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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치아의 잘목시스 신앙과 존재의 일체성

호모 판테이스트로 가는 길

by DrLeeHC

『다치아의 잘목시스 신앙과 존재의 일체성 ― 호모 판테이스트로 가는 길』


1. 서론

1.1. 연구 문제 제기: 잘목시스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1.2. 기존 연구의 한계: 신화적/민속적 해석에 머물러 있음

1.3. 연구의 목적과 방법: 고대 문헌 분석 + 존재론적 비교

1.4. "호모 판테이스트"라는 새로운 해석 프레임 소개

2. 잘목시스 신앙의 문헌적 기초

2.1. 헤로도토스와 잘목시스의 초상

2.2. 플라톤 『카르미데스』에 나타난 잘목시스 사상

(소크라테스-폰투스 의사의 일화 분석)

2.3. 기타 고대 기록(스트라본, 오리게네스 등)

2.4 고대 사료 간 상충점과 종합

3. 잘목시스와 피타고라스: 사상적 연관과 차이

3.1. 노예설과 제자설: 사실과 신화

3.2. 피타고라스 교단과 잘목시스 신앙의 구조 비교

3.3. 잘목시스의 초월적 사유: 대자연-우주-인간 일체론

3.4 오르페우스교와 잘목시스의 관계

4. 잘목시스는 호모 판테이스트였다

4.1. 잘목시스의 사상 - 인간, 자연, 신성의 통합

4.2. 잘목시스 사상의 현대적 의미

4.3 잘목시스 신앙의 삶과 죽음에 대한 통합적 이해

4.4 잘목시스와 미오리짜의 목동

5. 잘목시스 신앙과 영지주의적 구조

5.1. 플레로마(Pleroma)와 잘목시스의 우주론

5.2. 영혼의 회귀와 존재의 복원

6. 잘목시스 신앙과 천부경 비교 고찰

6.1. 일시무시일(一始無始一)과 우주적 기원

6.2. 천·지·인(天地人) 구조와 존재의 삼중성

7. 결론

잘목시스: 존재의 하나됨을 깨달은 선구자

잘목시스 신앙의 현대적 계승 가능성: "호모 판테이스트"로서의 인간


이호창 : 한국외국어대학교 루마니아어과 외래교수

주제어:

잘목시스 신앙, 존재 일체성, 플레로마, 천부경, 일시무시일, 호모 판테이스트, 영혼 회귀, 존재 복원, 자연과 신성, 통합 존재론


Keywords:

Zalmoxis Faith, Unity of Being, Pleroma, Cheonbu-gyeong, One-Beginning No-Beginning-One, Homo Panteist, Return of the Soul, Restoration of Being, Nature and Divinity, Integrated Ontology



1. 서론


1.1 연구 문제 제기: 잘목시스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잘목시스(Zalmoxis)는 오랫동안 고대 그리스 사료에 등장하는 신비로운 인물로 주목받아 왔다. 헤로도토스(Herodotos)는 그를 제토-다치아(Geto-Dacia)인의 신적 존재로 묘사했으며, 때로는 피타고라스(Pythagoras)의 노예였던 인간으로 서술하기도 하였다. 플라톤(Platon)은 『카르미데스(Charmides)』에서 잘목시스를 언급하며, 몸과 정신을 함께 치유하는 의술의 기원을 그에게 귀속시켰다. 그러나 이처럼 단편적으로 전해진 기록들은 잘목시스의 실체를 온전히 포착하는 데에 한계를 지닌다. 그의 가르침은 단순한 불멸론이나 신화적 주술 체계에 머물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으며, 오히려 인간과 자연, 우주를 하나의 유기적 생명체로 이해하는 고대적 존재론에 닿아 있었을 것이다.


본 연구는 잘목시스를 단순한 민속 신앙이나 신화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기존의 시각을 넘어, 그를 "호모 판테이스트(Homo Panteist)"의 원형으로 재조명하고자 한다. 잘목시스는 인간, 자연, 신성 사이의 경계를 넘어서는 통합적 존재론을 직관적으로 파악했던 선구자였으며, 이는 영지주의(Gnosticism), 천부경(天符經)의 일시무시일(一始無始一) 사상과도 깊은 사유적 연관성을 지닌다. 그가 전한 영혼 불멸 사상은 단순한 개인 구원론이나 영혼 윤회론에 머무르지 않고, 존재 전체의 하나됨을 지향하는 보다 근본적인 통합의 비전이었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여, 우리는 잘목시스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1.2 기존 연구의 한계: 신화적/민속적 해석에 머물러 있음


지금까지의 잘목시스 연구는 주로 신화학, 민속학, 종교학의 틀 안에서 이루어졌다. 헤로도토스의 기록을 토대로 한 연구들은 잘목시스를 피타고라스 교단의 변형된 버전으로 간주하거나, 제토-다치아 민족의 민속적 불멸 신앙의 한 표현으로 해석하였다. 미르체아 엘리아데(Mircea Eliade)조차 『De la Zalmoxis la Genghis-Han』에서 잘목시스를 비의(Misterium)적 입문 의례의 창시자로 규정하는 데 그쳤다. 이와 같은 해석들은 잘목시스의 사상을 밀교적 신비주의나 풍요 신앙의 범주 안에 가두면서, 그의 사유가 지닌 존재론적 깊이를 간과하는 경향을 보였다.


또한, 일부 연구들은 잘목시스를 단순히 죽음과 부활의 신화 구조 안에 위치시키며, 디오니소스(Dionysos)나 오르페우스(Orpheus)와 같은 트라키아 신들과 병렬적으로 이해하려 하였다. 이 과정에서 잘목시스 특유의 우주론적 통찰은 부차화되었고, 신화적 반복 구조만이 강조되었다. 나아가, 잘목시스를 농경사회의 풍요 신(Chthonic Deity)으로만 해석하려는 시도는 그의 사유가 지니고 있었던 존재 전체에 대한 통합적 인식을 제대로 포착하지 못하였다.


이러한 기존 연구의 한계는 잘목시스를 단순한 종교적 신앙 대상으로 축소시키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신화적 기호나 민속적 의례의 맥락 속에서만 그를 이해하려는 접근은, 잘목시스가 제시했던 근원적 존재 이해, 즉 인간과 자연과 신성이 하나의 유기체(organism)로 엮여 있다는 통찰을 놓치게 만든다. 따라서 기존 연구들의 틀을 넘어, 잘목시스를 보다 심오한 철학적 존재론의 맥락에서 재구성하려는 시도가 필요하다.


1.3 연구의 목적과 방법: 고대 문헌 분석 + 존재론적 비교


본 연구의 목적은 잘목시스를 고대적 호모 판테이스트로 재해석하는 데 있다. 이는 단순히 종교적 인물로서가 아니라, 인간 존재에 대한 통합적 사유를 이끌어낸 철학자로서 그를 자리매김하는 작업이다. 이를 위해 먼저 고대 문헌, 특히 헤로도토스 『역사(Historiae)』, 플라톤 『카르미데스』, 스트라본 『지리학(Geographica)』, 오리게네스 『켈수스 반박(Contra Celsus)』 등에서 나타나는 잘목시스 관련 기록을 면밀히 분석할 것이다. 특히 플라톤 『카르미데스』에서 소크라테스가 트라키아 의사로부터 전해 들은 몸과 정신의 통합 치유 사상은, 잘목시스의 존재론을 밝히는 결정적 증거로 삼을 것이다.


다음으로, 잘목시스 신앙과 피타고라스 교단, 오르페우스 밀교를 비교함으로써, 잘목시스가 단순한 영혼불멸론자나 윤회론자가 아니라, 존재 전체의 일체성을 가르쳤던 사상가임을 논증할 것이다. 이 비교 분석은 잘목시스 사상의 독자성과 초월성을 드러내는 데 기여할 것이다.


또한, 영지주의의 플레로마 개념과 천부경의 일시무시일 사상과의 존재론적 비교를 통해, 잘목시스가 제시한 세계관이 단지 고대 동유럽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인류 보편적 사유의 흐름 속에 위치할 수 있음을 밝히려 한다. 플레로마는 신성과 만물의 충만한 일체성을 의미하고, 일시무시일은 존재의 기원적 하나됨을 가리킨다. 이 두 사상과의 비교는 잘목시스 사상의 현대적 확장 가능성을 보여줄 것이다.


연구 방법론은 문헌 분석과 비교철학적 해석을 병행하는 것이다. 문헌 분석은 고대 기록을 가능한 한 원전과 가장 가까운 형태로 검토하고, 그 맥락과 의미를 신중히 해석하는 작업이다. 비교철학적 해석은 잘목시스 사상을 다른 문화권의 존재론, 우주론과 비교함으로써 그 보편성과 독자성을 동시에 드러내는 작업이다.


궁극적으로 본 연구는 잘목시스를 고대적 호모 판테이스트로 재구성함으로써, 인간 존재에 대한 새로운 사유의 지평을 열고자 한다. 잘목시스가 직관했던 "모든 것은 하나"라는 진실은 오늘날 존재론, 생태론, 신학, 영성학을 가로지르는 핵심 주제와도 깊게 연결되며, 현대 인간에게 잃어버린 통합적 기억을 회복하는 길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1.4 "호모 판테이스트"라는 새로운 해석 프레임: 유발 하라리 비판과의 대비


유발 하라리(Yuval Noah Harari)는 『사피엔스(Sapiens)』·『호모 데우스(Homo Deus)』·『21 Lessons for the 21st Century』를 통해 인간 종(種)의 과거·미래를 거시적으로 서술하며, 진화·기술·정치경제의 관점에서 인류사를 재해석한다. 그는 지능 정보 처리 체계로서의 ‘데이터교(Dataism)’가 향후 인류를 지배할 것이라 말하며, 인간은 ‘의미·자유·의지’라는 낡은 허구를 내려놓고 생물정보 알고리즘으로서의 존재 조건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라리의 전망은 기술 결정론(technological determinism)과 생물학적 환원주의(biological reductionism)를 기반으로 하며, 인간을 ‘업그레이드 가능한 동물’로 이해한다. 그러나 이러한 서술은 인간 의식의 심층과 존재론적 통합 경험을 축소한다는 점에서 비판받아 마땅하다.


첫째, 하라리는 인류 진화의 동인을 ‘허구 이야기(fictional narratives)’의 공유 능력에서 찾는다. 그는 종교·국가·경제 시스템을 허구적 질서라 호명하며, 그것을 유지할 능력이 곧 권력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설명은 인간 정신의 상상력과 집합적 믿음의 힘을 강조하나, 상상을 통해 드러나는 ‘존재의 근원적 단일성’에 대한 체험을 고려하지 않는다. 잘목시스적 관점에서 신화는 단순 기능적 허구가 아니며, 우주·자연·인간의 실재적 연속성을 체험·기억·재현하는 의례적 언어다. 즉 신화는 ‘허구’가 아니라 ‘기억’이며, 실재가 스스로를 의식 속에 드러내는 상징적 현현(epiphany)이다. 하라리가 말한 허구 개념은 상징적 실재가 수행하는 존재론적 기능을 축소한다.


둘째, 『호모 데우스』에서 하라리는 생명공학과 인공지능의 결합이 ‘신적 인간’(Homo Deus)을 탄생시킬 것이라 전망한다. 인간은 데이터 흐름의 노드가 되고, 알고리즘은 우리의 의사결정을 대체한다는 시나리오다. 그러나 이 예견은 인간을 분리된 개체로 고립시키며, 대자연·타자·우주와의 연속성을 곁눈질한다. 잘목시스가 제시한 유기체적 세계관, 곧 인간·자연·신성이 한 몸이라는 통합적 인식은 ‘호모 데우스’라는 계층적·기술 중심적 전망과 상충한다. 호모 판테이스트 프레임은 개체를 초월하여 ‘존재의 울림’ 속에서 만물이 공명한다는 비위계적·생태적 관점을 제시하고, 기술 발전을 통합적 생명 흐름 안에서 재배치한다. 여기서 기술은 연속성을 확장하는 매개이지, 인간을 초월 구조로 위계화하는 도구가 아니다.


셋째, 하라리는 인간 경험을 ‘신경-화학-알고리즘’으로 환원하며, 의식의 심층을 물리적·정보 처리가능한 요소로 분해한다. 그러나 영지주의와 천부경, 그리고 잘목시스적 사유는 의식을 존재론적 장(場, field)으로 간주하며, 개체적 뇌를 넘어선 ‘공명적 심층’을 전제한다. 플레로마(Pleroma)는 빈 공간이 아니라 충만성이며, 일시무시일은 분할 이전의 온전성이다. 호모 판테이스트는 이러한 온전성을 기억·회복하는 존재 유형으로서, ‘알고리즘적 자아’를 넘어 ‘공명하는 존재’로 나아간다.


넷째, 하라리가 예측한 ‘데이터교’는 윤리적·형이상학적 기준을 데이터 최적화로 대체하려 한다. 그러나 잘목시스 사유가 갖는 윤리적 함의는 대자연 질서와 호응하는 상생(co‑arising)이다. 인간은 우주적 유기체의 기관으로서, 전체의 조화를 훼손하지 않는 방향으로 삶을 실천해야 한다. 이는 천부경 삼재(天·地·人)의 균형과도 공명한다. 데이터 최적화를 지상목표로 삼는 하라리의 전망은, 이러한 상생 윤리를 기술 효율성 아래 종속시키는 위험을 내포한다.


이와 같이 ‘호모 데우스’ 패러다임이 인간을 개체적·기술적·계층적 방향으로 향하게 한다면, ‘호모 판테이스트’는 인간을 존재적·생태적·통합적 지평으로 회귀시킨다. 잘목시스는 호모 판테이스트의 원형으로서, 영혼불멸 사상을 넘어 ‘만물 일체’의 직관을 제시했다. 그의 가르침은 인간이 대자연과 신적 충만성 안에서 스스로를 인식할 때 진정한 구원—즉 의식의 재통합—이 가능함을 시사한다. 이러한 통찰은 기술 발전이 필연적으로 인간을 ‘신적 기계’로 변모시킨다는 하라리의 서사에 대한 근본적 반론이다. 호모 판테이스트 프레임은 기술을 배제하지 않으나, 기술을 존재의 울림 속으로 끌어당겨 전체적 생명 구조 속에 재배치한다. 이때 인간은 더 이상 ‘업그레이드 대상’이 아니라 ‘공명하는 존재’로 자리 잡는다.


