로운 자아가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여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뵈메가 말하는 ‘새로운 피조물(neue Kreatur)’의 탄생이다. 이렇게 다시 태어난 사람은 더 이상 죄와 죽음의 법 아래 있지 않고, 성령의 법, 즉 사랑과 자유의 법 아래 살아가게 된다. 그의 마음(Gemüt)은 이전의 어둠과 혼란에서 벗어나 그리스도의 평화와 기쁨으로 채워지며, 그의 의지는 더 이상 자기 자신을 향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을 가장 큰 기쁨으로 여기게 된다.
믿음과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단 한 번의 체험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마치 우리가 매일 호흡하며 살아가듯이, 평생 동안 지속되고 더욱 깊어져야 하는 살아있는 관계이다. 중생한 영혼이라 할지라도 여전히 옛 본성의 유혹과 세상의 어려움에 직면하기 때문에, 매일 믿음으로 그리스도 안에 머물며 그분과의 연합을 새롭게 하고 그로부터 힘을 공급받아야 한다. "초감각적 삶에 관한 대화(Dialogues on the Supersensual Life)"에서도 제자는 스승에게 어떻게 하면 이 초월적인 삶을 지속할 수 있는지 묻고, 스승은 끊임없는 자기 부인과 하나님을 향한 전적인 의탁, 그리고 사랑의 실천을 강조한다. 이는 믿음이 단순한 시작점을 넘어, 영적 여정 전체를 이끌어가는 원동력이자 하나님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끈임을 보여준다.
이러한 믿음과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해 영혼이 얻는 열매는 참으로 풍성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구원의 확신인데, 이것은 단순히 ‘나는 구원받았다’고 머리로 아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안에 하나님의 생명이 실제로 살아 움직이고 있음을 경험함으로써 얻는 깊은 내적인 평안과 기쁨이다. 또한, 영혼은 점차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가며 거룩하게 변화되고(성화, sanctification), 죄와 유혹을 이길 수 있는 새로운 힘을 얻게 된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분의 신적인 성품에 참여하는 영광스러운 특권을 누리게 된다. "만물의 표상(The Signature of All Things)"의 마지막 부분에서 언급되듯이, 영혼은 "뉘우침, 믿음, 그리고 기도를 통해" 원래의 참된 안식으로 돌아와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가 다시 된다."
그러므로 야콥 뵈메의 사상에서 믿음은 단순한 지적 동의를 넘어서는, 영혼의 모든 힘을 다해 그리스도를 붙잡고 그분과 하나 되려는 살아있는 갈망이자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믿음을 통해 영혼은 그리스도와 신비롭게 연합하며, 이 연합 안에서 옛 자아가 죽고 새로운 신적인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는 ‘중생’의 기적을 체험한다. 이 과정은 인간의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하며,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의 역사, 그리고 그것에 응답하는 인간의 진실한 믿음과 간절한 기다림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 뵈메의 이러한 통찰은 우리에게 믿음이라는 것이 얼마나 역동적이고 창조적인 힘을 지니고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우리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켜 하나님과의 깊은 사귐으로 이끌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 살아있는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것이야말로, 어둠 속에 갇힌 영혼이 빛을 향해 나아가는 유일한 길이요, 참된 생명과 영원한 기쁨을 얻는 비결이라고 뵈메는 그의 모든 저작을 통해 힘주어 외치고 있다. 이 믿음과 연합의 신비는 뵈메 사상의 심장이자, 그의 모든 영적 가르침이 흘러나오는 근원이라 할 수 있다.
