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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Pop 데몬 헌터스의 연금술

상처에서 황금의 노래를 피워내기까지

by DrLeeHC

K-Pop 데몬 헌터스의 연금술:

상처에서 황금의 노래를 피워내기까지


글을 열며: 마음속 어둠을 밝히는 작은 불꽃에게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세계 중심에 루미라는 한 사람이 서 있습니다. 만인의 환호를 받는 K팝 무대 위에서는 찬란하게 빛나는 별이지만, 무대 아래에서는 홀로 악마와 맞서 싸워야 하는 고독한 전사입니다. 그녀의 내면은 ‘악마의 혈통’이라는 지울 수 없는 낙인과 세상을 구원해야 하는 숭고한 사명 사이에서 위태롭게 타오르는 한 점의 불꽃과 같았을 것입니다.


그녀의 곁에는 악마 진우가 필연적인 그림자처럼 머뭅니다. 그는 가장 감미로운 유혹과 가장 서늘한 대립을 통해, 그녀를 존재의 가장 깊은 심연으로 이끌어 내립니다. 이 두 사람의 이야기는 선과 악이 대립하는 이분법적 서사를 넘어섭니다. 그것은 한 존재가 자신의 분열된 모든 조각을 남김없이 그러모아, 마침내 온전한 ‘나’로 거듭나는 길고도 장엄한 여정으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심리학자 칼 융 (Carl Jung)이 제시한 ‘개성화 (Individuation)’의 지도와, 고대로부터 비밀스럽게 전해져 온 연금술의 상징을 빌린다면, 우리는 이 여정을 더욱 깊이 있게 탐색할 수 있습니다.


연금술은 가장 낮은 물질인 납이 황금으로 변모하는 과정의 비유를 통해, 인간 정신의 변용을 설명합니다. 그 여정은 모든 것이 소멸하는 칠흑 같은 어둠, 니그레도 (Nigredo)에서 시작하여 순수한 본질이 드러나는 백색의 정화, 알베도 (Albedo)를 거칩니다. 그리고 마침내 모든 대립이 통합된 붉은 완성, 루베도 (Rubedo)에 이릅니다.


루미와 진우의 이야기는 바로 이 연금술의 과정을 따라 흐르는 한 편의 현대적 신화와 같습니다. 이 글을 통해, 한 사람이 자신의 모순과 상처를 어떻게 끌어안고 스스로 빛을 발하는 존재가 되어가는지, 그 고요하고도 위대한 여정을 함께 따라가 보고자 합니다.



첫 번째 이야기: 니그레도, 자신의 가장 깊은 어둠을 마주하는 시간


모든 연금술적 변용의 여정은 ‘니그레도’라 명명된 짙은 어둠 속에서 시작됩니다. 이는 모든 것이 원래의 형태로 녹아내려 분해되는 혼돈의 시간이며, 연금술사들은 이를 ‘검은 태양’의 시간이라 불렀습니다. 융은 이 단계를, 우리가 평생토록 애써 외면하고 억압해 온 자신의 그림자 (Shadow)와 정면으로 마주하는 순간에 비유했습니다. 루미의 길 역시 바로 이 칠흑 같은 어둠의 한가운데서 그 막을 엽니다. 영화의 서곡인 『The Huntrix Mantra』의 비장한 가락, “홀로 어둠을 밝히랴, 우리 노래 부르리라…”는 그녀가 짊어져야만 하는 운명의 무게를 예감하게 합니다. 그녀는 ‘악마의 혈통’이라는 숨기고 싶은 비밀과, 그 비밀을 감춘 채 아이돌의 빛나는 가면, 즉 페르소나 (Persona)를 쓰고 데몬 헌터의 사명을 수행해야 하는 깊은 모순의 심연에 갇혀 있습니다.