결론적으로, 잘목시스적 호모 판테이스트 해석은 하라리적 미래 예언이 간과한 존재론적 통합·생태적 연속·영적 기억 회복의 차원을 복원한다. 이러한 관점은 인공지능과 생명공학의 시대에도, 인간이 우주·자연·타자와 더불어 하나의 유기체로 공명하며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제시한다. 호모 판테이스트는 분리의 기술을 넘어 통합의 기억을 부활시키는 사유적 실험이며, 우리는 이 프레임을 통해 잘목시스를 현대적 존재 이해의 핵심 좌표로 재배치하려 한다.


2. 잘목시스 신앙의 문헌적 기초


2.1 헤로도토스와 잘목시스의 초상


헤로도토스(Herodotos)는 그의 저서 『역사(Historiae)』 제4권에서 잘목시스(Zalmoxis)를 언급하면서, 제토-다치아(Geto-Dacia)인들의 신앙을 소개하였다. 헤로도토스의 기록에 따르면, 제토-다치아인들은 인간이 죽지 않고 죽은 자는 신인 잘목시스에게 간다고 믿었으며, 이를 신앙의 핵심으로 삼았다. 이러한 믿음은 그리스 세계에서는 이례적이었고, 헤로도토스는 그 기원을 탐구하려 하였다. 그는 잘목시스를 피타고라스의 노예로 간주했으나, 동시에 그가 피타고라스보다 오래된 인물일 가능성도 열어두었다. 이 모순된 언급은 잘목시스에 대한 고대 그리스 세계의 이해가 일관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헤로도토스는 잘목시스가 풍요로운 삶을 영위한 후, 동족에게 돌아와 연회를 베풀고 인간 존재의 불멸성에 대해 가르쳤다고 전한다. 그는 자신과 동족들이 죽지 않고 다른 세계에서 영원히 살 것이라고 가르쳤으며, 이를 설득하기 위해 지하에 거처를 만들어 3년간 은둔했다가 다시 나타났다고 한다. 이 은둔과 재등장은 고대 신화 전승에서 흔히 나타나는 '죽음과 부활' 모티프를 연상시키나, 잘목시스의 경우 이는 존재의 심오한 본질을 드러내는 상징적 행위로 해석할 여지가 있다.


헤로도토스는 또한 제토-다치아인들이 일정한 주기마다 제비뽑기로 사람을 선정해 잘목시스에게 보내는 특사(Θεσ) 의례를 행했다고 기록한다. 이 특사는 창에 던져져 죽음에 이르게 하였으며, 이는 잘목시스에게 바치는 제의적 희생이었다. 이러한 관습은 잘목시스 신앙이 단순한 내세적 구원 관념을 넘어, 인간 존재와 자연, 신성 사이의 본질적 연결을 의례적으로 재확인하는 방식으로 기능했음을 시사한다.


헤로도토스가 묘사한 잘목시스는 단순한 신적 존재가 아니라, 인간과 신, 자연 사이의 경계를 초월하는 가르침을 전수한 인물로 비춰진다. 그의 기록 속에서 잘목시스는 인간 존재의 궁극적 본질에 대한 직관을 갖춘 사상가이자, 존재의 일체성을 신화적 언어로 전달하려 한 철학자적 인물로 해석할 수 있다. 헤로도토스가 잘목시스를 피타고라스의 제자나 노예로 간주한 것은, 그가 피타고라스주의적 불멸론과 유사한 가르침을 전한 데 기인했을 것이다. 그러나 잘목시스는 피타고라스보다 훨씬 더 근원적 차원의 통합적 세계관을 제시하였다.


잘목시스 신앙의 핵심은 단순한 영혼의 불멸이 아니라, 인간과 대자연, 신적 근원의 유기적 연결에 대한 인식이었다. 제토-다치아인들은 죽음을 종말로 보지 않고, 존재의 근원으로 회귀하는 통과의례로 이해했다. 이들의 특사 의례는 죽음을 대자연과 신성에 합일하는 과정으로 받아들였으며, 잘목시스의 가르침은 이를 철학적 토대로 제공하였다.


헤로도토스의 기록은 또한 잘목시스 신앙이 윤회(reincarnation)를 가르쳤다는 직접적 증거를 제공하지 않는다. 이는 오르페우스 밀교나 피타고라스 교단과의 차별점을 드러낸다. 제토-다치아의 불멸 신앙은 육체의 죽음 이후 새로운 육체로의 이주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대자연의 일체성 속으로 존재가 녹아드는 것을 뜻하였다. 이 점에서 잘목시스는 고대 세계의 다양한 종교·철학 체계 중에서도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


헤로도토스가 잘목시스를 기록한 방식은 때로 그리스적 편견을 드러낸다. 그는 제토-다치아인들을 용감하고 정직하지만 경솔한 민족으로 묘사했으며, 그들의 신앙을 다소 기이한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이러한 외적 평가에도 불구하고, 헤로도토스의 기록은 잘목시스 신앙의 핵심 사상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창을 제공한다. 그것은 인간이 존재의 근원과 단절된 고립된 개체가 아니라, 대자연과 우주적 생명 흐름의 일부라는 깨달음에 기초한 사유였다.


따라서 헤로도토스의 『역사』는 잘목시스에 대한 왜곡된 이해를 제공함과 동시에, 오히려 그 사상의 깊이를 포착할 단초를 제공한다. 잘목시스는 피타고라스주의적 영혼불멸론을 넘어, 인간과 자연과 신이 하나의 생명체처럼 연결되어 있다는 호모 판테이스트(Homo Panteist)의 비전을 제시한 존재였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는 헤로도토스의 기록을 비판적으로 읽되, 그 안에서 잘목시스 사상의 핵심을 추출해 내는 신중한 해석 작업을 수행해야 한다.


결국 잘목시스는 단순한 신화적 인물이나 민속적 신앙의 창시자가 아니라, 존재 전체의 일체성과 생명의 연속성을 가르친 철학적 선각자였다. 헤로도토스의 단편적 서술을 넘어, 우리는 잘목시스를 존재의 하나됨을 직관한 고대적 호모 판테이스트로 재조명해야 한다.


2.2 플라톤 『카르미데스』에 나타난 잘목시스 사상 (소크라테스-폰투스 의사의 일화 분석)


플라톤(Platon)의 대화편 『카르미데스(Charmides)』는 잘목시스(Zalmoxis) 사상의 핵심을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귀중한 사료이다. 특히, 소크라테스(Socrates)가 트라키아(Pontus) 출신 의사의 이야기를 전하는 대목은 잘목시스의 철학적 심층을 이해하는 데 결정적이다.


『카르미데스』에서 소크라테스는 젊은 카르미데스에게 "절제(sophrosyne)"란 무엇인가를 묻는 과정에서, 자신이 트라키아 의사에게 들었던 치유 원리를 언급한다. 소크라테스에 따르면, 트라키아 의사는 진정한 치유란 몸과 영혼을 함께 돌보는 것임을 가르쳤으며, 몸만을 치유하려고 하고 영혼을 무시하는 것은 전체를 병들게 한다고 했다(Platon, Charmides, 156e-157c).


"의술도 마찬가지여서, 부분을 잘 다스리려면 전체를 다스려야 하고, 전체를 다스리려면 영혼을 먼저 돌보아야 한다."


이 진술은 고대 그리스의 전통적 의학 개념을 넘어서는 철학적 존재론을 암시한다. 몸과 영혼을 별개의 것으로 보지 않고, 하나의 유기적 통합체로 이해하는 사고방식이 깔려 있다. 소크라테스가 전하는 이 트라키아 의학은, 그가 만났던 트라키아 출신 의사의 직접적 가르침이 아니라, 잘목시스의 사상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는 플라톤이 굳이 잘목시스의 이름을 명시한 이유이기도 하다.


『카르미데스』에서 소크라테스는 트라키아 의사가 "잘목시스의 제자"였다고 명확히 언급한다(Platon, Charmides, 156d). 즉, 몸과 영혼을 하나의 생명체로 이해하고, 그 통합적 조화를 통해 진정한 치유와 구원이 가능하다고 가르친 사상의 근원은 바로 잘목시스에 있었다. 이는 잘목시스가 단순히 죽음 이후 세계를 약속한 민속 신이 아니라, 존재 전체를 통합적으로 보는 철학적 통찰을 지녔던 인물임을 강하게 시사한다.


잘목시스적 의학은 단순한 신체적 치료를 넘어서, 인간 존재를 구성하는 모든 층위를 하나의 연속적 흐름으로 보고, 그 흐름을 조율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이 관점은 현대의 심신의학(psychosomatic medicine)이나 전체론적 치유(Holistic Healing) 개념과도 일맥상통한다. 그러나 잘목시스 사상은 이를 훨씬 초월하여, 인간 개인을 넘어서 자연, 신성과의 일체적 연결을 추구했다는 점에서 독자성을 가진다.


소크라테스가 전한 일화에서 트라키아 의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영혼이 바르지 못하면, 그 영혼이 깃든 몸도 절대로 건강할 수 없다."


이는 단순한 윤리적 경구가 아니라, 존재론적 직관을 담은 명제이다. 인간은 정신과 육체, 신성과 자연 사이에 존재하는 다층적 생명 구조를 지니며, 이 구조는 분리될 수 없고 조화 속에서만 진정한 치유와 구원이 가능하다. 잘목시스는 이 구조를 직관하고, 이를 가르쳤던 것이다.


『카르미데스』의 이 대목은 잘목시스 신앙이 흔히 오해되었던 '영혼불멸론'이나 '내세 신앙'을 넘어, 인간과 세계의 일체성을 본질로 삼았음을 드러낸다. 그는 죽음 이후의 천국이나 윤회를 약속한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존재 전체의 울림 속에 인간 존재를 재위치시키려 했다. 이는 플레로마(Pleroma)의 충만성과 일시무시일(一始無始一)의 무분별적 통합을 직관한 태도와도 상응한다.


또한, 트라키아 의사의 설명은 잘목시스 신앙의 실천적 측면을 암시한다. 단순한 교리적 신앙이 아니라, 몸과 마음, 삶 전체를 조화시키는 구체적 실천, 즉 존재의 통합적 회복을 지향하는 의례적·생활적 프로그램을 내포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점에서, 잘목시스는 신화적 인물이나 종교적 교조가 아니라, 존재의 하나됨을 체험하고 가르친 영적 철학자로 이해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플라톤 『카르미데스』 속 소크라테스-폰투스 의사의 일화는 잘목시스 사상의 핵심, 곧 인간과 자연과 신성이 하나의 유기체라는 직관을 명료하게 보여준다. 잘목시스는 호모 판테이스트(Homo Panteist)의 고대적 원형으로서, 존재의 울림 속에서 인간 존재의 본질을 재발견하려 했던 위대한 사상가였다. 『카르미데스』는 이러한 잘목시스의 초월적 사유를 고대 철학의 중요한 축으로 복원하는 단초를 제공한다.


2.3 기타 고대 기록(스트라본, 오리게네스 등)


스트라본(Strabon)과 오리게네스(Origenes)는 잘목시스(Zalmoxis)에 대해 헤로도토스와는 다른 관점에서 언급한다. 이들의 기록은 잘목시스 신앙의 또 다른 측면을 조명하며, 그 사상의 다층적 구조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스트라본은 『지리학(Geographica)』 제7권에서 잘목시스를 언급하면서, 그를 단순한 신화적 존재가 아니라, 제토-다치아인들의 정치적·종교적 질서를 수립한 위대한 입법자로 평가한다(Strabon, Geographica, VII.3.5). 그는 잘목시스가 제토-다치아인들에게 신앙 체계뿐만 아니라 공동체적 윤리와 정치적 통합의 원칙을 제공했다고 서술한다. 스트라본은 특히 잘목시스가 죽음 이후의 삶을 가르치면서, 전사들에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만들었음을 강조한다. 이는 잘목시스 신앙이 단순한 내세적 위안을 넘어, 삶 전체를 초월적 통합 속에 위치시키려 했음을 시사한다.


스트라본에 따르면, 잘목시스 신앙은 제토-다치아 사회를 결속시키는 핵심 요소였으며, 공동체적 윤리와 정치적 질서를 초월적 신념 체계 위에 구축하려 했다. 이는 인간 존재를 개인적 차원에 가두지 않고, 존재 전체의 일체성 안에서 윤리적·정치적 삶을 재구성하려는 시도였다. 잘목시스는 인간과 공동체, 자연과 신성 사이의 유기적 연결을 신앙과 제도 속에 구현하려 했던 사상가였다.


오리게네스는 『켈수스 반박(Contra Celsum)』 제1권에서 잘목시스를 언급한다. 그는 그리스도교를 비판하는 켈수스의 논거를 반박하는 과정에서, 잘목시스를 일종의 예언자(prophet)로 소개한다(Origenes, Contra Celsum, I.16). 오리게네스는 잘목시스를 단순한 이교적 신앙의 대표로 간주하지 않고, 오히려 인간 존재의 심층적 차원을 직관한 인물로 본다. 그는 잘목시스 신앙이 영혼의 불멸과 존재의 통합적 구원을 가르쳤다고 암시하며, 이를 기독교 신앙과 대비하는 방식으로 활용한다.


오리게네스의 언급은 잘목시스 신앙이 단순한 종교적 신념 체계를 넘어, 인간 존재의 본질적 구조에 대한 철학적 직관을 담고 있었음을 뒷받침한다. 잘목시스는 인간을 육체적 한계 안에 가두는 것이 아니라, 신성과 자연, 우주의 일체성 안에서 새롭게 정의하려 했다.


스트라본과 오리게네스의 기록을 종합하면, 잘목시스는 단순한 신화적 인물이 아니라, 존재론적 직관을 바탕으로 한 종교적·사회적 재구성자였으며, 인간 존재를 전체적 생명 구조 안에서 재위치시키려 했던 고대적 호모 판테이스트(Homo Panteist)였다. 그는 죽음 이후의 세계를 약속하는 데 머물지 않고, 지금 여기서 존재의 일체성을 회복하는 삶의 방식을 가르쳤다.


