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장: 과거라는 거울
1절: 거울의 방, 피할 수 없는 자기 대면
푸른 피라미드와의 동기화가 남긴 후폭풍은 생각보다 거셌어.
나는 한참 동안 수정 동굴의 차가운 바닥에 주저앉아, 머릿속을 휘젓는 이미지의 파편들을 정리하려 애썼지.
할아버지의 젊은 시절, 그의 동료였던 마리우스 보스의 야심만만한 눈빛, 그리고 '아틀란티스'라는 이름 아래 자행되었던 끔찍한 실험의 기록들.
그 모든 것이 뒤섞여 내 정신을 뒤흔들었어.
"괜찮나요, 라두 박사님?"
러즈반이 내 어깨를 부축하며 물었어.
그의 눈에는 깊은 염려가 담겨 있었지.
"박사님의 의식은 피라미드의 아카이브에 3.7초 동안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동기화 상태의 뇌에게는, 아마 몇 시간 분량의 정보가 한꺼번에 쏟아져 들어온 것과 같았을 겁니다.
보통 사람의 정신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일이죠."
나는 간신히 고개를 끄덕였어.
머리가 깨질 듯 아팠지만, 그보다 더한 것은 정신적인 충격이었지.
내가 알던 역사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어.
"이제… 코덱스를 본격적으로 해독해야 합니다. 저에게 모든 분석 도구를…."
내가 말을 끝맺기도 전에, 러즈반은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어.
"아직입니다, 박사님.
코덱스의 문을 열기 전에, 반드시 거쳐야 할 마지막 관문이 있습니다."
그의 말에, 옆에 서 있던 랄의 표정이 미세하게 굳어지는 것을 나는 놓치지 않았어.
"코덱스는 단순한 정보가 아닙니다, 박사님.
그것은 의식 그 자체의 청사진이죠.
만약 당신의 마음에 해결되지 않은 죄책감이나, 이기심, 혹은 깊은 상처가 남아있다면, 그 흠집을 통해 코덱스의 진실이 왜곡되어 보일 겁니다.
거울이 더러우면 상이 비뚤어지게 보이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진실을 있는 그대로 보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 자신의 거울부터 닦아야만 합니다."
나는 그의 말을 즉시 이해할 수 없었어.
'내 마음의 상처? 죄책감? 그게 코덱스 해독과 무슨 상관이라는 거지?'
"이것은 처벌이나 심판이 아닙니다.
우리의 사명을 위한, 필수적인 정화(purification) 과정입니다.
당신의 의식이 코덱스의 순수한 진동을 왜곡 없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준비하는 거죠."
러즈반은 나를 이끌고 피라미드가 있는 동굴의 다른 쪽으로 향했어.
그곳에는 이전에 앉았던 것보다 더 정교하고 안락해 보이는, 하얀 수정으로 만들어진 의자 하나가 놓여 있었지.
그 주변으로는 복잡한 에너지 회로 같은 것들이 바닥에 새겨져 있었어.
랄은 입구에 버티고 서서, 마치 신성한 의식을 지키는 문지기처럼 우리를 지켜보았지.
러즈반은 내 어깨에 손을 얹고, 진지한 눈빛으로 말했어.
"이곳은 '거울의 방'입니다. 당신은 이곳에서, 당신이 평생 동안 가장 외면하고 싶었던 자기 자신과 정면으로 마주하게 될 겁니다. 우리는 당신을 지켜보겠지만, 결코 간섭할 수는 없습니다. 이 싸움은 오롯이 당신 혼자의 몫입니다."
나는 깊은 불안감과 함께 의자에 앉았어.
러즈반이 내 머리에 이전보다 더 가볍고 정교한 VR 헤드셋을 씌워주었지.
다시 한번, 내 의식은 현실 세계로부터 멀어져 갔어.
이번에는 빛의 터널이 아니었어.
눈을 뜨자, 나는 지독하게도 익숙한 공간에 서 있었지.
바로 몇 년 전, 내가 박사 학위 논문을 준비하던 대학의 낡은 연구실이었어.
책상 위의 책 배치, 벽에 붙어 있던 낡은 포스터, 창밖으로 보이던 풍경까지.