6.5. 초감각적 삶(Supersensual Life): 신과의 직접적 교통 - 《초감각적 삶에 관한 대화》 분석 포함 -
야콥 뵈메가 제시하는 ‘다시 태어남(Wiedergeburt, 중생)’의 여정은, 영혼이 자기중심적인 옛 자아의 죽음을 통과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생명을 얻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삶, 즉 ‘초감각적 삶(übersinnliches Leben, a supersensual life)’으로 들어가는 새로운 시작이다. 이 ‘초감각적 삶’은 뵈메의 실천적 영성에서 매우 중요한 개념으로, 인간이 더 이상 다섯 가지 감각이나 물질세계의 한계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가장 깊은 내면에서 신과 직접적으로 마음을 나누고 사귀며, 영원한 신적인 실재를 직접 경험하는 삶을 의미한다. 뵈메는 이 신비로운 삶의 방식과 그에 이르는 길을 그의 저작 중 하나인 《초감각적 삶에 관한 대화, Dialogues on the Supersensual Life》에서 제자와 스승 사이의 문답 형식을 통해 매우 구체적이고 감동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 책은 그의 다른 주요 저작들인 "참된 회개", "참된 체념", "거듭남에 관하여" 등과 함께 《그리스도께 나아가는 길, Der Weg zu Christo》이라는 제목의 논문집에 포함되어, 중생한 영혼이 실제로 어떻게 신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지 그 실천적인 지침을 제공한다.
먼저 《초감각적 삶에 관한 대화》의 전체적인 흐름을 살펴보면, 이 책은 영적인 진리를 간절히 갈망하는 한 제자(The Disciple)와 이미 그 길을 걸어가 본 스승(His Master) 사이의 네 번의 대화로 구성되어 있다. 제자는 인간이 어떻게 하면 이 세상의 모든 덧없는 것들로부터 벗어나 자신의 참된 본향인 신적인 세계에 이를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자신의 영혼 안에서 하나님을 직접 만나고 그분과 하나 될 수 있는지에 대해 간절한 질문들을 던진다. 스승은 이러한 제자의 질문에 대해 인내심을 가지고 하나하나 답변하며, 초감각적인 삶에 이르는 길은 결코 멀리 있거나 특별한 사람에게만 열려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근본적인 변화와 올바른 방향 설정, 그리고 꾸준한 내적 실천을 통해 누구든지 도달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 대화는 단순한 지식 전달이 아니라, 제자의 영혼을 일깨우고 그가 스스로 진리를 발견하도록 이끄는 영적인 안내의 역할을 한다.
스승이 강조하는 초감각적 삶의 핵심은 바로 ‘자기 자신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제자가 "어떻게 하면 제가 저의 감각적인 의지 작용을 넘어서서 자연과 피조물을 보고 들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물었을 때, 스승은 "만일 네가 한 시간 동안만이라도 너의 모든 의지와 생각을 모든 피조물로부터 완전히 멈출 수 있다면, 너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될 것이다."라고 답한다. 이는 앞서 살펴본 ‘체념(Gelassenheit)’의 상태와 깊이 연결되는 가르침이다. 즉, 인간이 자신의 감각적인 경험, 이성적인 판단, 그리고 자기중심적인 의지와 생각으로부터 벗어나 마음을 고요하게 하고 하나님께 온전히 집중할 때, 비로소 보이지 않는 신적인 세계의 문이 열리고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들을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마치 시끄러운 시장 한가운데서는 작은 속삭임을 들을 수 없지만, 모든 소음이 사라진 고요한 밤에는 아주 작은 소리까지도 선명하게 들을 수 있는 것과 같다. 마음이 세상적인 것들로 가득 차 소란스러울 때는 결코 신의 음성을 들을 수 없으며, 오직 모든 것을 내려놓고 침묵 속으로 들어갈 때 비로소 신과의 직접적인 교통이 가능해진다.