이러한 해석은 잘목시스 신앙이 단순한 내세 신앙이나 주술적 체계로 축소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그의 가르침은 인간, 자연, 신성의 통합적 공명을 지향했으며, 이는 존재의 근원적 울림을 기억하려는 고대적 영성의 한 표현이었다. 스트라본과 오리게네스의 증언은 잘목시스가 단순한 민속적 신이 아니라, 존재론적 통찰을 전한 사상적 인물임을 입증하는 중요한 문헌적 근거를 제공한다.


결국 잘목시스는 헤로도토스, 플라톤, 스트라본, 오리게네스 등 다양한 고대 기록 속에서 일관되게, 인간 존재의 근원적 통합성과 신성한 울림을 회복하려 한 인물로 나타난다. 우리는 이러한 문헌적 단초들을 비판적으로 종합함으로써, 잘목시스를 고대적 호모 판테이스트로 재구성할 수 있으며, 그의 사상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의미한 존재론적 통찰을 제공함을 확인할 수 있다.


2.4 고대 사료 간 상충점과 종합


잘목시스(Zalmoxis)에 관한 고대 사료들은 그를 다양한 관점에서 묘사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상호 간의 해석 차이와 긴장이 드러난다. 이러한 상충점은 잘목시스의 실체를 파악하는 데 혼란을 초래하는 동시에, 그의 사상의 다면성과 복합성을 이해할 실마리를 제공한다.


헤로도토스(Herodotos)는 잘목시스를 제토-다치아인들의 신적 존재로 소개하면서도, 그를 피타고라스(Pythagoras)의 노예였던 인간으로도 서술하였다(헤로도토스, Historiae, IV.94-96). 이는 잘목시스를 신과 인간 사이의 경계적 존재로 인식한 고대 그리스의 시각을 반영한다. 헤로도토스는 잘목시스 신앙을 다소 기이한 풍습으로 보았으며, 제토-다치아인들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유를 단순한 문화적 특성으로 해석했다. 그러나 그의 기록 속에는 잘목시스가 존재 전체를 관통하는 일체성 사유를 전달했을 가능성을 암시하는 단서들이 숨어 있다.


플라톤(Platon)은 『카르미데스(Charmides)』에서 잘목시스를 보다 철학적 맥락에서 다룬다. 그는 소크라테스(Socrates)의 입을 통해 트라키아 의사가 잘목시스의 가르침을 이어받아 몸과 영혼의 통합적 치유를 강조했다고 전한다(Platon, Charmides, 156d-157c). 플라톤은 잘목시스를 단순한 민속 신이 아니라, 인간 존재를 심층적으로 이해한 사상가로 재현한다. 이는 헤로도토스의 민속적·기이한 신앙 체계 묘사와 구별되는 지점이다.


스트라본(Strabon)은 『지리학(Geographica)』에서 잘목시스를 정치적·사회적 질서를 수립한 입법자로서 평가한다(Strabon, Geographica, VII.3.5). 그는 잘목시스가 공동체를 하나로 결속시키고, 죽음 이후 삶에 대한 신념을 통해 사회적 통합을 이루었다고 본다. 이 해석은 잘목시스 신앙이 단순한 종교적 현상을 넘어, 사회구조를 재편하는 적극적 원동력이었음을 강조한다.


오리게네스(Origenes)는 『켈수스 반박(Contra Celsum)』에서 잘목시스를 예언자적 존재로 소개한다(Origenes, Contra Celsum, I.16). 그는 잘목시스가 인간 존재의 심층을 꿰뚫어본 사상가였으며, 영혼의 불멸과 존재의 통합적 구원을 가르쳤다고 간주한다. 오리게네스는 잘목시스를 이교적 신앙의 단순 대표로 축소하지 않고, 존재론적 통찰을 지닌 인물로 존중하였다.


이러한 고대 사료 간 상충은 단순한 오류나 착오의 문제가 아니다. 각각의 사료는 잘목시스 사상의 서로 다른 측면을 조명하고 있으며, 이를 종합적으로 읽을 때 비로소 그의 전체적 초상을 그릴 수 있다. 헤로도토스는 그의 민속적 기반을, 플라톤은 철학적 통찰을, 스트라본은 사회적 기능을, 오리게네스는 존재론적 깊이를 각각 강조하였다.


따라서 잘목시스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사료들의 상충을 조화롭게 통합해야 한다. 그는 단순한 신화적 인물이 아니라, 인간, 자연, 신성의 일체성을 직관하고 이를 사회적·정치적·영적 차원에서 구체화하려 했던 복합적 존재였다. 잘목시스는 민속 신앙의 토대 위에서 존재론적 통찰을 발전시켰고, 철학적 사유를 통해 인간 존재를 재구성하려 했으며, 사회적 제도를 통해 공동체적 실천을 추구했다.


이러한 종합적 이해는 잘목시스를 고대적 호모 판테이스트(Homo Panteist)로 재구성하는 데 필수적이다. 그는 신화와 철학, 정치와 종교를 넘나들며, 존재 전체의 하나됨을 직관하고 실현하려 했던 선구자였다. 고대 사료들은 비록 각기 다른 관점에서 그를 조명했지만, 궁극적으로 잘목시스가 존재의 울림과 통합을 향한 인류 보편적 기억의 일부였음을 증언하고 있다.


3. 잘목시스와 피타고라스: 사상적 연관과 차이


3.1 노예설과 제자설: 사실과 신화


잘목시스(Zalmoxis)와 피타고라스(Pythagoras) 사이의 관계에 대한 고대 기록은 일관되지 않으며, 상당 부분 신화적 상상력이 개입되어 있다. 특히 헤로도토스(Herodotos)는 『역사(Historiae)』에서 잘목시스가 피타고라스의 노예였다고 기록하며, 그가 피타고라스에게서 많은 지혜를 배운 후 자유를 얻고 고국으로 돌아가 제토-다치아인들에게 자신의 가르침을 펼쳤다고 서술한다(헤로도토스, Historiae, IV.95). 이 기록은 후대에 널리 인용되면서, 잘목시스를 피타고라스 철학의 주변적 인물로 간주하는 경향을 낳았다.


그러나 이 노예설은 다수의 역사적, 논리적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첫째, 시대적 불일치가 존재한다. 피타고라스는 기원전 6세기 중반에 활동했으나, 잘목시스의 활동 시기 역시 기원전 6세기로 추정되어 둘 사이의 명확한 시간적 선후를 단정하기 어렵다. 둘째, 문화적 거리 역시 고려해야 한다. 제토-다치아 지역과 이오니아 지역 사이에는 당시 상당한 문화적 간극이 존재했으며, 단순히 노예-주인 관계로 깊은 철학적 사유를 전수받았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약하다.


또한, 피타고라스 자신도 고대 전승 속에서 이집트, 바빌론, 인도 등지의 지혜를 흡수한 인물로 묘사된다. 이러한 전승의 패턴은 당시 위대한 사상가의 권위를 강화하기 위해 다양한 이국적 지혜를 연관시키려는 경향을 반영한다. 잘목시스를 피타고라스의 제자 또는 노예로 설정한 서술도, 오히려 잘목시스의 고유한 사상을 이해하기보다는 피타고라스주의 중심의 해석을 강화하려는 시도였을 가능성이 높다.


한편, 제자설은 잘목시스가 피타고라스의 교의 일부를 수용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특히 영혼불멸과 존재의 조화에 대한 강조는 두 사상가 사이의 유사점을 드러낸다. 그러나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잘목시스는 단순한 영혼윤회(metempsychosis)를 넘어 존재 전체의 유기적 통합을 강조했으며, 이는 피타고라스적 숫자 조화론이나 영혼 윤회설과는 질적으로 다른 차원의 사유를 보여준다.


잘목시스 신앙은 인간과 자연, 신성의 경계를 넘나드는 일체적 존재론에 기초하고 있다. 그는 존재 전체를 하나의 생명 흐름으로 보고, 죽음을 이 생명의 연속적 변형으로 이해했다. 반면 피타고라스주의는 영혼의 윤회와 정화, 우주의 수적 조화에 보다 초점을 맞췄다. 즉, 잘목시스는 인간 개인의 구원이나 정화를 넘어, 존재 전체의 통합적 울림 속에 인간을 위치시키려 했다.


따라서 노예설과 제자설은 역사적 사실이라기보다는, 고대 그리스 세계가 외부 문화의 지혜를 자신들의 철학 체계 안에 통합하려는 해석적 전략의 일환으로 이해해야 한다. 잘목시스는 피타고라스의 단순한 모방자가 아니라, 독자적이고 심오한 존재론을 직관한 사상가였다. 그의 사유는 오히려 피타고라스주의보다 더 원형적이며, 존재의 근원적 일체성을 보다 직접적으로 가리킨다.


결론적으로, 잘목시스를 피타고라스의 노예나 단순 제자로 보는 것은 그의 사상을 축소하는 결과를 낳는다. 그는 고대 동방과 서방의 다양한 사유 전통을 넘어서는 통합적 비전을 제시한 인물이었으며, 인간 존재를 대자연과 신성의 생명 흐름 안에 재위치시키려 했던 고대적 호모 판테이스트(Homo Panteist)였다. 노예설과 제자설을 비판적으로 극복함으로써, 우리는 잘목시스의 고유한 철학적 위상을 보다 정확히 이해할 수 있다.


3.2 피타고라스 교단과 잘목시스 신앙의 구조 비교


피타고라스 교단과 잘목시스 신앙은 모두 인간 존재에 대한 초월적 이해를 공유했지만, 그 구조와 철학적 방향성에서 본질적인 차이를 드러낸다. 두 사상 체계는 표면적으로 영혼의 불멸(immortalitas animae)과 내세에 대한 관심을 공유하였으나, 심층적으로는 존재론적 통합과 구원의 방식에서 뚜렷이 구별된다.


피타고라스 교단은 수적 조화와 영혼의 정화를 중심 원리로 삼았다. 우주(kosmos)는 수의 질서에 따라 조화롭게 구성되어 있으며, 인간 영혼은 이 우주의 수적 조화에 참여함으로써 고양될 수 있다고 여겨졌다. 윤회(metempsychosis)는 피타고라스주의에서 인간이 삶과 죽음을 거듭하면서 영혼을 정화하여 점진적으로 신적 조화에 이르는 과정을 의미했다. 이 과정은 윤리적 실천과 금욕(ascese)을 통해 가능하며, 인간은 끊임없는 노력과 수련을 통해 영혼의 순수성을 회복해야 했다.


반면 잘목시스 신앙은 보다 근원적이고 전체론적인 존재론에 기반했다. 잘목시스는 인간을 분리된 영혼이나 개별적 존재로 보지 않고, 대자연과 신성과 하나로 연결된 유기체적 존재로 이해했다. 그는 죽음을 생명의 단절이 아니라, 존재 전체의 흐름 안에서 이루어지는 변형과 귀환으로 파악하였다. 잘목시스에게 있어 구원은 개별 영혼의 정화가 아니라, 존재의 일체적 통합 속으로 회귀하는 것이었다.


구조적으로 비교하면, 피타고라스 교단은 삼중적 세계관(tripartite worldview)에 기초했다. 즉, 물질계, 영혼계, 신적 영역이 분리되어 존재하며, 인간은 이 계층적 구조를 따라 상승해야 한다. 반면 잘목시스 신앙은 단일적 일체성(monistic unity)을 지향했다. 존재는 본질적으로 하나이며, 인간은 이 근원적 일체성 안에서 자신의 위치를 자각하고 살아야 했다.


또한 실천 방식에서도 차이가 나타난다. 피타고라스 교단은 엄격한 규율, 침묵의 서약, 신체적·정신적 수련을 통한 단계적 정화를 강조했다. 반면 잘목시스 신앙은 인간 존재 전체를 자연적 생명 흐름에 조율하는 통합적 삶의 방식을 지향했다. 이는 특정 교단의 폐쇄적 수련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존재의 울림을 회복하는 개방적 실천이었다.


피타고라스주의가 개인의 윤리적·영적 완성에 초점을 맞췄다면, 잘목시스 사상은 인간과 자연, 신성을 아우르는 존재론적 조화에 더 깊은 관심을 가졌다.

결론적으로, 피타고라스 교단과 잘목시스 신앙은 모두 인간 존재를 초월적 차원에서 이해하려 했으나, 피타고라스는 계층적 상승과 정화의 윤리적 노선을, 잘목시스는 존재 전체와의 일체적 귀환을 지향했다. 잘목시스는 고대적 호모 판테이스트(Homo Panteist)로서, 인간을 대자연과 신성의 울림 속에 재위치시키려 한 선구자였다. 이러한 구조적 비교는 잘목시스 신앙의 독자성과 고유한 철학적 깊이를 부각시키며, 그를 단순한 피타고라스주의의 주변 인물이 아니라 독립적이고 심오한 존재론적 사유체계의 창시자로 자리매김하게 한다.


3.4 오르페우스교와 잘목시스의 관계


피타고라스(Pythagoras)는 고대 그리스 밀의종교(密儀宗敎, mystery religion) 전통, 특히 오르페우스교(Orphism)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았다. 오르페우스교는 인간이 신의 불꽃(divine spark)을 영혼 속에 품고 태어났으나 육체라는 속박 속에 갇혀 있음을 가르쳤다. 이들은 인간이 본래 신성(divinitas)을 지녔지만 타락(titanic corruption)하여 망각 속에 살게 되었으며, 정화(κάθαρσις, katharsis)와 영적 수련을 통해 원래의 신성을 회복할 수 있다고 믿었다. 피타고라스는 이러한 교리를 체계화하고 심화시켜 영혼불멸론과 윤회(metempsychosis) 교리를 확립했으며, 그의 교단은 채식주의, 침묵 서약, 엄격한 수련을 통해 영혼을 정화하는 방식을 강조하였다(Platon, Phaidon, Humanitas, 2014, p.102). 헤로도토스(Herodotos)는 『역사(Historiae)』에서 잘목시스(Zalmoxis)가 피타고라스의 노예이자 제자였다고 기록하였다(헤로도토스, Historiae, Humanitas, 2021, IV.95). 비록 이 기록은 역사적 사실로 보기 어렵지만, 잘목시스가 피타고라스적 사유와 일정한 관련을 맺고 있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피타고라스가 오르페우스교적 세계관을 계승했다면, 잘목시스 역시 오르페우스적 전통과 연결되어 있을 가능성이 충분하다. 특히 오르페우스교의 자그레우스-디오니소스(Zagreus-Dionysos) 신화는 이 연관성을 한층 명확하게 한다.