모든 것이 내 기억 속 그대로, 소름 끼치도록 완벽하게 재현되어 있었지.
그리고 내 눈앞에는, 그때의 내가 앉아 있었어.
불안한 듯 손톱을 물어뜯고 있는, 성공에 굶주렸던 젊은 날의 나.
"똑똑."
문이 열리고, 내 가장 친한 친구이자 동료였던 이울리안이 들어왔어.
그의 얼굴에는 특유의 순박하고 선한 미소가 걸려 있었지.
나는 보이지 않는 유령이 되어, 내가 가장 잊고 싶었던 과거의 한 장면을 지켜봐야만 했어.
"라두, 이것 좀 봐! 드디어 실마리를 찾은 것 같아.
다치아인들의 나선 문양이, 단순히 태양을 상징하는 게 아니었어.
이건… 특정 주파수에 반응하는 에너지 공명 회로의 설계도야!"
이울리안은 흥분에 차서 자신의 연구 노트를 내게 보여주었어.
그 노트에는, 몇 년 후 학계를 뒤흔들었던 내 박사 학위 논문의 핵심 아이디어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지.
그 순간, 시뮬레이션 속의 젊은 나는 이울리안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어.
"엄청난 발견인데, 이울리안!
하지만 아직 가설 단계잖아.
증명하려면 데이터가 더 필요하겠어.
이 부분은 이렇게 접근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나는 그의 아이디어를 교묘하게 비틀고, 약점을 지적하며, 마치 내 생각인 것처럼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어.
순진한 이울리안은 내 제안에 감탄하며 고마워했지.
그리고 몇 달 후, 나는 그 아이디어를 통째로 내 것으로 만들어 먼저 논문을 발표해버렸어.
시뮬레이션은 그날의 모든 것을, 이울리안의 상처받고 실망한 눈빛까지도 남김없이 재현해냈지.
나는 가슴을 쥐어뜯는 듯한 죄책감에 몸서리쳤어.
'그만… 제발 그만해!'
내가 마음속으로 비명을 지르는 순간, 연구실의 풍경이 안개처럼 사라졌어.
나는 텅 빈 어둠 속에, 상처받은 표정의 이울리안과 비겁했던 내 젊은 날의 환영과 함께 남겨졌지.
그리고 차갑고 중성적인 목소리가, 내 의식에 직접 울려 퍼졌어.
[무엇을 보았습니까?]
나는 본능적으로 변명하기 시작했어.
'그건 어쩔 수 없었어. 학계는 전쟁터고, 그 아이디어는 내가 더 잘 발전시킬 수 있었으니까!
이울리안은 그럴 능력이 없었다고!
결국 더 큰 학문적 성과를 위한….'
[다시 질문합니다. 무엇을 보았습니까?]
목소리는 어떤 감정도 없이, 같은 질문을 반복했어.
내 모든 합리화와 변명은, 그 단순하고 집요한 질문 앞에서 힘을 잃었지.
나는 더 이상 숨을 곳이 없었어.
나는 비겁한 도둑이었고, 친구의 신뢰를 짓밟은 배신자였다.
나는 어둠 속에서 무릎을 꿇고, 오랫동안 잊고 있던 진실의 무게 앞에서 흐느끼기 시작했어.
2절: 할아버지의 선택, 그리고 '아틀란티스'의 분열
어둠 속에서, 나는 오랫동안 내 안에 갇혀 있던 추악한 진실을 마침내 내뱉었어.
목소리는 눈물에 젖어 끔찍하게 갈라졌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솔직했지.
"나는… 친구를 배신했어.
내 성공을 위해서, 그의 아이디어를 훔쳤어.
나는… 도둑이었어."
그 말을 내뱉는 순간, 몇 년 동안 내 어깨를 짓누르던 거대한 바위가 먼지처럼 부서져 내리는 것 같았지.
내 비겁함을 정당화하기 위해 쌓아 올렸던 수많은 변명과 합리화의 벽이 허물어지고, 그 자리에는 오직 정직한 슬픔과 후회만이 남았어.