또한 스승은 "네가 너 자신의 의지와 자아로부터 조용히 멈출 때, 영원한 듣고 보고 말하는 것이 네 안에서 드러날 것이다. 그리고 네 영혼은 듣고 보게 될 것이다."라고 말하며, 초감각적인 인식은 인간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아무것도 아닌 것(nothing)’이 될 때 비로소 그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임을 분명히 한다. 인간의 자아가 살아있는 한, 그것은 항상 모든 것을 자기중심적으로 해석하고 판단하려 하기 때문에 신적인 진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 그러나 자기 의지가 죽고 마음이 완전히 비워질 때, 영혼은 마치 깨끗한 거울처럼 하나님의 빛과 형상을 그대로 반사하게 되며, 이전에는 알 수 없었던 영적인 실재들을 직접 보고 듣고 이해하게 된다는 것이다. 《초감각적 삶에 관한 대화》에서 스승은 이러한 상태를 "네 자신의 의지는 하나님의 의지 안에서 죽어야 한다. 네 자신의 의지가 죽을 때, 하나님께서 네 안에서 의지를 행하시고, 하나님의 영이 네 안에서 감각하고, 보고, 듣고, 말하고, 행하신다."고 표현한다. 이것이 바로 신과의 진정한 합일(unio mystica) 상태이며, 인간이 하나님의 도구가 되어 그분의 뜻을 이루는 삶이다.
이러한 초감각적 삶은 결코 현실을 도피하거나 세상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이 세상 속에서 살아가되, 더 이상 세상의 가치관이나 욕망에 얽매이지 않고, 모든 것 안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발견하며 그분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새로운 방식의 삶이다. 스승은 제자에게 "네가 어디를 가든지, 무엇을 하든지, 집에서나 밖에서나, 항상 너 자신을 하나님께 내어 맡기라. 그리고 네가 하고자 하는 모든 일을 하나님 앞에서, 마치 그분이 항상 너를 보고 계시는 것처럼 행하라."고 권면한다. 이는 초감각적 삶이 특별한 장소나 시간에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의 모든 순간 속에서 하나님을 의식하고 그분과 동행하는 삶임을 보여준다. 마치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을 때 항상 그 사람을 의식하고 배려하듯이, 초감각적 삶을 사는 사람은 항상 자기 안에 계시는 하나님을 느끼며 그분의 사랑과 지혜 안에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게 된다. 이처럼 그의 모든 삶은 하나님의 임재로 가득 차게 되며, 그는 더 이상 고독하거나 불안하지 않고 참된 평화와 기쁨을 누리게 된다.
《초감각적 삶에 관한 대화》는 또한 이러한 삶이 가져다주는 놀라운 열매들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스승은 "만일 네가 이 빛 안에서 행한다면, 너는 사방에서 하나님의 기적들을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너는 한없는 기쁨 속에서 살게 될 것이다."라고 말한다. 초감각적 삶을 사는 사람은 더 이상 피상적인 현상에만 머무르지 않고, 모든 사물의 배후에 있는 신적인 지혜와 질서, 그리고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된다. 그는 자연 속에서 하나님의 창조 솜씨를 보고 감탄하며, 다른 사람들 안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발견하고 그들을 사랑으로 섬기게 된다. 그의 눈에는 모든 것이 새롭게 보이며, 이전에는 무의미하게 여겨졌던 일상적인 사건들 속에서도 깊은 영적인 의미를 깨닫게 된다. 마치 시인이 평범한 풍경 속에서 남들이 보지 못하는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그것을 노래하듯이, 초감각적 삶을 사는 사람은 세상 모든 것 안에서 하나님의 숨결을 느끼며 그분과 대화하게 된다. 이처럼 그의 삶은 신비와 경이로움으로 가득 차게 되며, 그는 마치 어린아이처럼 순수하고 기쁨에 찬 마음으로 살아가게 된다.