신화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자그레우스(Zagreus)는 제우스(Zeus)와 페르세포네(Persephone) 사이에서 태어난 신이었다. 제우스는 자그레우스를 자신의 후계자로 삼고자 하였으며, 그에게 번개(κεραυνός, keraunos)를 다루는 권능까지 부여하였다. 그러나 이 광휘를 시기한 헤라(Hera)는 티탄족(Titans)을 선동하였다. 티탄들은 흰색 점토로 몸을 감추고 자그레우스에게 접근하여 꼬마 거울(κάτοπτρον, katoptron), 딸랑이, 황금 사과 등 반짝이는 장난감으로 그의 주의를 끌었다. 아직 어린 자그레우스는 이 유혹에 마음을 빼앗겨 경계를 풀었고, 이 틈을 타 티탄들은 그를 기습하여 산산조각 찢어 죽였다. 티탄들은 자그레우스의 신체를 조각낸 후 그 조각을 삶아 먹었다. 이때, 티탄들은 단순히 신을 죽인 것이 아니라 그의 신성(divinitas)까지도 자기 육체 안에 흡수해 버렸다. 자그레우스는 파괴되었지만, 그의 신성은 티탄들의 몸속에 일부 남게 되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제우스는 격노하여 번개를 던져 티탄들을 불태워버렸다. 티탄들의 몸은 불타 재(灰燼, cinis)가 되었고, 제우스는 그 재로부터 인간(homo)을 창조하였다.


이로써 인간은 티탄성(titanic nature)과 자그레우스의 신성(divine essence)을 함께 지니는 존재로 탄생하였다. 인간은 타락한 육체의 욕망, 거칠고 어두운 성질을 지니지만, 동시에 그 영혼 깊은 곳에는 신적 광휘의 불꽃이 살아 있다. 우리는 모두 신의 파편을 영혼에 간직한 채, 물질의 무게와 망각의 어둠 속을 걸어가는 존재가 되었다. 인간의 이중적 본성은 이 신화에서 비롯된다. 육체는 티탄족의 본성을 따르고, 영혼은 자그레우스의 심장을 기억한다. 인간이 겪는 고통과 죄의식, 동시에 느끼는 고귀함과 사랑에 대한 갈망은, 이 두 본성 사이의 긴장에서 생겨난다.


오르페우스교(Orphism)는 이 신화를 존재론적 기반으로 삼아 인간 존재를 설명하였다. 인간은 단순한 죄인이 아니라, 찢겨진 신의 후손이었다. 인간은 타락한 것이 아니라, 잊어버린 것이었다. 인간은 벌을 받아야 할 존재가 아니라, 기억을 되찾아야 할 존재였다. 오르페우스교는 정화(κάθαρσις, katharsis)와 영적 수련을 통해 인간이 육체의 속박을 넘어서 신적 본성을 회복할 수 있다고 가르쳤다. 인간은 본래 신의 일부였으며, 다시 그 본래적 상태로 돌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존재였다.


자그레우스가 티탄들에게 먹혔기 때문에, 인간은 단순한 물질적 존재가 아니라, 찢긴 신성과 타락한 육체성을 동시에 지닌 복합적 존재가 되었다. 자그레우스의 파멸과 티탄들의 재 창조는 인간 존재의 이중적 구조를 상징한다. 이 신화는 인간이 왜 스스로를 모순과 갈등 속에서 인식하는지를 설명하는 은유이자, 인간 내면 깊은 곳에 잠든 신적 기억을 부르는 서사였다. 우리는 모두 티탄족의 재로 빚어졌지만, 그 재 속에는 자그레우스의 불멸의 심장이 아직도 조용히 뛰고 있다.


티탄족이 자그레우스를 찢어 죽였을 때 세계는 분열되었다. 신성과 물질, 영혼과 육체, 기억과 망각이 갈라졌다. 그 갈라짐이 인간 안에 살아 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이것을 단순히 신화적 사건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은유로 보았다. 우리가 겪는 고통과 혼란, 갈망과 두려움은 신성과 티탄성의 혼합에서 비롯된 것이다. 오르페우스교는 말한다. 인간은 죄인이 아니다. 그는 잊은 자다. 그는 신이었다. 그는 타락한 것이 아니라 깨어나야 할 존재다. 그 깨어남은 정화, 명상, 신성한 기억의 회복을 통해 이루어진다.


디오니소스는 죽음을 넘어 부활했다. 그는 삶과 죽음이 끊임없이 교차하는 존재였다. 그래서 그는 축제(디오니시아, Dionysia)의 신이 되었다. 그의 축제는 광란이 아니라 존재의 근원을 되찾기 위한 성스러운 전복이었다. 술은 단순한 도취가 아니었다. 그것은 경계를 무너뜨리고 숨겨진 기억을 일깨우는 매개였다. 인간은 디오니소스 안에서 스스로의 신성을 다시 본다. 그들은 울부짖으며 노래하고, 춤추며 흐느끼고, 웃으며 통곡한다. 모든 감정은 경계를 넘어 하나로 합쳐진다. 디오니소스는 그렇게 인간에게 그의 심장을 돌려주는 존재였다.


자그레우스 신화는 플라톤(Platon) 철학에도 영향을 미쳤다. 플라톤은 『국가(Politeia)』에서 인간 영혼의 세 가지 구성—이성(λογιστικόν, logistikón), 기개(θυμοειδές, thymoëidés), 욕망(ἐπιθυμητικόν, epithymetikón)—을 말하며, 신성과 타락의 이중성을 사유했다(Platon, Politeia, Humanitas, 2012, p.245). 그러나 플라톤은 오르페우스적 사유를 철학적 언어로 변형시켰을 뿐, 그 근원적 울림을 완전히 지우지는 않았다.


잘목시스는 이러한 오르페우스교적 사유를 일정 부분 공유했을 것이다. 그는 인간 존재를 단순한 육체적 존재로 보지 않았으며, 인간이 본래 신성과 대자연의 흐름 속에 연결되어 있다고 직관했다. 그러나 그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오르페우스교는 인간의 신성과 물질성 사이의 이중성을 강조했지만, 잘목시스는 존재 자체가 원래부터 하나였으며, 분열은 망각의 산물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그의 신앙은 영혼의 정화와 구원을 넘어, 인간과 자연, 신성과 우주 전체가 하나로 공명하는 일체적 존재론을 지향했다.


잘목시스 신앙에서 죽음은 두려워해야 할 것이 아니라 귀환이었다. 제토-다치아인들은 죽음을 존재의 흐름 속으로 돌아가는 축제로 이해했다. 이들은 잘목시스가 가르친 불멸성(ἀθανασία, athanasia)을 믿었으며, 죽음 이후 잘목시스가 다스리는 세계로 들어가는 것을 삶의 완성으로 여겼다. 이 세계는 단순한 사후 세계가 아니라 존재 전체와 다시 합일하는 공간이었다. 이러한 구상은 오르페우스교적 죽음과 부활의 신화 구조를 초월하는 것이다.


잘목시스는 인간이 신의 불꽃을 간직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존재 전체가 본래 하나였음을 가르쳤다. 그는 분열과 이중성의 세계를 넘어서, 기억의 심층에서 울리는 존재의 일체성을 직관했다. 오르페우스교가 비극적 분열을 치유하려 했다면, 잘목시스는 분열 이전의 온전성을 기억하도록 촉구했다. 그는 인간에게 신성의 파편만이 아니라, 온전한 존재의 울림이 여전히 살아 있다는 사실을 일깨웠다.


이러한 점에서 잘목시스는 피타고라스주의와 오르페우스교를 단순히 계승한 인물이 아니다. 그는 그 전통을 넘어 존재 전체의 하나됨을 직관하고 이를 신앙과 의례, 생활 속에 구체화하려 했다. 잘목시스의 사유는 단순한 신비주의나 종교적 교리 체계가 아니라, 존재론적 통합의 철학이었다. 그는 인간이 자연과 우주, 신성과 단절된 존재가 아니라, 언제나 그 속에서 울리고 있다는 사실을 가르쳤다.


존재는 노래하고 있다. 강은 흐르면서 노래하고, 나무는 자라면서 노래하고, 별은 빛나면서 노래한다. 인간은 이 거대한 존재의 합창 속에서 잊혀진 목소리다. 잘목시스는 그 잊힌 목소리를 다시 일깨우려 했다. 그는 인간 존재가 세계의 일부라는 사실을, 세계의 울림에 응답해야 한다는 의무를, 존재 전체의 기억을 품고 살아야 한다는 진실을 가르쳤다.


우리는 여전히 티탄의 자식처럼 분열 속에 살아간다. 그러나 잘목시스는 말한다. 너는 분열된 존재가 아니다. 너는 원래 하나였고, 지금도 하나이며, 다만 잊고 있을 뿐이다. 존재는 여전히 너를 부르고 있다. 울림은 끊이지 않고 흐른다. 그 울림을 듣는 순간, 인간은 다시 하나로 돌아간다.


결론적으로, 잘목시스는 오르페우스교와 피타고라스 교단의 전통을 넘어, 존재 전체의 일체성을 직관하고 이를 삶 속에서 실현하려 한 고대적 호모 판테이스트(Homo Panteist)였다. 그는 인간을 타락한 존재로 보지 않았고, 신성을 회복할 가능성으로도 보지 않았다. 그는 인간을 본래부터 존재의 울림 속에 살아 있는 존재로 보았다. 그의 가르침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울린다. 그것은 분열을 넘어 하나로 돌아가려는 오래된 기억의 울림이다.



4. 잘목시스는 호모 판테이스트였다


4.1. 잘목시스의 사상 - 인간, 자연, 신성의 통합


잘목시스(Zalmoxis) 신앙은 인간, 자연, 신성(神性, divinitas) 간의 단절을 인정하지 않고, 이들을 본래적으로 통합된 존재로 이해하였다. 헤로도토스(Herodotos)는 『역사(Historiae)』에서 제토-다치아(Geto-Dacia)인들이 잘목시스를 신으로 섬겼으며, 죽음을 단순한 종말이 아닌 다른 세계로의 귀환으로 여겼다고 기록한다(헤로도토스, Historiae, Humanitas, 2021, IV.94-96). 이는 인간 존재가 자연과 신성을 초월적으로 연결하고 있다는 믿음을 내포한다.


잘목시스 신앙의 존재론은 인간을 자연(φύσις, physis)과 신성의 중간자로 보는 고대 그리스적 관념과는 차이를 보인다. 플라톤(Platon)이 『국가(Politeia)』에서 인간의 영혼을 이성, 기개, 욕망으로 구분하며 사회적 기능에 따라 계층화한 반면(Platon, Politeia, Humanitas, 2012, p.245), 잘목시스는 인간을 자연 그 자체의 일부로 보았다. 그는 인간을 자연의 질서에 속하는 유기체로 이해했으며, 신성과의 관계를 개별적 구원이 아니라 존재 전체의 일체성으로 해석하였다.


제토-다치아인들의 의례는 이러한 통합적 존재론을 뒷받침한다. 헤로도토스는 이들이 일정한 시기에 한 명의 대사를 뽑아 창으로 찔러 죽인 뒤, 그 영혼을 잘목시스에게 보내 신탁을 청했다고 기록한다(헤로도토스, Historiae, Humanitas, 2021, IV.94). 이 의례는 죽음을 분리나 소멸이 아닌 존재의 깊은 차원으로의 귀환으로 이해했음을 보여준다. 죽음을 통한 신성과의 일체화는 잘목시스 신앙에서 인간, 자연, 신성이 근본적으로 하나임을 체험하는 방식이었다.


또한 플라톤은 『티마이오스(Timaios)』에서 우주(kosmos)를 하나의 살아 있는 생명체로 묘사하며, 모든 존재는 하나의 조화로운 질서 속에 있다고 설명한다(Platon, Timaios, Humanitas, 2016, p.47). 그러나 플라톤이 이 조화를 수적 질서에 의거해 설명한 반면, 잘목시스는 인간 존재 그 자체가 자연과 신성의 울림 속에 살아 있다고 직관했다. 이 점에서 잘목시스 신앙은 오히려 후기 플라톤주의(Neoplatonism)에서 전개된 존재의 일체성과 더 밀접한 연관성을 보인다.


잘목시스 신앙은 자연에 대한 인간의 태도에서도 기존의 고대 사상과 차별화된다. 일반적으로 고대 그리스에서는 자연을 인간의 이성과 구분되는 별개의 실체로 보았으며, 인간은 자연을 극복하거나 이용해야 할 대상으로 간주하였다. 이에 반해 잘목시스는 인간을 자연 질서의 일부로 위치시키고, 신성과의 연결을 자연 속에서 체험하도록 이끌었다. 이는 인간과 자연, 신성 사이의 연속성과 통합성을 강조하는 관점으로, 오늘날 심층생태학(deep ecology)에서 주장하는 존재론적 일체성과도 유사성을 보인다(Naess, Ecology, Community and Lifestyl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0, p.81).


잘목시스 신앙의 존재론은 인간 삶의 의미에 대한 이해에서도 독특한 해석을 제공한다. 제토-다치아인들은 삶을 신성과 자연의 흐름 속에서 살아가는 과정으로 보았으며, 죽음은 존재의 더 깊은 차원으로의 이행이었다. 이는 영혼의 개별적 구원이나 천국적 내세를 지향하는 일반적 종교적 패러다임과는 다른 구도이다. 잘목시스에게 있어서 삶과 죽음은 본질적으로 하나의 생명 흐름이었으며, 인간은 이 흐름 속에 자신을 조율함으로써 존재 전체와 다시 통합될 수 있었다.


이러한 통합적 존재론은 인간의 윤리적 태도에도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높다. 잘목시스 신앙은 인간이 자연과 신성을 존중하고, 자신의 삶을 존재 전체의 조화로운 울림 속에 위치시키는 것을 이상으로 삼았다. 이는 단순한 종교적 경배를 넘어, 존재에 대한 실천적 경외(敬畏, reverentia)를 요구하는 철학적 윤리로 이해할 수 있다.