내 눈앞에서 나를 경멸하듯 바라보던 젊은 날의 나와 상처받은 이울리안의 환영이, 서서히 빛의 입자가 되어 사라져갔지.
나는 텅 빈 어둠 속에서 오랫동안, 아주 오랫동안 울었어.
얼마나 지났을까.
내 모든 눈물이 마르고, 고통스러운 평온이 찾아왔을 때, 그 중성적인 목소리가 다시 한번 내 의식에 울려 퍼졌어.
[감정적 오염원 식별 및 정화 완료. 상위 아카이브에 대한 접근 권한이 승인되었습니다.]
그 말과 함께 내 주변의 어둠이 걷히기 시작했어.
나는 더 이상 텅 빈 공간에 있지 않았지.
내 주위로는 끝을 알 수 없는 거대한 도서관이 펼쳐지고 있었어.
하지만 그곳의 책들은 종이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지.
책장마다 수억 개의 빛나는 데이터 가닥들이 꽂혀 있었고, 그 빛의 실타래들은 저마다 다른 시대의 기억과 지식을 품은 채 고요히 숨 쉬고 있었어.
그때, 내 앞의 데이터 가닥 하나가 유난히 밝게 빛나며 내 쪽으로 흘러나왔어.
그것은 내 의식을 부드럽게 감쌌고, 나는 더 이상 방관자가 아닌, 한 편의 장대한 역사 그 자체가 되어 과거의 기록 속으로 빠져들었지.
나는 '아틀란티스 프로젝트'의 심장부에 있었어.
…지금 내가 있는 레테자트의 시설보다 훨씬 더 거대하고 웅장한 지하시설.
그곳에서, 나는 젊은 시절의 할아버지를 보았어.
희망과 지성으로 빛나는 눈을 한 할아버지는, 날카롭고 야심만만한 눈빛의 동료, 마리우스 보스와 함께 거대한 반투명 스크린 앞에서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었지.
그들의 손끝에서 코덱스의 데이터들이 아름다운 기하학 문양으로 피어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어.
그들은 인류의 의식을 해방시킬 위대한 비밀의 문턱에 서 있었고, 그들의 연구실은 인류의 더 나은 미래에 대한 확신으로 가득 차 있었지…
하지만 장면이 바뀌었어.
…프로젝트의 가장 깊고 비밀스러운 구역.
그곳에서 나는 보스가 이끄는 연구팀이 자행하고 있던 끔찍한 실험을 목격했어.
그들은 코덱스에서 얻어낸 기술을 이용해 인간의 유전자와 뇌신경을 조작하고 있었지.
그들의 목표는 감정과 자유 의지가 거세된 채, 오직 상부의 명령에만 절대적으로 복종하는 새로운 인간, 그들이 '사물(lucruri)'이라 부르는 존재들을 만드는 것이었어.
그들은 이것이 유토피아를 건설하기 위한 안정적인 노동력을 확보하는 길이라고, 인류를 혼돈에서 구하기 위한 '필요악'이라고 스스로를 정당화하고 있었지…
그리고 마침내, 모든 것이 파국으로 치닫는 순간이 찾아왔어.
…할아버지가 우연히 이 비밀 실험의 실체를 알게 된 거야.
나는 할아버지의 얼굴에 떠오른 깊은 절망과 분노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어.
할아버지는 곧장 보스에게 달려갔지.
둘의 대화는 더 이상 동료의 토론이 아니었어.
그것은 두 개의 신념이 충돌하는 전쟁이었지.
"이건 괴물을 만드는 짓이야!
우리는 인류를 해방시키려던 거지, 새로운 노예를 만들려던 게 아니었네, 마리우스!"
할아버지의 절규에, 보스는 얼음처럼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했어.
"이건 필요한 악일세, 콘스탄틴.
대중에게 자유를 줘봤자 그들이 얻는 것은 혼돈뿐이야.
안정된 질서 속에서, 우리처럼 우월한 자들이 그들을 이끌어줘야만 하네.
그들을 위해서라도!"
그날을 기점으로, '아틀란티스 프로젝트'는 두 개로 완전히 분열되었어.
