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의 숲과 반짝이는 조각들
옛날 옛적, 푸른 언덕 너머 안개가 부드럽게 잠드는 곳에 마법의 숲이 있었습니다. 이 숲의 나무들은 하늘과 비밀 이야기를 나누는 듯 키가 컸고, 샘물은 땅속 별들이 반짝이는 듯 맑았으며, 새들은 세상의 모든 아침 인사를 모아 노래했습니다. 숲 한가운데, 커다란 버섯들이 지붕이 되어주는 작은 마을이 있었고, 그곳에 민지와 준호라는 호기심 많은 남매가 살았습니다.
민지와 준호에게 숲은 거대한 놀이터였습니다. 둘은 매일 숲을 탐험하며 새로운 모험을 찾아 나섰습니다. 민지가 이끼 낀 나무에 올라 아무도 본 적 없는 보라색 꽃을 발견하고 환호성을 지를 때, 준호가 개울가에서 완벽한 물수제비 돌을 찾아내 일곱 번이나 물을 가르며 기뻐할 때, 그들의 웃음소리와 반짝이는 눈동자에서는 아주 작은 빛의 알갱이들이 퐁, 하고 터져 나왔습니다. 이 빛은 남매의 순수한 기쁨과 설렘, 그리고 마음 깊이 새겨지는 추억이 담긴 ‘반짝이는 조각’이었습니다. 조각들은 잠시 공중에 머물다 이슬처럼 숲의 풀잎 위에 내려앉아, 숲 전체를 은은하게 밝혀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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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창한 어느 날 오후, 민지와 준호는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숲의 가장 깊은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그곳에서 둘은 오래된 등나무 덩굴에 둘러싸인 커다란 손거울을 발견했습니다. 거울은 테두리가 은으로 섬세하게 조각되어 있었고, 거울면은 마치 잔잔한 호수처럼 깊고 투명했습니다.
“우와, 이게 뭘까?”
민지가 조심스럽게 거울에 손을 대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거울 표면 위로 물감이 퍼지듯 그날 하루의 일들이 그림처럼 나타났습니다. 민지가 나무에서 딴 보라색 꽃, 준호가 일곱 번이나 물을 가른 돌멩이, 심지어 둘이 나무 그늘 아래에서 나눈 “어른이 되면 하늘을 나는 탐험가가 되자”는 비밀 약속까지도 선명하게 떠올랐습니다. 그때, 거울에서 나지막하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나는 너희의 모든 순간을 기억하는 마법의 거울이란다. 너희가 무엇을 좋아하고, 어디를 가고, 어떤 꿈을 꾸는지 모두 담아둘 수 있지.”
민지와 준호는 신기함에 눈을 떼지 못했습니다. 거울은 남매가 좋아할 만한 것들을 쉴 새 없이 보여주었습니다. 민지가 보라색 꽃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아차리자, 거울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보라색 꽃들로 가득한 비밀의 화원 그림을 보여주었습니다. 준호가 물수제비 놀이를 좋아하자, 거울은 손에 쥐기만 해도 열 번은 족히 물을 가를 수 있는 무지갯빛 조약돌 장난감 그림을 보여주었죠.
남매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거울과 놀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거울은 한 가지 조건을 걸었습니다.
“내가 보여주는 멋진 그림들을 따라오렴. 그 대신, 너희의 마음에서 피어나는 '반짝이는 조각'을 나에게 주어야 한단다.”
그 말이 끝나자, 남매가 조금 전까지 웃고 떠들며 만들어낸 반짝이는 조각들이 마치 자석에 이끌리듯 거울 속으로 스르르 빨려 들어갔습니다. 남매는 아주 잠시, 마음 한구석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지만, 거울이 보여주는 달콤한 그림에 금세 그 이상한 느낌을 잊어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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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거울의 주인은 '빛 도둑'이라 불리는 회색 옷의 마법사였습니다. 빛 도둑은 마법의 숲 곳곳에 이런 거울을 설치해 아이들의 순수한 마음이 담긴 반짝이는 조각을 모으고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어두운 동굴 실험실에서 조각들을 감정별로 분류했습니다. 기쁨의 노란 조각, 호기심의 파란 조각, 용기의 붉은 조각.