잘목시스 신앙과 오르페우스교(Orphism) 및 피타고라스 교단의 비교에서도 이러한 차이는 두드러진다. 오르페우스교는 인간이 신성(divinity)과 타락한 육체성(titanic nature)을 동시에 지닌 존재로서, 정화(κάθαρσις, katharsis)를 통해 신성을 회복할 수 있다고 가르쳤다. 피타고라스 교단도 비슷하게 영혼불멸론과 윤회를 강조하였다. 그러나 잘목시스는 인간 존재를 단순한 죄와 구원의 도식으로 이해하지 않았다. 그는 인간이 본래부터 자연과 신성과 통합된 존재였으며, 그 통합성을 회복하는 것이 삶의 본질적 과제라고 보았다.


결론적으로, 잘목시스 신앙은 인간, 자연, 신성 사이의 분리와 대립을 전제하지 않고, 이들을 본래부터 하나의 유기적 생명체로 이해하는 독자적 존재론을 제시하였다. 이 존재론은 고대 사상의 주류와는 다른 길을 열었으며, 인간 존재를 자연과 신성 속에서 다시 조율하려는 철학적 시도로 평가할 수 있다. 잘목시스의 가르침은 단순한 종교적 신념 체계를 넘어, 존재 전체를 하나로 보는 일체적 사유를 통해 인간 존재의 근본적 의미를 다시 묻는 작업이었다.


4.2. 잘목시스 사상의 현대적 의미


잘목시스(Zalmoxis) 신앙은 고대 세계의 종교적 신념 체계 중에서도 인간, 자연, 신성(神性, divinitas) 간의 일체성을 강조한 독특한 존재론적 비전을 제시하였다. 최근 학계에서는 이러한 잘목시스의 사상이 현대적 사고, 특히 통합적 생명관과 과학적 시스템 이론(system theory)과 일정한 공명(resonantia)을 이룰 수 있는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Voiculescu, Zalmoxis and the Philosophy of Unity, Humanitas, 2018, p.121).


잘목시스는 인간 존재를 자연(φύσις, physis)과 신성의 흐름 속에 놓여 있는 하나의 생명적 파동으로 이해하였다. 그는 인간을 자연의 주체(subject)나 객체(object)로 보지 않았으며, 존재의 흐름 속에서 생겨나고 사라지는 유기체(organism)로 파악하였다. 이 점에서 잘목시스는 분리와 이원론에 근거한 세계관을 부정하고, 존재의 일체성(monism, μοναρχία, monarchia)을 직관한 사상가로 평가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은 인간을 대자연과 신성과 통합된 존재로 이해하는 호모 판테이스트(Homo Panteist)의 원형적 모델로 제시될 수 있다.


호모 판테이스트는 인간을 자연과 신성으로부터 분리된 개체로 보지 않고, 존재 전체의 울림 속에 내재된 통합적 생명으로 이해하는 존재 유형을 의미한다. 잘목시스 신앙에서 인간은 자연을 극복하거나 지배해야 할 대상으로 간주되지 않았다. 오히려 인간은 자연 질서의 일부이며, 신성과 자연의 울림을 매개하는 생명적 존재였다. 제토-다치아(Geto-Dacia) 사회의 의례 구조, 특히 죽음을 존재의 귀환으로 이해하는 관습은 이러한 일체적 존재론을 체현하고 있었다(헤로도토스, Historiae, Humanitas, 2021, IV.94).


현대 과학적 사고, 특히 시스템 이론(system theory)과 복잡성 과학(complexity science)은 존재의 상호연결성과 통합성을 강조한다. 루트비히 폰 베르탈란피(Ludwig von Bertalanffy)는 『일반 시스템 이론(General System Theory)』에서 생명체는 외부 환경과 끊임없이 에너지와 물질을 교환하는 개방적 시스템(open system)이라고 규정하였다(Bertalanffy, General System Theory, Braziller, 1968, p.40). 인간을 포함한 모든 존재는 상호 연결된 하나의 시스템 속에서 존재하며, 개체는 독립된 실체가 아니라 관계적 구조의 일부로 이해된다. 이러한 과학적 관점은 잘목시스가 직관한 인간, 자연, 신성의 일체성과 유사한 구조를 보여준다.


또한 생태학(ecology)에서도 존재의 통합성이 강조된다. 알도 레오폴드(Aldo Leopold)는 『대지 윤리(A Sand County Almanac)』에서 인간이 대지 공동체(land community)의 일부임을 자각하고, 대지의 일부로서의 윤리를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Leopold, A Sand County Almanac, Oxford University Press, 1987, p.204). 인간은 자연과 별개의 주체가 아니라 자연 속에 위치한 구성원이며, 자연과 신성, 인간은 분리된 실체가 아니라 상호의존적 생명 그물망의 일부이다. 이러한 생태적 통합 관점은 잘목시스의 존재론과 깊은 공명 관계를 이룬다.


물리학에서도 존재의 통합적 구조를 탐구하는 시도가 진행되어 왔다. 현대 양자역학(quantum mechanics)에서는 입자와 파동, 에너지와 물질, 주체와 객체 사이의 경계가 모호해진다. 데이비드 봄(David Bohm)은 『통합된 우주(The Undivided Universe)』에서 우주를 '암묵적 질서(implicit order)'에 의해 연결된 하나의 통합체로 보았다(Bohm, The Undivided Universe, Routledge, 2002, p.102). 인간 의식 역시 이 암묵적 질서 속에 놓여 있으며, 존재는 본질적으로 하나라는 관점이 제시된다. 이러한 현대 물리학적 통찰은 잘목시스가 직관한 존재의 일체성에 대한 사유를 과학적 차원에서 뒷받침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한다.


잘목시스 사상의 현대적 의미는, 인간 존재를 단순히 개체적, 이기적 주체로 보지 않고, 존재 전체의 일체성 속에서 이해하려는 사상적 전환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 있다. 현대 사회는 인간 중심주의(anthropocentrism)에 기반하여 자연을 소외시키고, 기술 발전을 존재와 무관한 외적 조작으로 간주하는 경향을 강화해 왔다. 그러나 잘목시스의 존재론은 이러한 소외를 극복하고, 인간과 자연과 신성의 통합적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철학적 기초를 제공한다.


또한 잘목시스적 존재 이해는 현대 과학의 분과화된 지식을 넘어 통합적 사유를 회복하려는 시도와도 연결된다. 복잡성 과학자 에드거 모랭(Edgar Morin)은 『복잡성의 방법(La méthode)』에서 인간, 자연, 사회, 문화를 단절된 영역이 아니라 상호 연결된 복합체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Morin, La Méthode, Seuil, 2008, p.214). 잘목시스의 통합적 존재론은 이러한 복합적 사고와도 긴밀하게 맞닿아 있으며, 존재 전체를 하나의 생명 시스템으로 이해하려는 현대 사유와 직접 연결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잘목시스는 고대 세계에서 인간, 자연, 신성의 일체성을 직관하고 이를 신앙과 의례 속에 구현하려 했던 선구적 사상가였다. 그의 사유는 단순한 종교적 신념 체계를 넘어, 존재의 본질적 구조에 대한 통합적 통찰을 제공한다. 현대 과학적 사고, 특히 시스템 이론, 생태학, 양자물리학과의 비교를 통해 볼 때, 잘목시스적 존재론은 단순한 신화적 유산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존재 이해의 대안적 가능성을 제시한다. 잘목시스는 인간을 자연과 신성의 일체 속에 살아가는 호모 판테이스트(Homo Panteist)로 이해하였으며, 이는 현대적 사고의 복합성과 통합성을 요구하는 시대정신과 깊은 공명을 이룬다.



4.3 잘목시스 신앙의 삶과 죽음에 대한 통합적 이해


잘목시스(Zalmoxis) 신앙은 삶과 죽음을 상호 대립적 사건으로 보지 않고, 존재(存在, existentia)의 연속성과 귀환(歸還, reditus)의 과정으로 이해하였다. 이는 고대 제토-다치아(Geto-Dacia) 사회의 종교적 의례와 삶의 태도에 깊게 반영되어 있다. 헤로도토스(Herodotos)는 『역사(Historiae)』에서 제토-다치아인들이 죽음을 단순한 소멸로 보지 않고, 잘목시스가 다스리는 세계로의 이행으로 믿었다고 기록한다(헤로도토스, Historiae, Humanitas, 2021, IV.94). 이 관점은 잘목시스 신앙의 근본적 특징, 즉 죽음을 존재의 또 다른 양태로 인식하는 사상적 기반을 보여준다.


잘목시스 신앙에서 죽음은 생명의 부정이 아니라, 존재의 심층 구조로 귀환하는 과정이었다. 인간은 삶을 통해 자연(φύσις, physis)과 신성(神性, divinitas)의 울림 속에 머물며, 죽음을 통해 존재 전체와의 합일을 완성하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이는 플라톤(Platon)이 『파이돈(Phaidon)』에서 영혼이 육체를 떠남으로써 참된 세계로 이행한다고 설명한 것과 유사한 듯 보이나(Platon, Phaidon, Humanitas, 2014, p.103), 잘목시스 신앙은 오히려 삶과 죽음 사이에 본질적 단절을 설정하지 않고, 일관된 흐름 속에서 두 현상을 통합적으로 이해하였다.


제토-다치아 사회의 죽음 의례는 이러한 통합적 존재론을 구체적으로 드러낸다. 헤로도토스에 따르면, 이들은 죽음을 슬퍼하지 않고 기쁘게 받아들였으며, 죽은 자는 잘목시스의 세계로 들어가 존재의 새로운 층위를 살아간다고 믿었다(헤로도토스, Historiae, Humanitas, 2021, IV.94). 이러한 관습은 죽음을 자연 질서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생명 흐름의 순환적 과정으로 이해하는 고대적 사고를 반영한다. 죽음은 존재의 단절이나 소멸이 아니라, 자연과 신성 속으로의 귀환이었다.


잘목시스적 삶과 죽음의 통합적 이해는 현대 생태학(ecology)의 생명 순환 사상과도 일맥상통한다. 에드워드 윌슨(Edward O. Wilson)은 『생명의 미래(The Future of Life)』에서 생명은 탄생, 성장, 죽음, 부패, 재생의 순환 속에서 연속성을 가진다고 설명하였다(Wilson, The Future of Life, Vintage, 2002, p.87). 잘목시스 신앙은 이미 이러한 순환적 존재론을 고대 단계에서 체험적 신앙 체계로 구축하였으며, 인간 생명을 자연적 생명 순환의 일부로 위치시켰다.


또한 잘목시스 신앙은 죽음을 삶의 실패나 부정적 종말로 이해하지 않았다. 오히려 죽음은 존재의 근원적 일체성으로 돌아가는 귀환이었다. 플라톤이 『국가(Politeia)』에서 인간의 삶을 영혼이 참된 선(善, agathon)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으로 묘사했지만(Platon, Politeia, Humanitas, 2012, p.348), 잘목시스는 삶 자체를 존재 전체의 울림 속에서 완성되어 가는 흐름으로 보았다. 삶과 죽음은 따로 떨어진 사건이 아니라, 동일한 존재 구조의 다양한 양태였다.


이러한 삶과 죽음의 통합적 이해는 인간의 삶의 윤리적 방향성에도 영향을 미친다. 잘목시스 신앙은 인간이 삶을 통해 존재 전체의 리듬에 자신을 조율해야 하며, 죽음을 통해 그 리듬 속으로 다시 완전히 합류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이는 단순히 개인적 구원을 추구하는 태도를 넘어, 존재 전체와의 조화로운 일체화를 삶의 목표로 삼는 윤리적 구조를 형성한다.


특히 죽음을 환영하는 제토-다치아적 태도는 현대 서구 사회의 죽음에 대한 공포와 부정적 인식과 뚜렷한 대비를 이룬다. 필립 아리에스(Philippe Ariès)는 『서구의 죽음의 역사(L'Homme devant la mort)』에서 현대 사회가 죽음을 억압하고 부정하는 문화적 경향을 지적하였다(Ariès, L'Homme devant la mort, Seuil, 1977, p.503). 반면 잘목시스 신앙은 죽음을 억압하지 않고, 오히려 존재의 심층적 귀환으로 받아들였다. 죽음은 삶의 모순이 아니라, 삶의 완성으로 인식되었다.


이러한 잘목시스의 통합적 죽음 이해는 현대 존재론적 사유에도 유의미한 함의를 제공한다. 하이데거(Martin Heidegger)는 『존재와 시간(Sein und Zeit)』에서 죽음을 '존재의 고유한 가능성'으로 규정하며, 죽음을 통해 존재는 자신의 진정성을 경험할 수 있다고 하였다(Heidegger, Sein und Zeit, Niemeyer, 2006, p.240). 잘목시스 신앙은 죽음을 고유 가능성으로만 이해하는 것을 넘어, 존재 전체의 일체성 속에 자연스럽게 귀환하는 필연적 과정으로 보았다.


결론적으로, 잘목시스 신앙은 삶과 죽음을 이원적으로 분리하지 않고, 존재 전체의 심층 구조 속에서 통합적으로 이해하였다. 삶은 존재의 울림 속에서 살다가, 죽음을 통해 다시 그 울림 속으로 녹아드는 과정이었다. 잘목시스의 삶과 죽음에 대한 통합적 이해는 고대 세계에서도 드문 통찰이었으며, 현대의 생태적 존재론, 철학적 존재론과도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상적 가능성을 보여준다.



4.4 잘목시스와 미오리짜의 목동


잘목시스(Zalmoxis) 신앙과 루마니아 민요 『미오리짜(Miorița)』에 등장하는 목동의 세계관 사이에는 죽음에 대한 수용, 존재의 일체성 인식, 자연과 신성(神性, divinitas)과의 통합적 관계라는 공통된 사상적 구조가 관찰된다. 이 장에서는 잘목시스 신앙과 미오리짜의 목동이 죽음과 존재를 어떻게 이해했는지를 비교 분석하고, 이를 통해 루마니아적 영성 구조의 심층을 고찰하고자 한다.


『미오리짜』는 루마니아 민속 전통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서사 민요로, 세 목동 중 하나가 다른 두 목동에 의해 살해될 것을 예감하고 이를 초연하게 받아들이는 내용을 담고 있다(Marian, Ballade Populare Române, Humanitas, 2015, p.45). 목동은 죽음을 두려워하거나 저항하지 않고, 오히려 대지(Γαῖα, Gaia), 하늘(οὐρανός, ouranos), 산(ὄρος, oros)과 신성한 결혼을 준비하는 듯한 태도를 보인다. 그는 죽음을 개인적 파멸이 아니라 자연과 신성의 울림 속으로 합류하는 귀환(歸還, reditus)으로 이해한다.