그러나 스승은 이러한 초감각적 삶에 이르는 길이 결코 쉽지 않으며, 끊임없는 자기 부인과 인내, 그리고 하나님의 은총을 향한 간절한 기도가 필요함을 강조한다. 그는 제자에게 "이것은 하루나 한 주, 또는 한 해 만에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다. 너는 평생 이 길을 걸어야 한다."고 말하며, 꾸준한 영적 훈련과 성장의 중요성을 일깨운다. 옛 자아의 습관은 쉽게 사라지지 않으며, 세상의 유혹과 내면의 어둠은 끊임없이 영혼을 공격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영혼은 항상 깨어 자신의 마음을 지키고, 매 순간 하나님께 자신을 새롭게 내어 맡기며, 그분의 도우심을 구해야 한다. "야콥 뵈메의 고백(The Confessions of Jacob Boehme)"에서 뵈메 자신이 겪었던 영적 시련과 하나님의 도우심에 대한 간증은, 이러한 여정이 결코 인간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하며 오직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야콥 뵈메가 《초감각적 삶에 관한 대화》를 통해 제시하는 것은, 인간이 자신의 감각적인 한계를 넘어서서 영원하고 무한한 신적인 실재와 직접적으로 연결되고 교통할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이다. 그것은 자기중심적인 의지와 생각을 내려놓고 마음을 고요히 하여 하나님께 온전히 집중할 때, 우리 안에서 열리는 새로운 인식의 차원이며, 그 안에서 우리는 참된 지혜와 사랑, 그리고 평화를 발견하게 된다. 이 초감각적 삶은 단순한 신비 체험을 넘어, 우리의 존재 전체를 변화시키고 우리의 일상적인 삶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거룩한 여정이다. 뵈메의 가르침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하며, 물질만능주의와 피상적인 관계 속에서 길을 잃고 방황하는 현대인들에게 진정한 자아를 발견하고 영원한 가치를 추구하는 삶의 길을 안내해 준다. 이처럼 감각의 세계 너머에 있는 영원한 본향을 향한 갈망을 일깨우고, 그곳에 이르는 구체적인 길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뵈메의 초감각적 삶에 대한 통찰은 시대를 초월하여 깊은 울림을 준다.
6.6. 만물의 표상(Signatura Rerum): 내면과 외면의 상응 관계
야콥 뵈메의 심오하고 광대한 사상 체계 속에서, 인간과 우주, 그리고 신적인 실재를 이해하는 독특한 열쇠 중 하나는 바로 ‘만물의 표상(Signatura Rerum, The Signature of All Things)’이라는 개념이다. 이는 뵈메의 주요 저작 중 하나의 제목이기도 하며, 그의 자연관, 인간관, 그리고 신비주의적 인식론의 핵심을 이루는 중요한 통찰이다. ‘만물의 표상’이란 간단히 말해, 모든 창조된 사물의 외적인 형태나 모습, 성질 속에는 그것의 보이지 않는 내적인 본질, 즉 영적인 기원과 의미, 그리고 숨겨진 힘이 마치 도장처럼 새겨져 있다는 생각이다. 뵈메에게 온 우주는 하나님의 자기 계시의 장(場)이며, 모든 피조물은 그 자체로 말없는 언어이자 신적인 지혜를 담고 있는 상징이다. 따라서 인간은 이 ‘만물의 표상’을 올바로 읽어내는 법을 배움으로써, 단순히 사물의 겉모습만을 보는 것을 넘어 그 안에 담긴 깊은 영적인 진리를 깨닫고, 나아가 자기 자신의 내면과 우주, 그리고 하나님과의 깊은 연결성을 발견할 수 있다고 뵈메는 보았다. 