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매일 아침 정보의 전쟁터에서 눈을 뜬다. 스마트폰 화면을 켜는 순간, 수많은 총알과 포탄처럼 쏟아지는 뉴스 헤드라인과 소셜 미디어 피드는 우리의 정신을 향해 발사된다. 어떤 정보는 진실을 담고 있지만, 어떤 정보는 우리의 분노와 두려움을 자극하여 이성을 마비시키려는 교묘한 선전물이다. 이 혼란스러운 전쟁터에서 진짜 위협은 외부의 적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마음속에 잠복한 채 적에게 기꺼이 성문을 열어주는 내부의 배신자다. 이 배신자의 이름이 바로 ‘확증 편향’이다.
오늘날 우리는 인류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더 많은 정보를 손쉽게 접할 수 있지만, 역설적으로 그 어느 때보다 더 쉽게 고립되고, 더 깊이 분열되고 있다. 그 이유는 현대의 기술이 우리의 원초적인 심리적 약점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그것을 이익 창출의 도구로 삼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의 정신적 취약점을 교묘하게 이용하는 현대의 위기는, 사실 스토아 철학자들이 2천 년 전에 이미 진단하고 처방을 내렸던 문제의 새로운 버전에 불과하다. 그들이 살았던 고대의 아고라 역시 소문과 웅변, 그리고 왜곡된 정보가 넘쳐나는 또 다른 전쟁터였다. 그들은 바로 이 혼란스러운 정보의 폭풍우 속에서 우리 영혼의 닻을 내리고, 진실의 빛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항해술, 즉 ‘동의의 훈련’을 개발했다.
현대의 정보 환경을 위협하는 가장 강력한 두 개의 유령은 ‘가짜 뉴스(fake news)’와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이다. 가짜 뉴스는 단순히 오보를 넘어, 특정한 정치적, 경제적 목적을 가지고 대중의 감정을 선동하고 이성을 마비시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조작된 정보다. 그것은 우리의 가장 원초적인 감정, 즉 분노와 두려움을 겨냥한다. 충격적인 제목과 자극적인 이미지를 통해 우리의 마음에 강력한 ‘인상(phantasia)’을 남기고, 우리가 그것을 이성적으로 검토할 시간적, 심리적 여유를 빼앗아버린다. 우리는 ‘좋아요’를 누르고 ‘공유’ 버튼을 누르는 그 짧은 순간, 스스로가 진실의 전달자가 아니라 거짓의 확성기가 되고 있음을 깨닫지 못한다.
그러나 가짜 뉴스와 같은 외부의 거짓 정보가 이토록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이유는, 우리 마음속에 이미 그 거짓을 기꺼이 환대할 준비가 되어 있는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이라는 교활한 내부의 배신자가 살고 있기 때문이다. 확증 편향이란, 우리가 이미 가지고 있는 믿음이나 가치관을 확인시켜주는 정보는 마치 오랜 친구처럼 반갑게 맞이하여 적극적으로 찾아서 받아들이고, 자신의 믿음에 반하는 정보는 불편한 불청객처럼 무시하거나 애써 폄하하려는 인간의 보편적인 심리적 경향이다. 우리의 이성은 진실을 탐구하는 공정한 탐정이 아니라, 이미 마음속으로 결론을 내려놓은 피고(자기 자신)를 변호하기 위해 고용된 유능하지만 편파적인 변호사에 가깝다.
이 교활한 변호사가 일상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생각해보자. 당신이 A사의 새로운 스마트폰을 사기로 마음먹었다고 가정해보자. 그 순간부터, 당신의 눈에는 온통 A사 스마트폰의 장점을 칭찬하는 기사와 사용자 후기만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반면, B사의 스마트폰이 더 뛰어나다는 기사나 A사 제품의 단점을 지적하는 글은 무의식적으로 건너뛰거나, “저건 경쟁사가 퍼뜨린 소문일 거야”라며 애써 그 가치를 깎아내린다. 당신은 이제 ‘최고의 스마트폰’을 찾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나의 선택이 최고였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줄 증거를 수집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뇌는 이처럼 자신의 신념을 의심하는 데 따르는 어려운 정신적 노력을 피하고, 기존의 믿음을 강화하는 데서 오는 안락함과 안정감을 선호하도록 진화해왔다.
문제는 오늘날의 디지털 기술이 바로 이 우리의 정신적 취약점을 먹고 자라며, 그것을 전례 없는 수준으로 증폭시킨다는 데 있다. 오늘날의 소셜 미디어와 검색 엔진의 알고리즘은 바로 이 확증 편향을 이용하여 우리를 붙잡아 둔다. 이 과정에서 ‘필터 버블(filter bubble)’과 ‘반향실(echo chamber)’이라는 두 종류의 보이지 않는 정보 감옥이 만들어진다.
‘필터 버블’은 알고리즘이 개인을 위해 맞춤 제작한 투명한 정보의 거품이다. 당신이 특정 정치적 관점을 담은 영상 하나를 시청하면, 유튜브 알고리즘은 당신이 그 관점을 좋아한다고 학습하고, 다음 날 당신의 추천 목록을 온통 비슷한 영상들로 채워 넣는다. 당신의 과거 검색 기록과 ‘좋아요’는 당신이 무엇을 믿고 싶어 하는지에 대한 데이터가 되어, 당신의 세계관과 다른 관점의 정보들은 당신도 모르는 사이에 조용히 걸러진다. 이 거품 안에서, 세상은 마치 나의 생각과 똑같은 모습인 것처럼 보인다.