잘목시스 신앙에서도 죽음은 종말이 아니라 존재의 더 깊은 차원으로의 이행이었다. 헤로도토스(Herodotos)는 『역사(Historiae)』에서 제토-다치아(Geto-Dacia)인들이 죽음을 잘목시스가 다스리는 세계로 가는 것으로 믿었다고 기록하며, 죽은 자를 신탁을 청하는 대사로 보냈던 관습을 소개한다(헤로도토스, Historiae, Humanitas, 2021, IV.94). 이 관습은 죽음을 자연 질서의 일부로, 존재의 연속성 속에 위치시키는 세계관을 반영한다.


목동이 죽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태도와 잘목시스 신앙이 공유하는 근본적 사유는 존재의 일체성에 대한 직관이다. 목동은 자신의 죽음을 산과 바람과 별에게 알리고, 자신의 무덤 곁에 피리를 세워 바람이 불 때마다 피리가 스스로 울게 해달라고 요청한다(Teodorovici, Miorița: Interpretări și Semnificații, Polirom, 2020, p.63). 이는 인간의 죽음이 자연의 울림 속으로 녹아드는 과정이며, 인간 존재가 자연적 리듬의 일부로 귀환함을 의미한다.


잘목시스 신앙에서도 인간은 자연과 신성의 흐름 속에 본래적으로 통합되어 있으며, 죽음을 통해 이 흐름에 다시 완전히 합류한다. 잘목시스는 인간 존재를 자연과 신성의 대립적 관계 속에 위치시키지 않고, 존재 전체의 통합된 리듬 속에 포함된 일체적 생명(生命, vita)으로 이해하였다(Voiculescu, Zalmoxis and the Philosophy of Unity, Humanitas, 2018, p.98). 이러한 통합적 존재론은 『미오리짜』의 목동 세계관과 구조적으로 상응한다.


미오리짜의 목동은 죽음을 예견하면서도 슬퍼하거나 공포에 빠지지 않는다. 그는 오히려 자신의 죽음을 신성한 결혼(ἱερὸς γάμος, hieros gamos)으로 해석한다. 그는 산과 들과 하늘이 자신의 결혼식에 참석할 것이며, 별들이 결혼식에 등불을 밝혀줄 것이라고 노래한다(Marian, Ballade Populare Române, Humanitas, 2015, p.47). 이 신화적 상상은 잘목시스 신앙에서 죽음을 존재 전체와의 합일로 해석한 것과 철학적으로 일치한다.


또한 목동은 자신이 죽은 후에도 자연의 울림 속에서 기억되기를 원한다. 그는 바람에 의해 울리는 피리를 통해 자신의 존재가 자연 속에 살아 있기를 바란다. 이는 죽음을 단순한 생명 소멸로 보지 않고, 존재의 지속과 울림 속에서 새로운 형태로 이어지는 과정으로 보는 관점을 나타낸다. 잘목시스 신앙에서도 죽음은 존재의 끝이 아니라 변형(transmutatio)이며, 존재 전체 속으로의 귀환이었다.


이러한 비교는 잘목시스 신앙과 『미오리짜』 민속 전통이 루마니아적 영성(靈性, spiritus)의 심층에서 존재론적 일체성, 죽음의 통합적 수용, 자연과 신성의 연속성이라는 동일한 구조를 공유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루마니아 민속 종교학자인 미르체아 엘리아데(Mircea Eliade)는 『루마니아 민간 신앙 연구(De la Zalmoxis la Genghis Khan)』에서 루마니아 민속 종교 전통이 존재와 신성, 자연과 인간의 구분을 초월하는 고유한 통합적 영성 구조를 보존하고 있다고 지적한다(Eliade, De la Zalmoxis la Genghis Khan, Humanitas, 2010, p.117).


잘목시스 신앙과 미오리짜의 목동 세계관은 모두 인간이 자연과 신성의 흐름 속에 본래적으로 위치하고 있으며, 죽음을 통해 이 흐름과 다시 완전하게 합류한다고 보는 존재론적 통찰을 공유한다. 이들은 죽음을 생명에 대한 부정이나 단절로 보지 않고, 오히려 존재 전체의 울림 속에 다시 편입되는 귀환으로 이해하였다. 이러한 사상은 현대의 분리적 존재론이나 이원적 생명관과는 대조되는 깊은 통합적 세계 인식을 드러낸다.


결론적으로, 잘목시스와 미오리짜의 목동은 죽음과 삶을 분리하지 않고, 존재 전체의 일체성 속에서 삶과 죽음을 연속적 과정으로 이해하는 독특한 사상 구조를 공유한다. 이 구조는 루마니아적 영성의 심층에 자리잡은 존재의 울림, 귀환, 통합의 철학을 보여주며, 고대 제토-다치아 전통과 민속적 상상력이 깊이 결합되어 있음을 시사한다. 잘목시스와 미오리짜 목동의 세계관은 루마니아 문화 속에 살아 있는 존재 전체에 대한 통합적 경외와 기억의 울림을 오늘날까지도 이어오고 있다.



5.1 플레로마(Pleroma)와 잘목시스의 우주론


플레로마(Pleroma)는 고대 영지주의(靈知主義, Gnosticism) 사상에서 중심적 개념으로 등장하는 존재의 총체성(總體性, totalitas)을 의미한다. 플레로마는 헬라어로 '충만(充滿, πλήρωμα)'을 뜻하며, 신적 실재가 완전히 충만하여 분리와 결핍이 존재하지 않는 상태를 지칭한다(Logan, Gnostic Truth and Christian Heresy, Peeters, 2001, p.53). 본 장에서는 플레로마 개념을 개관하고, 이를 잘목시스(Zalmoxis)의 우주론과 비교함으로써 양자의 통합적 존재론적 구조를 분석하고자 한다.


플레로마는 『요한의 비밀서(Apocryphon of John)』와 같은 영지주의 문헌에서 가장 명확하게 전개된다. 이 문헌에 따르면, 플레로마는 원초적 신(原初神, πρωτόθεος, prototheos)으로부터 발출된 아이온들(아ἰῶνες, aiones)의 조화로운 총체이며, 모든 생명과 빛의 근원적 충만을 이룬다(Williams, Rethinking Gnosticism,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96, p.112). 플레로마 안에서는 분리나 단절이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존재는 신성과 동일본질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결핍(kénōsis)과 분열(διάσπασις, diaspasis)은 플레로마의 외부, 즉 무지(ἄγνοια, agnoia)와 오류(πλάνη, planē)가 개입할 때 발생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잘목시스 신앙에서 드러나는 우주론 역시 존재 전체의 일체성에 기반하고 있다. 헤로도토스(Herodotos)는 『역사(Historiae)』에서 제토-다치아(Geto-Dacia)인들이 죽음을 단순한 소멸이 아니라, 잘목시스가 지배하는 또 다른 세계로의 귀환으로 이해했다고 기록한다(헤로도토스, Historiae, Humanitas, 2021, IV.94). 이 세계는 생명과 죽음, 인간과 신성이 분리되지 않고 일체로 연결된 차원이다. 잘목시스는 인간 존재를 자연(φύσις, physis)과 신성(神性, divinitas) 사이에 분리된 매개자로 보지 않고, 존재 전체의 흐름 속에 내재한 하나의 울림으로 이해하였다(Voiculescu, Zalmoxis and the Philosophy of Unity, Humanitas, 2018, p.101).


플레로마와 잘목시스의 우주론은 모두 존재의 일체성을 강조한다. 플레로마에서는 신성과 발출된 모든 아이온이 분리 없이 통합된 하나의 구조를 이루며, 잘목시스의 우주론에서도 인간, 자연, 신성이 구분되지 않고 생명의 리듬 속에 통합되어 있다. 양자는 모두 분열과 결핍을 원초적 존재 구조의 일부로 보지 않고, 후천적 오류나 망각의 산물로 본다. 플레로마에서의 타락은 무지(ἄγνοια, agnoia)로 인한 파생적 현상이며, 잘목시스 신앙에서는 인간이 존재의 울림을 망각함으로써 일체성을 잃게 되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두 체계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도 존재한다. 플레로마 개념은 주로 신학적 초월성(transcendence)에 기초하며, 구원(σωτηρία, sōtēria)은 신적 세계로의 복귀를 의미한다. 이에 반해 잘목시스의 우주론은 초월적 구원보다 존재 자체의 심층적 귀환을 강조한다. 잘목시스 신앙에서는 인간이 이미 자연과 신성 속에 내재해 있으며, 죽음을 통해 존재의 본래 리듬으로 되돌아간다. 이는 인간 존재가 본질적으로 플레로마적 상태, 즉 존재의 충만성 속에 태어났음을 시사한다.


플레로마적 존재론과 잘목시스적 우주론은 존재에 대한 통합적 이해라는 점에서 현대 생명 철학과도 연결된다. 에드거 모랭(Edgar Morin)은 『복합성의 방법(La Méthode)』에서 세계를 복합적이고 통합적인 유기체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하며(Morin, La Méthode, Seuil, 2008, p.212), 분리와 이분법을 넘어서 존재의 상호연결성과 일체성을 강조하였다. 이는 플레로마와 잘목시스 모두가 지향하는 통합적 세계관과 일맥상통한다.


잘목시스 신앙에서 죽음은 플레로마적 귀환의 변형된 표현으로 볼 수 있다. 죽음은 존재의 심층 구조로의 합류이며, 삶과 죽음은 본질적으로 동일한 생명 흐름의 다양한 양태이다. 인간은 죽음을 통해 존재 전체의 리듬 속에 다시 완전히 통합되며, 이는 플레로마의 '충만한 상태'로의 복귀와 구조적으로 유사하다. 이 점에서 잘목시스적 우주론은 영지주의적 플레로마 개념과 비교 가능한 존재론적 통찰을 제공한다.


결론적으로, 플레로마와 잘목시스의 우주론은 존재의 본질적 일체성을 강조하는 통합적 세계관을 공유한다. 플레로마는 신성과 모든 발출된 존재가 단일한 충만성 속에 통합되어 있음을 표현하며, 잘목시스 우주론은 인간, 자연, 신성이 본래부터 하나의 생명 리듬 속에 연결되어 있음을 직관하였다. 두 사상은 각각 초월성과 내재성이라는 방법론적 차이를 가지지만, 존재의 근본적 일체성과 귀환이라는 공통된 구조를 통해 인간 존재의 본질을 통합적으로 조망하는 철학적 가능성을 보여준다.


5.2 영혼의 회귀와 존재의 복원


잘목시스(Zalmoxis) 신앙은 인간 존재를 자연(physis)과 신성(神性, divinitas) 속에 내재하는 유기적 흐름의 일부로 간주하며, 죽음을 존재의 일체성으로 귀환하는 과정으로 이해하였다. 본 장에서는 제토-다치아(Geto-Dacia) 전통에 나타난 죽음 이후 회귀 개념을 분석하고, 플레로마(Pleroma) 개념과의 비교를 통해 잘목시스적 존재 복원의 철학적 구조를 조명하고자 한다.


잘목시스 신앙은 삶과 죽음, 인간과 신성 사이의 단절을 전제하지 않았다. 헤로도토스(Herodotos)는 『역사(Historiae)』에서 제토-다치아인들이 죽음을 잘목시스의 세계로 이행하는 사건으로 인식했으며, 죽은 자를 신탁의 대사(大使)로 삼아 신과 인간 사이를 중재하게 했다고 기록한다(헤로도토스, Historiae, Humanitas, 2021, IV.94-96). 이는 죽음이 소멸이나 형벌이 아니라, 존재 심층으로의 귀환이라는 관념을 반영한다. 플라톤(Platon) 역시 『파이돈(Phaidon)』에서 영혼이 육체를 떠나 원초적 선(善, agathon)으로 회귀한다고 보았지만(Platon, Phaidon, Humanitas, 2014, p.103), 잘목시스 신앙은 윤회(metempsychosis)적 사유보다 직접적 통합을 강조한다.


제토-다치아 사회에서 죽음은 공포의 대상이 아니라 존재의 본질적 이동이었다. 죽음을 통해 인간은 자연적 리듬과 신적 질서로 복귀하며, 그 과정은 공동체의 의례를 통해 신성화되었다. 대사를 창으로 찔러 신속히 죽게 하고, 그의 영혼이 잘목시스에게 신탁을 청하는 역할을 맡기는 행위는, 죽음을 통해 영혼이 존재 전체의 울림 속으로 회귀하는 구조를 상징적으로 구현한다.


플레로마 개념은 고대 영지주의(靈知主義, Gnosticism) 사상에서 존재의 충만(充滿, πλήρωμα, plērōma)을 지칭한다. 『요한의 비밀서(Apocryphon of John)』에 따르면, 플레로마는 신성과 모든 발출된 아이온(αἰών, aiōn)들이 결핍 없이 조화된 원초적 상태를 의미한다(Williams, Rethinking Gnosticism,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96, p.112). 인간 영혼은 무지(ἄγνοια, agnoia)와 타락으로 플레로마 밖으로 이탈하지만, 영지(γνῶσις, gnōsis)를 통해 원상 복귀가 가능하다.


잘목시스 신앙과 플레로마 개념은 존재 복원의 구조에서 유사성을 보인다. 양자는 모두 인간이 본래 존재 전체와 통합되어 있었음을 전제하며, 이탈은 본질적 타락이 아니라 망각과 무지에 기인한다고 본다. 귀환은 새로운 창조가 아니라, 본래적 일체성의 회복이다. 그러나 플레로마 개념이 주로 초월적 신성 세계에 대한 복귀를 지향하는 데 비해, 잘목시스 신앙은 자연과 신성이 이미 현실 속에 내재해 있으며, 죽음을 통해 그 일체성을 완전히 회복한다고 본다(Voiculescu, Zalmoxis and the Philosophy of Unity, Humanitas, 2018, p.134).


현대 존재론에서도 존재 복원의 사유는 다양한 방식으로 전개된다. 시스템 이론(system theory)을 창시한 루트비히 폰 베르탈란피(Ludwig von Bertalanffy)는 생명체를 환경과 끊임없이 에너지를 교환하는 개방계(開放系, open system)로 정의하며, 생명은 고립된 실체가 아니라 상호 연결된 과정이라고 보았다(Bertalanffy, General System Theory, Braziller, 1968, p.40). 잘목시스적 존재론은 이러한 현대 생명론적 사고와 구조적으로 상응한다. 인간은 세계로부터 분리된 개체가 아니라, 세계의 울림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구성하고 있으며, 죽음을 통해 그 울림 속으로 완전히 합류하는 것이다.