할아버지와 같이, 코덱스의 지혜를 인류의 자발적인 각성과 영적 진화를 위해 사용해야 한다고 믿었던 이들은 '잘목시스' 라는 이름 아래 뭉쳤지.
그들은 인류의 안내자가 되기를 원했어.
반면, 보스와 같이, 강력한 힘으로 인류를 통제하고 질서를 유지해야 한다고 믿었던 이들은 '아이지스 컨소시엄' 이라는 이름의 거대한 그림자가 되었지.
그들은 질서라는 이름 아래에 포장된 완전한 통제를 원했어.
그건 인간들의 자발적 질서가 아니었어.
그들은 인류 스스로는 질서를 가질 수 없다고 판단했던 거지.
분열의 혼란 속에서, 할아버지는 코덱스의 가장 핵심적인 데이터 조각 하나를 빼돌려 숨기는 데 성공했어.
아이지스가 결코 손에 넣어서는 안 되는, 인류 의식의 청사진이 담긴 바로 그 조각이었지.
그것이 바로 러즈반이 내게 건네준 USB의 정체였던 거야.
기나긴 데이터의 흐름이 끝나고, 내 의식은 다시 빛의 도서관으로 돌아왔어.
나는 온몸의 힘이 빠진 채, 그 자리에 주저앉았지.
이제 모든 조각이 맞춰졌어.
이 싸움의 기원, 할아버지의 고뇌, 그리고 내 어깨 위에 놓인 운명의 무게까지도.
할아버지는 도망친 것이 아니었어.
그는 선택을 한 것이었지.
통제가 아닌 자유를, 지배가 아닌 조화를.
그리고 그 선택의 결과로, 평생을 아이지스의 그림자에 쫓기며 살아야만 했지.
나는 조용히 주먹을 쥐었어.
‘이것은 더 이상 할아버지의 전쟁이 아니었다. 이제는, 나의 전쟁이었다. 할아버지의 신념을, 그의 위험한 유산을 이어받아, 내가 끝내야만 하는 나의 전쟁.’
3절: 원죄의 기록과 라두의 고뇌
빛의 도서관, 그 끝없는 아카이브 속에서 나는 한참 동안 움직일 수 없었어.
할아버지의 선택, 그리고 '아틀란티스'라는 이름 아래 갈라선 두 개의 거대한 신념.
그 모든 것이 거대한 파도처럼 내 의식을 휩쓸고 지나갔지.
나는 이제 이 싸움의 한복판에 서 있었어.
회색빛 세상의 방관자가 아니라, 역사의 흐름을 바꿔야만 하는 책임의 상속자로서.
'그래, 이게 진실이었어. 할아버지는 옳은 선택을 하셨던 거야.
나는 그분의 길을 따르면 돼.'
내 마음속에서 새로운 결의가 차오르던 바로 그 순간이었어.
빛의 도서관은 아직 나를 놓아줄 생각이 없는 듯했지.
나를 감싸고 있던 데이터의 실타래가 다시 한번 요동치더니, 이번에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차갑고 건조하며 지독하게도 객관적인 정보의 조각들을 내 머릿속으로 쏘아 보내기 시작했어.
그것은 감정이나 기억의 파편이 아니었어.
그것은 한 편의 보고서였지.
끔찍할 정도로 상세하고, 비인간적일 정도로 냉정한 실험 기록.
프로젝트 명: 루크루(Lucru)
- 자산 등급 '사물'의 안정적 생산을 위한 생체 공학적 연구
1차 목표: 대상의 독립적 사고 및 감정 반응 제거.
2차 목표: 특정 과업 수행 능력의 극대화.
3차 목표: 상부의 명령에 대한 절대적 복종 체계 확립.
화면처럼 펼쳐진 보고서의 페이지가 한 장 한 장 넘어갈 때마다, 나는 숨을 쉴 수가 없었어.
그곳에는 수많은 그래프와 데이터, 그리고 임상 실험 대상자들의 식별 번호가 빼곡하게 적혀 있었지.
'감정 반응 억제율 98.7% 달성', '명령 수행 오차율 0.03% 미만으로 감소'.
그 건조한 숫자들 뒤에 얼마나 많은 인간의 영혼이 파괴되었을지, 나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어.