이 능력은 특히 인간이 타락 이전의 아담과 같은 순수한 상태를 회복하고, ‘초감각적 삶(übersinnliches Leben)’을 통해 신과 직접 교통하게 될 때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뵈메가 말하는 ‘표상(Signatur)’은 단순한 외부적 표시나 기호를 넘어선다. 그것은 각 사물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영적인 의지(Wille)와 생명력이 외부로 드러난 구체적인 형태이자 표현이다. 마치 사람의 말이나 글씨가 그 사람의 생각과 성격을 드러내듯이, 모든 식물, 동물, 광물, 심지어 천체에 이르기까지 각자의 고유한 ‘표상’을 지니고 있으며, 이 표상은 그것의 보이지 않는 내적인 힘과 성질, 그리고 우주 전체 안에서의 역할과 의미를 나타낸다. 뵈메는 이러한 표상이 우연히 생겨난 것이 아니라, 창조의 과정에서 신적인 지혜(Sophia, 소피아)와 일곱 자연 성질(Sieben Quellgeister), 그리고 세 가지 원리(Drei Principien)의 역동적인 작용을 통해 각 사물의 본질에 맞게 새겨진 것이라고 설명한다. 예를 들어, 어떤 약초의 잎 모양이나 색깔, 뿌리의 형태 등은 그 약초가 어떤 질병에 효능이 있는지를 암시하는 ‘표상’이 될 수 있으며, 이는 고대부터 내려오는 ‘표상의 학(doctrine of signatures)’이라는 전통과도 연결된다. 그러나 뵈메의 ‘만물의 표상’ 개념은 단순한 약초학이나 자연 관찰을 넘어, 우주 전체를 관통하는 내면과 외면, 영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 사이의 깊은 상응 관계(correspondence, 일치 또는 조응)를 밝히려는 거대한 형이상학적 시도였다.
뵈메에 따르면, 이 ‘만물의 표상’을 올바로 해독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지식이나 이성적인 분석만으로는 부족하다. 그것은 마치 시를 감상하거나 음악을 이해하는 데 논리적인 설명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것과 같다. 진정으로 만물의 표상을 읽기 위해서는 마음(Gemüt)의 정화와 영적인 각성이 필요하며, 특히 타락으로 인해 어두워진 인간의 내면의 눈, 즉 ‘영혼의 빛(Licht der Seele)’이 다시 밝혀져야 한다. 인간이 자기중심적인 욕망과 세상적인 판단으로부터 벗어나 고요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사물을 바라볼 때, 비로소 그 사물의 외적인 껍질 너머에 있는 내적인 생명과 영적인 의미를 직관적으로 감지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사랑하는 사람의 눈빛이나 표정만 보고도 그 사람의 마음 상태를 알 수 있는 것과 같다. 깊은 사랑과 공감의 관계 속에서는 굳이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서로의 내면을 이해할 수 있듯이, 인간이 모든 피조물과 깊은 영적인 교감(communion)을 나눌 때 만물의 표상은 저절로 그 의미를 드러낸다. "만물의 표상"이라는 책의 서문에서 뵈메는 독자들에게 "이해하려는 의지를 가진 자는 먼저 자기 자신을 참되게 탐구해야 한다"고 말하며, 외부 세계의 비밀을 알기 전에 먼저 자기 내면의 빛을 찾아야 함을 강조한다.