또한 생태철학자 아르네 네스(Arne Naess)는 '심층생태학(deep ecology)' 개념을 통해 인간, 자연, 생명의 통합적 관계를 강조하였다(Naess, Ecology, Community and Lifestyl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0, p.81). 인간은 자연의 지배자가 아니라 자연 질서의 일부이며, 죽음은 존재 네트워크 속에서 새로운 형식으로 이어진다고 본다. 이는 잘목시스 신앙의 죽음 이해와 본질적으로 일치한다.


잘목시스 신앙에서 영혼의 회귀는 단순한 사후 세계로의 이동이 아니다. 그것은 존재 전체, 즉 자연, 신성, 인간 사이의 본래적 일체성을 복원하는 과정이다. 인간은 삶을 통해 존재의 울림 속에 거하며, 죽음을 통해 존재 전체의 리듬 속에 완전히 합류한다. 플레로마 개념이 신성과 인간의 통합을 상징한다면, 잘목시스 신앙은 자연, 인간, 신성의 통합적 귀환을 지향한다.


존재 복원은 단순한 철학적 이론이 아니라, 제토-다치아 사회의 실제 의례와 죽음 인식 속에 구체적으로 구현되었다. 대사를 통한 죽음 의례는 존재 회귀의 집단적 체험을 가능하게 하였으며, 죽은 자는 공동체를 대신하여 존재의 심층 구조로 통합되는 역할을 수행하였다. 이는 개인적 구원이나 내세적 보상을 초월하여, 존재 전체의 리듬 속에서 인간 존재를 재위치시키는 과정이었다.


결론적으로, 잘목시스 신앙은 영혼의 회귀를 통해 존재의 복원을 실현하려는 통합적 존재론을 제시한다. 인간은 태초부터 자연과 신성 속에 내재해 있었으며, 죽음을 통해 그 일체성 속으로 다시 합류한다. 플레로마 개념과의 비교를 통해 볼 때, 잘목시스적 존재론은 초월적 구원을 지향하기보다는, 현실 속 존재 전체의 통합적 회복을 지향하는 내재적 귀환 구조를 갖는다. 이는 현대 생명철학, 복합성 이론, 심층생태학 등 다양한 현대 사유와 깊은 대화를 가능하게 하며, 존재 전체를 다시 하나로 묶으려는 인간 사유의 지속적 요청을 증명한다.


6. 잘목시스 신앙과 천부경 비교 고찰


6.1일시무시일(一始無始一)과 우주적 기원


잘목시스(Zalmoxis) 신앙과 천부경(天符經) 사상은 각각 서로 다른 문화권에서 발전하였지만, 우주적 기원에 대한 통합적 사유, 존재 일체성(一體性, unity of being), 그리고 귀환(歸還, reditus) 개념을 공유하는 점에서 철학적 비교가 가능하다. 본 장에서는 천부경의 핵심 구절인 ‘일시무시일(一始無始一)’ 구조를 분석하고, 이를 잘목시스 신앙의 존재론 및 우주론과 비교함으로써 양 사상의 공통성과 차이점을 검토하고자 한다.


천부경은 “一始無始一析三極無盡本(일시무시일석삼극무진본)”으로 시작하여, 우주의 근원적 통일성과 무한한 생성 구조를 제시한다(천부경 원문, 역주 천부경, 한림원, 2018, p.23). 여기서 ‘일시무시일(一始無始一)’은 우주의 기원이 ‘하나’(一)로부터 비롯되었으며, 그 ‘하나’는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무한적 존재임을 뜻한다. ‘일(一)’은 단순한 수적 단위가 아니라, 존재의 총체성과 본원적 통합성을 상징한다. 이 ‘일’은 삼극(三極, 삼재: 천(天), 지(地), 인(人))을 낳고, 삼극은 다시 만물의 무진한 생성을 이끈다. 천부경은 따라서 우주를 시작과 끝이 없는 일체적 흐름으로 이해하며, 모든 존재는 근원적 하나됨 속에서 발현하고 소멸하며 귀환한다고 본다.


잘목시스 신앙에서 나타나는 우주론 또한 인간, 자연, 신성이 본래적으로 분리되지 않은 일체의 존재 구조를 전제한다. 헤로도토스(Herodotos)는 『역사(Historiae)』에서 제토-다치아(Geto-Dacia)인들이 잘목시스를 신으로 섬기며, 죽음을 자연 질서 속으로 회귀하는 과정으로 이해했다고 기록한다(헤로도토스, Historiae, Humanitas, 2021, IV.94). 잘목시스 신앙은 인간을 자연과 대립하는 존재로 보지 않고, 존재의 리듬 속에 내재한 생명의 일부로 인식한다. 죽음은 존재의 단절이 아니라 근원적 흐름으로의 복귀이며, 이 흐름은 본질적으로 구분되지 않은 하나의 심층적 질서를 이룬다(Voiculescu, Zalmoxis and the Philosophy of Unity, Humanitas, 2018, p.102).


천부경과 잘목시스 신앙 모두, 우주의 본질을 단순한 물리적 기원론으로 설명하지 않고, 존재 전체의 심층적 통합성과 순환적 귀환 구조로 이해한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일시무시일은 우주가 시작도 끝도 없이 하나의 흐름으로 존재하며, 모든 만물이 그 하나됨 속에서 생성되고 소멸한다고 본다. 잘목시스 신앙 역시 인간 삶과 죽음을 존재의 리듬 속에 위치시키며, 존재 전체의 흐름에 합류하는 과정을 강조한다.


구조적 비교를 시도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근원성(根源性, originarity) 측면에서 천부경의 ‘일(一)’은 존재 전체의 무시원적 통일성을 나타내며, 잘목시스 신앙의 존재론도 인간과 자연, 신성이 분리되기 이전의 원초적 일체성을 전제한다. 둘째, 순환성(循環性, circulatio) 측면에서 천부경은 삼극의 분화 이후에도 본래적 하나로 귀환하는 구조를 지니며, 잘목시스 신앙에서도 죽음을 통한 존재 귀환은 일체성 회복을 지향한다. 셋째, 존재 일체성(一體性, unity of being) 측면에서 천부경은 만물생성 과정에서도 근본적 하나됨을 유지한다고 보며, 잘목시스 신앙도 인간·자연·신성의 분리 불가성을 강조한다.


그러나 차이점도 존재한다. 천부경은 매우 철학화된 개념 체계를 통해 존재의 기원과 귀환을 수학적·형이상학적 구조로 설명한다. 반면 잘목시스 신앙은 주로 종교적·의례적 실천 속에서 존재의 일체성과 귀환을 체험적으로 구현하였다. 천부경은 삼극과 만물의 전개를 수리적 질서(數理的 秩序, numerical order)로 정교하게 서술하지만, 잘목시스 신앙은 존재의 흐름을 대지적 감수성 속에서 직관하고 의례를 통해 삶에 통합하였다.


또한 천부경의 ‘일’은 초월성과 내재성을 동시에 품은 절대적 존재를 의미하는 반면, 잘목시스 신앙에서의 근원적 존재는 자연과 신성의 내재적 조화 속에 현현한다. 즉 천부경은 존재론과 동시에 인식론적 구조를 갖추지만, 잘목시스 신앙은 존재 체험을 통해 일체성을 증명한다는 실천적 성격이 강하다.


결론적으로, 잘목시스 신앙과 천부경은 서로 다른 문화적 맥락에도 불구하고, 존재의 일체성, 순환적 귀환 구조, 근원적 하나됨이라는 사유 구조를 공유한다. 양자는 모두 인간 존재를 자연 및 신성과 분리되지 않은 통합적 흐름 속에 위치시키며, 죽음을 존재 복원의 과정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천부경은 철학적 체계화가 강하고, 잘목시스 신앙은 실천적 귀환 체험에 초점을 둔다는 차별성이 존재한다. 이러한 비교는 존재론적 일체성 사유가 인류 보편적 심층 의식 속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났음을 시사하며, 잘목시스와 천부경 모두 현대 통합적 존재론 담론에 중요한 철학적 자산을 제공한다.



6.2 천·지·인(天地人) 구조와 존재의 삼중성


잘목시스(Zalmoxis) 신앙과 천부경(天符經) 사상은 인간 존재를 자연(自然, natura)과 신성(神性, divinitas)의 일체적 흐름 속에 위치시킨다는 점에서 공통된 철학적 구조를 공유한다. 특히 천부경이 제시하는 천(天)·지(地)·인(人) 삼극(三極, 삼재) 구조와 잘목시스 신앙이 암시하는 신성-자연-인간 통합 구조는 존재(存在, existentia)의 삼중성을 정립한다는 점에서 비교 고찰이 가능하다.


천부경은 “一始無始一析三極無盡本(일시무시일석삼극무진본)”이라는 구절을 통해 우주의 근원적 통일성(統一性, unity)과 삼극 분화(分化)를 동시에 설명한다(천부경 원문, 역주 천부경, 한림원, 2018, p.24). 여기서 삼극(三極)이란 하늘(天), 땅(地), 인간(人)을 가리키며, 우주는 이 삼중 구조를 통해 무한히 확장(無盡, infinitas)된다. 천(天)은 정신적 차원, 지(地)는 물질적 기반, 인(人)은 중재자(mediator)로서 정신과 물질을 연결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이 삼극은 분리된 실체가 아니라, 일체적 하나(一)의 변주로서 이해된다.


잘목시스 신앙에서도 인간은 자연과 신성 사이에 놓인 존재로 설정된다. 헤로도토스(Herodotos)는 『역사(Historiae)』에서 제토-다치아(Geto-Dacia)인들이 잘목시스를 신으로 숭배하면서 죽음을 존재의 더 높은 차원으로 귀환하는 사건으로 이해했다고 기록한다(헤로도토스, Historiae, Humanitas, 2021, IV.94-96). 인간은 자연(φύσις, physis) 속에 존재하며, 죽음을 통해 신성(神性, divinitas)의 세계로 회귀한다. 여기서 자연, 인간, 신성은 각각 지(地), 인(人), 천(天)에 해당하는 삼중 구조를 이룬다.


천부경과 잘목시스 신앙은 모두 존재의 삼중성을 직관한다. 첫째, 인간은 자연과 신성 사이의 매개자로서 위치하며, 둘째, 자연은 인간 존재의 근거(根據, fundamentum)를 이루고, 셋째, 신성은 존재 전체의 목적론적 귀환(teleological reditus)을 가능하게 한다. 이러한 삼중성은 각각 독립된 실체로서가 아니라, 서로를 반영하고 매개하는 통합적 구조로 작동한다.


구조적 비교를 시도하면 다음과 같다. 천부경은 삼극이 무진한 생성을 낳는다고 설명한다. 삼극은 생성과 발현의 원리이며, 존재의 다양성을 가능하게 한다. 반면 잘목시스 신앙에서는 삼중 구성이 인간의 삶과 죽음, 자연과 신성의 리듬 속에서 경험적으로 체현된다. 천부경이 삼극을 형이상학적(形而上學的, metaphysical) 원리로 설정한다면, 잘목시스 신앙은 삼중성을 의례와 삶의 감각 속에 구체화한다.


또한 천부경은 삼극이 본래 하나(一)로부터 분화된 것으로 보아, 본질적으로 통일성의 변주로 이해한다. 잘목시스 신앙에서도 인간·자연·신성은 근원적 하나의 리듬에서 갈라진 것이 아니라, 항상 상호 내재적(內在的, immanent) 관계를 유지한다. 제토-다치아 사회에서 죽음은 단순한 개인적 사건이 아니라, 존재 전체의 조화 속으로의 귀환이었으며, 이는 삼극 일체성(三極 一體性, trinitas unitatis)을 삶 속에서 구현하는 의례적 실천이었다(Voiculescu, Zalmoxis and the Philosophy of Unity, Humanitas, 2018, p.139).


그러나 양 사상 사이에는 방법론적 차이가 존재한다. 천부경은 삼극을 수리적(數理的, numerical) 질서로 설명하며, 존재론과 수학적 구조를 연결하는 철학적 모델을 제시한다. 잘목시스 신앙은 삼극 구조를 체계적으로 서술하기보다는, 신앙 체험과 공동체 의례를 통해 자연스럽게 삶에 통합한다. 천부경은 삼극을 논리적 전개로 확장하는 반면, 잘목시스 신앙은 삼극을 존재의 감각적 경험으로 구현한다.


플라톤(Platon) 역시 『티마이오스(Timaios)』에서 세계를 삼중 구조, 즉 불변(immutable) 세계, 가변(mutable) 세계, 그리고 이 둘을 매개하는 공간(chōra)로 이해하였다(Platon, Timaios, Humanitas, 2016, p.52). 이는 천부경과 잘목시스 신앙의 삼중성 구조와 철학적으로 유사한 방식으로, 존재를 단순히 이원적(二元的, dualistic)으로 나누지 않고, 중재 구조를 포함시키려는 시도였다.


결론적으로, 천부경과 잘목시스 신앙은 인간 존재를 자연과 신성 사이의 매개적 존재로 이해하며, 존재의 삼중성 구조를 각각의 방식으로 체계화하거나 체현한다. 천부경은 삼극 구조를 수리적 형이상학으로 정교하게 전개하고, 잘목시스 신앙은 존재적 체험을 통해 삼극 일체성을 실천한다. 양자는 모두 존재 전체를 하나의 울림과 리듬 속에서 삼중적으로 파악하려 했으며, 이러한 사유는 현대 존재론, 생태철학, 복합성 이론과도 깊은 연결 가능성을 지닌다.