그리고 나는 보고서의 마지막 장에서, 그것을 보고야 말았지.
프로젝트 초기 단계의 최종 승인 서명란.
그곳에는 두 개의 이름이 선명하게 남아있었어.
프로젝트 총괄 책임자, 마리우스 보스. 그리고 그 옆에, 기술 자문 및 윤리 감독 책임자로서 서명한, 내 할아버지, 콘스탄틴 마네아의 이름이.
"아… 아냐…."
내 입에서 신음이 터져 나왔어.
이건 사실일 리가 없어.
할아버지는 이 끔찍한 계획에 반대했잖아.
그들과 맞서 싸웠잖아.
하지만 데이터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어.
보고서의 차갑고 평면적인 글자들이 내 눈앞에서 녹아내리며, 나는 시간을 거슬러 할아버지의 기억 속으로, 그 운명적인 선택의 순간으로 빨려 들어갔어.
...나는 이제 더 이상 라두가 아니었어.
나는 젊은 시절의 콘스탄틴 마네아, 바로 내 할아버지가 되어 있었지.
내 눈앞에는 '루크루 프로젝트'의 비밀 실험실, '제7 격리구역'의 차가운 유리벽이 펼쳐져 있었어.
유리 너머에서는, 나와 똑같은 얼굴을 한 '사물'들이 아무런 감정 없는 표정으로, 복잡한 기계 장치를 조립하고 있었지.
그들의 움직임은 완벽했지만, 그 눈동자는 텅 비어 있었어.
그들은 살아있는 인간이 아니라, 정교하게 만들어진 인형이었지.
'이건 아니야. 우리가 원했던 건 이게 아니었어.'
내 영혼이 비명을 질렀어.
나는 곧장 마리우스 보스의 사무실로 향했지.
그는 거대한 홀로그램 지구본을 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어.
"마리우스! 당장 설명하게! 제7 격리구역에서 내가 본 게 대체 뭔가!"
내 격앙된 목소리에, 보스는 천천히 몸을 돌렸어.
그의 눈에는 조금의 동요도 없었지.
"아, 자네도 마침내 보았군, 콘스탄틴.
위대하지 않은가? 인류의 새로운 가능성일세."
"가능성? 저건 노예야!
아니, 노예만도 못해!
영혼을 거세당한 껍데기일 뿐이라고!
이건 과학이 아냐, 마리우스!
이건 신에 대한 모독이고, 인간에 대한 가장 끔찍한 범죄야!"
내 절규에, 보스는 한심하다는 듯 나를 바라보며 말했어.
"감정이야말로 인류의 가장 큰 질병일세, 콘스탄틴.
전쟁, 증오, 탐욕…
그 모든 것의 근원이지.
나는 그 질병을 치료하고 있는 것뿐이야.
저들은 고통도, 슬픔도, 두려움도 느끼지 않아.
완벽한 평온 속에서 인류를 위해 봉사하는 거지.
이게 바로 우리가, 저 어리석은 대중에게 줄 수 있는 최선의 구원일세."
그의 말에, 나는 할 말을 잃었어.
그의 신념은 너무나도 확고하고 뒤틀려 있었지.
그 순간, 나는 깨달았어.
우리는 같은 꿈을 꾸고 있었던 게 아니었다는 것을.
"나는… 나는 이 프로젝트에 더 이상 동의할 수 없네."
내가 차갑게 말하자, 보스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어.
"이미 늦었네, 친구.
자네도 처음엔 동의했잖나.
이 위대한 계획의 공범이야, 자네도."
그의 말이 비수처럼 내 심장에 박혔지.
맞아. 나 역시 처음에는 '안정된 질서'라는 그의 말에 동조했었어.
그 결과가 이토록 끔찍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한 채.
나는 무거운 죄책감과 함께 그의 사무실을 나섰어.
그리고 그날 밤, 나는 결심했지. 이 끔찍한 계획을 막아야만 한다고.
내가 열었던 판도라의 상자를, 내 손으로 직접 닫아야만 한다고.
나는 내 모든 것을 걸고, 코덱스의 가장 핵심적인 조각을 빼돌리기로 마음먹었어...