특히 뵈메는 인간 자신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만물의 표상’을 지닌 존재라고 보았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Imago Dei)대로 창조된 ‘소우주(microcosm, 작은 우주)’로서, 그 안에는 대우주(macrocosm, 큰 우주)의 모든 원리와 힘들이 축약되어 담겨 있다. 따라서 인간이 자기 자신의 내면을 깊이 탐구하고 그 안에 있는 빛과 어둠, 선과 악의 투쟁을 정직하게 직면할 때, 그는 비단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우주 전체와 신적인 본질에 대한 깊은 이해에 이를 수 있다. 예를 들어, 인간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의지의 갈등, 상상력의 작용, 그리고 다양한 감정의 변화 등은 우주 전체를 움직이는 근원적인 힘들, 즉 일곱 자연 성질이나 세 가지 원리의 역동적인 작용을 반영하는 ‘표상’이다. 따라서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이 곧 우주를 아는 것이며, 신을 아는 길로 이어진다는 것이 뵈메의 핵심적인 통찰 중 하나이다. "만물의 표상" 제9장 제목이 "표상에 관하여, 내적인 것이 어떻게 외적인 것을 표시하는가(Of The Signature, Shewing How The Internal Signs The External)"인 것은 이러한 내면과 외면의 상응 관계를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뵈메의 ‘만물의 표상’ 사상은 또한 자연 전체를 살아있는 신적인 계시의 책으로 보는 관점을 제시한다. 성경이 문자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자연은 형상과 물질로 기록된 또 하나의 위대한 책이라는 것이다. 모든 풀 한 포기, 돌멩이 하나, 밤하늘의 별 하나까지도 그 안에 신적인 지혜와 사랑의 메시지를 담고 있으며, 우리는 마치 글을 배우듯 이 자연의 언어를 배우고 해독함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발견할 수 있다. 이는 현대 사회에서 자연을 단순히 이용하거나 정복해야 할 대상으로 보는 기계론적 세계관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매우 생태학적이고 전일적인(holistic) 자연관이라고 할 수 있다. 뵈메에게 자연은 단순한 물질의 집합이 아니라, 살아 숨 쉬며 신음하고 기뻐하는 영적인 존재이며, 인간은 자연의 지배자가 아니라 오히려 자연의 일부로서 그 안에서 조화롭게 살아가야 할 책임이 있다. 자연의 ‘표상’을 읽는다는 것은 곧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 아픔에 공감하며, 모든 생명과 더불어 살아가려는 마음을 갖는 것이다. 이는 마치 경험 많은 농부가 땅의 기운이나 작물의 상태만 보고도 앞으로의 날씨나 풍흉을 예측할 수 있는 것과 같다. 자연과 깊이 교감하는 사람은 그 표상을 통해 자연의 비밀을 알게 된다.
그러나 뵈메는 타락으로 인해 인간이 이 ‘만물의 표상’을 읽는 능력을 상당 부분 상실했다고 본다. 인간의 마음이 어두워지고 감각이 둔해져서, 더 이상 사물의 내적인 본질을 꿰뚫어 보지 못하고 겉모습에만 현혹되게 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만물의 표상’을 다시 읽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인간 자신의 내면이 정화되고 ‘새로운 탄생(Wiedergeburt, 중생)’을 통해 영적인 감각이 회복되어야 한다.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받고 성령의 빛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마치 눈병을 고친 사람이 세상을 다시 렷하게 보게 되듯이,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만물의 영적인 의미와 아름다움을 새롭게 발견하게 된다. 그의 눈에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사랑과 지혜의 표현으로 보이며, 그는 모든 피조물과 깊은 일체감을 느끼게 된다.
궁극적으로 뵈메의 ‘만물의 표상’ 사상은 우리에게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 물질적인 것과 영적인 것, 그리고 인간과 자연, 나아가 인간과 신 사이에는 깊고도 신비로운 연결과 상응 관계가 존재함을 일깨워준다. 모든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각 부분은 전체의 의미를 반영하는 거울과 같다. 따라서 우리는 주변의 모든 사물과 사건들, 그리고 우리 자신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모든 경험들을 주의 깊게 관찰하고 성찰함으로써, 그 안에 숨겨진 신적인 지혜와 메시지를 발견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뵈메가 그의 책 제목으로 "만물의 표상, 또는 모든 존재의 탄생과 표시에 관하여(De Signatura Rerum, Von der Geburt und Bezeichnung aller Wesen)"를 사용한 것은, 바로 이러한 우주적 상징체계를 이해하는 것이 그의 사상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과제임을 보여준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야콥 뵈메의 ‘만물의 표상’은 단순한 철학적 개념을 넘어, 우리 삶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깊은 영적인 통찰을 담고 있다. 그것은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새롭게 하고, 우리 자신과 주변 세계, 그리고 보이지 않는 신적인 실재와의 관계를 더욱 깊이 이해하도록 이끈다. 모든 것 안에 깃든 신적인 흔적을 발견하려는 겸손하고 열린 마음이야말로, 뵈메가 우리에게 남긴 가장 소중한 유산 중 하나일 것이다. 이 ‘만물의 표상’을 읽어내는 지혜는, 결국 우리 자신이 누구이며 어디로부터 와서 어디로 가는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에 답을 찾는 여정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6.6.1. 자연은 신의 언어