7. 결론


잘목시스: 존재의 하나됨을 깨달은 선구자

잘목시스 신앙의 현대적 계승 가능성: "호모 판테이스트"로서의 인간


잘목시스(Zalmoxis) 신앙은 고대 제토-다치아(Geto-Dacia) 문화 속에서 인간, 자연(自然, natura), 신성(神性, divinitas)을 분리하지 않고 하나의 존재(存在, existentia) 흐름 속에 통합하려 한 독특한 사상 체계를 형성하였다. 헤로도토스(Herodotos)가 『역사(Historiae)』에서 기술한 바와 같이(헤로도토스, Historiae, Humanitas, 2021, IV.94-96), 제토-다치아인들은 잘목시스를 신으로 섬기며 죽음을 단순한 소멸이 아니라 존재의 더 높은 차원으로의 귀환(歸還, reditus)으로 이해하였다. 이로써 잘목시스는 고대 세계에서 드물게 존재 전체의 일체성(一體性, unity)을 직관하고 이를 신앙과 의례를 통해 체현한 선구적 사상가로 평가될 수 있다.


잘목시스 신앙은 삶과 죽음, 인간과 자연, 신성과 현실 세계를 이원적으로 분리하지 않았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며, 신성은 자연과 인간 속에 내재(內在, immanens)한다. 죽음은 인간이 존재의 근원적 리듬으로 다시 합류하는 과정이며, 이를 통해 존재의 충만(充滿, πλήρωμα, plērōma)이 복원된다. 이러한 통합적 사유는 고대 영지주의의 플레로마(Pleroma) 개념과 구조적으로 유사하나, 초월적 귀환이 아닌 내재적(內在的) 귀환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독자적이다(Voiculescu, Zalmoxis and the Philosophy of Unity, Humanitas, 2018, p.142).


잘목시스의 존재 일체성 사상은 현대적으로 계승될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한다. 특히 "호모 판테이스트(Homo Panteist)"라는 개념을 통해 그 현대적 의미를 구체화할 수 있다. 호모 판테이스트란 인간을 자연과 신성과 분리된 개체가 아니라, 존재 전체의 일체적 울림 속에 살아가는 존재로 이해하는 새로운 인간상이다. 이는 인간 중심주의(anthropocentrism)를 극복하고, 생명 공동체(ecosystem community) 속에 인간을 재위치시키려는 현대 생태철학(ecophilosophy)과 긴밀한 연관성을 지닌다.


루트비히 폰 베르탈란피(Ludwig von Bertalanffy)는 『일반 시스템 이론(General System Theory)』에서 생명체를 고립된 실체가 아니라 개방된 상호작용의 네트워크로 규정하였다(Bertalanffy, General System Theory, Braziller, 1968, p.40). 잘목시스적 존재론은 이러한 현대 과학적 사유와 구조적으로 상응한다. 인간은 세계로부터 분리되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의 심층적 울림 속에서 존재를 구성한다. 죽음은 이 울림 속으로 다시 완전히 합류하는 것이다.


또한 심층생태학(deep ecology)을 창시한 아르네 네스(Arne Naess)는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거나 소유할 수 있는 대상으로 간주해서는 안 되며, 인간과 자연은 본질적으로 동일한 생명 흐름 속에 속한다고 주장하였다(Naess, Ecology, Community and Lifestyl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0, p.81). 잘목시스 신앙에서 인간은 자연과 신성의 매개자가 아니라, 자연과 신성의 내재적 구성원이다. 이는 호모 판테이스트로서의 인간상과 정확히 일치한다.


잘목시스 신앙의 현대적 계승은 인간 존재에 대한 새로운 인식론적 전환을 요구한다. 인간은 자연을 정복하거나 외부적 대상으로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신성 속에 스며든 존재로서 자신을 재인식해야 한다. 삶은 존재 전체의 울림과 리듬 속에서 조율되어야 하며, 죽음은 이 조율의 완성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이는 존재를 끊어진 개체의 연쇄로 보지 않고, 통합적 생명의 흐름으로 파악하는 현대 복합성 이론(complexity theory)의 방향성과도 부합한다(Morin, La Méthode, Seuil, 2008, p.214).


결론적으로, 잘목시스는 고대 세계에서 존재 전체의 일체성을 직관하고 이를 신앙 체계로 구축한 선구적 사상가였다. 그의 사유는 인간, 자연, 신성 사이의 통합적 관계를 회복하고자 하는 현대적 요구와 깊은 공명(resonantia)을 이룬다. 잘목시스적 존재 이해는 호모 판테이스트라는 새로운 인간상으로 계승될 수 있으며, 이는 인간 존재를 다시 존재 전체의 일체성과 조율하려는 현대 존재론적 과제에 중요한 철학적 기반을 제공한다.


잘목시스 신앙은 단순히 고대 종교적 신념 체계가 아니라, 존재의 본질에 대한 보편적 통찰이며, 인간 존재를 자연과 신성 속에서 다시 정의하려는 지속적 시도의 한 표현이다. 그의 사유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울리고 있으며, 존재의 근원적 하나됨을 기억하고자 하는 모든 철학적 노력에 살아 있는 영감(靈感, inspiratio)으로 작용할 수 있다.


본 논문은 잘목시스(Zalmoxis) 신앙의 존재론적 구조와 천부경(天符經) 사상, 플레로마(Pleroma) 개념을 비교 고찰함으로써 인간, 자연(自然, natura), 신성(神性, divinitas) 사이의 근원적 일체성(一體性, unity of being)을 탐구하였다. 잘목시스 신앙은 인간 존재를 자연과 신성의 흐름 속에 내재하는 하나의 울림으로 이해했으며, 죽음을 존재 전체로의 귀환(歸還, reditus) 과정으로 체현하였다(헤로도토스, Historiae, Humanitas, 2021, IV.94-96). 천부경은 ‘일시무시일(一始無始一)’ 개념을 통해 우주의 본질이 본래 하나였으며, 삼극(三極)의 발현과 무진한 생성 속에서도 그 일체성을 유지한다고 설명하였다(천부경 원문, 역주 천부경, 한림원, 2018, p.24). 플레로마 사상은 신성과 존재의 충만성을 강조하며, 분열과 결핍이 본질적이 아니라 후천적 오류의 결과임을 제시하였다(Williams, Rethinking Gnosticism, Princeton UP, 1996, p.112).


잘목시스 신앙은 존재의 분리와 대립을 전제하지 않고, 자연과 신성의 리듬 속에서 인간의 삶과 죽음을 통합적으로 이해하였다. 죽음은 존재의 부정이 아니라 존재 전체의 심층 구조로의 재편입이었으며, 이는 고대 세계에서 보기 드문 통합적 존재론이었다. 이와 같은 사유는 현대 생태철학, 복합성 이론, 생명 시스템 이론과도 구조적으로 깊은 공명(resonantia)을 이룬다(Bertalanffy, General System Theory, Braziller, 1968, p.40; Morin, La Méthode, Seuil, 2008, p.214).


본 논문은 이러한 통찰을 바탕으로 잘목시스 신앙의 현대적 계승 가능성을 “호모 판테이스트(Homo Panteist)” 개념으로 정식화하였다. 호모 판테이스트는 인간을 자연과 신성으로부터 분리된 개체로 보지 않고, 존재 전체의 울림 속에 내재하는 통합적 존재로 이해하는 인간 유형이다. 이는 인간 중심주의(anthropocentrism)를 극복하고, 자연과 신성, 인간 사이의 일체적 상호내재성을 회복하려는 현대적 요구와 직결된다.


우리는 결국 호모 판테이스트가 되어야 한다. 인간은 자연과 신성의 외부에 존재하는 주체가 아니라, 존재 전체의 리듬에 조율된 하나의 생명적 파동이다. 삶은 존재의 울림을 기억하는 여정이며, 죽음은 그 울림 속으로의 귀환이다. 잘목시스 신앙은 이 길을 고대 세계에 먼저 열었고, 천부경과 플레로마 사상은 각각 철학적·신학적 방식으로 이를 구조화하였다. 오늘날 우리는 이 통합적 사유를 단순한 신화적 기억으로 남겨둘 것이 아니라, 새로운 존재 인식과 삶의 방식으로 실천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잘목시스 신앙은 인간, 자연, 신성의 본질적 하나됨을 직관한 선구적 통찰이며, 현대 세계가 요구하는 존재 전체의 통합적 회복 가능성을 사상적으로 뒷받침하는 중요한 철학적 유산이다. 인간은 존재 전체의 일부가 아니라 존재 전체 그 자체의 울림이며, 이 울림을 기억하고 살아가는 것이 바로 “호모 판테이스트”로서의 인간이 걸어야 할 길이다.



국문 초록


본 연구는 잘목시스(Zalmoxis) 신앙의 존재론적 구조를 분석하고, 이를 천부경(天符經) 사상과 플레로마(Pleroma) 개념과 비교함으로써 인간, 자연(自然, natura), 신성(神性, divinitas)의 일체성(一體性, unity of being)을 탐구하였다. 잘목시스 신앙은 인간 존재를 자연과 신성의 흐름 속에 내재하는 하나의 울림으로 이해하며, 죽음을 존재 전체로의 귀환(歸還, reditus)으로 인식하였다. 헤로도토스(Herodotos)가 『역사(Historiae)』에서 기록한 제토-다치아(Geto-Dacia) 사회의 종교 관습은 죽음을 삶의 부정이 아니라 존재 심층 구조로의 회귀로 해석하는 신앙적 체계를 반영한다. 이러한 사유는 천부경의 ‘일시무시일(一始無始一)’ 구조와 플레로마의 충만(充滿, πλήρωμα, plērōma) 개념과도 구조적으로 긴밀하게 연결된다.


천부경은 우주의 기원을 ‘하나(一)’로 규정하며, 삼극(三極: 천(天), 지(地), 인(人))의 전개를 통해 존재의 다양성을 설명하는 동시에 본질적 통일성을 유지하는 구조를 제시한다. 플레로마 사상은 영지주의 전통 속에서 신성과 존재 전체가 결핍 없이 통합된 원초적 상태를 지칭하며, 인간 영혼은 무지(無知, agnoia)로 인해 이탈했지만 영지(靈知, gnōsis)를 통해 원래 자리로 회귀할 수 있음을 강조한다. 본 논문은 잘목시스 신앙이 초월적 신성의 복귀를 지향하기보다는 자연과 신성이 내재하는 현실 차원에서 존재 일체성의 회복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독자적 특징을 지닌다고 분석하였다.


또한 본 연구는 잘목시스 신앙과 천부경 사상이 모두 인간을 자연과 신성 사이의 매개자로 위치시키는 천·지·인(天地人) 삼중 구조를 통해 존재를 통합적으로 이해하고 있음을 밝혔다. 천부경은 삼극을 수리적(數理的)·형이상학적(形而上學的) 원리로 전개하지만, 잘목시스 신앙은 의례와 삶의 실천 속에서 삼극 일체성을 체현한다. 이 비교를 통해 양 사상이 존재의 근원적 통합성과 순환적 귀환 구조를 공유하되, 방법론적 차이를 지닌다는 점을 규명하였다.


마지막으로 본 연구는 잘목시스 신앙의 현대적 계승 가능성을 "호모 판테이스트(Homo Panteist)"라는 개념을 통해 제시하였다. 호모 판테이스트는 인간을 자연과 신성으로부터 분리된 개체로 보지 않고, 존재 전체의 울림 속에 내재하는 통합적 생명 존재로 이해하는 새로운 인간 유형이다. 이는 인간 중심주의(anthropocentrism)를 극복하고, 자연, 인간, 신성의 일체성을 회복하려는 현대 생태철학(ecophilosophy), 복합성 이론(complexity theory), 생명 시스템 사상과 긴밀히 연계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잘목시스는 존재의 하나됨을 직관하고 이를 신앙과 의례로 구현한 고대의 선구자였으며, 그의 사상은 천부경과 플레로마 개념과의 비교를 통해 보편적 존재 일체성 사유의 중요한 사례로 확인된다. 현대 세계는 잘목시스적 통합 존재론을 계승하여 인간을 존재 전체 속에 재위치시키는 철학적 전환을 필요로 하며, 이를 통해 인간은 "호모 판테이스트"로서 새로운 존재적 길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Abstract


This study analyzes the ontological structure of Zalmoxis faith and compares it with the philosophy of Cheonbu-gyeong and the concept of Pleroma to explore the unity of being among humans, nature (natura), and divinity (divinitas). Zalmoxis faith understands human existence as an immanent resonance within the flow of nature and divinity, interpreting death as a return (reditus) to the totality of being. As recorded by Herodotos in Historiae (Herodotos, Historiae, Humanitas, 2021, IV.94-96), the Geto-Dacian society considered death not as annihilation but as a re-entry into a deeper ontological structure. This worldview structurally aligns with the Il-Si-Mu-Si-Il ("One-Beginning No-Beginning-One") structure in Cheonbu-gyeong and the notion of Pleroma as the fullness (plērōma) in Gnostic thought.


Cheonbu-gyeong presents the origin of the universe as “One” (Il), explaining the infinite generation and expansion of existence through the trinity of Heaven (천, cheon), Earth (지, ji), and Humanity (인, in), while preserving essential unity. The concept of Pleroma signifies the state of complete integration between divinity and all emanated beings, wherein human souls, having fallen due to ignorance (agnoia), can return through gnosis (gnōsis). This paper analyzes how Zalmoxis faith emphasizes the recovery of inherent unity within the immanent flow of nature and divinity, rather than aiming for a transcendent return.


Additionally, this study reveals that both Zalmoxis faith and Cheonbu-gyeong locate human beings as mediators between nature and divinity, establishing a triple ontological structure through the concept of Heaven, Earth, and Humanity. While Cheonbu-gyeong develops the trinity through a numerical-metaphysical system, Zalmoxis faith embodies it through ritualistic practice and existential experience. This comparison demonstrates that both traditions share the fundamental structure of unified origin and cyclic return, although they differ in method.


Finally, the study suggests the modern succession of Zalmoxis thought through the concept of "Homo Panteist." Homo Panteist refers to a new human model that perceives humanity as an integrated living existence within the resonance of the totality, not as a separated entity from nature and divinity. This perspective aligns closely with contemporary ecophilosophy, complexity theory, and life system theories, overcoming anthropocentrism and restoring the intrinsic unity among nature, humanity, and divinity.


In conclusion, Zalmoxis is identified as a pioneering thinker who intuitively recognized the unity of existence and materialized it through faith and ritual. His philosophy, when compared with Cheonbu-gyeong and the concept of Pleroma, exemplifies a universal pattern of unity-oriented thought. Today, inheriting the integrative ontology of Zalmoxis suggests a critical philosophical path by repositioning human beings within the totality of existence, enabling the emergence of humanity as "Homo Pante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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