...기억의 파도에서 빠져나오자, 나는 다시 수정 동굴의 의자에 앉아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어.
나는 내 안에 도사리고 있던, 그 끔찍한 '아이지스'의 논리를 발견하고 몸서리쳤지.
이울리안의 아이디어를 훔쳤던 과거의 내 모습.
'더 큰 선'을 위해 작은 희생은 감수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합리화했던 비겁함.
그 본질은 보스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어.
보고서 뒤에는 할아버지가 나중에 제출한 수많은 반대 의견서와 프로젝트 중단을 요청하는 격렬한 항의 문서들이 첨부되어 있었지.
그는 뒤늦게나마 보스의 진짜 의도를 깨닫고, 자신의 실수를 바로잡기 위해 필사적으로 싸웠던 거야.
하지만 그 역시, 처음에는 이 프로젝트의 일부였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어.
그 역시 '더 나은 인류의 미래'라는 명목 아래, 이 비인간적인 실험의 문을 여는 데 동의했던 거야.
나의 영웅이었던 할아버지의 완벽한 상에, 지울 수 없는 얼룩이 새겨지는 순간이었어.
그때, 내 머릿속을 뒤흔든 것은 할아버지에 대한 실망감이 아니었어.
그것은… 나 자신에 대한 혐오감이었지.
'나 역시… 나 역시 마찬가지가 아니었던가?'
이울리안의 아이디어를 훔쳤던 과거의 내 모습이 떠올랐어.
나는 그때 뭐라고 스스로를 합리화했었지?
'이건 더 큰 학문적 성과를 위한 거야.
순진한 이울리안보다 내가 이 아이디어를 더 잘 발전시킬 수 있어.'
마리우스 보스와 그의 동료들이 했던 변명과, 내 변명이 대체 무엇이 다른가.
그들은 '안정된 질서'라는 이름으로, 나는 '학문의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똑같이 비겁한 자기 합리화의 가면을 쓰고 있었던 거야.
규모의 차이가 있을 뿐, 그 본질은 같았어.
더 큰 선을 위해서라는 명목 아래, 다른 이의 영혼을, 아이디어를, 가능성을 짓밟는 것.
나는 내 안에 도사리고 있던, 그 끔찍한 '아이지스'의 논리를 발견하고 몸서리쳤어.
나는 그들을 비난할 자격이 없었어.
나 역시 그들과 같은 죄를 지은, 잠재적인 괴물일 뿐이었지.
이것이 바로 그 '거울의 방'이 내게 보여주려 했던 진짜 진실이었어.'거울의 방'은 내가 그 기억에 붙여 준 이름이야.
적은 바깥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 안에도 존재한다는 것.
...빛의 도서관이 서서히 멀어져 가고, 내 의식은 다시 수정 동굴의 차가운 현실로 돌아왔어.
나는 하얀 수정 의자에 앉은 채, 깊은 고뇌 속에서 고개를 숙였지.
이제 나는 더 이상 순수한 분노나 사명감만으로 이 싸움에 임할 수 없었어...
러즈반이 조용히 내게 다가와 말했어.
그의 목소리에는 깊은 연민이 담겨 있었지.
"이제, 당신은 진실의 무게를 온전히 짊어지게 된 겁니다, 라두.
선과 악은 종이처럼 명확하게 나뉘지 않습니다.
가장 위대한 성인에게도 그림자는 있고, 가장 잔혹한 폭군에게도 한때는 순수했던 시절이 있었죠.
중요한 것은 매 순간,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입니다."
나는 고개를 들었어.
내 눈에는 뜨거운 눈물이 고여 있었지.
나는 이제 더 이상 순진한 학자가 아니었어.
내 안의 어둠과 정면으로 마주한, 상처 입은 구도자였지.
나는 코덱스를 해독해야만 했어.
단지 아이지스를 막기 위해서가 아니었어.
내 할아버지의 실수를, 그리고 나 자신의 죄를 되갚기 위해서.
내 안의 어둠을 이겨내고, 진정으로 옳은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증명하기 위해서.
나의 고뇌는, 그렇게 새로운 사명이 되어 내 영혼에 깊이 새겨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