앞서 야콥 뵈메의 ‘만물의 표상(Signatura Rerum)’ 사상이 모든 창조물의 외적인 모습 속에 그것의 보이지 않는 내적인 본질과 영적인 의미가 새겨져 있다는 심오한 통찰임을 살펴보았다. 이러한 이해는 자연스럽게 ‘자연은 신의 언어’라는 인식으로 이어진다. 뵈메에게 자연은 단순한 물질의 집합체나 우연한 힘들의 작용 결과가 아니다. 오히려 온 우주와 그 안에 있는 모든 피조물들은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을 드러내시고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살아있는 책이요, 생생한 언어이다. 성경이 문자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자연은 형상과 형태, 색깔과 소리, 그리고 다양한 움직임과 변화를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또 하나의 거룩한 계시이다. 따라서 인간은 이 자연이라는 위대한 책을 주의 깊게 읽고 그 안에 담긴 하나님의 메시지를 깨닫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뵈메는 강조한다.
뵈메의 시대는 과학 혁명이 태동하던 시기로, 자연을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수학적으로 설명하려는 움직임이 서서히 나타나고 있었다. 그러나 뵈메는 자연을 단순히 차가운 관찰의 대상으로 보지 않았다. 그에게 자연은 살아 숨 쉬는 유기체이며, 각 부분은 보이지 않는 신적인 생명력과 지혜로 가득 차 있다. 모든 풀 한 포기, 꽃 한 송이, 작은 벌레 한 마리에 이르기까지, 그 어느 것 하나 무의미하게 존재하는 것은 없으며, 각자는 자기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창조주의 영광과 신비를 드러내는 ‘말씀(Word)’ 또는 ‘표현(expression)’이다. 마치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의 편지를 읽을 때 글자 하나하나에서 그 사람의 마음과 생각을 느끼듯이, 순수한 마음으로 자연을 대하는 사람은 풀잎의 이슬 한 방울에서도, 저녁 하늘의 노을빛에서도 하나님의 미세한 속삭임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씨앗이 땅에 떨어져 싹을 틔우고 자라나 열매를 맺는 과정은 단순한 생물학적 현상을 넘어, 죽음을 통해 새로운 생명으로 나아가는 부활의 신비, 그리고 하나님의 창조력과 풍성함을 보여주는 살아있는 설교와 같다.
뵈메는 특히 자연 속에 숨겨진 ‘일곱 자연 성질(Sieben Quellgeister: seven nature spirits 또는 seven qualities)’과 ‘세 가지 원리(Drei Principien)’의 작용을 통해 자연이라는 언어가 어떻게 구성되고 표현되는지를 설명하려고 했다. 예를 들어, 어떤 식물이 강한 향을 내거나 쓴맛을 지니고 있다면, 그것은 그 식물 안에 특정 자연 성질(예를 들어, 수렴하거나 분리하려는 첫 번째 원리의 힘, 또는 확장하고 움직이려는 두 번째 원리의 힘)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표상(Signatur: signature)’이다. 또한, 식물의 성장 과정, 즉 씨앗에서 싹이 트고 꽃이 피며 열매를 맺는 전 과정은 어둠에서 빛으로, 숨겨진 잠재력에서 구체적인 현실로 나아가는 우주적인 창조 드라마의 축소판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이는 마치 복잡한 음악이 몇 개의 기본 음계와 화성 규칙을 바탕으로 다양한 멜로디와 하모니를 만들어내듯이, 자연 역시 몇 가지 근원적인 영적 원리들의 다양한 조합과 상호작용을 통해 무한히 다채로운 모습으로 자신을 표현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자연이 신의 언어라는 관점은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대한 깊은 성찰을 요구한다. 만약 자연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목소리라면, 우리는 더 이상 자연을 함부로 대하거나 파괴할 수 없다. 오히려 우리는 겸손한 마음으로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 안에 담긴 지혜를 배우며, 자연과 조화롭게 살아가는 법을 터득해야 한다. 뵈메에게 자연은 인간이 영적으로 성장하고 하나님을 알아가는 데 필요한 중요한 교과서이자 성소(聖所)와 같다. "만물의 표상(The Signature of All Things)"이라는 책 전체가 바로 이 자연이라는 책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에 대한 안내서라고 할 수 있으며, 뵈메는 독자들에게 자신의 내면을 정화하고 영적인 감각을 일깨워 이 거대한 우주적 언어를 해독하라고 끊임없이 촉구한다. 마치 외국어를 배우기 위해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하듯이, 자연이라는 하나님의 언어를 이해하기 위해서도 우리는 마음의 준비와 영적인 훈련이 필요하다.