‘반향실’은 필터 버블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 사회적이고 능동적인 감옥이다. 이는 같은 신념을 가진 사람들이 온라인 커뮤니티나 특정 뉴스 사이트의 댓글창과 같은 공간에 모여, 서로의 의견을 끊임없이 지지하고 강화하며 외부의 반대 의견을 집단적으로 배척하는 현상이다. 이 방 안에서는 오직 하나의 목소리만이 존재하며, 그 목소리는 수많은 사람들을 통해 메아리(echo)치면서 점점 더 커지고 절대적인 진실처럼 느껴진다. 다른 의견을 제시하는 사람은 조롱의 대상이 되거나 ‘내부의 적’으로 몰려 쫓겨난다.
이 두 개의 감옥 안에 갇힌 채 살아가는 것은 우리의 영혼에 깊은 상처를 남긴다. 나의 생각이 항상 지지받고 한 번도 진지한 도전에 직면하지 않을 때, 우리의 믿음은 유연한 신념이 아니라 부서지기 쉬운 독단으로 굳어간다. 다른 관점을 가진 사람들을 더 이상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동료 시민으로 보지 않고, 상식과 이성이 결여된 이해 불가능한 ‘적’으로 여기게 된다. 결국 우리는 같은 사회의 구성원이면서도 서로의 현실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이방인이 되어, 그 사이에 놓인 깊은 골을 오해와 불신, 그리고 혐오로 채우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현대의 위기는, 사실 스토아 철학자들이 2천 년 전에 이미 진단하고 처방을 내렸던 문제의 새로운 버전에 불과하다. 스토아의 관점에서 볼 때, 가짜 뉴스는 우리 마음에 떠오르는 수많은 ‘거짓된 인상(pseudos phantasia)’ 중 가장 교묘하고 악의적인 형태다. 스토아 철학의 첫 번째 훈련이 모든 인상을 향해 “너는 네가 보이는 그것이 정말 맞는가?”라고 질문하는 것이었듯이, 디지털 시대의 스토아적 실천은 모든 자극적인 정보 앞에서 “이것의 출처는 어디인가? 이 글을 쓴 사람의 의도는 무엇인가? 이것이 나의 이성을 마비시키려는 감정적 선동은 아닌가?”라고 질문하는 것이다. 스토아 철학자는 태생적으로 훌륭한 ‘사실 확인자(fact-checker)’일 수밖에 없다.
또한, 확증 편향은 스토아 철학이 그토록 경계했던 ‘성급한 동의(propeteia)’의 가장 완벽한 예시다. 자신의 기존 신념과 일치하는 인상이 나타났을 때, 어떤 검토나 의심도 없이 즉각적으로 “그렇다, 이것은 진실이다”라고 단정해 버리는 정신적 태만이 바로 확증 편향의 본질이다. 스토아 철학의 ‘동의의 유보(epoché, 에포케)’는 바로 이 자동적인 반응의 사슬을 끊기 위해 고안된 강력한 제동 장치다. 내가 강렬하게 동의하고 싶은 정보일수록, 오히려 한 걸음 물러서서 “내가 단지 이것을 믿고 싶기 때문에 믿으려는 것은 아닌가?”라고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용기, 이것이 바로 스토아적 지혜다.
이 고대의 지혜는 오늘날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구체적인 대처 방안을 제시한다. 이것은 정보의 홍수 속에서 길을 잃지 않기 위한, 우리 각자가 실천할 수 있는 ‘정신적 방어 훈련’이다.
첫째, ‘의식적인 멈춤’을 습관화하는 것이다. 자극적인 뉴스를 보고 즉각적으로 분노하거나 공유하고 싶은 충동이 들 때, 잠시 멈추고 심호흡을 하라. 단 몇 초의 멈춤만으로도, 감정의 지배를 받던 뇌의 편도체는 안정을 되찾고, 이성적 사유를 담당하는 전두엽이 활동할 시간을 벌 수 있다. 이 짧은 멈춤의 시간이 바로 당신이 정보의 노예에서 주체로 거듭나는 순간이다.
둘째, ‘언어적 정직성’을 회복하는 것이다. 뉴스 기사나 소셜 미디어 게시물에서 감정적인 수식어와 극적인 해석을 모두 걷어내고, 오직 객관적으로 검증 가능한 사실이 무엇인지를 찾아내는 훈련이다. “A가 B라는 끔찍한 만행을 저질렀다”가 아니라, “A가 B라는 행동을 했다”고, 마음속에서 언어를 정화하라. 이 훈련은 사건을 있는 그대로 보게 하여, 불필요한 감정적 소모를 막고 합리적인 판단을 가능하게 한다.
셋째, ‘지적인 용기’를 실천하는 것이다. 이것은 나의 확증 편향과 가장 적극적으로 맞서 싸우는 방법이다. 의도적으로 나의 관점과 반대되는, 그러나 논리적이고 건전한 주장을 담은 글이나 매체를 찾아 읽어보라. 이는 나의 믿음을 바꾸기 위함이 아니다. 나의 믿음이 얼마나 단단한 근거 위에 서 있는지를 시험하고, 내가 보지 못했던 다른 측면을 이해함으로써 더 온전한 진실에 다가가기 위함이다. 다른 의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패배가 아니라, 진실을 사랑하는 자의 가장 큰 용기다.
현재 우리가 처한, 가짜 뉴스와 확증 편향의 시대는 우리 각자에게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는 스토아적 철학자가 될 것을 요구한다. 외부의 정보 환경이 아무리 오염되더라도, 내 마음의 문을 지키는 최종적인 책임은 나 자신에게 있기 때문이다. 진정한 진리는 완벽하게 객관적인 뉴스 채널을 찾는 데서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정보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내면의 이성이라는 견고한 성채를 구축하는 데서 발견된다. 외부의 진실이 그 어느 때보다 불확실한 시대에, 우리 영혼의 진실성을 지키는 것, 이것이야말로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중요하고도 시급한 과제다.