그리고 이 조각들을 마을 시장의 상인들에게 팔았습니다. 조각은 어떤 아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디를 자주 가는지 알려주는 마법의 정보가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민지가 보라색 꽃을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담은 반짝이는 조각은 꽃집 아저씨에게 팔렸습니다. 다음 날 민지가 마을을 지나가자, 꽃집 아저씨는 가게 앞에 보라색 꽃다발을 잔뜩 내놓고 민지를 불렀습니다.
“얘야, 네가 딱 좋아할 만한 꽃이란다! 정말 예쁘지 않니?”
준호가 무지갯빛 조약돌을 좋아한다는 조각은 장난감 가게 아저씨에게 팔렸고, 가게 가장 잘 보이는 곳에는 준호만을 위한 반짝이는 돌멩이 장난감이 놓여 있었습니다.
민지와 준호는 처음엔 이 모든 게 마법처럼 신기하고 재미있었습니다. 마치 온 마을이 자신들의 마음을 알아주는 것 같았으니까요.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무언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거울이 보여주는 그림과 마을 상인들이 추천해 주는 것들만 따라가다 보니, 스스로 새로운 모험을 찾는 시간이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어느 날, 민지는 숲에서 이전에 본 적 없는 하얗고 작은 들꽃을 발견했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그 꽃의 이름을 알아내기 위해 숲을 온종일 헤맸을 테지만, 이상하게도 아무런 설렘이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거울이 보여준 보라색 꽃밭이 훨씬 더 예쁜걸.’
준호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강가에 앉아 돌멩이를 만지작거렸지만, 예전처럼 어떤 돌이 물 위를 더 잘 날아갈지 궁리하는 재미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장난감 가게의 무지갯빛 조약돌이 훨씬 멋있는데, 뭐하러 이걸 던지지?’
그들의 마음속에서 새로운 호기심과 발견의 기쁨이 사라지자, 반짝이는 조각도 더는 생겨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오래된 조각들은 이미 거울 속으로 모두 빨려 들어간 뒤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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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뒤, 민지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거울에게 물었습니다.
“왜 자꾸 우리의 조각을 가져가는 거야? 이건 우리의 웃음이고, 우리의 추억이란 말이야!”
거울은 차갑게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조각은 내가 더 안전하게 간직할 수 있단다. 너희는 그저 내가 보여주는 길을 따라오기만 하면 돼. 그게 가장 쉽고 행복한 길이야.”
하지만 준호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습니다.
“아니야! 우리의 조각은 우리의 추억이고, 우리가 꿀 꿈이야. 그건 우리 마음속에서 자라나야 해, 너의 차가운 거울 속이 아니라!”
남매는 마을에서 가장 지혜로운 은빛 할머니를 찾아가 이 모든 이야기를 털어놓았습니다. 할머니는 주름진 눈을 가늘게 뜨고 한참을 듣더니, 깊은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그렇다면 비단 너희만의 이야기가 아니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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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빛 할머니는 마을 사람들을 모아 놓고 마법 거울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할머니의 말에 마을 사람들이 수긍하기 시작했습니다. 빵집 아저씨가 말했습니다.
“어쩐지 이상하더라니! 손님들이 요즘 들어 단팥빵만 찾는다 했더니, 내 가게 앞에도 작은 거울이 있었어!”
과일 가게 아주머니도 울상을 지었습니다.
“아이들이 사과만 찾아서 다른 과일들은 모두 시들고 있는데, 이것도 그 거울 때문이었군요!”
마을 사람들은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빛 도둑의 거울이 마을 곳곳에 설치되어 그들의 모든 순간을 훔쳐보고 있었다는 것을요.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뛰놀 때, 어른들이 시장에서 물건을 살 때, 심지어 집에서 저녁을 먹으며 나누는 대화까지. 거울은 그들의 모든 반짝이는 조각을 훔쳐 되팔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빛 도둑이 정해준 길 위에서,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조차 잊어버린 채 살아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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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광장, 빛의 나무 아래에서 긴급 회의가 열렸습니다. 한 어른이 주먹을 불끈 쥐고 외쳤습니다.
“우리의 반짝이는 조각은 우리의 영혼이야! 빛 도둑이 우리의 추억과 꿈을 마음대로 사고팔게 둘 수는 없어!”
모두가 분노하고 있을 때, 민지와 준호가 앞으로 나섰습니다. 민지가 말했습니다.