그러나 인간의 타락은 이러한 자연의 언어를 이해하는 능력을 심각하게 손상시켰다. 자기중심적인 욕망과 교만은 인간의 눈을 멀게 하고 귀를 막아, 더 이상 자연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고 오직 자신의 이익을 위한 도구로만 여기게 만들었다. 그 결과 인간은 자연과 분리되고 소외되었으며, 자연 역시 인간의 탐욕으로 인해 신음하며 고통받게 되었다. 뵈메는 이러한 상태를 매우 안타까워하며, 인간이 ‘다시 태어남(Wiedergeburt, new birth 또는 regeneration, 중생)’을 통해 원래의 순수한 상태를 회복할 때 비로소 자연과의 참된 대화가 다시 가능해진다고 보았다. 중생한 영혼은 마치 어린아이와 같은 맑고 순수한 눈으로 자연을 바라보게 되며,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아름다움과 신비를 발견하고 그 안에서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게 된다. 그의 귀에는 바람 소리도, 새소리도, 시냇물 소리도 모두 하나님의 사랑을 속삭이는 감미로운 음악처럼 들릴 것이다.
이처럼 자연을 신의 언어로 이해하는 뵈메의 통찰은,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심각한 환경 위기 속에서 더욱 절실한 메시지를 던진다. 자연 파괴는 단순히 물질적인 자원의 고갈을 넘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목소리를 스스로 차단하고 영적인 빈곤을 자초하는 행위이다. 따라서 자연을 회복시키는 일은 단순한 환경 보호 운동을 넘어,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우리 자신의 영혼을 치유하는 거룩한 과제라고 할 수 있다. 뵈메의 사상은 우리에게 자연을 경외심과 사랑으로 대하며, 그 안에 담긴 신적인 지혜를 배우고, 모든 생명과 더불어 평화롭게 살아가는 길을 모색하도록 이끈다.
이렇게 볼 때, 야콥 뵈메에게 자연은 단순한 배경이나 물질적 자원의 보고(寶庫)가 아니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무한한 지혜와 사랑, 그리고 창조적인 능력을 끊임없이 드러내시는 살아있는 말씀 그 자체였다. 풀 한 포기, 돌멩이 하나에도 우주의 신비가 담겨 있으며, 바람 소리, 물소리에도 영원한 진리의 메아리가 울려 퍼진다. 이 자연이라는 거대한 책을 올바로 읽고 그 의미를 깨닫는 것은, 결국 우리 자신이 누구이며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아는 지혜로 이어지며, 나아가 보이지 않는 창조주 하나님과의 깊은 만남으로 우리를 인도하는 신성한 여정이다. 뵈메는 우리에게 바로 이 자연의 언어에 귀 기울이는 법을 배우라고, 그리하여 침묵하는 모든 것들 속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라고 간절히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