이 시기, ‘헌트릭스’가 부르는 『Takedown』이나 『How It’s Done』과 같은 노래들은 그녀의 외적인 모습을 상징합니다. 강렬한 비트 위에서 악마를 물리치는 화려한 액션은 그녀의 강력한 페르소나, ‘데몬 헌터’로서의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오히려 그녀의 내면적 고통과 존재의 분리를 더욱 심화시키는 역설적인 장치로 작용합니다. 무대 위에서 완벽한 전사로서 환호받을수록, 무대 아래의 루미는 더욱 깊은 소외감 속으로 침잠했을 것입니다.


한편, 라이벌 그룹 ‘사자 보이즈’가 부르는 『Soda Pop』의 인공적인 청량함과 『Your Idol』의 오컬트적 유혹은, 루미가 마주한 세상의 혼돈과 그녀의 내면을 뒤흔드는 유혹을 동시에 비추는 혼탁한 거울과 같습니다.


진우라는 존재는 바로 그 그림자가 인격화되어 나타난 현현일 것입니다. 그는 루미의 가장 아픈 상처를 파고들며 “수치심과 비참함”이야말로 악마의 진정한 본질이라 나지막이 속삭입니다. 그의 목소리는 그녀가 마음 가장 깊은 곳에 묻어두었던 원초적 두려움과 자기혐오를 수면 위로 끄집어내는, 고통스럽지만 결코 피할 수 없는 영혼의 메아리입니다. 그러므로 진우와의 싸움은 외부의 적과 벌이는 물리적인 전쟁이 아닙니다. 그것은 자기 안의 그림자를 마주하고 그것을 파괴할 것인지, 아니면 끌어안을 것인지를 결정해야 하는, 지극히 고요하고도 치열한 내면의 전투입니다.


두 번째 이야기: 알베도, 어둠 속에서 길어 올린 한 줄기 빛


그 칠흑 같은 니그레도의 시간이 지나면, 연금술의 과정에는 ‘알베도’라 불리는 하얀 새벽이 찾아옵니다. 검게 타버린 재 속에서 마침내 순수한 본질이 드러나는 정화의 시간입니다. 융은 이 과정을, 여성이 자신의 내면에 잠재된 남성성, 즉 아니무스 (Animus)를 발견하고, 남성이 내면의 여성성, 아니마 (Anima)를 만나 통합하는 깊고 신성한 만남에 비유했습니다.


이 단계에 이르러, 루미와 진우의 관계는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됩니다. 진우는 더 이상 파괴해야 할 단순한 악마나 그림자가 아닙니다. 그는 루미의 영혼에 잠재된 또 다른 반쪽, 그녀의 아니무스가 투영된 거울과 같은 존재로 그 모습을 달리합니다. 이 두 사람이 함께 부르는 듀엣곡 『Free』는 알베도 단계의 정수를 고스란히 담아냅니다. 억눌려온 정체성과 진정한 자유에 대한 갈망을 토로하는 이 노래는, 루미가 자신의 그림자인 진우와 벌이는 가장 솔직하고 내밀한 대화입니다. 연금술에서 말하는 ‘결합 (Coniunctio)’, 즉 대극의 합일은 바로 이러한 자기 고백의 순간에 시작됩니다. 빛과 어둠, 남성성과 여성성이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하나로 어우러지려는 첫 번째 시도인 것입니다.


진우의 비극적인 운명과 그의 소멸은 이 알베도 단계의 가장 슬프고도 아름다운 절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연금술에서는 이 과정을 ‘소멸을 통한 부활 (Mortificatio)’이라 부릅니다. 낡고 불완전했던 과거의 자아가 죽고, 그 희생을 통해 새로운 자아가 탄생하는 숭고한 통과 의례입니다.


루미가 진우를 소멸시키는 마지막 순간, 그녀는 외부의 적을 제거한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그림자이자 내면의 남성성이었던 그를, 비로소 자기 안으로 온전히 통합하여 받아들인 것입니다. “나는 악마일지도 모르지만, 내 노래는 인간의 마음을 지키기 위한 거야”라는 그녀의 선언은, 선과 악이라는 낡은 이분법의 세계를 떠나 자신의 모든 모순을 끌어안고 사랑하겠다는 성숙한 존재의 고백입니다. 마치 검은 잿더미 속에서 마침내 시리도록 하얀 빛이 드러나듯, 그녀는 자신의 가장 깊은 어둠을 딛고 서서 내면의 순수한 빛을 발견한 것입니다.