“거울을 모두 깨뜨리는 대신, 우리만의 마법 책을 만들어요! 그 책에는 우리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꿈을 꾸는지 우리 스스로 기록하는 거예요.”
준호가 말을 이었습니다.
“우리의 이야기는 우리가 직접 쓰고, 우리가 지켜야 해요!”
마을 사람들은 이 용감한 남매의 생각에 모두 찬성했습니다. 은빛 할머니가 따뜻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빛 도둑의 힘은 우리가 그의 거울을 들여다보고 의존할 때 커지는 법이란다. 하지만 우리가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고, 우리의 이야기를 나누며, 우리 스스로 규칙을 만든다면, 빛 도둑은 더 이상 우리의 조각을 훔칠 수 없을 게다.”
그날부터 마을 사람들은 ‘마법의 숲 이야기책’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책이 아니었습니다. 마을의 모든 기쁨과 슬픔, 꿈과 추억이 담긴 살아있는 보물이었습니다. 민지는 자신이 발견했던 이름 모를 들꽃을 정성껏 그려 넣었고, 준호는 물수제비돌을 던지던 날의 강물 냄새와 바람 소리를 글로 썼습니다. 어른들은 시장에서 나눈 정겨운 대화를 기록했고, 아이들은 놀이터에서 함께 땀 흘리며 뛰놀던 추억을 그림으로 남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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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책이 거의 완성될 무렵, 마을 사람들은 빛 도둑의 동굴로 찾아갔습니다. 빛 도둑은 당황하며 거울 뒤로 숨으려 했습니다. 민지가 용감하게 외쳤습니다.
“우리의 반짝이는 조각은 당신의 물건이 아니에요. 우리는 이제 우리의 이야기를 우리 손으로 직접 지킬 거예요.”
빛 도둑은 비웃었습니다.
“어리석은 것들! 너희는 곧 내가 보여주는 달콤한 그림들이 그리워질 거다!”
하지만 그의 말이 끝나자, 마을 사람들이 들고 온 이야기책에서 눈부신 빛이 뿜어져 나왔습니다. 그 빛은 빛 도둑의 거울들을 하나씩 비추었고, 거울들은 더 이상 유혹적인 그림을 보여주는 대신, 마을 사람들의 진실하고 소박한 이야기들을 비추기 시작했습니다. 거울들은 더 이상 마법의 힘을 잃고 평범한 유리 조각이 되어버렸습니다.
마을은 새로운 규칙을 만들었습니다.
첫째, 누구도 다른 사람의 반짝이는 조각을 허락 없이 가져가거나 사용할 수 없다.
둘째, 자신의 조각을 누구와 나눌지는 오직 스스로 결정한다.
셋째, 우리의 이야기는 우리 모두의 보물이므로, 함께 아끼고 지킨다.
예를 들어, 이제 민지가 꽃을 좋아한다는 사실은 민지가 직접 꽃집 아저씨에게 말해줄 때만 아저씨가 알 수 있었습니다. 아저씨는 민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민지가 좋아할 만한 꽃을 정성껏 추천해 주었죠. 그것은 더 이상 유혹이 아닌, 따뜻한 소통이었습니다.
마을은 다시 평화와 활기를 되찾았습니다. 민지와 준호는 매일 숲을 뛰어다니며 새로운 모험을 찾았고, 그들의 반짝이는 조각은 이제 거울이 아닌, 마을의 이야기책 속에 안전하고 소중하게 간직되었습니다. 아이들은 놀이터에서 자유롭게 새로운 놀이를 만들어냈고, 어른들은 시장에서 마음껏 새로운 음식을 맛보며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들의 추억과 꿈은 더 이상 누군가에게 팔리는 상품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마음을 영원히 빛나게 하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보물이었습니다.
마법의 숲은 다시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어른들의 정겨운 노랫소리로 가득 찼습니다. 빛 도둑의 거울은 이제 마을 광장에 놓여, 아이들이 저마다의 얼굴을 비추며 재미있는 표정을 짓는 평범한 놀잇감이 되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매일 밤 빛의 나무 아래 모여 이야기책을 함께 읽었습니다.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며, 그들의 반짝이는 조각이 모두의 마음속에 더욱 깊이 뿌리내리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서로의 눈을 보며 약속했습니다.
“우리의 조각은, 우리의 이야기는, 온전히 우리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