세 번째 이야기: 루베도, 마침내 붉게 타오르는 온전한 생명


연금술의 긴 여정은 ‘루베도’라 불리는 붉은빛의 단계에서 그 위대한 완성을 이룹니다. 이것은 모든 변형의 과정을 끝마치고 완전한 통합을 이룬 ‘철학자의 돌 (Lapis Philosophorum)’의 탄생을 상징합니다. 융의 심리학에서는, 분열되었던 모든 요소들이 조화를 이루어 온전한 자기 (Self)가 실현되는 궁극의 순간에 해당합니다.


루미의 여정 역시 이곳에서 장엄한 결실을 맺습니다. 진우와의 합일을 통해 자신의 어둠마저 사랑하게 된 그녀는, 마침내 용기를 내어 동료들에게 자신의 모든 비밀을 드러냅니다. 그녀의 동료들은 그녀를 배척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녀의 상처인 ‘악마 표식’을 자신들의 의상에 함께 새겨 넣음으로써, 상처를 통한 따스한 연대를 보여줍니다. 이는 마치 연금술에서 말하는 ‘신성한 결혼 (Hieros Gamos)’의 현대적 재현과 같습니다. 개인의 내면에서 이룬 통합이,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온전히 꽃을 피우고 공동체의 치유로 확장되는 순간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바로 그때, 무대 위에서 울려 퍼지는 노래가 『Golden』입니다. 이 노래는 루베도 단계의 완성을 알리는 찬란한 축가입니다. 희망으로 가득 찬 EDM 비트 위에 펼쳐지는 멜로디는, 더 이상 누군가의 각본을 따르지 않고 자신의 빛과 어둠, 상처와 영광을 모두 끌어안은 한 사람의 온전한 목소리입니다.


“숨는 건 끝이야, 난 이제 빛나고 있어 (I'm done hidin', now I'm shinin')”라는 가사는, 연금술사가 오랜 고난 끝에 마침내 손에 쥐게 되는 영원한 ‘황금’의 또 다른 이름일 것입니다.


그리고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What It Sounds Like』는 이 모든 여정을 따스하게 감싸 안는 회향과도 같습니다. 『Golden』의 핵심 멜로디를 샘플링하여 상처와 연대의 메시지를 다시 한번 노래하는 이 곡은, 루미 개인의 완성이 곧 공동체의 치유와 희망으로 이어진다는 깊은 울림을 전합니다. 진정한 황금은 홀로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그 빛을 나눌 때 비로소 영원한 가치를 지니게 됨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글을 닫으며: 당신의 노래는 무엇입니까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사운드트랙은, 루미라는 한 인물의 연금술적 여정을 따라 흐르는 한 편의 장대한 서사시와 같습니다. 『Mantra』의 무게에 짓눌려 『Takedown』의 가면을 써야 했던 니그레도의 어둠을 지나, 진우와 함께 『Free』를 노래하며 자신의 그림자를 마주한 알베도의 새벽을 거쳐, 마침내 『Golden』으로 빛나고 『What It Sounds Like』으로 함께 울리는 루베도의 황금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여정은 어쩌면 우리 모두의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서 지금도 벌어지고 있는 보편적인 이야기일지 모릅니다.


우리 역시 마음 한구석에, 애써 외면하고 있는 자신만의 그림자를 품고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 그림자를 없애야 할 적으로만 여기며 스스로를 소진하는 싸움을 반복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 이야기는 진정한 자유가 외부의 적을 물리치는 승리에 있지 않음을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그것은 내 안의 모든 모순과 대립을 기꺼이 끌어안고, 마침내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나만의 노래를 찾아 부르는 데 있음을 따스하게 일깨워줍니다. 당신의 노래는 무엇입니까. 그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용기를, 부디 당신의 삶 속에서 발견하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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